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wer of Women

공서연

2016년, 피렐리 달력이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들은 벗지 않아도 충분히 강하고, 아름다웠다.

방 한 켠에 놓인 피렐리 달력 단행본은 때론 내게 한 여름의 누드나 수영복 화보를 위한 영감들을 제공해주곤 했다. 모래 사장 위에 누워있거나 혹은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들과 어우러진 시대를 수놓은 톱 모델들의 전신 혹은 세미 누드는 뭇 남성들뿐만이 아닌 여성들에게도 황홀한 관능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시대는 사회와 문화의 궤도와 함께 변화하며, 매년 피렐리 달력은 사진가를 새롭게 선정하며 그 사진가의 취향을 십분 반영한다.

2016년, 그 총 지휘자는 바로 전설적인 여류 사진가 애니 레보비츠(Annie Leibovitz). 셀러브리티의 포트레이트부터 드라마틱한 패션 화보에 이르기까지 패션, 문화계를 종횡무진하는 그는 ‘오늘을 사는 성공한 여성들의 다채로운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자 작정한 듯 했다. 직접 섭외에 나서기도 한 그녀는 아티스트 요노 오코와 감독 아바 두베르네이, 프로듀셔 케슬린 케네디, 뮤지션 패티 스미스, 패션 블로거에서 배우로 탈바꿈한 태비 게빈슨 등을 피렐리 달력을 채울 열 세 명의 인물(표지까지 포함해)로 내세웠다. 그 중 눈에 띄는 건 유일한 모델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자신의 막내 아이를 안고 서있는 아름답고도 성스러운 모습, 뒷모습으로 자신의 다부진 근육을 드러낸 테니스 스타 세레나 윌리암스, 친근하고도 자연스럽게 접힌 뱃살을 내보인 채 앉아 있는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은 최근 애니 레보비츠가 런던을 시작으로 1년 동안 전 세계를 순회할 사진전에서 선보인 여성들의 모던한 자화상과도 맞닿아 있었다. 보이기 위해 보여주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내비치는 것. 교태나 유혹이 아닌 솔직함과 내면의 자신감으로 각자의 분야에 우뚝 선 여성들의 자화상을 2016년 새 해의 하루 하루 속에 꼭꼭 눌러 담는 일. 이것이야말로 애니 레보비츠가 지금까지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피렐리 달력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가장 위대한 업적이 아닐까.

얼마 전 플레이보이가 더 이상 전신 나체 사진으로 승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이상으로, 피렐리 달력은 오늘날의 여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신선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여성들이 자리했으며, 무엇보다 그녀들은 벗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강인했다.

에디터
박연경
PHOTOS
COURTESY OF PIRELLI(pirellicalendar.pirell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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