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필립 글라스는 장 콕토가 70년 전에 완성한 시적인 판타지에 새로운 멜로디와 목소리를 더했다.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를 소개하기 위해 고령의 거장이 직접 한국을 찾았다.
“파리에서 유학할 무렵 장 콕토도 생존해 있었습니다.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죠. 하지만 그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예술적 동료라고 생각해요.” 서울의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필립 글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교향곡부터 영화 음악까지, 다양한 분야를 정력적으로 탐색해온 작곡가는 1990년대에 장 콕토의 작품 세 편을 재해석한 필름 오페라 연작을 발표했다. 그 중 하나인 <미녀와 야수>는 동명의 무성 영화에 새로운 멜로디와 아리아를 덧붙인 프로젝트였다. 지난 3월 말, 그러니까 초연 후 20여 년만에 이 공연을 직접 감상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마이클 리스만이 이끄는 필립 글라스 앙상블이 라이브 연주를 했으며, 네 명의 성악가는 캐릭터들의 대사를 노래로 전했다. 작곡가는 배우들의 입 모양과 맞아떨어지는 단어를 찾고 그에 어울리는 음을 정했다고 한다.“ 무척 논리적인 과정이었어요. 어렵지는 않았고 오히려 너무 쉬워서 흥미롭더군요. 전에는 누구도 이런 방식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어요.”
필립 글라스에 의하면 파리에서의 초연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10년 뒤, 다시 초청돼 무대에 올렸을 때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새침한 파리지엔은 그의 영화 음악에도 필름 오페라의 경우처럼 느리게 반응했을까? 글라스의 스코어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쿤둔>, 피터 위어의 <트루먼 쇼> 같은 작품에 우아한 공기를 더했다. 상업 영화 프로젝트 선택의 기준을 묻자 그의 대답은 이랬다. “저야 뭐 전화가 걸려오면 하죠.” 작업의 특성상 많은 제약을 감수해야 하는 게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유감은 없는 듯했다. “일종의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히려 더 즐겁습니다. 게다가 우디 앨런이나 마틴 스코세이지 같은 예술가들을 보세요. 상업적인 시스템도 그들이 아름다운 무언가를 완성하는 걸 막지는 못하잖아요.”
- 에디터
- 정준화
- 포토그래퍼
- 박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