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고요한 순간의 뜨거운 찰나를 일깨우며. 배우 송중기를 넘어 서른세 살의 송중기로 오롯이 존재하는 그의 시간에도, 열정과 냉정이 자연스레 교차했다.
<W Korea>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끝난 지 벌써 1주년이 되었네요. 신드롬이라 할 만한 반응을 얻었죠. 드라마 속 유시진 대위의 모습을 벗고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송중기 드라마 방영을 마치고 바로 영화 촬영에 들어갔어요. 7개월 가까이 <군함도>를 찍었지요. 그 사이에 영화 한 편을 했고 개봉을 앞두고 있다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 것 같아요. <태양의 후예> 이후 하루도 못 쉬고 정신없이 지내다 이제야 숨돌리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최근 한국 PD 대상 시상식에서 출연자상-탤런트 부문 수상을 축하해요. 특히 이날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되었어요.
PD 대상 시상식이라는 곳에도 처음 참석했는데, 정말 각 분야의 다양한 스태프들이 오더라고요. 예능, 교양, 드라마, 라디오 등 각 분야를 망라해서요. 그 가운데 상을 받는데 그분들 수상 소감이 모두 다 진정성이 있는 거예요. 주로 배우들은 워낙 그런 데 익숙해 다양한 표현을 많이 하는데 그분들은 또 다른 느낌의 담백한 진짜배기 말을 해요. 그 때 제 바로 옆에 김문숙 작가님이 앉아 계시는데 “라디오 작가로서 매일매일 쓴 대본이 허공에 날아간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 뒤에서 <태양의 후예>를 쓴 김은숙 작가님이 “그래, 맞아 맞아”라고 하셨고요. 그 순간 ‘배우도 작품 털어내고서 집에 오면 허무한 느낌이 드는데 작가도 그렇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수상 소감에 ‘작가님이 소중하게 쓰신 대본이 날아가지 않게 채우는 배우가 되도록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거고요. 구성원인 나라도 그걸 좀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어요.
함께 일하는 스태프를 배려하는 마음이 남다른 것 같아요. 영화와 드라마를 넘어 화보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 협업 과정에 대한 이해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게 느껴져요.
배우라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거지, 저도 결국 스태프 중 한 명이자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나 자신에게 하는 마음가짐이기도 하고요. 시상식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그날 기분이 참 좋았어요. 뿌듯했고, 오랜만에 가슴 뭉클한 시간을 모두와 공유한 시간이었죠.
함께 촬영을 하며 예의 바르고 착하고 개념 있는 배우라는 평판을 넘어서 솔직한 모습도 느꼈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특히 ‘열정과 냉정 사이’에 빗대자면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요?
글쎄요. 열정과 냉정 중 어디에 더 가까울까요? 어렸을 때 그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말이죠. 그때는 나 자신이 열정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냉정에 가까워진 것 같고요. 그런데 다시 열정에 가까워지고 싶어요. 지금이 그런 시점인 것 같기도 하고요. 배려심이 많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배려를 한다는 건 뭐랄까, 자기 중심적인 아이가 아니고 어른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태도라고 봐요. 그렇다고 과도한 배려는 안 하려고 해요. 과도한 친절이 상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에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솔직함 역시 과하지는 않은 선에서 드러내려고 애써요. 또 직업 안에 갇혀서 끙끙대며 살고 싶지는 않고 균형을 맞추려고 하고요.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히 배려한다기보다 그저 일할 때 모두가 즐거울 수 있게 하려고 하는 거죠.
지금 촬영은 마치 스태프들이 마음을 모아 떠난 여행같은 느낌이 들어요. 여행을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새로운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나름의 방식이 있나요?
제가 좋아하는 장소에 와서 촬영하니까 저 역시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요. 제가 좋아하는 스태프들과 모여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는 게 저도 좋아요. 모두 잘 준비해주셔서 저도 더 열심히 하는 것 같고… 탈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거죠?(웃음) 여행을 좋아해요. 여행을 가서 특별하게 뭘 한다기보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걸어요. 한국에선 그럴 수 없으니까요. 아마 저와 함께하는 친구나 매니저는 힘들 거예요. 산책을 워낙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러기 쉽지 않으니 해외에서는 정말 질릴 때까지 걷는 편이에요. 뭐, 일종의 유산소 운동이죠.
여행을 할 때 고독하게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스타일인가요? 혹은 사람들과 그 순간을 공유하는 스타일인가요?
후자인 것 같아요. 소중한 사람들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건 여행뿐만 아니라 제 일상에서 모든 방식이 그런 것 같아요. 아끼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기분 좋고요. 함께하는 무언가에 많은 의미를 두는 스타일이죠.
LA를 배경으로 한 영화 <라라랜드>를 보았나요?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할리우드 영화 세트장, 그리피스 천문대, 리알토 극장 등 LA의 멋진 스폿들을 볼 수 있죠. 그중 가보았거나 혹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나요?
물론이죠. 어렸을 때 그리피스 천문대에 가봤는데 제 기억엔 딱딱한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너무 예쁘게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영화에 등장한 재즈 바도 가보고 싶고요. 그 야경을 내다보며 춤추던 곳도 가보고 싶고… 아름다운 장소를 떠나서 최고의 영화였던 것 같아요.
이 영화는 환상적인 뮤지컬 영화 형식을 띠다가 마지막에 사랑의 현실을 담은 리얼리티로 전환되죠. 두 주인공 중 누굴 응원하고 싶으세요?
남녀가 해석이 다르더라고요. 남자들이 오히려 감성적인 평이 많았고,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계속 판타지적인 뮤지컬로 풀다가 마지막에 현실을 대입한 감독의 연출에 놀랐고, 같은 배우로서 ‘배우들이 춤 연습을 많이 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특히 라이언 고슬링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처음 보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로맨티스트와 리얼리스트 중에 어디에 가까운가요?
라이언 고슬링이 영화 안에서 한 행동을 100퍼센트 공감해요. 사랑하는 여자가 원해서 그렇게 했는데 싶어 엠마 스톤이 미울 때도 있었고요. 그렇다고 뭐 완전 리얼리스트는 아닌 것 같고 로맨티스트가 되고 싶은 리얼리스트라고 할까. 그 로맨틱한 것도 삶의 부분이니까 리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할 사소한 부분까지도 진심만 들어간다면 전 그게 로맨틱이라고 생각해요.
패션을 보면 그 사람의 스타일을 알 수 있죠. 편안한 타입인지, 혹은 과시욕이 있거나 도전적인지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정돈된 가운데 편안함을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늘 가장 편안한 옷을 입어요. 과시하려는 성격이 전혀 아니죠. 연기도 그런 스타일로 하고, 항상 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몸에 배었어요.
세월이 흐르면 추구하는 것도 달라지곤 하죠. 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시도하고 싶은 패션에 대한 로망이 있나요?
예전에 비해 점점 더 클래식한 것에 꽂히는 것 같아요. 슈트에도 눈길이 가고, 액세서리를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시계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 멋지게 나이 들 것 같아요. 지나온 시간은 얼굴에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감사해요. 사실 성격이 얼굴에 묻어나잖아요. 저는 특히 배우라 그런지 배우 선배들과 선생님들을 보면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 얼굴이 편안하다 불편하다는 개념으로 다가와요. 얼굴이 살아온 삶을 반영하는 거죠. 눈빛도 마찬가지인데 매서운 눈빛이 있는가 하면 편한데 강단 있는 눈빛도 있죠. 그래서 잘 살려고 노력해요. 바른 생각을 하고 잘 살아야지 아름답게 늙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어느새 2017년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어요. 7월에 영화 <군함도>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한데, 올해 꼭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올해 가장 큰 소망이라… 영화의 성공만은 아니에요. 이 영화는 누가 뭐래도 대박이 날 영화니까요. 구성원으로서 제가 참여한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이 있어서 하는 이야기예요. 진짜 소망은 제 개인적인 시간을 그 어느 때보다 알차게 보내는 거예요. 데뷔 이후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을 해야지 하면서 늘 쫓기듯 지냈거든요. 그래서 올해엔 일에서 잠시 벗어나 그냥 서른세 살 송중기의 시간을 꽉꽉 채워서 보내고 싶어요. 쉬는 거든 노는 거든 여행을 하거나 공부를 하든 제 개인적인 시간을 소중하게 쓰면서 말이죠. 올해가 어머니 환갑이기도 해서 가족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휴식도 필요하고요.
여유가 생긴 건가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내게 지금이 그런 시기인 것 같고, 그게 맞는 것 같아요(웃음).
- 에디터
- Park Youn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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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주얼 스페셜리스트
- Kang Eun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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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 어시스턴트
- Jung Sang Hwa
- 총괄 프로듀서
- Sasha J Park @ SJP Production
- 프로듀서
- Crystal Sang @ SJP Production
- 로컬 프로듀서
- Christopher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