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궁금하든 그렇지 않든, 그와의 인터뷰는 우리의 오답과 편견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에릭남을 만나보면 그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호들갑스러운 평가와 지나치게 긍정적인 수식어로만은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평소 같으면 11시 반 정도에 일어난다는 에릭남은 아침8 시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있다. 감기약을 입에 털어놓은 후 그는 자신의 살인적인 스케줄에 대해 브리핑을 해줬다. “오늘 새벽에 일이 끝나는데 내일 새벽에 또 나가야 해요. 내일도 새벽에 끝날 거고 수요일은 밤새워야 하고…. . ” 그의 끔찍한 스케줄은 뭐, 유감스럽지만 덕분에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역시 툴툴거리기도 하는 사람이었다(그가 웃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찌나 다행인지). 얼마 전 미니 음반 <Interview>를 내고 5월에 열리는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를 기다리고 있는 에릭남에게 그가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에 대해 물었다. 나 같아도 짜증날 것 같아서, 요즘의 유행어 ‘1 가정 1 에릭남’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어제 자기 직전에 무슨 생각 했나? ‘아, 이번 주 망했다’(웃음). 일이 너무 많아서 이걸 다 어떻게 해야 하 지 고민하며 누워 있었는데 일어나보니 아침이었다.
지난 3월에 발매한 <Interview>는 3년 만의 미니 음반이었다. 그 음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무엇이었나? 내 노래를 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써놓고 가지고만 있던 곡을 드디어 발표할 수 있었으니까. 시간이 너무 부족해 녹음을 급하게 해서 아쉬운 부분은 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한다. 친구와 가족에게도 아직 음반을 못 줘서 사인해야 할 음반이 100장 정도 쌓여 있다. 난 보통 음반을 줄 때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한마디씩 쓰는데 그러다 보니 아직 시작을 못했다. 부모님께도 얼른 드리고 싶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이 음반을 선물한다면 누구에게 주고 싶나? 오바마 대통령. 여름휴가 때면 그는 자신이 듣고 싶은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하지 않나. 휴가 때 내 노래도 들으면 좋겠다. 사실은 한번 만나보고 싶다. 인터뷰해보고 싶은 사람이다.
오바마에게 한 가지 질문만 할 수 있다면 뭘 물어보고 싶나? ‘Are you Happy? And Why?’ 그럼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다 보니 오바마가 대통령 됐을 때 말도 많았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백악관에 들어가 굉장히 많은 일을 했고, 나라를 좋은 방향으로 바꿨 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도 원칙이라 여긴 건 또 지켜냈다.
그 질문을 자신에게 해본다면 뭐라고 대답하겠나? 행복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행복한지 아닌지. ‘뭘 어떻게 해야 내가 진짜 행복할까’라는 고민을 자주 한다. 근데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그게 인생인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계속 찾아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언젠가는 ‘난 이제 평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좋은 일이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든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많이 했다는 뜻일 테니까.
지금 머리를 가장 복잡하게 하는 건 무엇인가? 내 성격이다. 욕심이 많아서 무엇을 해도 언제나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오늘 인터뷰 끝나고도 ‘아, 이렇게 표현할걸, 이렇게 말할걸’이라고 후회할 거다(웃음).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행복한 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아쉬움이 남아 있다. 첫 음반을 지금 다시 들어보면 ‘난 왜 이렇게 불렀을까, 여기서 호흡은 왜 이렇게 쉬었을까, 발음은 왜 이렇게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보다 성장한 지금 시점에서 봤을 때 부끄러운 거다. 그게 행복한 걸까? 행복한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 걸까? 모르겠다. 행복이라는 것을 나한테 맞춰서 다시 해석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너무 복잡하게 말하고 있나?(웃음)
첫 미니 음반을 낸 이후 3년간 라디오에서 다른 가수들의 커버 곡을 부르고 노래하는 영상도 꾸준히 올렸다. 할리우드 배우를 인터뷰하는 인터뷰어가 아니라 가수로서의 자기 자신을 증명 하려는 시도였나? 라디오 고정 게스트라서 어쩔 수 없이…(웃음). 낮 12시에 노래방 기계 반주에 생방송으로 노래를 부르는 거라 사실 좀 힘들었다. 하지만 함께하는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서 좋았다. 나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느끼는 건,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가이드 녹음하고 코러스 및 보컬 디렉션 하면서다. 인피니트, 보이프렌드, 틴탑, 로미오, 스누퍼 등 아이돌 노래를 주로 맡았다. 내가 평소 잘 불러보지 않은 종류의 노 래다 보니 발성, 창법 등을 이렇게 저렇게 해보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노래가 늘었다. 처음에는 가이드 녹음하는 것도 힘들었다. 아무 소리도 없는 녹음실에서 내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괴롭고 민망했다. 근데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소리가 잘 나오는지 그 방법을 조금씩 알게 되더라.
직접 가사를 쓴 ‘우우 (Ooh Ooh)’의 화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친근한 에릭남과는 좀 다른 것 같다. 낮에 카페에서만 보다가 밤에 클럽에서 맞닥뜨린 느낌이라고 할까? 이런저런 노래를 많이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호야가 랩을 그렇게 쓸 줄 몰랐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다시 보고 “으악? 너 이런 뜻으로 쓴 거였어? ” 이랬다(웃음).
지금껏 사랑 노래를 많이 불렀다. 사랑 노래 말고 다른 이야기를 곡으로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위로가 되는 노래 를 쓰고 싶다. 사랑 노래는 너무 많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사랑 같은 감정으로 채우거나 넘어가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면 충분히 그걸 표현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게 건강하게 사는 걸 텐데, 한국 사람들은 그걸 잘 표현하지 않는 것 같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이 그 부분이었 다. 누군가에게 말도 잘 못하고 꾹 참고 있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도 지난 몇 년간 우울증을 겪었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많은 일을 겪었다. 어떤 순간에는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면 ‘다 그런 거야’, 아니면 ‘힘내’라고 말하더라.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 ‘힘내’다(웃음). 그런 상황에서 이번 음반에 수록된 ‘Stop the Rain’과 ‘Good for You’를 만들었다. 내가 힘들 때 쓴 곡이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 같다. 그 노래를 듣고 울었다는 얘길 종종 들었다. 노래를 통해서 나의 그런 생각을 드러내고 싶다.
이번에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공연한다. 출연진 중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뮤지션은 누구인가? 제이슨 데룰로, 코린 베일리 래를 꼭 보고 싶다. 마크 론슨도 보고 싶은데 DJ 셋이라 잘 모르겠다. DJ 셋은 왠지 술 마시고 봐야 할 것 같아서(웃음). 제이슨 데룰로의 무대가 진짜 멋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재즈 가수가 있나? 고등학생 때 제 1첼로로 오케스트라 단원 활동을 해서 뉴올리언스에 간 적이 있었다. 물론 되게 못했다(웃음). 뉴올리언스에는 아주 작고 오래된 공연장 프리저 베이션 홀(Preservation Hall)이 있다. 그 공연장에서 프리저 베이션 홀 재즈 밴드(Preservation Hall Jazz Band) 공연을 봤는데 정말 멋있었다. 60~70대 할아버지들이었는데 호흡이 다들 잘 맞았고 정말 행복해 보였다. 음악과 악기와 사랑에 빠져 있어서 그런지 그들이 무슨 연주를 해도 그 소리가 예뻤다. 그때 그 좁은 공간에서 봤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에릭남 화보 촬영 현장스케치>
에릭남의 움직이는 영상 화보를 보려면 모바일매거진 5-1호 다운로드!
- 글
- 나지언 (프리랜스 에디터)
-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 이예지
- 영상
- Normal company
- 포토그래퍼
- 조영수
- 스탭
- 스타일리스트 전진오, 헤어·메이크업 홍현정, 어시스턴트 임다혜, 홍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