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접은 종이배가 어디까지 갈까. 물에 띄워두고 나서 난 마음을 탄다.’
세상에 대한 그 마음을 조리 있게 설명할 길이 없어서, 기리보이의 새 앨범 제목은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다. 무려 정규 11집을 내는 뮤지션으로 자라는 동안 그는 본인의 직관과 첫 느낌의 힘을 믿게 되었다.

<W Korea> 정규 11집이라니요. 주변에 그 정도로 왕성하게 앨범을 낸 아티스트가 있나요? 기리보이의 주변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힙합 신이 떠오릅니다.
기리보이 많이 보진 못한 거 같네요. 형들 중에는 있고.
에픽하이나 다이나믹 듀오 정도의 역사라면 그렇겠죠? EP도 활발하게 내셨잖아요. 작업을 시원시원하게 하는 편인가요?
아니요. 많이 따져요. ‘와, 내가 엄청난 걸 만들었네’ 싶다가도 시간이 흐를수록 의심이 커지는 식으로 변덕도 심하고. 어느 순간부터 그냥 ‘처음 내 느낌’을 믿기로 했어요. 완벽을 고집하지 않고, 어떤 것들은 좀 포기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기로 다짐한 계기가 있어요. 시간이 지나서 예전에 만든 음악을 들어보면 뭐 괜찮더라고요. 지금도 ‘한 달만 더 주어지면 훨씬 좋은 걸 만들 수 있을 텐데’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와서 괴로워요.
포기도 좀 할 줄 아는 거, 어떤 사람에겐 쉽지 않은 일이죠. 사실 건강한 타협인데 말이에요. 창작 작업을 하는 이상 어느 시점에 야멸차게 미련을 끊어내지 못하면 수렁에 빠지기도 하잖아요.
그 수렁에 빠질 것 같으면 그냥 음악을 안 들어버려요. ‘이 정도면 됐다’ 믿으면서, 나와 상관없는 음악인 양 제쳐둬요. 물론 그렇게 잘 안 돼요. 특히 우리 회사에는 끝까지 포기를 안 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자이언티 형부터 ‘아니 조금만 더 들어보자’ 이러니까. 이 일에는 그런 집념이 물론 필요하지만, 사실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라는 말씀입니다.
4월 10일 발매되는 정규 11집 제목이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예요. 정규 11집 파트 1, <넌 왜 항상 이런 식이야?>에 이은 파트 2죠. 신곡 8개에 파트 1의 4곡과 작년에 발매한 싱글 ‘미춰버리겠어’까지 포함해 총 13개 트랙을 담았습니다. 어떤 주제의 앨범인가요?
주로 지난 1년간 살면서 느낀 걸 이야기로 풀었어요. 음악적 장치나 멜로디보다는 내용에 신경을 쓴 앨범이에요. 제가 사랑 노래, 이별 노래를 자주 내잖아요. 그런 게 제일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한동안 너무 그쪽으로만 간 것 같아서 저도 좀 지루해졌어요. 이번에는 제가 평소 속으로 삭이고 있는 것들을 꺼내놓으면서 좀 문학적으로 풀어내려고 한 부분이 있어요. 원래 떠올린 앨범명은 <아들아, 행복은 굉장히 멀리 있단다>예요.
기리보이에게 행복은 가까이가 아니라 멀리 있는 건가요?
제가 긍정적이지 못한 사람이거든요. 예를 들면, 일상 생활을 하면서 ‘저거 참 별로인데’라거나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는 사람이 많지?’ 싶을 때가 자주 있어요. 사소한 지점에서 불만이 많달까.
세상에 대해 불평하는 거라기보다 예민한 더듬이가 있는 사람이면 그럴 수 있죠.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아지면 어쩔 수 없이 피로감이 쌓이겠어요.
제가 그렇다는 점을 아주 잘 감춘 채 살고 있어요. 드러내지 않고 삭이다 보니 불만이 쌓여 스트레스가 되고요. 그 스트레스를 가사로, 음악으로 배출한 셈이에요. <아들아, 행복은 멀리 있단다>라고 하면 책 제목 같지 않아요? 그렇게 책 비슷한 느낌을 내고 싶었는데, 말을 조리 있게 못하니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로 정하고 ‘그냥 음악으로 듣고 느끼세요’ 하는 거죠.
‘내가 앨범 하나를 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줄까’ 같은 생각은 안 할 수 없죠?
그럼요. 무조건 하죠. 다만 이번에는 그런 생각도 별로 안 하려고 했어요. 앨범을 내면 사람들은 대부분 딱 한 곡만 듣거든요. 보다 많은 사람이 들어줄 법한 그 곡을 인질처럼 앨범에 심어두고서, 나머지는 ‘내 멋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그래도 사랑에 관한 노래는 한 곡 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넣었고요.

<더블유> 5월호 발행일 전에 앨범이 공개됩니다만, 제가 아무런 정보 없이 음원만 받아 미리 들어본 첫인상으로는 ‘My Job Is Cool’이란 곡이 꽂히던데요.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 기리보이가 꼽은 결정적 한 곡은 뭐죠?
특히 힙합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듣고 좋아해줄 곡이 바로 그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힙합 음악에서는 피처링 진이 있으면 그들 각각의 벌스와 가사를 듣는 재미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밀고 나가고 싶은 스타일은 ‘종이배’라는 곡이에요. 그래서 두 개의 타이틀곡이 존재합니다.
‘My Job Is Cool’은 지코와 제이통이 피처링했죠. 과거 벅와일즈 크루로 활동하던 세 사람이 한 곡에서 만나 더 흥미로워요.
제이통 형은 제가 스무 살 무렵부터 알고 지냈어요. 언젠가 형의 피처링을 꼭 받아보겠다고 생각 했는데, 글쎄 그동안 한 번도 안 했더라고요. 형이 최근에 티빙 <랩:퍼블릭>에도 출연하고, 좀 모습을 드러냈죠.
자이언티가 설립한 레이블, 스탠다드프렌즈에 기리보이가 합류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건 작년 초예요. 자이언티 씨는 이제 누군가의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이기도 하죠. 그가 소속 아티스트의 작업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관여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 형 같은 사람 진짜 처음 봐요. 모든 프로젝트를 본인 앨범처럼 대해요. 다 끝냈다 싶었는데 형이 와서 이렇게 저렇게 바꿔놓기도 하고요. 저렇게 작업에만 매달려서 어떡하나, 안 힘든지, 괜찮은지 물어보면 ‘응 난 재밌어서 하는 거야. 너무 재밌다’ 이래요.
2020년 <쇼미더머니 9> 때 두 분이 함께 프로듀서 팀이었잖아요. 그때 자이언티라는 인물의 특징이나 작업 방식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가요?
네. 그전에도 가끔 작업실 놀러 가서 본 적은 있지만, <쇼미더머니 9>을 하면서 형에 대해 많은 걸 알아냈어요. 아니, 그런 사람 처음 봤다니까요? ‘이 사람은 천재가 아니구나. 100퍼센트 노력형이구나’ 느꼈어요. 그때부터 굉장한 존경심이 생겼죠. 평소 좋아하던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거나 아는 사이로 지내는 시간이 오래되면 환상이 깨지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형에 대해선 환상이 계속 커지는 거 같기도 하고… 여튼 미친 사람 같아요, 보면.
그가 계약을 제안했을 때 망설임이 없었나요?
그렇게 까다로운 완벽주의자가 나를 원한다는 데서 ‘어?’ 하는 느낌이 있었죠. 그 점이 크게 작용했어요. 당시 제가 새 회사를 짧은 시간 안에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여기저기 연락도 하고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싶기도 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어요. 스탠다드프렌즈라는 첫 느낌이 계속 남아 있기도 했고요. ‘나는 저기로 가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있었어요. 그때도 역시 첫 느낌대로 밀고 간 거죠.

스탠다드프렌즈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정말 좋아요. 누구 하나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다른 아티스트들이 종종 놀러 와서 아이디어를 던져주고 가요. 저는 그동안 음악을 거의 저 혼자 알아서 만들었거든요. 이제는 이 사람, 저 사람이 옆에 붙어서 의견을 내기도 하고 제가 놓치는 많은 부분을 잡아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다만 일하는 사람들이 피곤하겠다는 생각은 해요. 작년에 이 회사에서 첫 싱글 ‘미춰버리겠어’를 낼 때도, 그 한 곡을 가지고 여러 사람이 얼마나 붙잡고 있었는지 몰라요.
커리어 연차가 쌓이면 외로워질 때가 있죠. 나도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피드백을 받거나 기대고 싶고, 논쟁 하더라도 그걸 통해 결국 도움을 받고 싶기도 한데 그럴 일이 줄어드니까요.
제가 정말 해롭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요. ‘예스맨’만 곁에 남는 거. 주변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때가 오거든요. 저도 어느 순간 그런 상황이 온 걸 느꼈어요. 피셔맨이라는 친구가 같은 회사에 있는데, 제가 내놓은 게 별로면 솔직하게 ‘별로다’라고 말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예요. 10대 때 처음 만난 앤덥(Andup)도 꾸준히 저한테 잔소리를 해요. ‘형, 박치야?’라고 한 적도 있으니까. 앤덥이 지금 회사에서 A&R 일을 하면서, 제 공연 리허설 때도 여러 의견을 내요. ‘하우투유즈’의 디노프도 도움 되는 말을 자주 해주죠. 저는 이런 관계와 분위기가 좋아요.
사람들 사이에서 영향받고,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 교류하길 내심 그리워했군요. ‘나에게 듣기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셨다는 게 놀라워요.
제가 30대 중반이거든요. 더 나이 들어 ‘형님, 오셨습니까!’ 같은 인사 듣는 상황을 안 만들려면 지금부터 조금이라도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이거 어때?’ ‘저건 좀 별로지 않아?’ 하면서 뭐라도 계속 끄집어내려고 하는 거. 그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전에 오래 함께했던 스윙스는 당신을 붙잡았나요, 이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라고 해주었나요?
형은 끝까지 잡았죠, 저를. 사실 바쁘기도 하고 회사를 옮긴다는 게 좀 귀찮기도 해서 계속 머물까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스윙스 씨에게 ‘이별의 변’은 어떤 식으로 전달했어요?
손편지를 썼어요.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렇게 손으로 편지 쓰는 걸 좋아해요. 편지는 그냥 말로 하는 것과는 또 다르잖아요. 마지막 앨범을 선물처럼 안겨주고 나가자는 생각으로, 정규 10집 작업을 정말 열심히 했죠.
작년에는 또 본격적인 전자음악을 선보였잖아요. 기리보이의 스펙트럼에 다시 한 번 놀랐어요. <GRB01>과 <GRB02>, 그 앨범들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을 주로 접했어요?
같은 업계 사람들이 좋아해주셨어요. 제가 가끔 DJ 활동도 하는데, 다른 DJ들도 제 음악을 종종 튼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소식 듣고 굉장히 기뻤어요. 앨범 완성한 다음 음원 링크 만들어서 여러 DJ들한테 DM을 보냈거든요. 그중 DJ ADHD라고, 제가 평소 즐겨 듣는 음악을 만드는 외국 DJ가 음악 좋다면서 제일 먼저 답장을 줬어요. 그리고 에롤슨 휴. 제가 아크로님이라는 독일 브랜드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아크로님을 만든 에롤슨 휴가 그 동안 제 음악에 대해 피드백한 적이 없는데, 딱 ‘좋다’고 처음으로 말해줬어요. 그래서 ‘음, 역시 독일이군’ 했어요(웃음). 주변 형들도 반응 좋고, 저한테 DJ 섭외도 계속 들어오고. 기분이 좋았어요.
음악 챙겨서 여기저기 DM도 보내고 그랬군요. 잘하셨네요(웃음).
보이즈 노이즈한테도 보냈는데, 웃긴 에피소드가 있어요. 팔로잉 수락이 안 된 상태에서는 DM을 한 번밖에 못 보내더라고요. ‘내가 이번에 앨범을 만들었는데’까지만 써서 하나 보내고 계속 보내려는데, 그게 끝이었어요(웃음). 그 이후로는 DM 하나에 제 소개랑 음원 링크까지 다 담아서 제대로 만들어 한 번에 보냈죠. 그런데 제가 제 홍보를 잘 못해요. SNS에 ‘내 음악이 어디어디서 틀어졌다, 이렇게 잘 되고 있다’ 같은 말을 늘어놓으면서 알려야 하는데. 그러기가 민망해요.
그럼 저 같은 남이 도와주면 되겠네요, 이렇게 인터뷰 통해서 알려지도록.
자기 홍보를 어느정도 잘 하는 것도 필요한데, 제가 이래서 좀 아쉬워요. 왜, 이런저런 행사에도 얼굴 비추면서 잘 해보는 거 있잖아요. 그루비룸이 그런 걸 정말 잘해요. 만나서 물어본 적도 있어요. ‘너네처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 다음에는 홍보를 좀 잘 해보고 싶어요.

<더블유>와 마지막 인터뷰를 한 게 5년여 전이더라고요. 그때 ‘연기를 해보고 싶어서 준비 중이다’라고 하셨고요. 제가 그동안 기리보이의 행보에서 가장 놀란 점은 정말 연기를 시작한 거예요. 재밌어요, 연기?
네. 저는 발음이 안 좋고 말을 더듬기도 하니까 대본을 정말 많이 봐야 해요. 입에 붙게 숙지해두는 거죠. 그런데 현장에서 제가 연습한 대로 한 적이 없어요. 첫 드라마인 <금혼령> 때는 엄청 열심히 준비해서 나갔는데, 퓨전 사극이라 대사 톤을 평소처럼 해달라고 해서 멘붕이었고. 그래도 상황 따라 즉흥적으로 하거나 제 마음대로 뭘 해볼 수 있을 때 재밌더라고요. 디즈니+ <강남 비-사이드>를 보면, 제가 차에 타 시동을 걸면서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런 거 해볼 때 재밌어요. 거기선 제가 클럽 엠디로 출연했어요. 영화 한 편 찍은 건 아직 안 나왔고.
3월에는 대학로 소극장 공연도 했던데요. <아랫것들의 위>라는 작품이었죠. 좀 어려운 내용 같던데, 연극 경험은 또 다르죠? 사실 저도 어려워서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더라고요. 한마디로 ‘결핍’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저는 ‘청년 2’라고, 좀 간사한 인간을 맡았고. 연극 무대에서는 제 대사가 없을 때도 계속 연기해야 하잖아요. 그게 되게 어려웠어요. 다른 배우들이 대사를 할 때 저도 어쨌든 무언가를 하거나 리액션을 해야 하니까. 등장 시간은 길지 않았는데, 한 번 마치고 나면 기가 쫙 빠진 상태가 되더라고요.
5년 전에는 물어보지 못했어요. 왜 연기에 끌리세요?
저는 취미가 많아요. 레고를 하다가 보드게임에도 빠지고 여러 가지를 하는데, 뭐 하나를 할 때 짙게 해요. 배우라면 이런저런 생활과 직업을 두루 경험해볼 수 있잖아요. 막연하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연기에 끌렸어요. 하지만 최종 목표는 작가가 되는 거예요. 어릴 적부터 저는 감독이나 작가를 꿈꿨어요. 이야기 쓰는 걸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사실은 앞에 나서서 퍼포먼스를 하는 것보다 뒤에 머물면서 프로듀스하기를 더 좋아하시죠?
네, 무조건 뒤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우선 앞에 서는 경험을 하고 여러 가지를 습득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고요. 음악도 결국 ‘어깨너머로 본 것’을 제 것으로 만드는 일이거든요. 연기하는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이 사람은 뭘 하고 저 사람은 뭘 하나, 이건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지켜보거나 물어보면서 배워요. 저는 무대 체질도 아니고, 아직도 공연할 때면 매번 쫄아요. 그저 계속하다 보니까 노하우와 위기 대처 능력이 생긴 거죠.
언젠가 기리보이가 영화를 만든다면 그 영화는 어떤 색깔일까요?
<미드소마> 같은 걸 만들고 싶어요. 제가 하고 싶은 스타일은 돈이 아주 많이 들긴 해요. 뭐, 도전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모든 창작 일 중에서 제일 힘든 게 영화 작업이라고 들었어요. 하지만 꿈으로 계속 품고는 있죠. 시나리오를 쓰는 건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최근에 하신 연극이 결핍에 관한 내용이었잖아요. 기리보이에게 정신적인 결핍이랄까, 정신과 마음이 아쉽거나 채워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면 뭐예요?
저는요, 제 음악이 ‘지금의 내가 이룬 것보다 훨씬 더 잘 되어야 했다’는 생각을 늘 해요. 음악을 만들어놓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어요. ‘아닌가?’ 싶으면서 오락가락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 음악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과거 스윙스 씨가 바로 그런 자신감과 확신을 멋지게 보고서 당신을 좋아했죠.
제가 훌륭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남들보다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 같거든요. 제가 만든 것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 표현 방식이나 스타일에 큰 자부심이 있고요.
‘3등’이 제일 좋다고 말하신 적도 있죠. 훨씬 더 알려질 자격이 있는 음악을 만들어왔지만, 치열해서 피곤한 1등과 2등 대신 3등에 만족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그걸 어떻게 제대로 설명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는데, 저는 BTS처럼 유명해지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거 네가 만든 음악이었어? 나 그 음악 알아!’ 이런 말 듣는 사람이 제 롤모델이에요. 3등 위치에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며 사는 게 제일 좋고, 다만 그 음악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3등 정도를 유지하기도 힘든 일 같아요. 유지만 하기 위해서도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고.
유지를 하려면, 싫은 일도 좀 해야 하죠.
네. 또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으면 더 그렇고요. 제가 회사를 하나 만들어서 또 다른 일도 하고 있거든요. 그 친구들을 육성하려면 저도 앞에 나서기도 해야 친구들이 더 힘을 받을 수 있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열심히 해보고 있습니다.

하우투유즈를 말하나요? 레이블이라는 말을 쓰기 싫었지만 적합한 말이 없어서 결국 레이블이라 부르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바람을 가지고 조직한 거예요? 궁극적으로는 뭘 해보고 싶나요?
해외에서는 프로듀서 컴필레이션 앨범이 많거든요. 여기저기서 곡을 수급하는, 그러니까 프로듀서들을 모으는 거요. 그런 걸 해보고 싶었어요. 일종의 매거진 비슷한 거죠. 그럼 같이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한데 내 주위에 누가 있을까, 날 배신하지 않을 사람은 누굴까, 생각했을 때 우선 디노프가 떠올랐어요. 우주비행 크루를 하면서 10년 넘게 본 친구예요. 우리가 행사를 하면 늘 돈을 떼먹을 수 있는 위치였거든요, 그 친구가. ‘슈킹’한다고 하죠. 그런데 한 번도 슈킹을 하지 않아서 괜찮은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우주비행은 계속 존재하고 활동하는 이름인가요?
우리 단톡방은 여전히 있고, 특별히 모인다거나 대화를 잘 하진 않지만 살아 있죠. 행사가 있을 때는 또 다 같이 모이긴 하고.
힙합 신에 여러 크루가 있었잖아요. 크루들이 어느 순간 사그라지거나 유명무실해진 것은 크루라는 모임의 속성상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까요? 힙합이 전만큼 힙하고 핫하지 않게 된 것은 정말 <쇼미더머니>의 명운 따라 가는 결과일까요?
그런 것보다, 저희의 경우 팬데믹이 터지면서 뭔가 원대한 꿈이 사라진 것처럼 되어 버렸어요. 우주비행으로 페스티벌 기획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할로윈 파티도 생각했고, 해외 아티스트들까지 불러서 해수욕장에서 파티를 하고 싶기도 했고. 나름 엄청난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팬데믹으로 그런 바람이 무산되면서 그때부터 아무래도 소홀해진 것 같네요. 우주비행 친구들은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놀게 만들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계속 했어요. 무료로 술을 뿌려보기도 했고, 무대 아래로 내려가 관객들과 섞이면서 같이 놀아보기도 했고, 한다고 했는데도 절대 바뀌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름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다 말하기엔 복잡하지만, 한국에서는 제대로 좀 놀아보려고 해도 그러기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해요. 법적으로도 그렇고, 눈치 보는 사람도 많고.
법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어떤 벽을 느끼면서 해외로 나가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나요?
아니요. 여기서 뭔가를 해보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그 눈치 보는 문화마저도 재밌게 이용할 수 있잖아요. 아예 ‘눈치 보는 파티’를 열어도 되고. 여기, 이곳에서 뭔가 끝을 보고 싶은 마음이 계속 있어요. 저와 친구들이 파티 문화를 이끌어가고 싶다고 말하면 좀 거창한데요, 아무튼 사람들을 계속 모으면서 빌드업을 하는 중이에요. 나중에는 진짜 페스티벌을 열고 좀더 자리를 잡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내 음악의 가능성을 알기에 늘 더 원하는 바가 있다는 것. 그게 당신이 지치지 않고 작업과 활동을 할 수 있는 동력인가요?
지쳐요. 요즘도 그래요. 하지만 꾸준히 제 음악을 듣고 찾아주는 분들이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것 같거든요. 그분들 때문에 지치고 귀찮은 와중에도 자꾸 생각하고 노력하게 되고요. 어서 빨리 이번 앨범 마무리하고 발표해 버리고 싶어요. 바로 다음 앨범 작업 들어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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