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의 세 번째 향수, ‘휠 오드 퍼퓸’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되 꺾이지 않고 태양과 마주하되 맞서지 않는 이끼 가득한 숲의 공기가 느껴진다. 우거진 숲 한 가운데서 올려다본 하늘, 그 찰나의 기분과 촉감이 이 향수의 향이다.
단지 ‘코스메틱 브랜드’ 라는 정의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이솝의 철학은 세계 어느 곳이든 매장을 한 번 방문해보면 짐작할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기 보다는 고집스러운 신념을 바탕으로 건강한 삶과 피부의 균형을 추구하며, 아트, 지역 문화와 함께 호흡하고 자연스럽게 삶 속에 녹아 드는 뷰티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다.
1987년 호주 멜버른에서 탄생한 이솝은 복잡하지 않은 성분으로도 효과적인 스킨케어 제품을 만들어 왔다. 특히 마니아들에게는 이미 깊이 각인되어 있는 브랜드 특유의 아로마, 라벨, 패키지, 그리고 지역색을 예술적으로 살린 전 세계 매장 디자인, 세밀하고 까다로운 품질 기준까지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지켜오고 있다.
주변에서 한 번쯤 추천 받아봤을 좋은 성분으로 만든 크림이나 세럼, 핸드크림 말고도 이솝에는 존재감이 확실한 향수들도 존재한다. 브랜드의 첫 향수이자 모로코의 공기가 느껴지는 ‘마라케시 인텐스’, 그린 아로마 향이 담긴 ‘테싯’과 9월 25일 출시된 세 번째 향수 ‘휠 오드 퍼퓸’이 있다.
과연 2년만에 출시하는 ‘휠 오드 퍼퓸’에는 어떤 스토리와 철학이 담겼으며, 어떤 영감이 향으로 탄생했을까? 그 생생한 이야기와 함께 가장 먼저 향수를 만나보기 위해 프레스 이벤트가 열린 호주 시드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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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고 이끼를 밟으며 입장한 ‘휠 오드 퍼퓸’ 론칭 행사장에는 시드니의 햇살과 촉촉히 젖은 이끼, 사이프러스의 내음이 향수와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었고 긴 여정으로 노곤해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여 주기 충분했다. 따듯한 차를 마시며 시작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비로소 ‘휠 오드 퍼퓸’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호주 아티스트 조나단 맥케이브의 작품이 새겨진 박스에 담긴 ‘휠 오드 퍼퓸’은 사이프러스와 프랑킨센스, 베티버 향을 통해 고목이 가득한 일본의 신비로운 숲과 이끼가 가득한 사찰의 모스 가든의 공간과 공기를 표현해낸 향수. 굉장히 우디하면서도 관능적인 느낌의 잔향이 남는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행사장에 만난 조향사 바나베 피용과 이솝의 제품 개발 제너럴 매니저 케이트 포브스와 좀 더 가까이서 향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차분하고도 친근한 어조와 편안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솝에서 지금까지 출시한 두 가지 향수와 ‘아로마틱 룸 스프레이’, 새로운 식구가 된 ‘휠 오드 퍼퓸’까지 모두 독특하면서도 흔치 않은 향이다. 이건 향수뿐만 아니라 이솝의 모든 제품에서도 느껴진다. 이솝이 지향하는 향의 기준이나 지향점이 있나?
Kate Forbes 이솝에게 있어서 ‘향’은 매우 강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 이솝의 향수 레인지는 단순히 적당히 좋은 보태니컬 에센셜 오일을 조합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집착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최고급 보태니컬 성분의 에센셜 오일 배합하여 제품을 만들고, 피부에 닿았을 때의 영향까지 생각한다. 특히 사용하는 모든 이들이 향을 접했을 때 느낄 하모니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공간에서의 적절한 배합과 지속성 또한 고려하며 제품을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솝의 향후 계획에 대한 기대가 있다. 향이 이솝에게 강점이지만,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섣불리 자주 제품을 출시하진 않을 것이다.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데 보통 약 2년정도 소요되고, 그 향이 고객들에게 사랑 받는지 시장에서의 반응을 살피고 난 후 다음 작업에 비로소 착수한다. 따라서 ‘마라케시 인텐스’를 처음 선보인 2년뒤 비로소 테싯이 출시되었고, 테싯 출시 2년 후에 ‘휠 오드 퍼퓸’을 선보이게 되었다.
‘휠 오드 퍼퓸’은 이솝과의 두 번째 컬래버레이션 향수다. ‘마라케시 인텐스’ 협업 이후 이솝과 다시 작업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Barnabé Fillion(이하 B) 지금까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모두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마라케시 인텐스’를 작업하면서는 이솝의 ‘사람’ 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고 느껴졌다. 그들은 모두 전문가이고, 이솝만이 가지고 있는 뚜렷한 브랜드 철학 자체도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큰 이유가 되었다. ‘마라케시 인텐스’를 만든 이후에도 우리는 향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 결국 ‘휠 오 드 퍼퓸’이 탄생하게 되었다.
단순한 향수 개발에 그친 것이 아닌, 독특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진행되었다고 들었다. 어떻게 달랐나? 비하인드 스토리도 궁금하다.
B 서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일한 것이 작업에 도움이 된 것 같다. 나는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솝의 본사는 호주라 자주 만나기는 어려웠다. 물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자주 소통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미팅을 진행한 것은 일년에 평균 2~4번 정도였다. 대신 향에 대한 영감, 방향성을 명확히 설정했고, 그 안에서 크리에이티브 프로세스를 자유롭게 진행했다. 파리에서도 대부분 혼자 작업했고, 전문가팀과 함께 약 150번 정도 이솝과 샘플을 나눴다. 성숙도나 침용에 따라서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걸 알코올의 마세라시옹이라고 하는데 향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와인과도 비슷한데, 첫 번째 향은 프레시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향이 숙성되는 등의 변화가 생기므로 가장 적합한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휠 오드 퍼퓸’은 300년 이상 된 히바 고목이 가득한 일본의 숲과 일본 사찰의 모스 가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많은 나라 중에서도 일본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나?
B 그 당시 영감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소재를 찾고 있었고, 마침 일본을 자주 여행하는 시기였다. 특히 교토의 이끼 사원과 정원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곳의 이끼는 150년이상 된 것들이었고, 심지어 5백가지 이상의 종이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자라고 있었으며 어떤 곳은 사원보다 이끼가 더 중요하게 관리되는 듯 했다. 이렇게 동양적인 사상과 철학을 경험하게 되면서 작업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한 영감을 이솝과 나눴고, 이솝도 크게 호응했다. 사실 꼭 일본의 숲이 아니더라도 울창하고 오래된 숲을 연상해보면 될 공감할 수 있을 거다. ‘휠오드 퍼퓸’의 메인 카피가 ‘Space between us’인데 울창한 숲에서 하늘을 우러러봤을 때, 나무와 나무 사이 겹쳐지지 않는 공간 사이로 밝게 비치는 햇빛을 보고 느껴지는 생명체와 우리와의 사이, 즉 자연과 인간의 사이에 대한 사유를 향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숲과 이끼에 집중한다는 것은 흔한 취향은 아닌 것 같다. 혹시 당신이 식물학과 본초학을 공부했기 때문인가? 게다가 사진작가이자 스타일리스트, 모델로도 일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조향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B 창작에 도전하고 싶었고 영감을 불어 넣을 수 있는 향수를 만드는 일에 끌렸다. 생각해보면 늘 향에 매료되어 있었고 아이디어를 향으로 표현한다는 개념은 복잡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참 매혹적인 일이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더라, 향후 한국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를 개발해 볼 생각은 없나?
B 사실 한국은 2~3번 정도 매우 짧은 시간 방문했었다. 새로운 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자세하고 깊은 리서치가 필요해서, 즉흥적으로 어떤 향이 한국의 향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한국의 정교하고 고귀한 문화를 담은 향수를 만들 수 있길 기대한다.
- 에디터
- 금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