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출발선에 섰거나, 뚜벅뚜벅 걸어오다 훌쩍 날아오른 사람들. 더블유는 그들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오래 지켜보기로 한다.
이민조 · 모델
모델 에이전시 신화사 소속. 더블유를 포함한 다수의 매거진,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티셔츠 캠페인 촬영.
“열심히 하지 않고 확실히 하겠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마주한 이름 모를 건물에 붙어 있는 간판의 글귀는 이민조의 좌우명이 됐다. 스물세 살, 아직 철없을 나이에도 불구하고 민조와 1분만 대화를 나눠보면 이내 그의 당차고 야무진 생각에 감탄하게 된다. 민조의 트레이드마크는 헤어스타일이다. “학창 시절에 반삭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때 생각이 나 과감하게 잘라봤어요.” 반삭 헤어는 날카로우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턱선을 더욱 강조한다. “스무 살 때 인스타그램의 제 사진을 본 피플 퍼플에서 연락을 해왔죠. 그렇게 제 모델 커리어가 시작됐어요. 카메라 안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보는 일이 너무 좋아요. 멋진 포즈도 중요하지만, 사진 안에 스토리를 담아낼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최근 유독 예쁘기만 한 모델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민조에겐 하이엔드와 스트리트 스타일을 넘나드는 미스터리한 구석이 있어서 좋다. 반항적인 겉모습 뒤에 숨겨진 내면은 어떨까? “겉모습에 비치는 성격도 분명 있어요. 소심하고 안절부절못할 때도 많아요. 카메라 앞에 설 때면 그런 모습은 사라지죠.” 최근 운동에 푹 빠져 있다는 민조는 입고 온 나이키의 브라톱을 입고 촬영에 나섰다. 걸크러시를 불러일으킬 만큼 강렬하고 뚫어질 듯한 시선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전사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요리를 좋아해요. 영화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먼 미래에는 영화평론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고요. 에너지를 발산하며 몸을 쓰는 액션 배우 역할도 해보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저의 좌우명처럼 뭐든 확실히 하면 빛을 발할 거라고 믿어요.”
김수민 · 모델
IMG, 한국 YG K Plus, 베를린 IZAIO 매니지먼트 소속. 해외에서 Xu라는 이름으로 활동. 2018 S/S 릭 오웬스, 겐조, 벨루티, 미하라 야스히로 등 런웨이 쇼. 모델스닷컴과 I-D 매거진에서 뉴 페이스로 주목.
쉽사리 말을 건네지 못할 것 같은 비범한 포스를 내뿜으며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낸 수민. 말 그대로 빡빡 밀어버린 헤어스타일, 역시 밀어버린 눈썹, 게슴츠레하기도 신비롭기도 한 눈, 그리고 기괴하리만치 비쩍 마른 몸. ‘이 사람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마더 에이전시인 런던 IMG에 소속돼 본격적인 해외 활동을 시작한 수민.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게 수민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와의 인터뷰 내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가장 궁금한 건 도대체 별명이 뭐일까였다. “학창시절에 온갖 곤충류나 뼈다귀류는 다 제 별명이었어요. 대학 때는 개미였고요. 예전에 ‘웃찾사’에서 나온 개미핥기와 닮았다고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죠.” 역시 별명부터 범상치 않다. “어릴 적에는 제 외모와 이름을 다 바꾸고 싶었어요. 어머니에게 성형수술을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죠. 이름은 또 너무 여자 같아서 불만이었고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스무 살이 되면 얼굴도 커지면서 눈도 커지고 하니 걱정 말라 하셨어요. 철석같이 믿었는데, 역시나 하나도 안 바뀌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시선이 다양해지면서 모델로서 호평해주니 감사할 따름이죠. 하지만 대중적이거나 상업적인 작업에선 많이 걸러지는 편이에요. 제 캐릭터 자체가 특수성이 있어서 확실한 비주얼에 따라 캐스팅되더라고요. 그래서 한정적이기보다 장벽을 부수고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가고 싶다는 게 모델로서 제 목표입니다.”
가장 놀라웠던 건, 그가 처음부터 모델을 꿈꿔온 게 아니라는 거였다. “일어교육을 전공했어요. 일본에서 살 땐 긴 머리를 했는데, 상상이 가나요? 물론 교생 실습도 했죠! 졸업하고 나선 다른 자격증도 준비해보고, 명동의 H&M에서 일도 했어요. 그러던 중, 서울 컬렉션을 준비하는 친한 동생과 동행했다가 갑자기 캐스팅이 됐어요. 그 후로 블라디스, 키미제이 등 특색 있는 디자이너들의 런웨이에 서게 됐죠.” 교생 선생님에서 빡빡 머리 모델이라니, 정말 다이내믹한 커리어가 아닐 수 없다. 해외에서도 그를 향한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팀 워커와의 작업이다. “타로 카드 캐릭터를 테마로 한 <어나더 맨> 매거진 촬영이었어요. 한참 촬영을 하는데 팀 워커가 탈의하고 촬영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 컷이 나중에 나왔을 때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죠. 외국에선 제가 한국인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냥 외계인 담당이에요(웃음). 사람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죠. 조만간 캐릭터의 제한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역할을 해보면 좋겠어요.” 수민은 릭 오웬스, 벨루티, 겐조 등의 컬렉션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브랜드도 많고 다양한 해외에서 더 평가받고는 있지만, 한국인이면 한국에서도 잘해야 한다며 스물아홉 늦깎이 모델은 당찬 꿈을 키워간다. “모델이 제 꿈의 직업은 아니었지만 하다 보니 욕심이 많이 생겨요. 생로랑 쇼에도 서보고 싶고, 나아가선 다양성을 개척하는 데 한몫할 수 있는 캐스팅 디렉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음… 일본어는 소소하게 유튜브 클립을 볼 때 유용하게 쓰면 될 것 같아요(웃음)!”
선윤미 · 모델
2018 S/S 루이 비통 월드와이드 익스클루시브 모델. 2017 F/W 베네통, 2018 S/S 돌체 & 가바나, 아이스버그 캠페인 촬영.
2014년 데뷔해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온 선윤미는 모델로서 가질 수 있는 커다란 꿈 중 하나를 이미 이뤘다. 그의 진가는 2018 S/S 시즌에 폭발적으로 드러났는데, 선견지명이 있는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그녀를 익스클루시브 모델로 선점했다! “캐스팅 때 니콜라가 눈썹이 정말 예쁘다고 칭찬해주더라고요. 첫 만남 때부터 저를 인정해주는 그의 애티튜드에 감동했죠. 바로 다음 날 확정 연락을 받았을 때, 언젠가 루이 비통 쇼에 서고 싶다는 소원이 이뤄져 행복했어요. 익스클루시브 모델 중 동양인이 제법 많아졌지만 사실 아직도 소수잖아요. 제가 그 한 부분이 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곧 선윤미 시대의 도래를 기대해봐도 될까? 최근엔 돌체&가바나, 아이스버그 등의 S/S 캠페인에 등장하며 해외 매거진 촬영도 이어지고 있다. 니콜라의 말처럼 모나리자 같은 눈썹이 매력적인 윤미는 스무 살 때 모델과 재학 중 ‘페이스 오브 코리아’ 대회를 통해서 모델 일을 시작했다. ‘누구 같은 모델’이라기보단 ‘나다운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2018년에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며, 본격적인 뉴욕행을 준비 중이다. “이번에 가면 오랫동안 머물 예정이라 지금부터 각오하고 있어요. 뉴욕을 비롯한 해외 활동에 몰두하기 위한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 힘들어도 버티고 끝까지 해볼 작정입니다.”
선윤미에게 모델로서 자신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보통 자신의 외모적 특징을 언급하는데, 그는 예상치 못한 답을 들려줬다. “저의 강점은 한국인이라는 거예요. 한국인인 게 좋고, 한국말, 한글 다 좋아요. 이 자부심을 가지고 해외에서 한국 모델로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겠습니다!”
임지섭 · 모델
2018 S/S 서울패션위크 김서룡 쇼로 데뷔. 더블유, GQ 등 다수의 매거진 촬영.
사진가 목정욱은 임지섭을 찍는 내내 셔터를 멈추지 않았다. “계속 더 많이 찍고 싶다!” 단 한 컷을 위해 오랜 시간 공들인 사진가는 그에게 흔치 않은 칭찬의 말을 건넸다. 데뷔 1년 차라는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유연한 몸짓과 표정으로 분위기를 압도한 임지섭은 2017 F/W 김서룡 컬렉션 런웨이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누나 친구가 모델이었어요. 이호정 누나요! 초등학생 때 자주 보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모델이 된 후 다시 만나니 너무 멋지더라고요. 그때부터 모델이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남자 모델이 여자 모델보다 더 힘들 수 있는데, 그래서 더 좋아요.”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임지섭은 어렵고 힘든 일에 도전하길 겁내지 않는 청춘이다. “모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이후 매거진을 정말 많이 봤어요. 현장에서도 선배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요. 힘든 촬영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와이어를 타거나, 물속에서 촬영한다거나 하는 극한 촬영 계획이 있다면 꼭 저를 불러주세요!”
촬영이 시작되자 임지섭은 리듬감 넘치고 부드러운, 신인이라곤 여겨지지 않는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그를 보며 ‘카메라 앞에 서면 눈빛이 달라진다는 게 바로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비결이 뭘까?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선배인 이요백 형을 현장에서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일하는 자세에 대해서요. 이야기와 맥락이 전해지는 한 편의 연극을 펼치는 게 바로 모델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공대생이었던 임지섭은 모델 일에 전념하고 이 세상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빨리 다가가기 위해 학교를 2주 정도 다닌 후 자퇴를 결심했다. “부모님이 공부보다 많은 걸 경험해보라고 격려해주시는 스타일이에요. 꿈도 계속해서 바뀌는 것처럼, 관심 있고 해보고 싶은 것에 몰두하고 싶어요. 그래서 운동도 정말 열심히 해요.” 문득 지난 12월호 핼러윈 화보 촬영장에서 본 임지섭의 탄탄한 복근과 놀라운 점프력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혹시 교포 아니냐고 많이 물어봐요. 애 같은데, 사진에선 다르다는 말도 많이 듣죠. 모델 일 열심히 하다가 뉴욕에도 진출해보고 싶어요. 2018년에는 꾸준히 일하면서 입지를 탄탄히 다지는 게 목표죠.” 어떤 모델로 기억되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믿고 쓰는 임지섭!”
이기현 · 모델
2017년 더블유와 YG K PLUS가 함께한 더블유 모델 서치 패션화보부문 상 수상.
이기현은 2017년 더블유와 YG K플러스가 함께 진행한 모델 서치에서 패션 화보 부문 상을 수상한, 숨겨진 보석이다. 아직 가공되지 않아서 더 빛나고, 멋지게 갈고닦으면 더 발전할 그런 존재라고나 할까? “모델을 하고 싶다고 처음 생각한 건, 디올 옴므 쇼를 보고 나서예요. 그 무대에 꼭 서보고 싶었어요. 패션에 관심이 있었지만, 제가 살던 울산에서는 패션을 접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한정적이었죠. 군대에 가서 2년 동안 고민하다가 서울에 와서 본격적으로 모델 아카데미의 수업을 들으며 조금씩 꿈을 키워갔습니다.”
대화하는 내내 마치 블랙홀 같은 그의 깊고 검은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눈동자가 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차가운 이미지가 있는데, 그 부분이 저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롤모델에 대해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박성진이라고 답했다. 뷰파인더 넘어 무심코 서 있어도 존재 자체로 압도하는 모델, 이기현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더블유 모델 서치를 통해 화보를 처음 찍어봤어요. 올해에도 화보 경험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몸으로 직접 부딪치면서, 해외 진출도 욕심을 내보고 싶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차갑고, 기괴한 특징의 마스크를 어떤 식으로 어필할 지에 고민하며 찾아가고 있습니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표정 연습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돼 특별히 신경 쓰고 있어요.” 더블유 역시 앞으로 나날이 발전하는 그의 모습을 국내외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신인의 행보를 주목할 예정이다.
- 피쳐 에디터
- 황선우
- 패션 에디터
- 백지연, 이예진
- 포토그래퍼
- 목정욱, 윤송이
- 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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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현정
- 어시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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