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 없는 뷰티 브랜드 중에서도 독특하고 고집스러운 철학을 가진 브랜드는 나만 알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피부에 잘 맞는 화장품이라서, 감각적인 색조 아이템이 좋아서 꾸준히 사용하고 사 모으는 기본적인 단계에서 나아가, 브랜드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히스토리, 감성과 가치관, 디자인 하나하나까지 공감하고 애정을 쏟게 만드는 잠재적 마니아 ‘부심’을 이끌어낼 브랜드를 소개한다.
단순함의 미학 그 이상 ― 이솝
이솝 매장에 들어서면 화장품 가게 같지 않은 미니멀한 분위기가 오묘한 설렘을 준다. 흐트러짐 없이 정돈되어 있지만 그것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이 있달까? 지나치지 않은 따뜻한 조명, 뮤직 코디네이터가 선정한 음악, 편안한 아로마 향의 조화가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자연스럽다. 조화와 진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브랜드 철학과 원칙에 감화된 이솝 마니아들은 모던한 브라운 보틀과 심플한 라벨링에 깊은 애정을 갖는다. SNS나 블로그 등에서는 내용물을 다 쓰고 난 보틀을 다양한 방법으로 재활용하고 이를 자랑하는 게시물을 자주 볼 수 있다. 플라워 숍을 운영하는 어느 VIP 고객은 다 쓴 크림 보틀을 다육식물 화분으로 만들어 지인에게 나눠주고 이솝 매장에 직접 선물하기도 했다는 훈훈한 제보도 있을 정도다. 이렇게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이솝의 패키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제품 제작에 필요한 여러 비용 요소 중 패키지의 비율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까다롭게 만들어졌다는 사실. 상당수의 제품이 활성 식물 추출물의 변질을 막아주고 자외선으로부터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한 불활성 갈색 유리에 담기는데, 이는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최대로 활용해 만든 것이다. 포장 역시 최소화하기 위해 제품 정보는 모두 콩기름 잉크를 사용해 라벨에 새긴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패키지 디자인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니 흥미롭지 않나? 여기에 최소한의 화학 물질을 사 용한 제품력까지 갖췄으니 이솝 마니아를 자처하는 이들은 꾸준히 늘어날 것 같다.
선택과 집중의 고수 ― 바이레도
바이레도는 국내에 처음 론칭하면서부터 까다로운 뷰티업계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듬뿍 받은 브랜드다. 한동안 요즘 즐겨 쓰는 향수가 뭐냐는 질문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을 정도니까. 그렇다면 불과 2006년, 스톡홀름에 처음 존재를 드러낸 이 브랜드에는 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걸까? 바이레도의 철학은 단순과 명확함이다. 모든 향은 원재료의 향을 최대한 명료하고 간결하게 전달하기 위해 함유되는 재료의 개수를 한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향 외의 요소 역시 심플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향수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온전히 향에 집중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모색한 결과다. 제품 패키지를 단순하게 만든 것도 바로 그 때문. 기교 없이 담담한 모양의 향수병 안에 든 아름다운 향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 때문에 오히려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SNS 노출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매장에서는 패키지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향을 맡기 전부터 구매 의사를 표하는 고객도 있다는 후문. 물론 제품의 패키지가 바이레도의 다는 아니다. 18가지 향의 제품 중에서도 브랜드를 알리는 일등공신 역할을한 향수 ‘블랑쉬’는 일명 ‘비누 향의 끝판왕’, ‘인생 향수’ 등으로 불리며 여성은 물론 남성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명료하면서도 세련된 향, 아트&패션과의 컬래버레이션, 토털 럭셔리 브랜드로의 도약을 예고한 뉴욕 콘셉트 스토어 오픈 등 늘 기대감을 갖게 하는 행보로 향수와 뷰티 아이템을 섭렵한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지갑을 계속 열게 만드는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하얀 나라를 보았니 ― 아스티에 드 빌라트
화산재가 섞인 새하얀 세라믹 접시가 먼저 떠오르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프랑스의 18, 19세기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하나하나를 정중하고 소중하게 손으로 만드는 장인 정신이 깃든 도자기로 유명하다. 2007년 처음 만든 향기 나는 주방 세제는 곧바로 수천 개가 팔렸고,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2008년에는 유명한 향수 제조사인 프랑수아즈 카롱과 함께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살린 향을 담은 캔들과 코롱까지 선보여 인기를 얻었다. 요리를 못 해도 우선 갖고 싶을 정도로 예쁜 접시와 그릇, 그리고 그 감각을 고스란히 담은 캔들과 향수, 인텐스, 보디 케어 제품이라니, 여자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프랑스와 일본, 뉴욕에 이은 네 번째 론칭은 바로 서울. 특히 10 꼬르소 꼬모에서는 쾰른의 물을 기준으로 만든 향수와 세계 각국의 여행지를 여행하듯 다양한 캔들을 시향해볼 수 있다. 향수는 대부분 시트러스 계열로 남녀노소 누구나 가볍게 뿌릴 수 있는 코롱이다. 향수에 거리낌이 있거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으며, 파리 감성의 패키지와 라벨 디자인 또한 감각적이라 선물하기도 좋다. 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이템은 바로 ‘산타 로사’라는 이름의 캔들. 만화 캐릭터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의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휴가를 메이플 시럽 향기로 표현했다. 캔들 뚜껑에 피규어처럼 얹히고 라벨에 새긴 스누피의 자태는 만화 캐릭터를 이렇게나 우아하게 접근할 수 있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얀 도자기가 주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 특유의 우아함까지 충족하고 싶다면 유기농 식물 성분으로 만든 핸드크림과 리퀴드 솝도 있다. 한마디로 모르면 몰랐지 한번 알게 되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마성의 브랜드다.
이건 그냥 비누가 아니야 ― 클라우스 포르토
1887년에 생겨난 포르투갈 최초의 비누이자 왕실과 귀족이 사랑한 천연 향수 브랜드다. 마돈나와 오프라 윈프리, 키라 나이틀리 등 수많은 셀레브리티들이 애정하는 브랜드로 소문난 클라우스 포르토 제품은 아트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아르데코 스타일의 패키지가 그야말로 ‘예술’이다. 제품마다 모두 다른 정교한 문양의 포장지로 하나하나 포장하고 왁스씰로 봉인해 쉽사리 눈을 뗄 수 없는 패키지 디자인은 보는 순간 ‘코즈메틱 덕후’를 자처하고 싶어질 만큼 우아하고 예쁘다. 제품 관련 SNS 게시물에는 #패키지덕후라는 해시태그가 따라다닐 정도. 하지만 클라우스 포르토 비누의 진짜 진가는 전문 조향사가 블렌딩한 70여 가지의 매혹적인 천연 향에서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일단 향의 조합부터가 남다르다. 브랜드에서 가장 역사가 긴 ‘클라시코 컬렉션’의 비누 향을 예로 들어보자면, 달콤한 거품과 맛있는 아몬드 향, 신선한 상추 향과 야생 바질 향 등 조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감각적인 향을 담아 마니아를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다. 아프리카 버터나무와 피스타치오, 망고에서 추출한 식물성 버터와 프로방스산 천연 향료를 블렌딩한 원료를 사용하며 화학적 방법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자연 숙성 건조 방식으로 느리게 건조하기 때문에 민감한 피부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비누 외에 배스와 보디, 옴므, 홈 프레이그런스 등의 아 이템을 두루 갖춰 선물하기도 좋다.
신선한 향기가 나는 실험실 ― 르 라보
르 라보는 그라스 지방의 향수에서 영감 받고 뉴욕의 자유로운 감성을 담아 탄생한 핸드메이드 퍼퓸 브랜드다. 실험실을 뜻하는 브랜드 이름처럼 향수를 주문하는 즉시 매장의 퍼퓸 랩에서 조향사가 직접 각 향수의 레시피에 따라 만들어주는 프레시한 향수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 그 특별한 경험을 해본 사람은 매장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데, 르 라보가 번거로울 수 있는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향수는 시간이 지나면 산화되어 신선도가 떨어지고 본래의 향이 변질된다. 이런 맹점을 극복하고 최상의 향을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즉석에서 블렌딩하는 방법을 고안한 것. 퍼퓸 랩에는 프랑스와 호주 등에서 공수한 향수 원액과 에탄올, 물이 분리되어 준비되어 있으며 향수가 병에 담기는 과정을 모두 직접 보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향수 보틀과 상자 라벨에는 영문으로 최대 23자까지 원하는 이름이나 메시지를 인쇄할 수 있어 같은 향수라도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다. 매장의 빈티지한 무드 또한 르 라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드는 요소. 세계 각국에서 공수한 원목 가구와 조명으로 채운 공간은 뉴욕 로어 맨해튼의 오래된 실험실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이는 르 라보 탄생의 영감이 된 일본 미학 ‘와비사비’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신념을 르 라보의 공간과 제품에서 느낄 수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과 이태원에 국내 첫 플래그십 스토어가 얼마 전 문을 열었으니 이제 르 라보의 모든 것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겠다.
옛것이 좋은 것 ― 산타 마리아 노벨라
이탈리아 피렌체에만 가면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이곳을 찾는다. 400년 역사를 가진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제품력과 향, 신뢰할 수밖에 없는 역사 때문에 좋아하는 뷰티 브랜드로 꼽는 이가 많다. 도미니크 수도사들이 사용하던 전통적인 천연 원료와 고대 제조법, 생산 절차를 그대로 따라 향수, 페이스·보디·헤어 제품,비누·방향제 등의 화장품뿐만 아니라 꿀, 티, 허브, 시럽, 초콜릿, 오일, 향료, 리빙 소품 등도 수공으로 생산하고 있어, 알고 보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 가깝다. 여느 브랜드와 달리 폭 넓은 카테고리를 갖춘 덕분에 매장에 들르면 화장품 섹션이 아닌 다른 아이템을 구경하며 신세계를 발견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평생을 우아하게 정성껏 자신과 주변을 가꾸며 살아온 귀부인의 집에 초대된 기분이랄까? 비누 하나 만드는 데 있어서도 환기실에서 60일간의 숙성 시간을 보내는, 19세기 방식 그대로 비누 원료를 만들며 포장은 수작업을 거쳐 완성한다. 이토록 까다롭고 번거로운 제조법 덕에 400여 년이란 시간 동안 제품 퀄리티를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호불호가 존재하는 게 화장품이라지만 ‘평타’ 이상은 하는 제품력을 가진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제품은 8가지 천연 원료 향으로 나눠진다는 게 또 다른 특징. 그중 가장 두터운 마니아 층을 보유한 제품은 ‘멜로그라노’ 라인의 아이템으로, 향은 좋은데 피부 개선 효과가 아쉬운 제품에 실망했다면 추천할 만하다. 클래식하고 기품이 느껴지는 제품 패키지 디자인과 매장 인테리어 또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제품을 선택하게 하는 이유다.
19세기로의 황홀한 여행 ― 불리1803
피렌체에 산타 마리아 노벨라가 있다면 파리에는 불리1803이 있다. 뉴욕과 파리에서 활동한 아트 디렉터 람단 투아미와 프랑스 뷰티 전문가 빅투아르 드 타이약 부부가 1803년부터 프랑스 귀족들 사이에서 식초 화장수로 사랑을 받은 ‘장 뱅상 불리 파머시’의 뷰티 레시피를 발견하고 복원해 탄생한 브랜드다. 현대 감각과 기술을 접목해 지금의 독보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사실 ‘불리1803’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손바닥이 그려진 ‘포마드 콘크레뜨 핸드크림’이다. 착하지 않은 가격대임에도 선물용이나 셀프 기프트 아이템으로 인기 있는 이유의 팔할은 패키지 디자인 덕분이다. 제품의 디자인과 비주얼 관련 부분은 화장품의 황금시대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 파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한번 발을 들이면 빈손으로 나오기 힘든 매장의 인테리어 역시 19세기 무드를 재현한 것으로 마치 타임워프한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특별한 점을 짚자면 모든 제품의 패키지에는 플라스틱을 전혀 쓰지 않는다는 것. 플라스틱이 제품 내용물에 흡수되면 피부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심하게는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유리와 도자기, 알루미늄 튜브로 플라스틱 용기를 대신하고 있다. 불리1803의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제품을 사용할 사람의 이름을 캘리그래피로 정성껏 새겨 포장해준다는 것. 최근 오픈한 청담 매장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 에디터
- 금다미
- artwork
- HEO JEONG 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