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동안 책 한권은 읽고 싶은데 자꾸만 휴대폰에 눈을 빼앗기는 당신을 위해 골랐다. 트렁크에 챙겨 넣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국내선 비행기 안에서 다 읽어버릴지도 모를, 얇고 강력한 책들로.
1_<아름다움의 구원> / 한병철
<피로 사회> <투명 사회> 같은 저작에서 경쟁적이고 신경증적인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해석했던 한병철이 이번에는 우리 시대가 어떻게 아름다움과 멀어지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제프 쿤스의 조각과 브라질리언 왁싱과 터치스크린의 공통점인 ‘매끄러움’이 요즘 미감이며, 이는 대상과 거리를 둔 성찰이나 부정적인 해석을 거부하는 대신 ‘좋아요’ 만을 받아들이는 만족감의 세계라는 것이다. 숭고함부터 퇴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아름다움을 포용할 기회는 점점 없어지고, 당의정을 입힌 것같이 매끄러운 이미지만 난무하는 인스타그램의 시대에 대해 철학해보는 데 좋은 교본이 된다.
2_<흰> / 한강
맨부커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긴 했지만 <채식주의자>는 이미 11년 전의 책이다. 작가 한강을 더 알고 싶다면 최근작<흰>이 좋은 텍스트가 되어줄 거다. 이 소설은 강보, 배내옷, 소금, 눈, 얼음, 달, 쌀, 파도, 백목련… 제목처럼 하얀색을 가진 단어들을 제시하고 한두 페이지의 짧은 글을 따라 보내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독특한 구성이다. 작가는 2013년 가을 폴란드 바르샤바에 머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괴되고 재건된 도시를 닮은 누군가에게 깨끗하고 고결한 빛, 밝음,생명같은‘흰것’을주고싶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호명되는 흰 것은 침묵, 그리고 작별이다.
3_<고맙습니다> / 올리버 색스
올리버 색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같은 저서로 잘 알려진 뇌과학자다. <고맙습니다>는 암이 전이되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색스가 삶을 정리하는 동안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에세이 네 편을 모은 책. 그중 한 편인 ‘나의 주기율표’를 읽으면 이 신경과 전문의가 숫자와 과학의 세계를 얼마나 아름답게 또 낭만적으로 인간의 삶, 정신과 연결하는지 드러난다. 살아서 83세 생일을 맞을 것 같지 않다면서도, 아는 이 없는 83번째 원소 비스무트를 애틋하게 여기는 식이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사는 일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이 근사한 고별사는 색스의 자서전 <온 더 무브>와연결해 읽으면 더울림이 클 것이다.
4_<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저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이름은 비욘세의 ‘***Flawless’에 피처링 아티스트로 올라 있다. 유튜브 조회수 280만을 넘긴 유명한 TED 강연을 비욘세가 샘플링했기 때문인데, 이 강연을 글로 옮기고 에세이를 덧붙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이지리아에서 성장해 미국에서 공부한 작가는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명쾌하고 우아하게 들려준다. 여자, 남자, 자신이 페미니스트라 믿는 사람 혹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어딘가 모를 거부감을 품은 사람까지 누가 읽어도 좋을 책이다.
- 에디터
- 황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