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1일, 비상한 관심과 기대를 모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의 개관과 함께 서울 패션위크의 막이 올랐다. 미래적이고 진보적인 이 건축물 안과 밖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던 2014 F/W 서울 패션위크. 그 환희의 순간을 더블유의 카메라에 담았다.
홍승완 – ROLIAT
클래식과 위트가 절묘하게 교집합을 이룬 디자이너 홍승완의 최신작은 도심 속의 유쾌한 밀리터리 룩으로 드러났다. 푸른색으로 재해석한 카무플라주와 핀 스트라이프 프린트는 패딩 점퍼와 블레이저, 베스트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활약했으며, 알파벳 프린트의 스웨터는 브랜드의 젊은 감성을 표현하는 매개체처럼 곳곳에 등장했다.
고태용 – BEYOND CLOSET
명실공히 서울 패션위크 남성복 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비욘드 클로짓의 컬렉션은 런웨이 쇼 대신 그런지한 세트에서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마지막 휴가를 나온 군인’이라는 독특한 테마 아래 유쾌한 색상의 조합과 힙합적인 요소를 가미해 비욘드 클로짓만의 밀리터리 룩을 선보였다.
신재희 – JEHEE SHEEN
디자이너 신재희가 패션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누구보다 깊고 심오하다. 하지만 단순히 난해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현실과의 괴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패션관이 오롯이 드러나니까. 특히 이번 컬렉션이 그랬다. 가죽과 우븐의 그래픽적인 매치가 돋보인 아우터와 톱, 팬츠 등은 무채색이 주를 이루면서도 생동감이 넘쳤다.
이상현 – LEIGH
모던 클래식을 추구하는 남성복 디자이너 중에서도 이상현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유연한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웨어러블하되 전형적이지 않은 동시대의 남성복을 보여준 이번 쇼는 미묘한 색의 대비를 이룬 코트, 사이키델릭한 프린트의 팬츠와 패딩 점퍼, 메탈릭한 바이커 재킷 등을 베이식 룩과 매치함으로써 클래식의 진중함을 캐주얼하게 표현했다.
최철용 – CY CHOI
디자이너 최철용의 이번 컬렉션은 보기 드문 볼거리를 선물했다. 아티스트와 함께 일상 속의 물건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오브제를 들고 모델들이 연이어 등장하자 극적인 패션 드라마가 런웨이에 펼쳐진 것. 브랜드의 상징인 모노톤의 미니멀한 밀리터리 룩과 아트의 만남은 보는 이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한편 구조적인 실루엣과 디테일의 조화가 인상적인 아우터는 동시대가 원하는 니즈를 정확히 관통하는 아이템이었다.
이수형, 이은경 – SURREAL BUT NICE
괄목할 만한 성장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불과 2시즌 만에 안정된 궤도에 진입한 서리얼벗나이스는 서울 패션위크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리는 데 일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았던 네오프렌 소재의 캐주얼한 아이템을 과감하게 줄인 대신 매스큘린, S&M, 클래식, 펑크 등 이질적 요소를 절묘하게 배합, 서리얼벗나이스만의 뉴룩을 창조해냈다. 쇼적인 아이템을 배치하면서도 클래식한 아이템이 돋보이는 쇼 구성 역시 브랜드의 노련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주영 – RESURRECTION
탈출의 열망을 컬렉션 테마로 선택한 레주렉션은 풀, 바위, 물, 바람 등 자연의 구성물에서 받은 영감을 구조적이면서도 강인한 남성미로 충만한 브랜드의 캐릭터에 반영했다. 또한 지퍼 장식을 적극 활용한 가운데 퍼, 가죽, 양면 저지, 캐시미어 등의 고급 소재의 특성을 한껏 강조한 룩은 그 어느 때보다 현실 감각이 돋보였다.
김서룡 – KIMSEORYONG
‘Ego Trip’,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주제로 한 이번 컬렉션은 남성복에 깃든 우아함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냈다. 디자이너의 전매특허인 레트로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완성한 컬렉션은 언제나처럼 아름다운 남성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특히 하운즈투스와 체크 프린트를 머금은 트위드 수트와 활주로처럼 뻗은 맥시 코트의 이중주는 쇼의 압권이라 할 수 있었다.
강동준, 이병대 – RE.D
디그낙의 강동준과 레드페퍼의 이병대가 의기투합했다. Re.D(리디)라는 브랜드로 국내 최초의 남성 듀오 디자이너로 데뷔전을 치른 것. 하이엔드 스트리트 웨어를 표방하는 리디는 아웃포켓 장식의 밀리터리 점퍼부터 스웨트 셔츠, 라이더 재킷 등 그야말로 필수불가결한 아이템에 디자이너의 감수성을 절묘하게 버무려냈다. 한편 런웨이에 깜짝 등장한 래퍼 빈지노의 공연은 리디에 대한 기억에 또 하나의 강렬한 방점을 찍었다.
장광효 – CARUSO
장광효는 매 시즌 클래식이라는 주재료에 짜릿한 토핑을 더해 디자이너 브랜드 고유의 캐릭터를 구축한다. 이번 시즌의 토핑은 잉카 제국의 이국적인 무드. 하지만 에스닉한 무드에 얽매이진 않았다. 빨강, 보라, 파랑 등의 대담한 색상 매치와 에스닉한 패턴을 정제된 실루엣에 매치하는 한편, 저지 톱, 카무플라주 트레이닝 팬츠 등의 스포티한 아이템과 날렵한 라인의 클래식 수트를 적재적소에 배치, 현실적인 에스닉 룩을 제안했다.
정미선 – NOHKE J
노케제이 컬렉션은 직선적이고 건축적인 실루엣을 고집하면서도 관능미를 잃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체의 비율과 구조에 대한 디자이너의 깊은 이해가 바탕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번 컬렉션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치오 폰타나, 잭슨 폴록, 드리핑 등 추상표현주의, 공간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영감의 대상으로 삼아 선과 면의 자유로운 분할과 여성적인 실루엣이 조화를 이룬 룩은 하나같이 파워풀한 관능미를 내뿜는다.
최지형 – JOHNNY HATES JAZZ
북유럽 신화에 등장한 바이킹족의 특별한 여행! 독특하고 구체적인 주제를 통해 컬렉션을 선보인 쟈니헤잇재즈의 최지형. 지난 시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못 프린트에 이어 이번 시즌에는 그래픽적인 체인과 도형 모양의 프린트가 컬렉션 전반을 아우르며 룩을 젊게 만들었다. 패딩 소재의 큼직한 머플러는 스타일링을 세련되게 보이도록 한 일등공신!
박윤수 – BIG PARK
풍성한 헤어스타일과 검붉은 입술로 시선을 끈 박윤수는 그간 수집해온 앤티크한 접시와 티 세트, 포크와 접시 등의 테이블웨어에서 영감을 받은 프린트와 스포티한 무드를 컬렉션에 담았다.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가죽 재킷이나 스니커즈가 견고한 테일러링 코트들과 섞여 적재적소에 레이어링되었고, 그래픽적인 패턴과 가죽 소재의 매치로 노련한 디자이너의 젊은 감각을 보여주었다.
박승건 – PUSH BUTTON
‘Super Normal Stimuli’. 초정상 자극이라는 주제를 자신만의 위트를 통해 전한 박승건의 푸시버튼. 그의 애완견인 푸시와 버튼을 떠오르게 하는 강아지 형태의 패턴이 레오퍼드, 해골 등의 다양한 프린트로 변신하며 컬렉션 전반에 활용되었고, 이는 쇼에 통일감을 부여했다. 잠자리 눈 모양의 과장된 선글라스와 바이커 재킷, 오버사이즈 코트는 멋졌고, 길게 늘어지는 큼직한 스웨트 셔츠나 팬츠, 보이프렌드 핏의 데님, 백팩 등은 그의 팬들을 열광시킬 것이 분명했다. 등이 훤히 드러난 실버 롱 드레스는 프런트로를 지킨 공효진이 다음 시즌 레드 카펫에 입을 만한 룩이었다.
진태옥 – JINTEOK
Black Romance를 주제로 쇼를 선보인 진태옥.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에 나오는 여인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그녀는 키워드에서도 알 수 있듯 브랜드를 상징하는 흰 셔츠 몇 피스와 도트 프린트를 제외하고는 오직 검은색으로만 컬렉션을 완성했다. 컬렉션 전반은 어둡고 무거웠지만 레이스, 도트 패턴, 거대한 튤, 큰 리본 장식 등에서 그녀 특유의 순수하고 여성스러운 감성이 묻어났다. 펠트, 벨벳, 실크와 메탈의 감각적인 조합이 멋졌고, 스타일리스트 서영희와 협업으로 완성한 쇼 무대와 스타일링 역시 인상적이었다.
홍혜진 – STUDIO K
학구적인 디자이너, 스튜디오 K의 홍혜진이 이번 시즌 탐구한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서 왔다.’ 가상의 공간 어딘가에서 교차하고 떠도는 의미를 담은 컬렉션으로 위도와 경도를 상징하는 가로와 세로 줄이 다채로운 방식으로 조합을 이루며 패턴과 프린트로 탄생했다. 남성 수트 레이블과도 같은 견고한 테일러링이 돋보인 핀 스트라이프 수트나 코트는 시선을 사로잡았고, 체크와 줄무늬 패턴의 조합이 보여준 조형미와 롱앤린 실루엣의 룩은 무척 세련된 멋을 풍겼다.
이상봉 – LIESANGBONG
옐로 스톤 국립공원의 그랜드 프리스매틱 호수에서 영감을 얻은 이미지, 폭발하는 화산과 그래픽적인 패턴이 섞여 탄생한 영상으로 무대를 압도한 이상봉 컬렉션. 화면에서 본 것처럼 마치 용암이 흘러내리는 듯한 강렬한 붉은색이 돋보이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여기에 그의 장기인 견고한 재단의 수트와 건축적인 실루엣, 그래픽적인 프린트가 어우러졌고, 큼직하고 두툼한 모직 코트들이 더해졌다. 자연과 기술의 융합이 탄생시킨 강렬한 쇼.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최유경, 송선민, 이지은, 정진아, 패션 에디터 / 박연경, 김한슬
- 포토그래퍼
- 정지은(Jung Ji 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