소설가 정세랑이 사진가 목정욱에게 열 권의 책을 선물했다.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잡지를 사랑한다. 잡지 한 권이 완성되려면 수십 명에 이르는 전문가의 손길이 더해지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를 만나고 발견하기도 한다. 〈W Korea〉와 가진 1월호 인터뷰 사진을 사진작가 목정욱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아래 열 권의 책은 그에 대한 벅찬 감사의 표현이다. 사적인 선물의 기록이 될 수도 있었지만, 책을 사랑하는 더블유 독자들과 공유하는 게 좋겠다는 담당 에디터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과 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이 계절은, 책을 읽기에 가을보다도 낫다고 종종 생각해왔다.”
<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달, 2017
길지 않은 소설도, 이어지는 에세이도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표지의 아이스크림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맑게 녹아 없어지는 듯했다. 어쩌면 셔벗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햇볕 좋은 주말의 오후에 함께하기에 이보다 나은 책은 없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테드 창, 북스피어, 2013
제목도 표지도 딱딱해 보이는데, 사실은 애완 인공지능에 대한 무척 사랑스럽고 다정한 SF 소설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뉴스가 요즘보다 훨씬 적었을 때 쓰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된 방식으로 미래를 내다보았다. 짧은 여행이나 출장에 가져가기 딱 좋은 사이즈의 책이기도 하다.
<브랫 패러의 비밀> 조세핀 테이, 검은숲, 2012
내가 그간 읽은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미스터리 소설이다. 인물들이 입체적이고, 대화가 생생하고, 풍경까지 손에 와닿을 듯하다. 작가가 일찍 세상을 떠서 몇 권 남기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가짜 경감 듀> 피터 러브시, 엘릭시르, 2012
내가 그간 읽은 것 중 가장 몰입감이 높았던 미스터리 소설이다. 밤새 놓지 못하고 읽었을 만큼 재밌었다. 고전 미스터리 특유의 분위기가 그리워질 때 골라 든다면 만족감이 높을 것이다.
<수상한 진흙> 루이스 새커, 창비, 2015
심한 난기류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 그 후로 비행기 타는 걸 조금 무서워하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책이 너무 재밌어서 전혀 무섭지 않았다. 루이스 새커는 천재가 아닐까 자주 생각한다. 새커의 작품이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다 보니 성인 독자들이 놓칠 때가 많아 속상할 정도다.
<예술과 중력가속도> 배명훈, 북하우스, 2016
한국 SF 문학계의 대표 주자, 배명훈 작가의 작품집이다. 몇 번을 읽어도 근사한 단편 소설인 <예비군 로봇>이 포함되어 있는데, 다시 읽어도 웃었던 곳에서 웃게 되고 울컥했던 곳에서 울컥하게 되어서 가장 좋아하는 과자를 슬쩍 권하듯이 내밀게 된다.
<조이 랜드>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14
스티븐 킹의 최근작 중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놀이공원의 풍경은 주인공이 회상하는 젊음과 닮았다. 공포 소설이지만 어째선지 다 읽고 나면 가본 적 없는 해변의 금빛 모래가 떠오른다.
<집밥 인 뉴욕> 천현주, 소소북스, 2015
요리를 잘하지도, 자주 하지도 못하면서 어째선지 요리 책은 꽤 많이 모았다. 그런데 이 책이 가장 읽기에도 즐겁고, 내용과 방향성에 동의할 수 있었다. 쉽게 따라 해보게 되고 결과도 좋았기에 바쁜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이 선물할 수 있다.
<술 취한 식물학자> 에이미 스튜어트, 문학동네, 2016
에이미 스튜어트는 어떤 주제에 대해 써도 풍부하고 유머러스하고 인상 깊은 글을 쓰는 저자라 믿고 읽는다. 게다가 장정까지 유난히 아름다운 책이라 어딘가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싶다. 원서를 훌쩍 뛰어넘은 디자인에 박수를 보낸다.
<새들의 천재성> 제니퍼 애커먼, 까치, 2017
새는 정말 다양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진화해왔고, 인류와는 아주 다른 경로를 택했기에 오해도 많이 받았다.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머리가 작은 새들은 멍청하리라는 것인데, 이 책은 그 오래된 오해를 유려하게 반박한다. 최근에 읽은 새와 관련된 책 중 가장 좋았다. 새를 이해하기 위해 흥미롭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인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는 근사한 책이다.
- 피처 에디터
- 황선우
- 글
- 정세랑 (소설가)
- 포토그래퍼
- 목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