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명 셀러브리티들의 모자를 만드는 남자. 이상한 나라의 모자 장수, 레인하르트 플랭크를 파리에서 만났다.
반갑다. 오래 전부터 만나보고 싶었다. 아직 당신을 잘 모르는 더블유 코리아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한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다. 나는 모자를 만드는 레인하드 플랭크다. 1920년대의 모자를 리사이클해서 새로운 모자로 탄생시키는 작업을 한다. 비엔나의 리스카 라는 럭셔리 부티크에서 부잣집 사모님들에게 모자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그 다음해에 피렌체 피티 워모에 참여한 이후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즈>에서 나와 내 모자에 대한 기사를 썼고 그 이후 많은 대중들이 내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산업디자인을 했다고 들었는데 모자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엔 공부를 마치고 돈이 없어서 빈티지 모자를 사서 리사이클 하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산업디자인에서 중요하게 배운 것은 ‘Form’, 즉 모든 사물에 대한 형태였다. 꽃병, 안경 등등 당시 나는 정말 모양에 꽂혀있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모자를 좋아했었고. 그래서 모자 디자인을 하게 된 것이다.
유투부에서 당신을 찾아보면 예전부터 지금까지 수증기를 이용해 모자의 형태를 만들더라. 당신이 모자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나는 소재를 중요시한다. 테크닉은 비슷하고, 주로 모직과 토끼털, 펠트를 사용한다. 이런 소재를 수증기에 넣고 열을 가하면 직물이 열리게 되는데 그때 부드러워진 직물로 모자를 디자인한다. 디자인이 끝나고 실온에 두면 열렸던 직물이 다시 닫히면서 그 형태를 유지하게 된다.
재료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할 것 같은데, 재료의 선택기준은?
재료의 선택은 오래된 모자를 사는 것에서 시작한다. 1920년대의 모자는 퀄리티가 상당히 좋았다. 그때의 모자를 사서 조각을 내고 다시 그 천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내 모자의 재료가 펠트, 양털, 토끼에 집중된 이유는 그 당시 가장 많이 쓰이던 재료들 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예전의 모자들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그래서 새로 나온 소재를 가지고 작업하기도 한다. 물론 두 라인을 명확히 구분한다.
즉석에서 모자를 만들기도 한다. 상대방의 스타일을 굉장히 빠르게 파악하는 것 같다.
모자를 만들 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본다. 개인의 펄스널리티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패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각각의 사람은 개인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눈을 바라보고 얼굴을 만지고 그렇게 얼굴의 형을 익히고 모자를 디자인한다. 각각의 사람들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방어막이 있다. 그 방어막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내가 모자를 만들 때는 최대한 상대방의 가까이에 가서 만든다.
당신의 시그니처인 일 클라시코의 탄생과정에 대해 말해달라.
공부가 끝나고 여러 제품들을 디자인했고, 거기에는 몸에 걸칠 수 있는 장신구 디자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끄는 디자인이 아닌 색다른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다. 어느 날 사람 머리모양을 나무로 만들었고 거기에 펠트를 씌워보았다. 그리고 얼굴모양으로 펠트를 잘랐다. 내 친구가 그걸 써보더니(모자처럼 쓰라고 만든 건 아니었지만) 좀 답답하다며 귀 부분을 개선시켜달라 했다. 그리고 뒷목 부분도 좀 오려달래서 부탁대로 해줬다. 그리고 나서 45도 각도로 비틀어서 머리에 써보니 그럴싸한 디자인의 모자가 되어있었다. 이것이 일 클라시코의 탄생이다.
영감은 어디서 오나? 모자의 느낌이 거칠기도 하고 동화적이기도 한데.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다가온다. 만드는 과정 중에도 영감이 찾아온다. 어제 퍼포먼스 때는 여러 모자들이 마치 꽃 같았다. 꽃밭에 있는 기분이었다. 모든 하얀색의 모자들은 눈 덮인 산 같았고. 이렇게 영감은 주변 어디서든 찾아온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모자 속에 있는 인간이다. 여러 재료와 여러 디자인으로 일하는 이유는 이 모자를 쓰는 사람을 위해서이다. 내 모자는 절대로 완벽한 모양을 가지고 나오지 않는다. 완벽하게 찍어져 나오는 모자들은 내게 영혼이 없는 모자처럼 느껴진다. <해리포터>에서 막대기가 주인을 선택하듯 내가 만드는 모자들은 모자가 주인을 선택한다.
특히 일본에서 모자가 인기가 많은데, 이유가 뭘까?
어제 퍼포먼스에 왔던 일본사람 기억하나? 피티워모가 끝나고 얼마 안 있다가 그 사람이 내게 찾아왔었다. 나는 잘 몰랐는데 그 전부터 일본사람들이 내 모자를 좋아했다 하더라. 그러던 와중에 어제 그 남자가 찾아온 것이다. 그가 일본의 여러 부티크에 나를 소개시켜줬고 그렇게 인연이 이어져서 일본에서 많은 활동을 하게 되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나?
처음 모자를 만들 때 부잣집 사모님들이 사던 모자를 노숙자에게도 나눠줬었다. 그 노숙자중 한 명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오며 가며 그 사람을 매일 봤는데, 그 사람은 내가 씌워준 모자를 언제나 쓰고 있었다. 모자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사람의 집 같았다. 모자를 모자이기 때문에 쓰는 게 아니라 내 머리에 지어진 것 같은 그런 의미에서 그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신발도 만든다는 얘길 들었다.
초반에 모자가 많이 팔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벌 수가 없어서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신발은 좀 더 잘 팔릴 것 같았거든. 그래서 그 돈으로 모자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것이다.(웃음)
당신은 내가 처음 봤던 5년 전과 똑같다. 당신의 10년 후를 상상해본다면?
나는 10년 후 보다는 30년 후를 더 내다본다. 30년 후에 은퇴를 하고 나면 중국에 가고 싶다. 큰 도시에 정착할 것이고 거기서 아주 작은 매장을 하나 열고 싶다. 젊은 사람들을 위한 모자와 신발을 만들 꺼다. 젊은이들을 위해서 일하면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을 꺼 같아서다, 미래를 알면 계속 젊음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디자이너로서 최종 목적, 꿈이 있다면
지금 내 꿈을 이뤄가는 중이다. 1920 년대의 모자들을 사 모으고 그것들을 조각조각 잘랐을 때, 그리고 원래의 모양을 제거했을 때 나는 그들을 자유롭게 해줬다 생각했다. 모자들에게 제 2의 인생을 주는 것, 그것이 내 꿈이다.
- 에디터
- 정환욱
- 파리 통신원(인터뷰)
- 이길배(Guilbé MASSONNEAU)
- PHOTOS
- COURTESY OF REINHARD PLA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