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은 H&M과 하이패션 디자이너 간의 협업 프로젝트가 출범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이 기념비적인 프로젝트에 초대된 올해의 디자이너는 바로 알렉산더 왕.
2014년 10월 15일 뉴욕 소호. ‘알렉산더 왕, H&M, 라이브 이벤트, 10월 16일, 저녁 8시 15분’이라는 타이포가 프린트된 거대한 포스터들이 거리의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패션의 중심, 뉴욕 전체가 이 이벤트를 고대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의 열기였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뉴욕의 몇몇 H&M 매장에 비치된 자동판 매기를 통해 ‘골든 티켓’이라고 불리는 행사 초대장을 발부하는 이벤트가 열렸고, 이 티켓을 구하려는 인파로 매장 주변이 마비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굵직한 미디어들의 톱 뉴스로 다루어지며 그 기대감을 짐작하게 했다.
지난 2004년, 칼 라거펠트를 시작으로 스텔라 매카트니 (2005), 빅터&롤프(2006), 로베르토 카발리(2007), 꼼 데 가르송(2008), 매튜 윌리엄슨(2009), 랑방(2010), 베르사체(2011), 마르니(2011),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2012), 이자벨 마랑(2013)에 이르기까지 연달아 발표된 H&M의 협업 프로젝트는 패션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일 컬어질 정도로 화제였다. 매장 앞에서 텐트를 쳐가며 물건을 구입하고자 하는 무리가 생겨난 것 역시 이 프로젝트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처음에는 H&M이 디자이너의 이름 값에 숟가락을 얹는다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H&M의 파트너로 지목되면 해당 디자이너의 가치가 올라가는 듯한 인상이 들 정도. 그런 이유로 역대 디자이너 중 최연소인 알렉산더 왕의 H&M 프로젝트 합류는 현재 주목받는 여러 젊은 디자이너 중에 단연 그가 ‘톱 레벨’임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발표였던 셈이다.
H&M의 협업 프로젝트는 매년 비슷한 단계로 대중에게 공개된다. 먼저 H&M 측에서 파트너를 공식 발표하고, 티저 이미지로 관심을 높인 후, 디자이너와 관계가 깊은 도시에서 성대한 이벤트와 파티, 엄선된 관객에게 제공하는 쇼핑 기회를 통해 실제 제품 공개, 그리고 각국의 매장에서 동시 판매를 개시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번에는 왕의 고향인 뉴욕에서 이벤트가 열렸다. 10월 16일 밤, 뉴욕의 실내 트랙인 아머리 온 더 허드슨은 패션 무대로 탈바꿈 해,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능성 퍼포먼스 웨어에서 영감을 받은 협업 컬렉션이 펼쳐졌다. 미래적인 육상 트랙에서 펼쳐진 쇼답게 스쿠버 팬츠와 후드 파커 등 스포츠웨어에 기반을 둔 아이템은 물론 복싱 글러브와 요가 매트, 호루라기 모양의 장신구 등 그야말로 관능적이고 세련된 하이패션다운 스포츠웨어로 점철된 컬렉션이었다.
이번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알렉산더 왕은 왜 자신이 스트리트-액티브 웨어의 제왕이라는 명성을 얻는지를 제대로 증명했다. 미국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프로젝트에 참 체육왕 2014년은 H&M과 하이패션 디자이너 간의 협업 프로젝트가 출범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이 기념비적인 프로젝트에 초대된 올해의 디자이너는 패션계의 ‘원더 키드’ 알렉산더 왕. 스포티즘을 하이패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디자이너답게 이번 협업에는 땀을 흘리면서도 근사하게 보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스포츠웨어가 대거 출시됐다. 여한 그는 단지 과거에 발표해서 인기를 얻은 아이템을 저렴하고 웨어러블한 버전으로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터치가 들어간 새로운 스테이트먼트를 제안해서 알렉산더 왕과 H&M의 고객 모두를 흥분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주목하게 된 것이 바로 퍼포먼스 웨어와 액티브 웨어였는데, ‘밤을 위한 스포츠’를 주제로 하자는 왕의 제안에 H&M 측은 그간 디자이너 협업에서 해보지 않은 카테고리였던 데다 최근의 스포츠 열풍 또한 예사롭지 않았기에 흔쾌히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소재나 제조 공정, 본딩 처리나 봉제선이 없는 니트 등 제작 공정은 모두 퍼포먼스, 액티브 웨어 특유의 방식을 따랐다. 패션 디자인에서는 다소 방해가 될 수 있는 방수, 방한, 심지 등 운동복 특유의 요소들도 ‘웬만큼 물이 스며들지 않는’ 정도에서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한 방울의 물도 튕겨낼 정도의 기술이 접목되도록 했다. 이번 컬렉션의 대부분이 ‘메이드 인 이탈리아’이고,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가격에 판매할 수 있었던 비결은 H&M 정도의 물량을 다루는 기업과 함께 일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스펀지를 주사해서 올록볼록한 표면 형태를 잡은 스웨터가 대표 아이템이다. 알렉산더 왕의 자체 컬렉션에서 선보이는 ‘오브제’ 아이디어 역시 라이프스타일이 중요하다는 그의 의견에 따라 복싱 글러브, 요가 매트, 수영 고글 등의 스포츠 액세서리는 물론 글러브 모양의 열쇠고리나 호루라기 반지 등의 ‘스포츠 하이브리드 오브제’로 거듭났다.
자신의 이름을 건 레이블을 운영하는 독립 디자이너로 시작해 발렌시아가라는 쿠튀르급 하우스의 운영 방식을 익힌 알렉산더 왕은 이번 협업을 통해 매머드급 패션 공룡 기업의 운영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 정도 나이에 이토록 다양한 경험을 손에 쥔 디자이너는 패션 역사상 누구도 없었다. 진화된 패션 원더 키드가 앞으로 펼칠 결과물이 더욱 궁금한 까닭이다.
- 에디터
- 패션 디렉터 / 최유경
- PHOTO
- COURTESY OF 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