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하우스의 로고를 입고, 신고, 두르고, 써보았다.
1990년대를 주름잡은 패션 브랜드의 로고가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적극 소환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다. 유스 컬처의 쓰나미와 1990년대 패션 스타일의 귀환, 베트멍이 불러들인 브랜드(챔피온, 타미 힐피거, 쥬시 쿠튀르, 휠라, 리복 등등)가 느닷없이 하이패션 영역으로 들어왔고, 넋 놓고 있다가 옷장 속에 처박아둔 그 시절의 이름을 찾느라 분주했다. 그로부터 두 시즌이 지나는 사이 우리는 대문짝만 한 로고가 주는 시각적인 효과와 자극에 익숙해졌다. 지지와 벨라 하디드, 켄들 제너, 킴 카다시안 등 톱 모델의 일상복엔 늘 로고가 함께했고 리한나, 에이셉 로키(A$AP Rocky), 저스틴 비버와 같은 뮤지션의 허리와 가슴을 장식한 로고 행렬을 지켜봤다. 인터넷 기업(구글), 택배 회사(DHL), 패션 유통 기업(케어링)은 물론이고 고샤 루브친스키의 키릴 문자가 멋의 상징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산업 지대의 안전벨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는 브랜드 로고와 ‘Weight Securing System’ 레터링, 파운드로 무게를 표현한 샛노란 테이핑을 벨트와 핸드백의 스트랩, 팬츠 옆선에 박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한다.
이번 2017 F/W 컬렉션에서도 로고와 문자, 글귀의 등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Wmag.com에서는 “확실히 중단된 것이 아니다. 하이패션의 로고가 캘빈 클라인, 구찌 덕분에 새롭게 귀환하고 있다”라는 제목 아래 계속되는 로고 효과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캘빈 클라인을 빼놓고는 설명이 안 되는 올겨울에 라프가 가장 먼저 끄집어낸 것도 수십 년 전의 클래식한 로고다. 쇼 당일, 케이트 보스워스가 입고 나타난 새하얀 로고 티셔츠는 보자마자 캡처를 부를 만큼 매력적이었음은 물론. 지난 시즌 디올에서 데뷔 쇼를 치른 마리아 그라치아도 로고 밴딩 속옷과 밴딩 슬링백으로 시작을 알렸다. 평가야 어쨌든, 젊고 신선한 에너지를 주입했다는 건 다 아는 사실. F/W 버전으로는 바 재킷의 아랫단에 ‘Christian Dior’ 로고 테이핑을 더하고, 키튼힐의 스트랩과 핸드백에 자디올(J’adior) 레터링을 장식해 하우스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냈다. 하물며 구찌의 1980년대를 재해석한 빈티지 로고, ‘I Want to Go Back to Believing a Story’와 같은 코코 카피탄의 시그너처 문구를 담은 레터링티셔츠는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뉴욕을 떠나는 프로엔자 스쿨러의 잭 매컬로와 라자로 헤르난데스도 처음으로 자신의 로고를 아우터와 지퍼의 패브릭에 새겼다. 한편 베르사체는 자신의 로고와 더불어 ‘사랑(Love), 힘(Power), 용기(Courage), 통합(Unity)’ 등 간결한 단어를 티셔츠와 소매, 모자, 목도리 등에 장식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지난 7월, 최대 이슈였던 슈프림과 루이 비통의 협업 에디션을 떠올려보라. 네이밍과 로고로 승부하는 스트리트 컬처와 하이패션을 결합한 로고가 주는 폭발적인 판타지의 정수가 아니겠나. 지금의 패션은 드러내고 과시하고 표현하는 감정에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을 단 두 가지 방법으로 나타낸다. ‘로고’와 ‘단어’로.
- 에디터
- 이예진
- 포토그래퍼
- 유영규
- 모델
- 지현정
- 헤어
- 이일중
- 메이크업
- 김부성
- 어시스턴트
- 홍수민, 조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