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S/S 런웨이에 재현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 10.
수트의 여왕
비앙카 재거 Bianca Jagger
비앙카 재거가 ‘재거’라는 성을 얻은 건 1971년 5월의 일이다. 그녀는 당시 임신 4개월의 몸으로 믹 재거와 화려한 웨딩 마치를 올렸다. 앤디 워홀의 절친한 친구이자 스튜디오 54를 즐겨찾는 ‘파티걸’ 여배우였던 그녀의 시그너처 룩은 딱 떨어지는 팬츠 수트. 그녀는 60년대부터 줄곧 날 선 재단의 팬츠 수트를 즐겨 입었고, 특히 아주 애용한 화이트 팬츠 수트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시그너처 스타일로 꼽힌다. 화려함의 끝을 달리는 세계에서 지내던 그녀가 80년대에 큰 심경의 변화를 겪고 인권 변호사가 된 건 유명한 이야기. 지금도 여전히 법조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데, 이번 시즌 에밀리오 푸치의 날카롭게 재단된 팬츠 수트를 보면 ‘저 룩들을 70년대의 비앙카 재거가 입는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루피, 그 이상!
아니타 팔렌버그 Anita Pallenberg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과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의 뮤즈였던 패티 보이드만큼이나 유명한 아니타 팔렌버그. 롤링스톤즈의 브라이언 존스와 연애한 뒤 같은 밴드의 키스 리처드와 오랫동안 사귄 그녀는 로마에서 태어난 모델이자 배우였다. 그녀는 모델로 일하던 중 뮌헨에서 브라이언 존스와 처음 만났는데, 그 이후 롤링스톤즈에 무지막지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된다. 4개 국어에 능통하고, 감각도 좋은 그녀에게 멤버들은 새로운 노래에 대한 자문을 구하곤 했고, 그녀가 백그라운드 보컬로 녹음에 참여하는 일도 일었다. 단순한 ‘그루피’라 부르기엔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던 그녀는 여성스럽고 섹시한 룩을 즐겨 입었다. 이번 시즌 그 시절의 그녀를 꼭 닮은 런웨이는 화려한 구찌!
알고 보면 보헤미안
알리 맥그로 Ali MacGraw
여배우 알리 맥그로의 이름을 들으면 모든 이들이 자동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1970년 작 영화 <러브 스토리>를 떠올린다. 그러다 보니 알리 맥그로의 평소 패션 스타일마저 작품 속 여주인공 제니퍼 카바레리와 같은 청순한 프레피 스타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맥그로는 패션 센스가 뛰어나고 과감한 옷차림도 마다하지 않는 당대의 패셔니스타였다. 그녀는 배우가 되기 전 6년간 미국 <하퍼스 바자>에서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가르침 아래 포토그래피 어시스턴트로 일했으며, 후에는 <보그>의 모델이자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녀의 70년대 사진을 찾아보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건 보헤미안 무드의 룩과 부츠. 2015 S/S 에트로 런웨이에 등장한 독특한 히피 무드 부츠는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시대의 뮤즈
에디 세즈윅 Edie Sedgwick
에디 세즈윅은 캘리포니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정부를 둘 만큼 집안은 엉망진창이었고, 세즈윅은 10대 시절부터 거식증을 달고 살았다. 여러 학교와 병원을 전전하던 그녀가 뉴욕으로 향한 건 21살 시절 모델 일을 하게 되면서. 그곳에서 운명적인 친구인 앤디 워홀을 만나 이후 둘은 여러 편의 영화를 찍고 숱한 파티에 다닌다. 세즈윅은 자주 미니 드레스를 입고, 커다란 귀고리를 했으며, 늘 짧은 블론드 헤어를 유지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헤어스타일은 앤디 워홀과 닮고 싶어 자신의 갈색 머리를 짤라 스프레이를 뿌려 만든 가발이었다는 사실! 이 둘의 화려한 시절은 관계가 소원해지며 2년을 가지 못하고, 결국 세즈윅은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약물 남용으로 죽게 된다. 하지만 그 시절 반짝이던 그녀의 모습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의 대상이 되고있다.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 2015 S/S 시즌 루이비통 런웨이의 미니 드레스, 그리고 브라톱과 팬츠를 매치한 과감한 룩은 밥 딜런의 음악 ‘Just Like a Woman’과 ‘Leopard-Skin, Pill-Box Hat’, 그리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Femme Fatale’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녀, 세즈윅을 생각나게 만든다.
거침없이 과감하게
셰어 Cher
셰어를 외국 검색창에 치면 그녀의 직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이 나온다. ‘가수, 작곡가, 배우, 모델, 패션 디자이너, 텔레비전 호스트, 코미디언, 댄서, 비즈니스우먼, 자선가, 작가, 감독, 프로듀서’. 여성의 위상이 높지 못했던 1965년에 당시의 남편 소니 보노와 함께 듀오로 데뷔한 뒤 지난 50년간 어마어마한 활동을 펼쳐온 셰어. 그녀는 미국 여성 팝계의 선구적인 존재다. 1980년대부터 셰어는 쇼걸과 같은 과장된 룩을 즐겨 입었지만, 60, 70년대에는 그녀의 히피 룩이 늘 화제였다.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TV 쇼 〈The Sonny & Cher Comedy Hour〉를 소니와 함께 진행하는 동안 그녀가 선보인 룩이 당대의 유행을 선도했을 정도니까. 이번 시즌 톰 포드 런웨이에 등장한 화려한 부츠컷 팬츠는 특히 그 시절 그녀가 즐겨 입던 0순위 아이템이다.
나팔바지의 상징
파라 포셋 Farrah Fawcett
지금의 세대들에겐 캐머런 디아즈, 드루배리모어, 루시 리우가 열연한 영화 <미녀 삼총사>가 익숙하겠지만, 원조는 1976년 처음 전파를 탔던 동명의 미국 TV 시리즈다. 이때 세 명의 삼총사 중 돌풍에 가까운 팬덤을 불러일으킨 이가 배우 파라 포셋. 그녀는 이 시리즈가 만들어지기 전 ‘프로 아트’라는 포스터 회사의 제안을 받고 평소 모습 그대로 수영복 포스터를 촬영했는데, 건강미 넘치는 이 포스터가 미국에서 2억 장 가까이 팔려나가며 그녀가 <미녀 삼총사>에 캐스팅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시리즈 방영이 시작된 이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된 건당연지사. 당시 미국에서는 ‘파라 헤어’라 는 단어가 생겼을 만큼 수많은 청춘이 파라 포셋 스타일 따라잡기에 열심이었다. 파라 포셋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아이템은 워싱되지 않은 부츠컷 데님 팬츠! 이는 이번 루이 비통 런웨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련된 청순미
프랑수아즈 아르디 Francoise Hardy
2003년 개봉한 영화 <몽상가들>을 빛낸 요소 중 하나는 기념비적인 프랑스 노래들이 다양하게 수록된 O.S.T.다. 그중 1962년 발표된 노래인 ‘Tous les Garcons et les filles’를 부른 이가 바로 프랑수아즈 아르디. 뮤지션이자 배우인 그녀는 파리 9구에서 태어나 평생을 파리에서 보내고 있다. 어린시절 어려웠던 집안 사정 때문에 심하게 낯을 가리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자연스러운 멋이 밴 룩으로 60년대 말 당시 많은 소녀들의 우상이 되었다. 그 흐름은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져 알렉사 청과 아나 크라스 등 많은 패션 아이콘들이 그녀가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종종 말한다. 특히 트렌치 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채 작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있는 그녀의 옛 사진은 지금도 많은 패션 러버들의 SNS 계정에 포스팅되고 있는 유명한 컷 중 하나. 지난 2005 F/W시즌엔 당시 발렌시아가를 이끌던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그녀로부터 힌트를 얻은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무채색 아이템, 데님, 트렌치 코트, 퍼코트는 그녀의 스타일을 가장 잘 말해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이번 타미 힐피거 컬렉션의 풍성한 퍼 코트는 그 시절의 그녀에게 딱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제인 버킨 Jane Birkin
많은 이들이 파리지엔 스타로 제인 버킨을 떠올리지만 사실 그녀는 런던에서 태어난 영국인이다. 그녀는 1966년 영화 <욕망>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고, 연인 세르주 갱스부르와 만나게 된 피에르 그랭블라 감독의 영화 의 출연을 위해 오디션을 보러 파리에 갈 때까지 프랑스어도 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녀가 패션 아이콘으로 유명해진 건 평소 데님 팬츠와 셔츠를 걸친 모습에서 배어나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특별했기 때문이지만 그녀는 놀라울 만큼 과감한 룩도 멋지게 소화해내곤 했다. 속이 훤히 비치는 블랙 니트 미니 드레스(심지어 안에 브래지어는 생략하고 브리프만 걸친 채!), 엉덩이가 드러날 정도로 짧은 메탈 소재 미니 드레스 등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대담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일 땐 더없이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번 시즌 발렌티노 등 많은 런웨이의 보헤미안 무드 롱 드레스를 보면 히피 룩으로 유명했던 70년대 디자이너 장 부킨의 드레스를 입고 아들과 함께 활짝 웃던 그녀의 사진이 떠오른다.
2015 S/S 최고의 아이콘
조니 미첼 Joni Mitchell
생로랑의 2015 S/S 시즌 광고가 공개된 뒤 다른 패션 하우스들과는 차원이 다른 관심이 쏟아졌다. 광고 모델로 조니 미첼이 등장했기 때문. 올해로 일흔두 살이 된 그녀는 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뮤지션이다. 포크를 기반으로 로큰롤, 알앤비, 재즈, 팝, 일렉트로니카를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창작 활동을 펼쳐온 그녀는 호소력 짙은 음색을 가졌고,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서정적인 음악을 만든다. 미첼은 권위있는 음악 잡지 <롤링 스톤즈>가 ‘최고의 송라이터’로 꼽는 인물 중 하나. 지난해 40여 년의 음악 인생을 집대성한 앨범 를 발매하기도 했는데, 이제까지의 모든 앨범 커버는 그녀가 직접 그리고 디자인했다고 한다. 70년대 시절 페전트풍 룩과 좀 더 로큰롤적인 미니스커트 룩을 즐겨 입던 조니 미첼. 그런 그녀의 모습은 음악에 관한 애정이 남다른 에디 슬리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생로랑의 2015 크루즈 컬렉션이 전자인 페전트풍 룩과 맥락을 같이한다면, S/S 컬렉션은 후자인 보다 로큰롤적이고, 파워풀한 조니 미첼의 또 다른 70년대 룩을 연상시킨다.
묘한 퇴폐미
마리안느 페이스풀 Marianne Faithfull
내년이면 일흔이 되는 마리안느 페이스풀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964년 런던의 한 카페에서 포크송을 노래하는 것으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고, 롤링스톤즈와 함께하는 파티에서 만난 음악 프로듀서 앤드루 룩 올드햄 덕에 싱글 음반을 발표하게 된다. 그 이후로 이어진 믹 재거와의 인연. 결국 페이스풀은 사이에 아들까지 낳은 남편 존 던버와의 생활을 버리고 믹 재거와 살기 위해 집을 떠난다. 다음은? 뻔한 스토리. 이들은 ‘스윙윙 런던’의 스타 커플이 되었고, 약물 남용과 서로의 남성, 여성 편력으로 얼룩진 연애사가 펼쳐졌다. 벌거벗은 몸으로 집에 깔려 있던 러그만 걸친 채 약물 남용으로 구속되는 모습이 뉴스에 보도될 만큼 거침없이 지내던 페이스풀. 하지만 평소 얼굴은 더없이 사랑스러웠고, 미니 드레스부터 팬츠 수트까지 무엇이든 세련되게 소화하는 모습이 많은 워너비를 양산했다. 소녀 같은 청순한 얼굴 뒤에 서려 있던 팜파탈의 퇴폐적인 무드. 서정적이면서 관능적인 끌로에의 이번 시즌 룩은 믹 재거 옆에서 생긋 웃던 페이스풀을 닮았다.
- 에디터
- 이경은
- 포토그래퍼
- InDigital Media, GETTY IMAGES, MULTIBITS, Rex Fea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