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 쿠튀르의 극과 극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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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튀르엔 영혼이 있다. 오랜 시간 장인의 손에서 빚어진 자기처럼,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우아함이 깃들어 있다. 이러한 고전적인 매혹은 이번 시즌 새로운 디자이너들을 쿠튀르 대열에 합류하게 만들었고, 한 노장 쿠튀리에는 쿠튀르가 탄생하는 공방의 장인들에게 눈을 돌려 아틀리에를 주제로 한 쇼를 선보였다. 한편에서는 모던하고 절제된 웨어러블한 쿠튀르가, 또 다른 한편에서는 디자이너의 상상과 하이패션의 판타지를 구현하는 환상적인 쿠튀르가 오늘날의 쿠튀르를 대변했다. 무엇보다 브랜드마다 화두로 삼은 건 정체성의 핵심이라 할 독자성, 즉 디자이너의 철학과 개성을 근거로 장인 정신과 테크닉을 더한 ‘미래적인 쿠튀르’에 대한 근사한 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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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흥미로운 주제와 방대한 세트로 기대감을 한껏 불러일으키는 샤넬 쇼. 이번 시즌, 칼 라거펠트는 샤넬 공방에서 묵묵히 작업하는 ‘작은 손’이라 불리는 장인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샤넬의 쿠튀르 드레스를 만드는 타이외르와 플루 공방의 모습을 그랑팔레 안에 정교하게 재현했다. 작업대와 재봉틀, 옷감과 색색의 실, 마네킹까지 그 모습도 그대로. 더욱 흥미로운 점은 실제 쿠튀르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등장하자 시작되었다. 공방과 쇼장이 한순간에 오버랩된 광경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몇몇 룩은 공방의 장인들 손에 들린 옷감과 같은 소재로 만들었고, 그 현장을 지켜본 이들은 오트 쿠튀르가 탄생한 결과물 뿐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 여야 하는 그 지난한 과정을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간으로 들어가 훔쳐보는 듯한 특별함을 만끽했다. 구조적인 실루엣의 트위드 소재 코트 드레스와 재킷이 눈에 띄었고, 그로그랭 소재의 헤드밴드를 묶어 가볍게 연출한 헤어스타일은 사랑스러운 위트를 더했다. 특히 에디 캠벨이 입은 이브닝 의상은 영국의 장식미술가인 오브리 비어즐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것으로 드레스 단과 어깨 부분의 깃털 장식이 마치 움직이는 새처럼 보였다. 쿠튀르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마치 어린 왕자의 교훈 같은 메시지를 남긴 칼 라거펠트. 그동안 보이지 않던 장인들의 노고는 사실 의상 속에 오롯이 녹아 있던 게 아닐까. 이번 시즌, 안감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 밖으로 튀어나온 주머니 장식이 그 예다. 술이 달린 나선형 바느질을 넣는가 하면 튤이나 트위드 소재로 브레이드 장식을 더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오트 쿠튀르 장인들에게 헌정하는 쇼답게 피날레 퍼레이드 역시 공방의 장인들과 함께 했다. 칼 라거펠트가 각 공방의 팀장을 한 명씩 불러 함께 인사를 건네고, 게스트들의 환호를 함께 받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남겼다.

Schiapar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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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마르코 자니니의 뒤를 이어 스키아파렐리의 수장이 된 베르트랑 기용. 1년 만에 스키아파렐리 하우스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듯 보인 그는 한결 더 확신해 찬 자신감을 드러냈다. 본인만의 표현법 또한 풍성해지고 아티스틱한 채로. ‘태양의 서커스’라는 매혹적인 주제를 통해 풀어낸 의상에는 지난날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그러했듯 위트 넘치는 초현실적 상징이 가득했고 자수와 메탈, 비즈, 시퀸 등 화려한 엠브로이더리로 가공되어 즐거움을 더했다. 하우스의 시그너처인 ‘쇼킹 핑크’에 대한 접근 역시 그 중압감에서 벗어난 듯 가볍고 모던해 보였다. 나아가 주제를 떠올리듯 황금빛 광채를 발산하는 이브닝드레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룩들은 프런트로에 앉아 이를 흥미롭게 지켜본 프렌치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를 비롯한 개성 넘치는 여성들의 존재감을 더욱 드높여줄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Christian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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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새로운 수장이 된다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치러진 디올 쿠튀르 쇼. 얼마 전 근사한 리조트 쇼를 선보인 디올 디자인 팀의 루시 마이어와 세르주 루피외 듀오가 진두지휘한 쇼는 전임자인 라프 시몬스가 주창한 모던 쿠튀르의 가치를 상기시켰다. 우선 젊은 듀오는 ‘흑과 백’의 컬러 팔레트에 집중했다. 그리고 아티스트 세자르와 클로드 라란 듀오의 작품에서 영감 받은 황금빛 악센트를 더해 무슈 디올이 창조한 바 재킷을 드레스로 변형하는 등 하우스의 유산인 우아한 실루엣에 대한 탐미를 최대치로 끌어내려고 힘쓴 듯했다. 부분적인 장식미를 통해 화려한 터치를 더한 절제된 쿠튀르, 높은 힐 대신 플랫 샌들로 자유로움을 부여한 웨어러블한 쿠튀르였다. 무슈 디올이 가장 단순하지만 순수한 아름다움이 깃든 매력적인 색으로 꼽았던 흑백의 컬러 대비가 모험심 강한 쿠튀리에들 사이에서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극도로 조형적인 주얼리를 통해 하우스의 아티스틱한 심미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난날 라프 시몬스가 추구한 ‘모던한 여성을 위한 웨어러블한 쿠튀르’라는 가치에는 충분히 부합한 쇼. 나아가 디올 하우스 역사상 최초로 여성 수장과 함께 할 다음 쿠튀르는 어떤 모습일지 사뭇 기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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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의 수장으로 발탁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발렌티노의 단독 디렉터로 남은 피에르파올로 피촐리와 함께한 마지막 쿠튀르 쇼로서 그 의미가 남달랐던 발렌티노 쿠튀르 쇼장.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며 ‘세계는 하나의 극장이다’ 라는 바로크적 세계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듀오는 단순한 스토리나 플롯에서 나아가 독자적인 캐릭터에 집중했다. 그들의 노력은 쇼노트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는데, 매 룩마다 ‘순수’와 ‘탐닉’, ‘신비’나 ‘영예’와 같은 단어들이 이름표처럼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캐릭터는 봉긋한 어깨와 중세풍의 볼륨감 있는 네크라인 장식 블라우스, 퍼프 소매가 드러나도록 어깨에 컷아웃 효과를 더한 테일러드 맥시 코트, 황금빛 주얼리, 자카드나 태피터 소재로 만든 황홀한 드레스를 통해 발렌티노의 여인들이 표현하는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명쾌하게 정의해주었다. 특히 시선을 끈 피날레의 드라마틱한 붉은색 맥시 케이프 룩은 ‘자부심(Pride)’이라는 수식어를 더해 디자이너의 마음을 엿보게 했다. 이러한 감성적인 페르소나는 그들이 2009년 봄 쿠튀르 데뷔 이래, 전임자의 무게에서 벗어나 듀오의 파트너십을 통해 완성한 또 하나의 세계로 여겨졌다. 물론 시그너처인 ‘발렌티노 레드’ 색상의 드레스도 등장했지만,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컬러 블록의 그래픽적인 효과를 더해 한층 모던한 스타일로 완성했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신처럼 다소곳한 헤어스타일과 소녀 같은 얼굴로 등장한 모델들에게선 듀오가 추구한 중세의 유러피언 판타지가 가득 묻어났으며, 61벌에 이르는 방대한 룩은 고풍스럽고 로맨틱한 동시에 극적인 강렬함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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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오리 프린트가 만발한 이브닝드레스, 퍼프 소매를 부풀린 크롭트 블라우스, 엠파이어 웨이스트 라인의 가운에 이르기까지…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언제나 우아한 여성들의 로맨틱한 꿈을 한껏 자극한다. 특히 어린 시절의 조세핀 황후처럼 소녀 같은 순수한 로열티가 느껴지는 룩이야말로 프런트로에 자리한 여배우와 패션 피플, 사교계 명사 등 그의 팬을 자처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받을 만했다. 드롭형 귀고리와 긴 소 투아르 형태의 목걸이 등 부첼라티의 하이 주얼리는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우아한 로맨티시즘에 힘을 더했음은 물론이다. 또 건스앤로지스의 ‘노벰버 레인’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스테파니 세이무어의 경쾌한 웨딩드레스를 연상시키는 튤 소재의 트레인이 장식된 미니 드레스가 눈길을 끌었고, 어깨를 케이프처럼 표현한 가디스 스타일의 플리츠 드레스와 다이아몬드 브로치 단추 장식의 A라인 코트에 이어 드라마틱한 튤 장식의 피날레 드레스가 대미를 장식했다. 한마디로 레드카펫 시상식이나 사교계 모임, 지오바나 바탈리아가 선택했듯 패션을 꿈꾸는 여자들의 웨딩 피로연 현장에서 볼 법한 모든 여인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킨 드레스의 향연!

Armani Priv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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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펼쳐지는 오트 쿠튀르는 사실 쇼의 주제나 드레스의 프로포션에 있어 유러피언이 중심이 되기 쉽다.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안 VIP의 비즈니스 파워를 감지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아르마니 프리베는 다르다. 그는 늘 동방의 신비와 이국적인 환상을 적절히 버무리며 동양인의 체형에도 부담 없는 팬츠와 스커트 슈트를 선보이곤 한다. 물론 프런트로에 자리한 배우 케이트 블란쳇의 우아한 아름다움과도 잘 어울리는 지적인 글래머를 포용하기도 하고 말이다. 전반에는 그래픽적인 패턴의 믹스 매치와 흑백의 대비를 통해 간결하고 정제된 요소를 드러내고자 한 그의 의도가 보였다. 벨벳 소재의 하렘팬츠와 매치된 이탤리언 알타 모다 정신이 드러난 지오메트릭 데코 패턴의 테일러드 재킷 등은 30년대 은막의 여배우를 연상시키며 따듯한 노스 탤지어를 불러일으켰고. 나아가 후반에는 그의 시그너처인 뷔스티에 드레스가 화려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과 만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이브닝 룩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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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연경
포토그래퍼
JASON-LLOYD 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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