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은 다리처럼 유혹의 도구가 된다. 이번 시즌 당신이 힘을 줄 곳은 바로 소매다.
온갖 괴상한 것들이 등장하는 런웨이를 지켜보노라면, “다음 시즌 런웨이에서는 도대체 무얼 보게 될까?”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이번 시즌 또한 밍크 샌들, 커다란 훌라후프 백 등 온갖 기상천외한 것들이 곳곳에서 출몰했지만, 그 무엇보다도 동공을 확장시킨 건 다름 아닌 ‘소매’였다.
그간 봄 컬렉션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었지만 이번 시즌, 소매는 부활했다. 어깨 부분이 넓고 아래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소매가 등장한 랑방, 언제나처럼 폭이 아주 좁고 길이가 긴 소매를 선보인 버버리와 조나단 선더스, 디올, 소매 길이를 거의 손가락 끝까지 늘린 마크 제이콥스, 그리고 부드럽게 부풀린 짧은 소매를 내놓은 발렌티노, 금색 자수로 장식하고 파란색 나비 모양 리본으로 아이스 케이크처럼 소매를 장식한 미담 키르초프 등. 그런가 하면 구찌의 프리다 지아니니는 넓은 커프스로 고정한, 커다랗게 부풀린 소매와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러플 장식의 소매 등 온갖 디자인의 소매를 선보였다.
그렇다고 모든 소매가 화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스텔라 매가트니, 빅토리아 베컴, 그리고 프린은 미니멀리스트도 반할 만한 소매 디자인을 선보였다. 오간자로 만든 티셔츠 소매보다 더 심플한 것이 있을까? “볼륨감 있는 컬렉션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시어한 소재로 된 커다란 소매를 생각했죠. 기하학적인 실루엣을 살리면서 가볍고 편한 느낌을 주니까요”라고 말하는 프린의 저스틴 손튼은 자신의 컬렉션에 대해 남성용 XL 사이즈의 짧은 소매 셔츠를 여성의 몸에 맞게 줄인 결과 이 과장된 실루엣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전한다.
“이번 시즌에 디자이너들이 소매를 가지고 실험한 게 전 너무 좋아요.” 모다 오페란디의 디자이너 디렉터 앙드레 록펠러의 말. “소매가 특별한 옷은 어딘가 로맨틱하고 신비한 느낌을 주죠. 특히 이브닝 룩으로 입을 때는 더더욱. 소매는 옷 전체를 변화시켜요. 섬세한 캡 슬리브는 젊은 느낌을 주는 반면 긴 소매는 목선과 헴라인 사이의 균형을 완벽하게 맞춰주죠.”
젊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사랑하는 레드 카펫 드레스 디자이너인 알레산드로 리치는 소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진 디자이너다. “길고 좁은 소매가 긴 드레스와 매치되면 힘과 연속성을 느끼게 하고, 어깨 위에 볼록 솟아 있을 때는 가벼움과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사해요.” 리치의 설명. 팔꿈치를 지나가는 꽉 조이는 레오퍼드 패턴의 소매부터 드라마틱하게 부풀어오른 소매까지, 과장된 소매 디자인은 리치 옷의 특징이 되었다. “참 웃기죠. 전 소매가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맡을 줄은 몰랐어요.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거든요. 각 부분을 생각하며 전체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지만, 소매는 분명 패션과 여성성에 대한 제 생각-지적이고 근심 걱정 없고 새로운 사고를 하는 여성-을 반영해요.” 이번 시즌에 리치는 전신을 덮는 스킨 톤 드레스에 크리스털 장식이 풍부한 소매를 선보였다. “전 이 드레스가 팔과 손에 주목하게 한다는 점이 너무 좋아요. 팔이 다리처럼 유혹의 도구가 되는 거죠.”
그녀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소매가 달린 옷을 즐겨 입은 몇몇 여성을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코코 샤넬은 소매가 없는 옷을 좀처럼 입지 않았고,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와 케임브리지의 공작부인은 그들 인생의 가장 빛나는 날, 긴 레이스 소매가 달린 웨딩드레스를 선택하지 않았나. “전 시즌에 상관없이 팔을 꾸미는 것은 언제나 옷을 더 세련되어 보이게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여름에도 거의 민소매 의상을 입지 않죠.” 배우이자 사교계의 잇걸 올리비아 팔레르모가 말한다. “전 긴 소매가 달린 시어 블라우스를 즐겨 입고, 시계와 팔찌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크롭트 소매도 좋아해요. 요즘에는 코쿤 스타일의 소매가 달린 옷을 거의 매일 입어요. 전 지금 가장 우아했던 시절인 50년대 쿠튀르 스타일에 빠져 있어요.” 버버리, 샤넬, 스포트막스, 그리고 스텔라 매카트니 등 이번 시즌 코쿤 소매를 선보이는 디자이너들은 수없이 많으니 올리비아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한편, 록산다 일린칙 덕분에 풍성한 소맷단을 커프스로 고정하는 디자인의 비숍 슬리브마저 등장했다. “비숍 슬리브는 아주 로맨틱한 동시에 이 시대와 딱 어울리는 모던함을 풍기죠.” 컬렉션에 등장한 39벌의 의상 중 30벌의 소매를 비숍 스타일로 선보인 록산다의 말. “저는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소매를 사용해요. 러플이 장식된 소매나, 강렬한 색상이 매치된 소매 같은 거죠. 예를 들어 요즘 제가 거의 매일 입고 있는 시어 화이트 소재의 소매 끝에 오렌지 커프스가 달린 블랙 드레스처럼요.” 일린칙의 호리호리한 체형은 그런 의상에 적격이다.
소매가 강조된 이번 시즌 옷들을 소화하기 위해 꼭 깡마르거나 모델의 팔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팔을 완전히 가리는 길고 타이트한 소매의 의상은 팔이 늘씬한 사람이 입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지방시와 생로랑의 풍성한 시스루 블라우스 또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기는 마찬가지. 소매가 강조된 의상의 장점? 이건 어떤가. 레이어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 한 벌의 옷 자체로 충분히 스타일리시하니 얼마나 간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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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에디터 / 이지은(Lee Ji 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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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SㅣKIM WESTON ARLOND(캣워크), WWD/ MONTROSE, 글 | Sarah Har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