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팝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는 디자이너, 디젤의 니콜라 포미체티. 그가 현재의 한국 K팝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태민을 만났다. 길들여지지 않은 두 에너지는 서로 얽혀 흥미로운 충돌을 자아냈다.
- 니콜라 포미체티(Nicola Formichetti)
서울을 세 번째 방문했다. 어떤 느낌을 받는가? 마지막으로 왔을 때보다 서울은 진화했고, 사람들이 옷 입는 방식 또 한 진화했다. 놀라운 속도로 패셔너블해지고 있다.
정확히 2년 6개월 전, 뮈글리를 떠나 디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 이래 브랜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디젤이 잊고 있었던 것’, 즉 회사 내부 시스템 구축, 디자인 마케팅, 매장, 디지털, 온라인 마케팅, 쇼핑몰 등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지난 시간은 브랜드 DNA를 재해석하는 데 몰두했고, 이제는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패션쇼도 준비하고 있고. 아무튼 상당히 흥미로울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이 거의 경영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브랜드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회사를 운영하는 메커니즘부터 브랜드 정체성 정립까지, 거시적이며 동시에 미시적인 요소까지 파 악해야 한다. 그저 거만하기만 한 패션 ‘디바’(명성만 누리려 하는 디자이너들을 일컬음–에디터 주)는 절대 할 수 없는 일 이다. 멀티태스커로서 많은 일을 해내야 하므로, 내가 이 일에 제격인 셈이다(웃음).
디젤의 시그너처인 데님은 요즘 하이패션에서도 쉽게 접근 하는 소재다. 데님에 대한 당신의 생각과 디렉션 방향이 궁 금하다. 디젤은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하며 많은 실험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데님처럼 보이지 않는 데님을 선보이거나, 데님으로 쉽게 시도할 수 없는 것을 해볼 생각이다. 얼마 전 도쿄 이벤트에서 데님 웨딩드레스를 선보인 것이 하나의 예 다. 데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디젤 리부트(#dieselreboot)와 같은 광고 캠페인 역시 파격적이다. 비주얼을 직접 디렉팅한다고 들었다. 소비자들에 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나? 90년대에 디젤은 이미 두 남자가 키스하는 광고를 발표해서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내게 있어서도 광고의 의미는 매우 크다. 단순히 옷을 보여주는 광고보다는 우리의 정신,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알리고 싶다. 내 첫 광고 프로젝트였던 ‘디젤 리부트’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했다. 텀블러 커뮤니티를 통해 디지털 문화에 민감한 젊고 창의적인 세대를 모았고, 광고 모델 모집도 했다. 휠체어를 타는 사 람, 거대한 사람, 트랜스젠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을 선별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것이 었고, 이것이 내가 광고를 ‘사용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유력 패션지에서 에디터로 일했으며, 스티븐 클라인 등 최정상의 사진가와 협업하고, 셀레브리티의 스타일링까지 한다.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감당해내나? 내가 하는 것은 나의 사랑 이자 나의 열정 그 자체다. 당신이 그저 좋아서 무언가를 한다면, 그저 다 하게 되어 있다.
당신을 논할 때는 레이디 가가, 브룩 캔디라는 두 디바의 이름이 늘 따라다닌다. 이들의 스타일을 디렉팅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무엇인가? 솔직히 나는 연예인과 일하는 걸 즐기지 않는다. (모두가 의외라는 표정을 하자) 왜냐면, 그들은 특권 계급이어서 까다롭게구니까! 그렇지만 연예인이 아닌 ‘아티스트’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뮤지션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들이 아티스트로서 목소리, 눈빛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로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내 역할이다.
샤이니의 태민과 함께 화보 촬영을 했다. 어떤 느낌을 받았나? K팝 아티스트들의 스타일링이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하 는데, 그중에서도 샤이니는 현대 패션의 흐름을 빠르고 신선하게, 동시에 대중이 접근 가능하도록 할 줄 안다. 무대 위에서 본 태민과 패션 화보를 표현하는 태민의 모습이 변한다는 점에서도 놀랍다, 매력적이다.
가장 많은 SNS 팔로어를 보유한 디자이너 중 하나다. 현대 패션에서 디지털의 중요성을 어떻게 보고 있나? 팔로어의 숫자보다는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하는 지가 내게는 더욱 중요하다. 팔로어 수와 좋아요 수와 같은 유명세는 중요하지도 않을뿐더러 인스턴트적인 가짜라는 생각이 든다. 초기와는 달리 요즘 인스타그램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홍보하거나 지루한 마케팅의 일환으로만 쓰여서 선호하지 않는다. 때문에 지금은 좀 더 사적인 소통이 가능한 스냅챗을 즐기고 있다. 스냅챗의 또 다른 장점은, 우리 엄마가 보지 못한다는 거다(웃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패션계가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주길 바라는가? (굉장히 오래 고민한 후) 나는 한창 현역에 있지만, 패션의 ‘다음 시대’를 이끈 인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재치있고 인상적인 패션 크리에이터로 말이다.
- 태민
최근 솔로 앨범 <Press It>을 발매했다. 미니 앨범 <Ace>를 통해 솔로 활동을 하긴 했지만, 정규 음반은 이번이 처음이라 감회가 또 다를 것 같다. 요즘에는 유닛 활동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모든 아이돌이 솔로 활동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곡이 수록된 솔로 앨범으로 내 음악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서 기쁘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샤이니의 음악과 태민의 음악, 그 차이는 무엇인가? 특정 장르가 유행하는 시대이다 보니 그 안에 담긴 내용보다는 무조건 신나서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만 흐르는 경향이 있다. 힙합 아니면 하우스 일색인 이유도 그렇고. 솔로에서는 대중이 감성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음악, 뭔가 남들과 ‘한 끗’이 다른 부분에서 호소력이 있는 음악을 보여주고 싶었다. ‘솔저’라는 노래를 포함해 몇 곡의 작사를 직접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작곡도 직접 하나? 작사만 해도 쉽진 않다(웃음). 사실 친형이 작곡을 해서 가끔 같이하기도 한다. 3년 전쯤 콘서트에서만 딱 한 번 자작곡을 공개한 적이 있는데, 더 완벽하게 준비해서 음반으로 발표하고 싶은 욕심은 있다.
아티스트로서 ‘태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무대 퍼포먼스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나? 보이 아이돌 그룹의 무대가 점점 과감해지고 화려해지고 있다. 그래서 늘 ‘나만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자극적인 볼거리가 많다고 해서 좋은 무대라고 할 수 없진 않나. 틀 안에서 움직이는 안무이기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몸에서 배어나오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 멤버 간의 호흡이 중요한 샤이니와는 달리 솔로라서 가능한 지점이 있다. 나 자신의 움직임과 음악, 조명과 무대 장치 등 여러 요소가 딱 맞아떨어지면서 하나의 톤&매너가 완성되는 기분은 정말 짜릿하다. 다섯명이 함께하는 샤이니가 각자 20% 지분을 나눠 갖는다면 솔로는 혼자 힘으로 퍼포먼스 전체 시간을 버텨야 하는 거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쏟아내려고만 하다 보면 예전과 겹치는 부분도 있을 거고, 지나치게 과해질 수도 있기에 한 무대를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구성에 신경 쓴다. 솔로를 통해 완급 조절을 배웠다.
스스로 ‘태민’이라는 아티스트를 어떻게 프로듀스하고 있나? 샤이니는 이미 색이 뚜렷하게 잡힌 팀이다. 컬러풀하고 트렌디하며, 동시에 멤버 각자의 매력을 어필하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 솔로로 활동하면서 나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니, 현재 대중음악계에서 진정한 ‘퍼포머’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뚜렷한 개성으로 입지를 굳힌 퍼포머, 그게 내가 나아갈 방향이다.
퍼포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현대 퍼포먼스에서는 비주얼 적인 부분, 특히 패션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샤이는 패션계에서도 가장 ‘패셔너블’한 팀으로 이름이 높다. 우리는 무척 운이 좋았다. 데뷔하기 전부터 SM의 비주얼 디렉터인 민희진 실장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데려다 더블유 같은 하이패션 매거진도 보여주고 유명 레이블의 쇼도 찾게하는 등 스타일에 대해 안목을 갖추도록 트레이닝시켰고, 자연스럽게 욕심도 생겼다. 그 과정이 없었다면 퍼포머로서 패션의 중요성을 놓칠 수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얼마나 큰 재산을 손에 쥐여준 것인지 모르겠다.
스타일적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퍼포먼스가 있나? 패션 쪽으로 보면 어떤 느낌의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은가? 패션과 음악이 협업하여 좋은 시너지를 낸 예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베르사체, 그러니까 지아니 베르사체 시절의 80년대 분위기를 재현해보고 싶다. 어쨌거나 콘서트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부분도 필요하다 보니 베르사체의 전성기 시절처럼 골드를 콘셉트로 잡아서 무대를 다 금장으로 꾸미고, 메두사 같은 아이코닉한 상징물을 내세워도 재밌을 것 같다. 요즘 모스키노처럼 패스트 패션에 가까운 팝 문화 콘셉트도 흥미로울 것 같고.
패션과 음악의 협업으로 보면 오늘 함께한 니콜라 포미체티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 고 있나? ‘레이디 가가’ 하면 떠오르는 과격할 정도로 파격적이며 혁신적인 이미지 있지 않나. 포미체티의 그런 부분을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오늘 만남을 흥미롭게 기다렸다. 사실 내 스타일에 비해서 너무 ‘세지 않을까’ 싶었는데 촬영장의 분위기를 보고 자신의 에너지를 조율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같은 아시아의 베이스가 있어서인지 존중과 배려의 미덕을 아는 예의 바른 캐릭터여서,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 곧, 일본에서, 다시 만나 밥을 먹기로 약속했다. 좋은 친구를 하나 얻은 기분이다.
이들의 에너제틱한 영상화보를 지금 바로 모바일매거진 6-2호에서 만나보세요!
- 에디터
- 최유경
- 포토그래퍼
- 최용빈
- 디지털 에디터
- 배그림
- 영상
- 공수빈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최민혜(태민), 헤어&메이크업 | 임해경, 세트 스타일리스트 | 유여정, 어시스턴트 | 임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