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지노의 공간이 아트워크 크루인 IAB 스튜디오의 작업들로 채워졌다. 뮤지션의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가, 그의 머릿속에 담겨 있던 생각들을 엿봤다.
@realisshoman
화보 촬영 장소는 빈지노 본인의 집이었지만 인터뷰는 뮤지션의 또 다른 공간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가 속해 있는 IAB 스튜디오는 앨범 디자인부터 뮤직비디오까지 음악과 관련된 시각 작업 전반을 다루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이다. 김한준과 신동민은 수시로 함께 밤을 새우는 동료이자, 관심사가 크게 겹치는 친구 사이기도 하다. 남자 셋이 나누어 사용하는 작업실은 역시나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책상과 장식장, 소파따 위의 가구가 나르다 만 이삿짐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 ‘일터’라는 개념은 흐릿해요. 어쩌면 놀이터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요” . 그래도 팀원들의 취향이 편안하게 뒤섞인 이곳은 꽤나 생산적인 놀이터인 셈이다. 놀면서 떠올린 아이디어들이 결국에는 노래가 되거나 노래를 위한 이미지가 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노는 게 중요한 직업 아닌가? 일상적인 경험과 생각에서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렇긴 하다. 친구들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편이 아니다. 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게 IAB 멤버들이다.
그만큼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뜻일까?
원래도 여럿이 어울려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화보 촬영은 본인의 집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방송에 잠깐 공개된 걸 봤는데, 상당히 넓고 그만큼 또 휑하더라. 이후로 살림이 좀 늘었을까?
큰 변화는 없다. 잠만 자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제대로 갖추고 지낼 생각을 못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집에서 시간을 좀 보낸 편이다. 요즘 갑자기 영화 보는 데 꽂혔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작품을 열심히 챙겨 봤다. <베테랑> <사도> <악마를 보았다> 등등. 최근 론칭한 넷플릭스도 이용해 봤나? 넷플릭스로 <아이리스>(94세의 패션 아이콘인 아이리스 아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나도 저렇게 뭔가를 열심히 사러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웃음). 멋있더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며 컬렉팅하는 삶이라니, 무척 근사할 것 같다. 게다가 아흔이 넘도록 변함없이 열정적인 사람 아닌가.
아이리스 아펠의 주요 컬렉션은 역시 옷과 액세서리다. 빈지노는 어떤 아이템에 주로 돈을 쓰나?
기본적으로는 옷인데 가끔씩 희한한 것을 구입한다. 그림, 카메라, 때로는 스케이트보드, 아니면 가구나 거울을 사들일 때도 있다. 아, 재떨이도 좋아한다. 꽁초가 잔뜩 꽂혀서 지저분해 보여도 저기 놓여 있는 건 알렉산더 왕이다.
작년 말에 ‘Break’와 ‘We Are Going To’, 이렇게 두 개의 싱글을 먼저 공개했다. 이 곡들이 이번 음반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을까?
분위기가 각각 다르다면 다른 트랙들인데, 앨범 전체의 분위기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둘만 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빈지노라는 사람이 그동안 이런 일을 겪고, 이런 생각을 했구나 알게해줄 음반이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사운드는 또 무척 다양하다. 영화 OST의 경우, 장면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음악이 사용되지 않나. 그래도 결국에는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멜로디들이다.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내가 설명적으로 앨범을 만드는 편이 아니라 더욱 그렇다.
EP를 제외하면 1집인 <24 : 26> 이후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서야 새 앨범을 발표하는 셈이다. 신중하고 싶었던 걸까?
잠깐 생각을 좀 해보겠다. (잠시 침묵하더니) 돌이켜보면 2012년 이후의 작업은 성에 차지 않는 음악들이었다. 묶어서 앨범을 냈다면 지금쯤은 스스로 못마땅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무렵이 내게는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착실하게 절차를 밟아오다가 갑자기 인지도가 크게 오르면서 집중이 흐트러졌다. 생각을정리하고 냉정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지는 상황에 대한 염려도 해본 적이 있나?
최근처럼 할 말이 없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분명히 또 생길 거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많은 예술가들이 어떻게 마지막까지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겠나. 기다리면 본능적으로 머리와 몸이 움직이게 될 거다.
20대는 몇 년, 아니 몇 개월 단위로 생각이 바뀔 정도로 변화무쌍한 시기다. 가끔 예전에 쓴 랩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스스로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드나, 아니면 여전하다는 느낌이 강한가?
그 문제에 대해 아예 생각을 안 하려고 드는 측면도 있다. 자꾸 젊음과 나이 듦에 대한 비교로 흐르게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의 가사는 어떤 부분에서는 지금보다 더 열려 있었다. 내가 집어 먹을 수 있는 게 세상에 많았고, 약간의 자극에도 굉장히 살아 있는 반응을 했다. 요즘은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더 정리가 됐다면 정리된 것일 수도 있다.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는 듯하다.
올해로 서른이 됐다. 보통의 남자들은 대체로 30대에 대한 기대가 큰 편이다. 래퍼의 경우는 다를까?
다른 이들에게는 과도기일 수 있는 20대에 이미 우리는 뚜렷한 역할을 얻으니까. 대다수와는 다른 템포로 살면서 어느 정도 시차를 겪는 것 같다. 일반적인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에게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물론 그 친구들은 내가 철이 없다고 생각할 거다.
IAB 스튜디오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다. 멤버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음악 작업을 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얻지 않을까 싶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지만, 결과적으로 미술은 내게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냉정하게 따져봤을 때 이제는 혼자 작품을 완성할 만큼의 열정은 없는 상태다. 대신 그러한 열정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일하며 새로운 시각을 나누는 중이다. 결과적으로도 흥미로운 시도가 많이 이루어진다.
시트콤 <오피스>의 팬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직장 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걸까? IAB 스튜디오의 작업실만 해도 일반적인 ‘사무실’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다.
그런가 보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현실이기 때문에 그 시트콤도 막연하게 판타지처럼 바라보게 된다. 늘 사건이 가득하고 너무 웃기고 재미있어 보이고. 한 때는 잠들기 전에 한 편씩 볼 정도로 좋아했다.
요즘 들어 후회하게 되는 과거의 선택은 없을까?
<쇼 미 더 머니>에 출연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고 써달라.
이유가 있나?
주변에서 아직까지도 그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소외감을 느낀다(웃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감히 나갈 엄두를 못 낼 것 같기도 하다.
경쟁을 즐기는 타입은 아닌가?
경쟁 나름이다. 물론 나도 경쟁심이 있기 때문에 랩을 하는 거다. 음악을 잘하고 싶은 욕심은 누구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부추김이나 괜한 자존심 때문에 싸우는 경우라면 꺼려진다. 경쟁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경우에만 즐겁게 하려고 한다.
- 에디터
- 정준화, 정환욱
- 포토그래퍼
- 김희준
- 헤어&메이크업
- 김지혜
- 아트워크
- IAB
- 어시스턴트
- 장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