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여름보다 더 뜨거운 한철을 보냈다. 올림픽에서의 메달 획득 여부와 그 색깔에 상관없이, 만나고 싶고 만나야 할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었다.
카누 최민규
카누 단거리 경기는 눈 몇 번 깜박하는 사이 끝난다. 패들(카누를 젓는 노)은 탄력 있게 위 아래로 움직이고, 배는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간다. 패들의 힘만으로 그 배가 움직이는 것 같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카누 선수의 다리는 리듬을 타며 힘을 쓴다. 최민규는 앉은 자세로 물 위를 달리는 남자다. 그와 또 다른 선수 조광희가 2인조로 ‘카누 스프린트 K2 200m’ 경기에서 9위를 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 카누 팀이 올림픽에서 준결승전의 물 위를 달려본 적은 없었다. 아시아권 선수가 순위 결정전까지 올라가는 일도 흔치 않으니, 리우 현지에서 ‘저 동양인은 누구?’라는 반응이 나올 법했다. 최민규는 리우에 가서도 하루 14시간에 걸쳐 훈련했다. 한국에서는 주로 강원도 화천이나 안동댐 근처 맑은 물에서 배를 타지만, 리우의 깨끗하지 못한 물은 수질 면에서 변수가 있었다. 하늘거리는 물풀 한 줄기도 카누의 앞길을 막는 위협이다. “중학생 때 육상을 하다가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카누를 탔어요. 한겨울이었는데, 배 안에서 중심을 잡지 못해 계속 물에 빠졌죠. ‘한 번만 더’ ‘하루만 더’ 하다가 지금까지 왔어요.” 올림픽이 끝난 직후에도 국내에서 매일 경기를 치러야 했던 최민규는 ‘카누를 널리 알리고 오라’는 감독님의 특별 배려를 받고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그의 SNS 프로필 문구인 ‘앞으로’처럼, 물의 감각을 아는 이 남자는 전진할 일만 남았다.
유도 안바울
열 번 잘한 사람은 한 번만 못해도 눈총을 받는다고 했던가. ‘효자’ 종목 유도는 리우에서 불효자가 됐다. 어떤 불효자는 울었다. “올림픽 전까지는 유도팀의 분위기가 많이, 많이, 아주 많이 업되어 있었죠(웃음).” 안바울은 가장 힘든 코스라 여긴 일본 선수를 이기고 결승에 올라갔다. 난제를 해결하자, 막상 결승전을 앞두고는 마음이 붕 떠 있었던 것 같다고 뒤돌아봤다. 다행히 그의 곁엔 ‘잘해서 은메달까지 땄으니 기 죽지 말고 당당하게 다니라’고 말해주는 코치가 있었다. 운동선수가 경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에도 캐릭터가 묻어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의 표정과 작고 단단한 몸으로 지긋하게 버티기를 잘하는 그의 특기가 잘 매치된다. “지금껏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리우에서 보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번 올림픽에서의 경험치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이제 내년엔 세계선수권대회, 내후년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이 있어요. 하나씩 통과해가다 보면 4년 후 도쿄올림픽에 닿겠죠.” 세상을 가장 들썩거리게 하는 스포츠 이벤트는 올림픽이지만, 선수에겐 국내 대회부터 국제 대회에 이르기까지 ‘클리어’해야 할 순간이 참 많다. 지금도 옹골진 이 젊은 선수는 그 시간을 거쳐 얼마나 단단해질까?
근대5종 전웅태
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께선 참 잔인한 종목을 고안해냈다. 사람이 한 가지 일만 잘하기도 힘든 법인데 5가지 운동을 두루 섭렵해야 하다니. 펜싱, 수영, 승마, 크로스컨트리, 사격을 하루에 다 치러 종합성적을 내는 근대5종은 만능 스포츠맨들의 장이다. 리우올림픽 개막 전, 방송 인터뷰에서 앳된 얼굴로 포부를 밝히던 전웅태는 국가대표계의 당찬 아이돌처럼 보였다. 신체 사이즈부터 다른 서양 선수들이 지배하고 있어 장벽이 높은 이 종목의 압도감과 전웅태의 해맑음이 묘한 대비를 이뤘다. “올림픽을 마치고 나서야 심리적 부분이 경기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느꼈어요. 지켜보는 관중의 스케일과 함성 소리만 해도 그냥 국제 대회 때와 얼마나 다르던지….” 물론 각종 주니어 대회를 휩쓸고 국내 근대5종 최연소 국가대표 타이틀을 얻은 그는 고등학생 때 이미 기초 종목에서 세계 정상권에 가까운 기록을 세운 몸이다. 리우에서도 크로스컨트리와 사격을 합친 ‘콤바인’으로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달리다가 멈춰서 사격하는 패턴을 반복하는 콤바인은 체력과 체격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신체 조건에서 유리한 선수들을 역전할 수 있는 짜릿한 관전 포인트. “그것 하나로 자부심을 가졌다가는 갈 길 먼 제가 자만하게 될 것 같아요. 이번 올림픽의 작은 결과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보다 아직 한국에선 낯선 근대5종을 먼저 알리고 싶어요.” 귀국 직후 국가대표 팀과 참석한 청와대 만찬에선 하필 높으신 분과 가까운 자리에 앉는 바람에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몰랐지만, 리우에서의 경험은 어린 국가대표의 미래에 자양분이 될 것이다.
태권도 오혜리
운동 신경은 없는 대신 뛰어다니길 좋아했던 소녀는 친구 따라 가본 태권도장에서 운명처럼 태권도를 만났다. 한 사람당 학원 하나씩만 다닐 수 있었던 딸 셋 집안의 규칙, 피아노나 미술에 별 재미를 못 느꼈던 오혜리의 선택은 태권도였다. 시간이 흘러 스물 아홉이 된 그녀는 리우행을 앞두고 ‘이젠 금메달을 딸 자격이 갖춰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건 ‘금메달을 따고 싶다’와는 분명 다르다. 눈앞의 기회 하나하나에 충실하며 크고 작은 성과를 낸 경험으로 준비된 자에게 앞뒤 맞는 이야기처럼 찾아든 생각이다. 그리고 여자 태권도 67kg급 결승전, 오혜리는 마지막 2초를 남기고 단 1점 차이로 앞서가던 상황을 지키며 세계 랭킹 1위 선수를 꺾었다. “금메달리스트는 하늘이 정해준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었어요. 나와 주변의 상황, 실력, 운 등 모든 합이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걸 비로소 실감했죠. 국가대표 생활도 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올림픽을 치르기까지 모든 가족이 옆에서 애태우고 신경 쓰면서 기다리거든요. 거사를 치렀으니 가족들의 마음이 편해져서 제 마음도 편해요.” 모든 게 완벽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빠져들었던 그녀의 첫 올림픽. 금메달은 결과일 뿐, 오혜리는 올림픽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다. 올림픽이 선수 생활의 유일한 목표라 면 메달을 놓치는 순간 인생도 끝난 듯한 기분이 들테니까. 다만 그녀에겐 작은 의문 하나가 생겼다. “미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는데 요즘 많이 듣고 있어요. 제 외모에 냉정했던 고모마저 저보고 예뻐졌대요. 이거 금메달 후광 효과인가요? ”
- 에디터
- 권은경
- 포토그래퍼
- KIM JI YANG
- 모델
- 전웅태, 최민규, 안바울, 오혜리
- 캐스팅 & 스타일리스트
- 최진우(T.V.C)
- 메이크업
- 이소연(최민규), 현윤수(안바울, 오혜리, 전웅태)
- 헤어
- 이소연(최민규), 성지안(안바울, 오혜리), 수빈(전웅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