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살아 있는 전설인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의 패션 철학과 아티스틱한 비전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 펼쳐진다. 바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코스튬 인스티튜트에서 펼쳐지는 <Rei Kawakubo / Comme des Garcons : Art of the In-Between> 전시. 이 역사적인 전시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한껏 안은 채, 전시를 진두지휘한 코스튬 인스티튜트의 큐레이터 앤드루 볼튼(Andrew Bolton)을 만났다. 레이와 깊이 있는 교감을 나눈 현시대 가장 각광받는 패션 큐레이터와의 지적이고도 열정적인 대화.
<W Korea> 만나서 반갑다. 5월1일에 뉴욕에서 선보일 전시 프리뷰인 성대한 메트 갈라(MET Gala) 이벤트에 앞서 3월, 파리에서 프라이빗한 프레스 프리뷰를 선보였다. 현장에서 전시 예정인 작품 5벌을 먼저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의상을 특별히 선택한 이유가 있나?
앤드루 볼튼 다섯 룩은 일종의 전시 도입부라고 할 수 있다. 후에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이 룩들을 다시 마주할 것이다. 이 룩을 고른 이유는 레이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몸과 하나가 되는 옷을 창조한 특별한 디자이너다. 특히 프리뷰 룩 중 ‘Dress Meets Body / Body Meets Dress’는 레이가 처음으로 몸과 드레스가 하나가 된다는 콘셉트로 만든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파리 패션위크 기간에 레이 가와쿠보가 진두지휘하는 F/W 시즌 꼼데가르송 쇼를 보았다. 당신도 그 자리에 함께한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 쇼에도 전시의 연결 고리가 있나?
개인적으로 쌍둥이를 연출한 듯 두 모델이 등장해 서로 일정 거리를 두고 움직이는 퍼포먼스 형태에서 이번 전시 주제인 ‘사이 공간(In-Between)’이 느껴졌다. 그러한 연출을 통해 사람들 간의 소통이라는 메시지도 전해졌고 말이다.
‘Art of the In-Between’이라는 타이틀이 매우 흥미롭다.
레이는 늘 ‘In-Between’ 공간을 통해 예술적 창의성을 드러내고, 이원성과 이분법을 해체해 용해시킨다. 대립하는 경계선 같은 남자와 여자를 하나의 물체로 보기도 하고 말이다. 그녀는 창작 과정에 있어서 나이, 인종, 성별의 벽을 깬다. 그래서 ‘In-Between’이란 레이의 예술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코스튬 인스티튜트에서 선보인 <Masterworks: Unpacking Fashion> 전시에서도 꼼데가르송 룩을 일부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룩을 설명하는 글에서 ‘오늘날 가장 영향력 넘치는 디자이너로서 역사와 전통, 그리고 트렌드를 모두 아우르는 레이 가와쿠보’라는 평이 인상적이었다. 당신에게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는 어떤 사람인가?
매 시즌 본질을 추구하는 동시에 새로움을 추구하는, 지칠 줄 모르는 혁신가다. 또 늘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의 과거를 용감하게 파괴한다. 일흔다섯 살의 그녀는 일을 할 때면 나이와 성과 성별에 대해서 전혀 느끼게 하지 않는다. 그저 생각과 표현의 자유만 있을 뿐. 레이 가와쿠보의 세계를 전시 주제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레이와 늘 쇼를 하고 싶었고 그에게 여러 번 제안했다. 이러한 관심으로 그 동안 메트로폴리탄 코스튬 뮤지엄에서 선보인 수많은 전시에서 그녀의 일부 의상을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오늘날 동시대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로 존경받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가 아방가르드하다고 생각하지만, 레이는 사실 전통에 깊은 경외감을 품은 인물이다.
전시 준비 과정은 어떠했나?
대략 1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9개월 정도 소요되었다. 대부분의 큐레이터와 뮤지엄은 이런 규모의 전시를 열기 위해 3년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겐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중요한 점은 이번 전시가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마치 ‘In-Between’이라는 명쾌한 주제를 지닌 쇼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회고전은 연대순으로 구성이 이뤄지지만 우린 마치 에세이처럼 움직였다고 할까.
이번 전시 역시 알렉산더 매퀸의 회고전 같은 감탄과 감동이 예상된다. 인물에 초점을 맞춘 전시, 이를테면 당신이 큐레이팅한 알렉산더 매퀸이나 미우치아 프라다의 전시처럼 ‘레이 가와쿠보’라는 한 인물을 전시로 담는 과정은 어떤 점이 특별했나?
레이는 신비함이 깃든 신화적인 존재다. 그 작업은 매우 난해하기도 하고 또는 해석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레이는 그의 작품을 몸으로 경험할 것을 제안하고, 의미 부여를 원치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컬렉션이 가장 이해된 컬렉션이라고 할 정도다. ‘Broken Bride’와 ‘White Drama’ 같은 컬렉션은 전 세계적으로 찬탄을 받았으며 사람들에게 널리 공감을 얻었지만 레이는 그것들이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악평도 선호한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도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같은 구석이 있다. 그런 동시에 매우 현실적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에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을 안겨주는 반면 어느 순간에는 거부한다.
레이와의 전시 준비를 위한 논의 과정은 어떠했나?
큐레이터로서는 해석하고 설명하고 뒤집어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레이가 싫어하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늘 티격태격하다가 그녀의 선택 쪽으로 기울었다. 한 마디로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그녀와의 싸움이랄까. 참, 카탈로그에 싣기 위해 그 논의 과정이 담긴 영상을 녹화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싸웠는지 알게 될 거다. 그래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많이 배웠다. 그녀는 내가 그 동안 진행한 전시와는 달리 현존하는 아티스트이기에도 남달랐다. 나는 아티스트와 큐레이터가 어떻게 함께 일하는지 보여주고 싶다. 왜냐하면 정해진 규칙은 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일하느냐의 문제이니까. 아마 다음 전시 주인공인 아티스트는 그녀와는 또 다른 활기와 다른 마인드로 우리를 흥분시킬 것이다.
지난 40년간 레이 가와쿠보가 선보인 꼼데가르송 컬렉션의 의상 120여 점이 공개된다고 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이번 전시에서 강조하는 마스터피스 룩이 있다면?
‘The Body Meets Dress’는 그녀의 상징적인 컬렉션이다. 그리고 꼼데가르송의 최근 여덟 시즌에 걸친 컬렉션은 매우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그녀의 의상이 늘 개념적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입을 수 있었다. 그런데 2014년 봄 시즌부터는 조금씩 변화했다. 입기 위한 의상이 아닌, 마치 몸 위에서 하나의 물체가 된 듯 보였으니까. 그래서 ‘옷이 아닌 옷’이 7개 컬렉션의 주제를 연결시키는 예시가 되었다. 또 90년대 선보인 ‘Clustering Beauty’는 여러 겹의 오간자로 만든 특별한 의상이다. 1992년 작인 신성한 블랙 스웨터 역시 이번 전시를 통해 특별히 소개된다. 모든 컬렉션이 매우 매혹적이어서 사실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전시 구성이 특히 기대된다. 전시관마다 다른 섹션의 ‘주제’는 어떻게 구성되었나?
입장하자마자 루트가 있긴 하지만 사실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왼쪽으로 갈 수도, 곧바로 갈 수도, 오른쪽으로 갈 수도 있지만 어디든 그 자체의 주제로 이해하면 된다. 본질적인 아이디어는 탐방하고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에 루트를 따라 레이의 특별한 예술성을 발견하면 된다. 일종의 미로 같다고 할까. 장소마다 놀라운 경험이 있는 여행이 되길 바란다.
레이 가와쿠보는 모노 컬러에 집중하는 디자이너다. 특히 자신의 컬렉션을 통해 ‘Red is Black’이라고도 언급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레드, 블랙, 화이트 등 그녀가 추구하는 주요 컬러 코드가 집중적으로 선보여지나?
물론이다. 블랙 섹션으로부터 시작되는 전시 공간에 입장하는 순간 아마 검정과 하양, 빨강, 그리고 금색의 시트와 조명이 보일 것이다. 금색은 그녀가 네번째로 선호하는 색상이다. 우리의 전시 공간에서 레이가 추구하는 색상의 패턴이 무엇인지를 모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선보인 모든 컬렉션에는 독창적인 철학이 배어 있다. 그녀의 패션 철학을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떻게 풀어내려고 노력했나?
모든 것은 ‘In-Between’이라는 주제로 투영되었다. 경계선 너머의 자아 성찰의 공간으로서 말이다. 또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의상의 크레딧은 그의 컬렉션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내 생각에 이 주제의 핵심은 자유로움이고, 사이의 공간이라는 주제는 즉 자유로운 생각의 시도이기도 하니까.
레이 가와쿠보라는 비밀스러운 디자이너의 개인적인 삶도 소개되나?
그는 매우 내밀한 사람으로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우린 오롯이 의상에만 집중했다.
무려 65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들러 역대 패션 전시의 모든 기록을 뒤엎은 지난 알렉산더 매퀸 회고전은 굉장했다. 당신만의 큐레이션을 통해 패션계뿐만 아니라 대중까지도 패션 전시에 그토록 열광할 수 있게 만드는 비결은 무엇인가?
좋은 스토리를 전하는 것, 나아가 비주얼적인 측면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람들은 전시회에서 모든 것을 눈으로 읽으려고 한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유혹적이고, 재미있고 교육적인 공간을 몸으로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전시에서 영감을 얻기를 원한다. 그녀야말로 영감을 주는 디자이너다. 이 모든 소통의 중심에는 패션이 자리하며, 옷 스스로가 스토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앞으로 당신이 꼭 한번 전시 주제로 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존 갈리아노! 늘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인물이다. 창조성과 독창성에 있어서 패션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정확한 날짜를 잡지는 않았지만 그의 컬렉션이 내포한 ‘드레스의 심리’를 키워드로 한 전시를 할 예정이다. 말하자면 드레스의 다른 차원, 즉 심연을 해석하는 시도다.
- 에디터
- 박연경
- 파리 통신원
- 이길배(GUILBE LEE)
- PHOTOS
- COURTESY OF THE COSTUME INSTITUTE AT METROPOLITAN MUSEUM OF ART, COMMES DES GARCONS, PAOLO ROVERSI, CRAIG MCDEAN, CLAIR DE L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