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비바람과 강추위에도 견고하게 쿨한 스타일링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번 시즌, 워터프루프 아이템이 그 해답이 되어줄 것이다.
2014 F/W 패션위크가 시작된 지난 2월, 미국에서는 사상 최악의 혹한과 폭설이 몰아쳤다. 21 세기 들어 가장 추운 날(체감 온도가 영하 70도에 육박하는!)이 이어졌으며, 꽁꽁 싸맨 길거리의 사람들은 흡사 중무장한 남극 탐사 대원처럼 보일 정도였다. 한 동물원의 북극곰이 추위를 견디다 못해 실내로 들어갔고,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꽁꽁 얼어붙을 정도였으니 재난 영화 <투모로우>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생각만으로도 온몸의 세포가 얼어붙는 듯한 추위와 매서운 칼바람, 핵폭탄급 비바람은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에게 기후 변화에 따른 패션에 대해 고심하게 만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 고민의 흔적은 윈드 브레이커와 아노락, 파카, 레인코트 같은 워터프루프 보호 장치에서 역력하게 드러났다. 스포츠 아이템을 하이패션의 경지로 끌어올린 대표 주자인 알렉산더 왕은 이번 시즌 ‘극단적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맨해튼에서 브루클린까지 눈보라와 극심한 교통체증과 싸워가며 왕의 쇼장에 가야 했던 패션 피플들은 이미 혹독한 미션을 경험한 셈!)을 주제로 쿨한 시티 아웃도어 룩을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난 스타일링은 날카로운 테일러링 수트와 매치한 컬러풀한 아노락. 파워 드레싱과 스포티한 점퍼의 충돌은 모던함 그 자체였다. 스포티 룩에 대한 도시적인 접근은 파리로 넘어가 발렌시아가 쇼에서도 이어졌는데, 케이블 니트를 라텍스로 코팅한 신소재로 제작한 방수 코트와 지퍼를 장식으로 사용한 밀리터리 점퍼는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도 스타일을 거뜬하게 지켜줄 마법 같은 아이템들이었다. 트렌드의 진앙지로 일컬어지는 거리에서 먼저 유행한 아이템들이 하이패션계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일명 야상으로 불리는 밀리터리 아노락이 런웨이로 진입해 값비싼 소재를 입고 초특급 대우를 받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아크네 스튜디오의 조니 요한슨은 악어가죽 효과를 낸 메탈릭한 소재와 송치 소재를 사용한 아노락을 내보냈고, 싸구려와 럭셔리의 조화를 이야기한 크리스토퍼 케인은 쓰레기봉투처럼 보이는 나일론 소재의 아노락 안감에 밍크와 양털을 달아 비범하고 신선한 룩을 탄생시켰다. 저스틴 손튼과 테아 브레가지의 프린 컬렉션에서도 풍성한 모피를 장식한 반짝이는 라메 소재의 후드 파카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고, 몽클레르 감므 루즈 쇼장에는 동물 패턴의 송치 소재가 덧붙은 아노락과 함께 모직 코트 위로 두터운 아노락을 겹쳐 입은 든든한 스타일링이 등장했다. 그뿐인가. 60년대 뒷골목의 쿨한 펑크족을 뮤즈로 삼은 생로랑의 에디 슬리먼 역시 시퀸으로 한땀 한땀 수놓은 쿠튀르급 미니 드레스 위로 빈티지한 무드의 밀리터리 파카를 입혔다. 하지만 이러한 스포티한 워터프루프 아우터들이 아직도 거칠고 무겁게만 느껴진다면 셀린과 스텔라 매카트니, 미우미우 컬렉션을 참고할 것. 가늘고 긴 벨보텀 팬츠와 매치한 피비 파일로식 아노락은 우아했고, 그녀의 말대로 터프하면서도 부드러웠으며, 셔츠 드레스 위로 레이어드된 스텔라 매카트니의 쑥색 아노락 파카는 오피스 룩과도 환상적으로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 했다. 그런가 하면 키 패브릭으로 나일론(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나일론 백팩의 그 ‘나일론’!)을 택한 미우치아 프라다는 걸리시하고 사랑스러운 윈드 브레이커 룩을 창조해냈다.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정진아
- 포토그래퍼
- 지미니즘(Jminism), 서원기(Seo Won Ki, 제품)
- PHOTO
- COURTESY OF INDIGI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