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해야 가로 세로 몇 미터 남짓한 윈도는 휘황찬란한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고성의 볼륨이 되기도 하고, 미성의 세이렌과 요정, 장난감이 살아 숨쉬는 판타지월드가 되기도 한다. 파리, 밀란, 뉴욕, 런던. 2011년을 맞이하는 세계적인 패션도시의 윈도 속에서 발견하는 상상 그 이상의 놀라운 원더랜드!
NEW YORK
Saks Fifth Avenue
매년 홀리데이 시즌마다 멀리 휴가를 떠나지 않는 뉴요커들은 마치 공연을 즐기러 가듯이 뉴욕의 랜드마크인 삭스 핍스 애비뉴 백화점을 찾는다. 단순히 윈도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퍼포먼스가 함께 열리기 때문인데, 올해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배경으로 백화점 건물 전면에 대형 프로젝터와 3D 기술을 이용해 눈송이와 비누방울이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연출했다. 1층의 대형 윈도 안에는삭스 백화점을 대표하는 10팀의 패션 브랜드-알렉산더 매퀸, 캘빈 클라인, 제이슨 우, 카우 프만 프랑코, 마크 제이콥스, 마르체사, 니나 리치, 오스카 드 라 렌타, 프로엔자 스쿨러,소피 테알렛-가 특별히 디자인한 홀리데이 드레스를 전시하기도 했다.
Henri Bendel
뉴욕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백화점으로 꼽히는 헨리 벤델은 비주얼 디렉터인 질베르토 산타나의 지휘하에 뉴욕 시티 발레단과 협업하여 세계적인 안무가 조지 발란신의 <호두까기 인형>의 장면을 연출했다. 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스페인의 마네킹 전문 회사인 아트레조에서 27개의 발레리나 마네킹을 특별 주문했고,의상은 뉴욕 시티 발레단의 코스튬 디렉터인 마크 하펠이 직접 참여하여 실제 발레리나들이 입는 튀튀와 같은 퀼리티를 재현해냈다.
Barneys New York
매디슨가에 위치한 고급 백화점 바니스에서는 매년 한 가지 테마를 선정해 이를 이용한 홀리데이 디스플레이를 보여준다. 올해는 ‘Have a Foodie Holiday’라는 표제 아래 바니스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유명 식음료 업체들과 협업한 윈도를 꾸몄다. 바니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뉴욕 패션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인 사이먼 두난의 작품이다. 알록달록한 식재료와 주방 기구를 훌륭한 아트워크로 변모시킨 아이디어가 빛난다. 특히 수백 개의 양철 소재 일리 커피 통을 이용해 만든 아름다운 쿠튀르 드레스를 입고 있는 마네킹의 모습을 연출한 ‘미스 일리’라는 작품은 가장 패셔너블한 디스플레이로 관심을 모았다.
Bergorf Goodman
‘당신과 함께 있으면 좋겠어(Wish You Were Here)’라는주제로 홀리데이 윈도를 만든 버그도프 굿 맨.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즐거움을 표현하겠다는 목표 아래 로마 신화, 1940년대의 할리우드 뮤지컬,재건축되기 전의 옛 펜 스테이션의 모습 등을 재현해냈다. 5번가에 위치한 5개의 메인 윈도는 오토메이션으로 움직이는 뮤지컬의 배경처럼 그림과 배경, 소품이 음악에 맞춰 자동으로 움직이는데, 이 환상의 세계 안에 있는 마네킹들은 각기 오스카드 라 렌타, 나임 칸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버그도프 굿 맨은 윈도를 직접 보러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Follow me’라는 메이킹 비디오를 만들고 유튜브를 통해 배포하기도 했다.
Tiffany & Co.
마법에 걸린 공주, 그녀를 구하려는 멋진 왕자, 그들을 돕기 위해 비밀의 열쇠를 물고 나타난 파랑새. 이런 뻔한 스토리의 동화가 유독 아름답게 들리는 건 포근한 눈송이와 아름다운 빛이 함께하는 홀리데이 시즌이기 때문이다. 뉴욕의 티파니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이 스토리를 기반으로 총 5개의 윈도를 구성했다. 윈도를 차례대로 감상하면 동화의 스토리를 짐작할 수 있다. 마법에 걸린 공주를 깨우기 위해 파랑새가 티파니의 키 네크리스를 물고 날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디스플레이는 가히 환상적이다.
PARIS
Le Printemps
파리 프렝탕 백화점에서는 이번 홀리데이 시즌, 4개 패션 브랜드에게 윈도 디스플레이 디렉팅을 의뢰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강하게 살아 있는 작품을 연출했다. 먼저 샤넬은 ‘화이트’를 주제로 화이트 오리가미 배경에 귀여운 마드무아젤 코코 인형을 들고 있는 크루즈룩의 마네킹을 배치하여 샤넬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출했고, 니나리치는 프랑스 궁정 느낌의 화려하고 긴 디너 테이블 위로 웅장한 샹들리에와 중세풍 드레스를 배치했으며, 알렉산더 매퀸은 빨간 벨벳을 배경으로 사슴 뿔을 머리에 장식하고 매퀸의 레드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을 설치한 위트 있는 윈도 작품을 완성했다. 하지만 이번 프렝탕의 윈도 중 가장 파리지엔의 탄성을 불러일으킨 것은 랑방이다. 랑방은총 3개의 윈도를 연출했는데 하나는 보물섬에서의 인형극, 두 번째는 경주마들의 행진, 세 번째는 핑크색 디저트로 가득한 테이블 위에서 춤추는 마리오네트 인형들의 댄스였다.랑방이 연출한 3개의 윈도 하나하나가 마치 한 편의 환상적인 어린이 뮤지컬과 같아, 윈도 앞에 매달려 인형의 춤을 감상하는어린이 관객들의 발길이 연휴 내내 끊이지 않았다.
Lanvin
인형을 사용한 프렝탕 백화점의 윈도는 어린이를 위한 것이었다면, 랑방 플래그십 스토어는 철저하게 성인을 대상으로 한 홀리데이 윈도 연출이었다. 가면 무도회를 주제로 파리지엔들의 섹슈얼한 파티 신을 재현한 것. 이중 빨간 조명 아래 가면을 쓴 남녀 마네킹이 마치 과도하게 샴페인을 마셔 쓰러진 듯이 누워 있고, 그 위에 ‘ Oh! My God’이라는 네온사인이 들어온 작품은 많은 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하느님을 부르는 것인지, 너무 취해서 괴로운 것인지 모를 만큼 헝클어진 여자 마네킹의 머리가 인상적이다.
Colette Paris
파리의 편집 매장 콜레트는 드라마틱하고 거대한 디스플레이로 승부하는 곳은 아니지만 언제나 ‘별거 아닌’ 아이디어 하나로 매장을 별스럽게 꾸미는 곳이다. 이번 홀리데이 시즌에 등장한 것은 콜레트의 상징인 파란 도트가 프린트된 슈퍼 미니 쇼핑백. 실제 트리 위에 이 쇼핑백들을 줄줄이 매다는 것만으로 홀리데이 윈도를 그래픽적이며 세련되게 완성했다.
MILAN
Moschino
옷과 액세서리, 광고와 매장 디스플레이에 이르기까지, 모스키노의 모든 콘셉트에서는‘유머’코드가 빠지지 않는다. 홀리데이 시즌의 윈도 디스플레이 역시 마찬가지. 차가운 북유럽에 사는 티롤 요정과 눈사람이 마치 마이애미의 해변가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저러다 녹아버리지 않을까 걱정되지만,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여유를 누리는 이들의 표정은 그저 행복해 보이기만 한다.
La Rinascente
밀라노 두오모 광장 근처에 위치한 리나센테 백화점의 홀리데이 윈도 디스플레이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총 8개의 윈도 디스플레이를 위해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8명을 초청해 윈도 하나마다 각기 다른 작품을 연출했기 때문.‘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동일한 주제를 8명의 아티스트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꽤 컸는데, 특히 암스테르담 출신의 설치미술가 티엡(Tjep)이 만든 ‘시계태엽 눈송이’라는 작품은 커다란 하트 모양의 태엽 장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오토메이션으로 표현하여 많은 찬사를 받았다.
Dolce&Gabbana
세계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밀라노의 델라스피가, 몬테나 폴레오네 등대표적인 쇼핑 거리 역시 홀리데이 시즌이면 반짝이는 금빛, 은빛 장식과 조명을 강조한 전통적인 디스플레이가 전시된다. 그런데, 역시 돌체&가바나는 달랐다. 익숙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니라 마켓의 가판대를 연상케 하는 수수한 빈티지 디스플레이였던 것. 과일이나 와인을 담는 나무 박스 안에 브랜드의 선물용 제품들을 넣어두어 친근함마저 느껴졌다. 최근 돌체&가바나는 광고에서도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나, 집에서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주부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는데 윈도 디스플레이 역시 이의 연장선상에서 비주얼을 디렉팅하고 있다.
Hermes Milan
에르메스는 도시마다 조금씩 다른 윈도 디스플레이를 선보이는데, 몬테나 폴레오네에 위치한 에르메스 밀라노매장에서는 오리가미(종이접기)를 이용한 아티스틱한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에르메스 특유의 마구 프린트가 돋보이는 드레스, 스카프 등 가벼운 실크 소재의 제품과 예술적으로 모양을 내어 자른 페이퍼 아트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느낌을 더했다.
LONDON
Harvy Nichols
런던의 백화점 중 전통적인 홀리데이 시즌 모티프에 가장 충실한 것은 하비 니콜스였다. ‘틴셀(크리스마스 시즌에 주로 쓰이는 금은 장식) 소리’를 주제로 동화 속 요정, 눈사람 등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루돌프 사슴코’ 같은 익숙한 캐럴을 배경 음악으로 썼다. 윈도 속의 독특한 주인공들이 입고 있는 의상은 자일스와 알렉산더 매퀸이다.
Fortnum & Mason
영국 전통의 다과 브랜드인 포트넘&메이슨은 늘 자사의 아기자기한 제품과 식기를 이용한 윈도디스플레이를 펼쳤는데, 올해는 좀 더 특별하게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아트 오브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마치 갤러리 같은 느낌의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홀리데이 시즌의 거실을 아티스틱하게 꾸미면 어떤 모습이 될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이에 따라 모든 매장의 윈도에는 내셔널 갤러리의 작품 외에는 어떤 포트넘&메이슨의 제품도 전시되지 않았는데, 듀크 스트리트 매장 딱한 군데만 홀리데이 기프트를 잔뜩 쌓아 올려 브랜드의 전통을 보여주었다.
Selfridges London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놀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드는 것이다.”런던의 셀프리지 백화점이 이번 홀리데이 시즌을 맞아 주목한 것은 저 유명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경구였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동심의 세계에 돌아갈 수 있도록 ‘키덜트 원더랜드’를 재현한 것. 이에 맞추어 성인을 위한 커다란 사이즈의 장난감이 윈도에 배치되었고, 백화점 내부에도 커다란 에르메스 백을 든 레이디 가가 모양의 인형,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만 한 크기의 바비와 켄 인형 등이 전시되었다.
Harrods
런던 해러즈 백화점의 홀리데이 행사는 전 영국인이 손꼽아 기다리는 커다란 공연과도 같다. 해러즈는 올해 홀리데이 시즌을 기념해 J.M. 배리의 동화 <피터팬>을 테마로 윈도 디스플레이는 물론 기념 컬렉션 제품까지 론칭했다. 수익금은 그레이트 올몬드 스트리트 병원의 어린이 자선 기금에 기부되는데, 이는 불우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1929년에 <피터팬>의 저작권을 그레이트 올몬드 스트리트 병원에 기증했던 작가의 뜻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이 테마에 맞추어 해러즈의 윈도와 매장 곳곳에서는 네버랜드에서 뛰노는 피터팬과 웬디, 후크 선장의 나르는 해적선 등을 볼 수 있었다.
- 에디터
- 패션 디렉터 / 최유경
- 기타
- 통신원: Woo Ri(밀라노), 권희정(런던), Jenny Park(뉴욕), 서꽃님(파리)/ PHOTOS: LIM CHANG HYUK(밀라노), KOUNIM SUH(파리), COURTESY OF BARNEYS, SAKS FIFTH AVENUE, TIFFANY&CO., HENRI BENDEL, BERGDORFGOODMAN, SELFRIDGES, HARRODS, FORTNUM & MASON, HARVY NICHO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