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를 사이에 두고 애호가와 동물보호론자들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사이, 한쪽에선 인조 모피가 조금씩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고무적인 건 해를 거듭할수록 단순한 ‘대안’을 넘어 또 다른 ‘장르’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인조 모피의 반란은 진짜 모피를 물리칠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모피는 가치관을 가르는 일종의 잣대가 되어버렸다. 개인적으론 모피 반대 운동을 응원하지만 극단적인 방식이 오히려 반감을 일으키는 사례를 수없이 목격했다. 런웨이에 난입하고 셀레브리티에게 토마토를 투척하는 등의 과격한 행동은 이슈를 모으긴 해도 모피 애호가의 코트를 단번에 벗길 수 없다는 이야기. 물론 아직 모피를 제대로 접하지 못한 이들에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진 몰라도 누군가는 ‘유난스러운 행동’이라고 느끼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즉 모피 애호가를 맹렬히 비난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모피를 멀리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조금씩 자연스럽게 제공하는 편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SNS를 떠도는 잔혹한 도살 장면이 누군가에겐 분명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대부분 결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인조 모피의 장려는 모피 반대를 위한 부드러운 설득의 일환으로 여겨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SNS에서 생각지도 못한 기사를 읽었다. 이른바 착한 대용품이라 여겨지는 인조 모피가 오히려 불특정 다수의 모피에 대한 욕망을 부추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유인즉슨 모피에 대해 특별한 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진짜처럼 감쪽같이 만든 인조 모피를 보면 ‘인조 모피가 사고 싶다’가 아닌 ‘모피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고. 이는 대다수가 인조 모피를 모피의 대안으로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즉 모피를 욕망하지만 높은 가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대체품 말이다.
드리스 반 노튼, 샤넬, 아크네,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이른바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인조 모피를 선택하는 건 과거처럼 상품의 가격을 낮추거나 진짜 모피로 현혹시키기 위함이 아닌 또 다른 장르의 소재로 인조 모피를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푸시버튼을 위시해 쟈니해잇재즈, 프리마돈나, 로우 클래식, 럭키슈에뜨 등의 로컬 디자이너 브랜드들 또한 인조 모피 아이템에 애정을 드러내는데, 그 이유 역시 가격이나 윤리적인 이슈를 초월한다. 2013 F/W 시즌 본격적으로 인조 모피 아이템을 선보인 쟈니해잇재즈의 디자이너 최지형 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모피와 달리 인조 모피는 색상과 텍스처를 자유자재로 주문할 수 있어요. 이번 시즌에 은은하게 반짝이는 인조 모피를 사용한 것처럼요. 예전처럼 페이크 퍼는 그저 값싼 소재가 아니에요. 최근엔 인조 모피를 생산하는 전문 업체가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털 날림이 적고 진짜 모피와는 또 다른 매력의 모피를 생산하고 있어요. 그렇게 퀄리티가 높은 인조 모피는 가격대도 높은 편이죠.” 가죽과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착한 패션의 선구자 격인 스텔라 매카트니는 단순히 그녀의 의상을 가죽이나 모피를 사용하지 않아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에 구입하길 바란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실제로 우리는 그녀의 바람대로 그녀의 디자인에 매료되었다. 그녀의 개인적인 가치관은 부차적인 문제다. 즉 진짜 혹은 가짜인지는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다. 세련되고 근사한 인조 모피, 즉 진짜 모피를 흉내 내는 카피캣이 아닌 이를 뛰어넘는 인조 모피가 꾸준히 등장하고 진화하는 한 언젠가 반드시 이 잔혹한 모피의 시대는 자연스럽게 종식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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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트리뷰팅 에디터 / 송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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