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책을 읽겠어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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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유 패션 에디터들이 올 가을 구미당기는 ‘패션의 양식’을 골랐다. 패션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지식총서부터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점철될 자서전까지…각자 고른 결정적인 한 컷과 좋은 건 나눠야 한다는 마음으로 적어 내려간 리뷰를 공개한다.

돌아와요, 패션천재

“그는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였다.” – 크리스틴 녹스(저자)

워낙 알렉산더 매퀸을 좋아했지만, 몇 달 전 그에 관한 리프트 기사를 쓰다가 이미 죽고 없는 사람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더 비통한 것은, 이제 매퀸 같은 천재는 우리 세대에 다시는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 <알렉산더 매퀸>을 고른 이유는 그 괴로운 사실을 다시금 곱씹게 위해서였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보다, 그가 살아생전 우리에게 선물한 아름답고 충격적이며 완벽했던 컬렉션 사진들이주를 이루는 이 책에선, 마치 컬렉션장에 있는 듯 현장감 생생한, 그리고 정직한 리뷰가 간단하게나마 실려 있다. 그의 데뷔작부터 유작에 이르기까지 나열된 그의 작품 세계를 넘겨보다 보면, 앙팡 테리블이라는 이름보다 아티스틱 펑크 로커라는 이름이 더 합당하게 느껴질 만큼 세상을 향해 내지른 메시지가 선연하다. 무대에 불을 지르거나(1998 F/W), 옷에 박제 새를 달아 마치 모델이 공격받는 듯 보이게 하거나(2001 S/S), 늑대를 런웨이에 올리거나(2002 F/W), 모델을 홀로그램으로 피어오르게 만드는(2007 S/S) 등 패션쇼란 무엇인지, 쇼맨십이란 무엇인지 그 절정을 맛보게 해주었지만,그 모든 걸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 소름 끼치도록 완벽한피스 바이 피스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CSY

이자벨라에게 쓰는 매우 사적인 편지

이자벨라 블로는 매퀸의 마스터피스와 놀라운 모자를 매치하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이씨(Issy-그녀의 애칭), 비행기에서 자려면 옷을 갈아입을 거야?” 그녀가 답했다“. 이거 너무 편해. 나는 아무것도 벗지 않을 거야.” – 나오미 캠벨과의 대화

이자벨라 블로. <보그>와 <태틀러> 패션 에디터 출신으로 필립 트레이시, 알렉산더 매퀸, 후세인 샬라얀을 발굴했으며, 그들의 뮤즈가 된 대담한 스타일 아이콘. 내가 이자벨라 블로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뭐 이 정도였다. 그래서 <이자벨라 블로>가 단순히 그녀를 소개하는 책이었다면 집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놀라운 책이었다. 안나 윈투어, 발렌티노, 나오미 캠벨, 안나 피아지, 마리오 테스티노, 후세인 샬라얀 등 패션계의 전설적인 인물들이 손수 이자벨라 블로에게 쓴 아주 사적인 편지를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친필로 쓴 편지도 있고 사인과 함께 립스틱으로 하트를 그린 것도 있다. 게다가 이 책에는 마리오 테스티노, 랜킨, 도날드 맥퍼슨 등이 촬영한 그녀의 과장되고 열정적이며 위트 있는 모습이 화보처럼 담겨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사진을 고른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어떤 남자를 사랑하게되었을 때 궁금한 것이 그의 이력이 아닌 사생활이듯이, 이것이 그녀의 사적인 사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이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진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연극적으로 한껏 차려입은 그녀가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한 필립 트레이시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는 장면을 누군가가 촬영했을 것이다. 가슴이 뭉클한 것은 앞서 발췌한 나오미 캠벨과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 그녀가 이 연극적인 의상을 일상생활에서도 아주 편안히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진 속에서 내가 보는 것은 패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긴 한 여자의 모습이다. 이 책에 나와 있듯안나 피아지의 말처럼 ‘패션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연극’이고, 안나 윈투어의 말처럼 ‘패션이란 발견과 영감, 마법을 창조하는 모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그녀를 잊을 수 없는 것이다. -KSW

샤넬부터 빅터&롤프까지, 패션을 빛낸 50인의 위인들

“옷은 입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다. 사람들에게 입혀졌을 때 비로소 의상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 앤 드뮐미스터

솔직히 지나치게 직접적인 제목과 진부하다 못해 촌스러운 표지 디자인은 실망스러웠다. 무엇보다 20세기의 대표적인 패션 디자이너를 집대성한 책은 이미 다양한 버전으로 소개되었으니 특별할 게 있나 싶었다. 적어도 <패션 : 더 모스트인 플루엔셜 패션 디자이너스 오브 얼 타임>을 받아보기 전까지는. 화려한 사진이나 감각적인 레이아웃은 실종된 채 디자이너별로 단출한 사진 한 장 싣고, 빼곡한 영문 텍스트로 점철된 이 책은 뭐랄까, 어딘지 매우 익숙한 채로 신선하다. 최초의 쿠튀리에 찰스 프레드릭 워스, 패션의 피카소 발렌시아가, 패션계의 악동 장 폴 고티에, 관습에 대한 저항자 마틴 마르지엘라 등 50명의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는 방식에 있어 꽤 입체적인 편집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 즉 각 장에 배치된 작은 박스에는 디자이너를 대표하는 중요 사항을, 한켠에는 디자이너가 직접 남긴 결정적 한 마디- 특히 디자이너들의 인용구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를 함께 실음으로써 영문 서적으로는 흔치 않게 ‘읽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덕분에 내가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사실을 명쾌하게 정리한 듯한 느낌. 또한 오트 쿠튀르, 프레타 포르테, 컨템퍼러리 아방가르드 그리고 액세서리와 레저웨어 등 4개의 섹션으로 디자이너를 묶음으로써 시대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렇듯 풍성한 콘텐츠 못지않게 이 책이 지닌 매력은 다름 아닌 크기와 가격이다. 점점 더 무겁고 크고 덩달아 값비싸지고 있는 패션북에 비한다면 놀랄 정도로 소박한 크기와 두께 그리고 착한 가격을 지닌 덕택에 주머니 사정이 윤택하지 않더라도 부담 없이 구입, 곁에 오래도록 두고 즐길 수 있으니까. 자고로 책은 널리 읽혀질 때 그 가치가 더욱 발하는 법. 이래서 ‘멋내지 않은’이 패션북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SSM

에디터
박연경
포토그래퍼
엄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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