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많은 아우터가 쏟아지며 격전을 예고한 이번 시즌, 당신의 포근하고 든든한 가드가 되어줄 단 하나의 아우터 선택을 위한 냉철한 보고서.
COATS AFFAIR
한 달간의 컬렉션 대장정이 끝나가면, 전 세계를 사로잡을 트렌드도 대략 결판이 나게 마련. 백화점과 멀티숍의 바이어들이 겨울에 가장 주의해서 보는 것은 역시 투자 금액과 이익이 큰 아우터인데, 이번 시즌의 키 아이템으로 ‘코트’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올겨울 코트를 고르는 결정적 키워드는 ‘오버사이즈’ ‘테일러드’ ‘밝은 색’으로 압축할 수 있다. 아버지 옷장에서 꺼낸 듯한 중성적인 무드의 큼직한 코트는 끌로에, 드리스 반 노튼, 에르메스, 페라가모 등 대부분의 주요 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메가톤급 트렌드인데, 비슷하게 큼직한 코트라 하더라도 칼라와 장식의 유무, 어깨선과 버튼의 위치에 따라 입었을 때의 느낌은 매우 달라 보인다. 남성복을 닮은 테일러드 코트 역시 캘빈 클라인과 디올, 에르메스, 질 샌더, 랑방 등 도시를 불문하고 유명 디자이너들이 탐닉한 아이템인데 프라다처럼 피트&플레어 실루엣을 강조하거나 루이 비통처럼 밑단에 엠브로이더리를 덧대는 등 여성스러운 느낌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마지막 키워드인 밝은 색감, 특히 파스텔 톤 코트는 이자벨 마랑, 로샤스, 마르니, 베르사체, 아크네 등 트렌디한 브랜드에서 자주 등장했다. 코트는 무겁고 중후한 옷이라는 전통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기분 전환을 위한 가벼운 아우터로서 의미를 얻게 된 것. 참고로 이 세 가지 키워드를 모두 섭렵한, 즉 ‘큼직한 파스텔 색 테일러드 코트’를 내놓은 대표적 브랜드로는 셀린, 스텔라 매카트니, 로샤스, 까르벵 등을 들 수 있다.
1. 인조석과 메탈 소재로 곤충 모양을 만든 위트있는 브로치는 랑방 제품.
2.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구찌의 부티.
3. 가죽과 메탈 소재를 견고하게 짜 넣은 뱅글은 랑방 제품.
PUFFER KEYWORDS
청소년의 겨울 교복 정도로 인식되었던 퍼퍼(Puffer) 아우터가 이번 시즌 하이패션으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흔히 ‘패딩’이라는 줄임말로 불리는 퍼퍼는 옷감 사이에 충전물(패딩)을 채워 넣어 만든 아우터를 총칭한다. 보온성은 확실하지만 둔탁한 실루엣 때문에 바이커 재킷이나 스웨트 셔츠처럼 하이패션에서 손쉽게 재구성된 스트리트 아이템과는 달리 퍼퍼 아우터는 철저히 외면받았는데, 몽클레르, 캐나다 구스, 파라점퍼스 등 고급 퍼퍼 전문 브랜드들의 약진을 지켜보던 디자이너들이 패딩을 적극 영입하기 시작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정형화된 디자인에서 탈피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특히 퍼퍼 자체의 볼륨을 디자인의 특징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교적 움직이지 않는 충전물을 채워 큼직하고 넓은 칼라를 만든 도나 카란, 특유의 디지털 프린트가 돋보이는 소재로 피트&플레어 실루엣의 코트를 만든 피터 필로토, 최대한 얇은 패딩을 바이커 재킷 디자인에 접목한 벨스태프, 양복 소재로 커다란 후드 퍼퍼 코트를 만들어 맨즈웨어 트렌드를 이어간 스텔라 매카트니 등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 방법은 소재 블로킹. 한 피스 안에서 패딩이 들어간 부분과 아닌 부분이 극명하게 나뉘는 디자인을 말하는데, 패딩과 모직, 혹은 패딩과 모피를 덧붙여 독특한 실루엣을 연출한 사카이, 패딩과 모피 사이에 커다란 고무 벨트를 넣어 잘록한 부분을 만든 지방시, 패딩과 모피, 모직, 레이스까지 섞어 쿠튀르적인 느낌을 낸 몽클레르 감므 루즈와 톰 포드의 경우도 흥미롭다.
1. 퍼 소재를 파랑, 분홍, 오렌지 등 톡톡 튀는 색감으로 염색한 바게트 백은 펜디 제품.
2. 고미노 슈즈의 장식을 응용한 토즈의 부티. 탐스러운 밍크 소재로 라인을 장식한 지방시의 선글라스.
JUMPER REMIX
다양한 소재와 장식으로 패셔너블한 맛을 낸 점퍼가 오랜만에 겨울 아우터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점퍼는 품이 넓어 활동하기 편한 아우터를 총칭하는 단어지만 구체적으로는 짧은 길이에 지퍼, 고무단, 스냅 버튼 등을 이용해 캐주얼한 활동성을 강조한 스타일의 아우터로 압축할 수 있다. 가장 고급스러운 점퍼 스타일은 역시 가죽과 퍼를 가공해 만든 무통을 들 수 있는데, 하이더 애커만, 아크네, 에르메스, 이자벨 마랑, 뮈글러 등에서 지퍼로 대표되는 유틸리티 장식을 더해 바이커 재킷 디자인을 닮은 무통 점퍼를 내놓았다. 가죽과 트위드를 조각조각 패치워크해 여성스럽고 쿠튀르적 고급스러움을 더한 점퍼를 선보인 샤넬, 깨끗한 패턴이 돋보이는 아이보리 울 소재에 하얀 밍크 털을 네크라인에 배치한 지암바티스타 발리, 구조적 패턴으로 등과 팔 부분에 입체적인 볼륨감을 준 알렉산더 왕, 베이스볼 점퍼 위에 섬세하게 자수를 놓은 드리스 반 노튼 역시 점퍼의 하이패션화를 추구한 대표 디자이너들. 점퍼 자체가 갖는 젊고 신선한 분위기는 검정 무통 가죽 위에 눈 모양을 프린트한 겐조, 커다란 주머니와 지퍼로 스포츠웨어 특유의 활동성을 제시한 마이클 코어스, 선명한 원색의 울 소재와 후드 장식을 더한 랙&본과 3.1 필립 림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컬렉션에서 점퍼와 함께 드레스, 롱스커트, 테일러드 팬츠 등을 스타일링해 성숙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잃지 않도록 했다는 것. 사이하이 부츠와 스틸레토 부티 등 여성스러운 슈즈를 더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1. 모피처럼 보송보송하게 만든 트위드를 굵은 메탈 체인에 섞은 뱅글은 샤넬 제품.
2. 메탈 장식과 모노톤의 색감으로 경쾌한 분위기를 만든 샤넬의 보이 백.
3. 동그란 스터드를 장식한 가죽 칼라는 루이 비통 제품.
- 에디터
- 패션 디렉터 / 최유경
- 포토그래퍼
- jason Lloyd-Ev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