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배우들이 텔레비전을 그 어느 때보다도 유혹적으로 만들고 있다. 영화만큼이나 인상적인 연기로 미국과 영국의 드라마를 접수한 스타들을 만났다.
<바이닐> : 음반사 사장, 록밴드 등의 인물을 중심으로 1970년대 미국 음악 산업계의 화려한 이면을 보여주는 드라마. 2017년 시즌 2 방영 예정이다.
역할의 수위가 다소 높아지던데,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는 게 불편하지는 않나? 그런 면에서 나는 유럽인 같다. 시험 방송에서 제임스 재거와 섹스신이 있었는데 이 촬영을 하면서 정말 엄청난 순간을 보냈다. 25번째 생일이었고, 믹 재거의 아들 앞에서 완전히 벌거벗어야 했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하고 있었다. 알몸으로 보낸 절대 잊을 수 없는 생일이 되었다.
처음 하는 드라마인데, 영화와는 다른가? 드라마는 마치 결혼 생활 같다. 나는 언제나 프로젝트에서 프로젝트로 넘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는데, 한 캐릭터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 것은 아주 흥분되는 일이다.
<나이트 매니저> :카이로의 호텔 매니저로 일하는 전직 군인이 무기 거래 기밀 문서를 손에 넣으면서 범죄 조직과 휘말리는 영국 첩보물. 톰 히들스턴과 휴 로리가 투 톱을 맡았다.
군인에서 호텔 매니저, 다시 스파이가 된 조너선 파인을 연기한다. 스스로 뛰어난 스파이감이라고 생각하나? 지금이라면 최악의 스파이가 될 테지. 모두 내가 누군지 알고 있으니까. 다들 이렇게 반응할 거다. “여기서 대체 뭐하는 거예요?” 하지만 <나이트 매니저>의 감독 수잔 비에르의 의견은 다른 것 같다. 내가 신비한 매력이 있고 비밀을 잘 지킬 거라 여겨 캐스팅했다고 한다.
영국에서 그대로 방영된 당신의 엉덩이 노출 장면이 미국 방송에선 잘린 것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나? 내 엉덩이를 잘라냈다는 걸 듣고 놀랐다. 이 자리를 빌려 내 엉덩이는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바이다. 세상엔 더 위험하지만 방송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보내는 것이 수없이 많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점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레이 도노반> : 할리우드 유명인들의 골치 아픈 문제들을 처리해주는 해결사인 레이 도노반이 타이틀롤로, 2013년부터 이어져온 인기 시리즈. 존 보이트가 리브 슈라이버의 아버지 미키 도노반 역으로 나온다.
당신처럼 영화 경력이 많은 배우가 이 시점에서 TV 드라마를 하게 된 이유가 뭔가? 정말이지 대본 때문이다. 나에겐 작은 아이들이 있다. 레이가 그의 삶에서 감당하고 있는 일이 나와 흡사하다 느껴졌다. 아이를 갖게 되면 당신 속의 공포와 분노는 제쳐둬야 하는 것이 당신의 의무가 된다.
장기 방영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의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 어둠이다. 레이는 엄청난 긴장감과 정서적 혼란을 안고 있다. 몸이 항상 그 상태여야 한다면 누구든 좋지 않을 것이다. 운동을 매일 하면서 분노, 슬픔, 공포라는 감정의 근육만 키우는 꼴과 같다.
그에 대한 해독제는 찾았나? 언제나 나의 아이들에게로 달려간다. 그런데 아이들은 뉴욕에 있고 난 LA에서 일하느라 좀 힘들었다. 명상에 의존하고 보드카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보드카가 잘 듣긴 한다.
<O. J. 심슨: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O.J. 심슨의 실화를 소재로 검찰, 피고, LA 경찰과 흑인 커뮤니티 등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무죄 선고에 작용했는지 파고든다.
어렸을 때 되고 싶었던 TV 속 캐릭터가 있나? <후즈 더 보스?>에서 사만다로 나온 알리사 밀라노. <후즈 더 보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다. 토니 댄자는 우리 아빠를 닮았다. 그리고 주디 스라이트가 내 엄마였으면 했다.
O. J. 심슨 사건의 검사였던 마샤 클락 역을 맡은 이유가 뭔가? 극도로 사실적인 공포 때문이다. 그녀에 대해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이것이 그녀 에게 먹칠하는 또 다른 기회나 재판 내내 계속된 성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재판과 마샤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꾸었나? 모든 것을 바꾸었다. 나는 마샤 클락을 싫어한 여자 중 하나였다. 미디어에서 보고 들은 것만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괴물이고, 불독 같고, 몹시 공격적이라는 언론 보도 말이다. 세상에, 내가 전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틀렸다.
<더 패스> : 논란이 많은 컬트 종교를 추종하는 인물들의 신앙과 갈등을 다룬 이야기로 2017년에 시즌 2가 방영된다. 휴 댄시는 기존의 지도부와 갈등을 빚는 비공식 리더를 연기한다.
당신의 캐릭더 칼은 메이어리즘(Meyerism)이라 불리는 종교 운동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인데, 드라마 속에서 마치 사이비 종교처럼 묘사된다. 당신도 그렇게 보나? 이 시점에서 더 이상의 구분은 없다고 본다. ‘나의 컬트가 당신의 종교’라는 말이 정말 사실인 것 같다.
처음으로 캐스팅된 역할은 무엇이었나? 그때 나는 열세 살이었고 매우 영국적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누군가 갑자기 와서 “우린 내년에 템페스트를 무대에 올려. 네가 아리엘이 될 거야”라고 말하면 “응, 그래…”라고 대답해야 하는 그런 학교 말이다. 당시엔 그것이 과감한 시도였는지조차도 몰랐다. 직업으로서의 연기를 말한다면 미니 시리즈 <심판과 응징(Trial and Retribution)>에서 연쇄살인범을 쫓는 역이 처음이었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내게 제격이라고 하는 시대극을 하며 몇 년을 보냈다. 한니발에서 연쇄살인범의 상대역을 하기 위해선 다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언더그라운드> : 자유를 찾기 위해 탈출을 계획하는 흑인 노예들과 그들을 도와주는 변호사 부부의 이야기. 존 레전드가 제작과 음악에 참여해 화제가 됐다.
드라마 내내 도주하는 탈주 노예를 연기하는 일은 어떤가? 감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도전이다. 습지에서 헤엄치거나 늪에서 크리스토퍼 멜 로니와 싸우는 장면은 모두 대역을 쓰지 않고 촬영한 것이다. 루이지애나 주의 항구 도시인 배턴 루지의 촬영 환경은 열악했다. 한편으로 내 선조들에 대한 인식을 깊게 만들어주는 경험이기도 하다. 내 어머니는 흑인이고 아버지는 유대인이다. 나는 강한 사람들로부터 왔다는 생각을 늘 한다. 생존자들, 혁명가들이 내 뿌리인 것이다.
첫 배역은 뭐였나? 조 몬타나와 함께 찍은 펩시 광고였다. 세 살 때 그의 무릎에 앉아 콜라를 갖고 놀며 시시덕거리는 역을 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자라면 어떤 TV 속 인물이 될 거라 생각했나? <메리 타일러 무어 쇼>의 재방송을 보다 잠들곤 했다. 메리가 순식간에 무너져 울음을 터뜨리거나 자신의 보스에게 야단치는 장면을 좋아했다. 그녀가 깡마르고 나 또한 그랬기 때문에 보면서 늘 생각했다. 저게 바로 나야!
<바이킹스> : 스칸디나비아의 전설적인 영웅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모험을 다루는 드라마로 시즌 4까지 방영되었다. 바이킹의 전통 문화, 액션과 전투에 대한 묘사가 강렬하다.
드라마 속의 캐릭터를 숭배한 적이 있나? <소프라노스>의 토 니 소프라노. 난 여전히 그처럼 되기를 원한다. 마피아라는 점 말고, 그의 큰 영향력과 사나이다움 말이다.
바이킹을 연기한다는 건 어떤 일인가? 지금까지는 정말 재밌었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의 촬영은 아주 안 좋은 날씨와 상대해야만 한다. 헤어와 메이크업도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일찍 일어나야 하는 점도 있다. 두피의 문신을 그리는 데만 45분이 소요되니까.
당신이 처음으로 반한 TV 스타는 누구였나? <네이버스>의 카일리 미노그. 아마 그녀가 입고 나온 의상 때문일 수도 있다. 열 살짜리 소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가 어찌 알겠나.
<제시카 존스> : 마블 코믹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크리스틴 리터는 슈퍼히어로 경력을 바탕으로 사설탐정 일을 하며 살아가는 어두운 인물인 제시카 존스 역을 맡았다.
마블의 슈퍼히어로에 기반한 이 역할을 맡기 전에도 만화 팬 이었나? 사실 평생 만화책이라고는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 앨리어스 시리즈 전체를 소장하게 되었는데 정말 정신없이 읽어댔다. 완전 누아르였다. 첫 번째 단어가 “fuck”으로 시작하는, R등급의 세상이더라. 내 예상을 꽤나 벗어났다.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선택하겠나? 마인드 컨트롤. <제시카 존스> 시리즈의 악당처럼 말이다. 누구든지 아무 때나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게 만들 수 있지 않나! 능력을 남용하진 않을 거지만, 내가 훨씬 편해질 수는 있을 거다.
슈퍼맨을 무너뜨리는 광물 크립토나이트 같은 게 있다면 당신에게는 뭔가? 초콜릿 아이스크림.
<올 더 웨이> : 존 F. 케네디 암살 이후의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를 다룬 연극 원작의 TV 영화. 마틴 루터 킹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팔콘을 연기해 얼굴을 알린 앤서니 매키다.
어렸을 때 TV 속 어느 캐릭터가 되고 싶었나? <전격 Z 작전> 에서의 데이비드 해셀호프. 키트를 운전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역의 제의가 들어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안 돼, 그럴리가…” 킹 목사 역을 하자는 전화를 여러 번 받았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거절했다. 킹 목사를 내가 아는 사실대로 제대로 그려낸 대본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본에서 처음 나의 킹 목사를 보았다. 성인이 아닌 인권운동의 지도자로서의 그 말이다.
겁 먹진 않았나? 내 경력에서 가장 위축되는 경험이었다. 그의 흉내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고인에 대한 결례일 테니까. 그래서 자료 영상을 많이 보지는 않았다. 킹 목사의 마지막 365일을 기록한 트래비스 스마일리의 회고록 <Death of a King>을 읽고 그 느낌대로 갔다.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MONA KUHN
- 글
- Jenny Comi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