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 뮈글러, 비요네, 에르베 레제, 아이작 미즈라히, 그리고 베르수스까지. 패션사와 추억 속에만 머물던 하우스들이 부활했다. 그들의 부활이 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엘자 스키아파렐리, 폴 푸아레도 만나보고 싶다.
‘티에리 뮈글러.’ 지난 시즌 발맹의 뾰족하고 각진 어깨와 함께 80년대 트렌드가 열광적인 인기를 얻자 가장많이 거론된 바로 그 이름이다. 80년대 클로드 몬타나와 함께 여성의 신체를 왜곡해 극적인 페티시즘을 선보인 ‘티에리 뮈글러’는 늘 패션사 속에만 존재할 줄 알았다. 그래서 티에리 뮈글러의 부활은 내게 신기하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티에리 뮈글러는 2003년 쿠튀르 라인을 다시 열고 향수 ‘엔젤’을 론칭했으며, 비욘세에게 근사한 투어의상을 제작해주더니 급기야 브랜드까지 부활시킨 것이다.
최근 패션사 속에서나 언급되는, 화려한 시절을 뒤로하고 아련히 잊혀져가는 하우스들이 하나 둘 부활하고있다. 그 중 가장 시의적절한 성공을 이뤄낸 하우스는 바로 ‘베르수스’다. 베르수스는 베르사체의 세컨드 브랜드로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직접 디자인한 펑키하면서도 젊고 감각적인 브랜드였다. 그러나 ‘지아니 베르사체’의 CEO였던 잔카를로 디리지오가 그룹의 비용과 규모 절감을 이유로 2005년 브랜드를 철수한 것. 몇 년 전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런던의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풋내기지만 탁월한 감각을 지닌 크리스토퍼 케인을 발탁, 베르사체의 컨설팅을 맡기기 시작하면서 베르사체는 제2의 전성기를 향해 달리고 있는 중. 그러자 지금이 베르수스를 재론칭의 적기로 판단한 그녀는 베르수스를 냉큼 크리스토퍼 케인에게 맡겨버렸다.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크리스토퍼 케인은“자신감과 섹시함이 베르수스의 키워드다. 이번 시즌엔 로큰롤스타일을 가미했다”며 브랜드의 정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컬러를 더했다. 재론칭하자마자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베르수스는 2010년 안에 전 세계 20개지역에 부티크를 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드러냈다.1990년대 뉴욕 스타일에 위트와 유머를 가미한, 재능과 스타성을 모두 겸비한 에너지 넘치는 디자이너 ‘아이작 미즈라히’도 비교적 재기에 성공했다. 전성기의 그는 지금의 마크 제이콥스 혹은 알렉산더 왕에 버금가는 스타였다. 연기 공부를 한 덕분에 아이작 미즈라히는 1995년, 자신의 컬렉션 준비 과정을 다큐멘터리형식으로 담은 영화 <언집트(unzipped)>에 출연했을정도로 잘나가고 있던 중 재정 문제로 급작스럽게 파산했다. 그래서 그의 파산은 당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2003년 타겟과컬래버레이션하며 스포츠웨어, 액세서리, 홈 퍼니싱까지 영역을 넓혀갔고 버그도프 굿맨을 위한 맨즈 컬렉션을 열었으며 오프 브로드웨이 쇼 <레 미즈라히>에 출연했고, 토크쇼 <더 아이작 미즈라히 쇼>의 진행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리고 프레타 포르테에서도 재기에 성공해 최근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즐겨 입는 브랜드가 되었다.
1970년대 미국의 상류사회 패션을 대변하며 아메리칸패션의 나아갈 길을 보여준 아이콘적인 하우스 ‘할스턴’ 역시 2008 F/W컬렉션으로 온라인상에서 론칭하며 화제가 됐다. 최고의 소재와 간결한 디자인으로 럭셔리한 고객들의 고급스럽고 우아한 취향을 만족시키며 비앙카 재거,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에게 사랑받았던 할스턴. 스튜디오 54를 드나들며 파티와 마약중독으로 레이블을 팔고 10년 후 다시 일어서려 했으나 에이즈로 사망한 불운한 디자이너 할스턴. 1990년대 이후 브랜드를 부활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는데 최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과 지미 추의 타마라 멜런, 스타일리스트 레이첼 조의 환상적인 트리오가 할스턴의 부활을 현실화시켰다.
아제딘 알라이아보다 먼저 보디컨셔스를 선보인 ‘에르베레제’ 역시 막스 아즈리아에 의해 재해석되고있으며, ‘비요네’‘, 빌 블라스’‘, 피오루치’도 부활했다. 또 폴 푸아레, 엘자 스키아파렐리 등도 슬슬 대규모 회고전을 열며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하우스의 부활은 사실 80년대부터 시작된 부활 트렌드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1980년, 1990년대에는 샤넬, 루이 비통, 랑방 등이 부활했고 2000년대에는 버버리, 클로에, 발렌시아가 등이 부활한 것처럼말이다. 그렇다면 왜 하우스의 부활이 계속되는 것일까? 명품 컨설턴트 로버트 버크는 이렇게 설명한다.“오너들은 헤리티지를 지니고 있는 브랜드를 좋아합니다.” 그렇다.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디자이너의 이름을 알리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그리고 제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한다 해도 실패할 확률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시간과 돈이라는 요소가결정적인데 비록 빛을 다했더라도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 안에서 빛을 새롭게 찾아주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찾지만 동시에 익숙함을 추구하니까.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하고 후대에 많은 영감을 안겨준 전설의 하우스들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해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티에리 뮈글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즈마리 로드리게즈-파코라반에서 일한 경력을 지녔다-는 야생의 들소 같은 이미지의 티에리 뮈글러를 지루하고 졸린 양처럼 만들어냈으며, 할스턴을 부활시킨 마르코 자니니-베르사체에서 8년간 일했다-는 꽤 성공적인 결과물을 냈지만 매출을 올리지 못한 탓에 마리오 스왑으로 교체되었다.하지만 마리오 스왑 역시 톡톡 튀는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지 못하다. 어쩌면 자신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의 하우스를 섣불리 맡았는지도 모르겠다.또 비요네는 193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하우스의 부활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자 1년 만에 2명의 디자이너, 소피아 코코살라키와 마크 오디벳을 해고했다. 빌 블라스 역시 빌 블라스가 활동한 그 시절보다 구식의 디자인을 선보였고, 비바와 오시 클락은 부활했으나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우리는 여기서 화려한 아카이브를 지니고 있고 한 시대를 이끈 전설적인 브랜드라도 그만큼의 영향력과 파워를 지닌 디자이너를 영입하지 않는 이상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크리스토퍼 케인을 영입한 베르수스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소녀시대가 부른 ‘소녀시대’나 빅뱅의‘붉은 노을’이 이승철의‘소녀시대’와 이문세의‘붉은 노을’을 따라갈 수 없듯 그 원조가 너무나 찬란했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부활은 늘 반갑다. 발렌시아가의 게스키에르나 랑방의 알버 엘바즈 같은 빛나는 디자이너의 탄생을 고대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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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김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