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 극과 극의 대칭점에 위치하는 두 존재는 본디 하나였다. 다른 듯 닮은, 이들의 패션이 그러하듯이.
스포츠를 사랑하는 여자
웬만하면 좀 피하고 싶은데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어 쓰고 마는 패션 용어가 몇 있다. 최근 가장 많이 쓴 단어 중 하나는 아마도 ‘보이프렌드’일 것이다. 남성복을 차용한 여성복이 일반화된 이후로 핏이 넉넉하고 볼륨감이 있는 아이템 앞에는 어김없이 저 단어가 붙었다. 남성복 유행 경향이 이번 시즌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스트리트-스포츠 테마가 남성복과 여성복 모두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성복보다 먼저 열린 남성복 컬렉션에서는 헬스클럽이나 그린 필드에서 어울릴 법한 아이템이 대거 튀어나왔다. 제임스 롱의 타이트한 셔츠, 겐조의 스케이트보드 룩, 크리스 반 아셰의 트랙점퍼, 사카이의 큼직한 윈드 브레이커 등 트렌드를 선도하는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이 흐름을 제대로 활용한 점이 눈에 띄었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모두 전개하는 브랜드들은 비슷한 테마 안에서 컬렉션을 풀어가는 것이 최근의 경향인데, 여성복 컬렉션에서 그 점이 분명하게 엿보인 것도 흥미로웠다. 시크한 스쿠버 룩의 겐조, 운동선수의 여자친구를 테마로 잡은 사카이, 럭셔리 스포츠웨어를 선보인 구찌 등이 대표적. 메시 같은 운동복 소재를 도시적으로 풀어낸 알렉산더 왕, 트랙팬츠를 젊은 감각으로 풀어낸 아이스버그와 아크네, 랙&본 등 젊은 디자이너들의 접근법 역시 신선했는데, 유니섹스 무드보다는 가슴을 강조하는 등 어느 한 부분은 정확히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이 스타일링 포인트다.
꽃을 탐닉하는 남자
패션의 성별이 모호해지는 건 단지 여성복에서만 벌어지는 상황은 아니다. 여자보다 더 가느다란 몸을 가진 소년들만 입을 법한 극도의 스키니 룩이 남성복을 강타한 이후, 여성복 뺨칠 정도의 장식적이고 탐미적인 패션이 지속적으로 맨즈 컬렉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크, 페이턴트, 시폰 등 여성복 특유의 소재가 넘어간 것은 물론이고, 엠브로이더리 등을 이용한 대담한 장식과 성역 없는 노출까지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걸 보면 때로는 여성복보다 더 충격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즌 남성복과 여성복이 공유하는 트렌드 관전 포인트로 ‘꽃무늬’를 들 수 있다. 드리스 반 노튼은 동양적인 자수로 꽃을 표현한 룩을 남성복과 여성복에 모두 적용해 눈길을 끌었고, 에르메스 역시 고급스러운 실크와 가죽 소재에 담담한 필치의 꽃무늬를 선보였다. 프라발 구룽의 유혹적인 장미 아플리케에서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입체 코르사주 장식, 스텔라 매카트니의 집업 점퍼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여성복 디자이너들이 꽃 모티프를 선보였고, 사실 매 시즌 반복되는 필수 요소다. 하지만 여성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예쁘장하게만 만든 것이 아니라 까르벵처럼 데님에 적용하거나 마크 제이콥스, 크리처스 오브 더 윈드처럼 남성적인 재킷에 꽃무늬를 넣는 등 디자인이 다양해진 것은 이번 시즌 들어 눈에 띄게 특화된 경향이다.
- 에디터
- 패션 디렉터 / 최유경
- 기타
- PHOTOS|COURTESY OF ETRO, CHRISTIAN LOUBOUTIN, WWD/MONTROSE, COURTESY OF CHANEL, LOUIS VUITTON, SAINT LAURENT PARIS, MIU MI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