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석을 깎듯 세공한 하우스의 유산, 25 FW 생 로랑 컬렉션

명수진

SAINT LAURENT 2025 FW 컬렉션

파리 패션 위크의 마지막 날. 생 로랑은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아래에서 2025년 FW 컬렉션을 선보였다. 베뉴는 미네랄을 가득 머금은 양질의 흙처럼 브라운 컬러로 꾸몄다. 이는 이브 생 로랑이 사랑한 모로코 마라케시를 떠오르게 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는 쇼가 열리기 며칠 전에 개인 계정에 90년대 이브 생 로랑의 뮤즈였던 모델 아말리아 바이렐리(Amalia Vairelli)의 영상을 올리고 하우스의 본질에 집중했다. 누군가가 아말리아에게 ‘당신의 기억 속에 이브 생 로랑은 누구인가요?’라고 질문했고, 그녀는 ‘사랑이죠.’라고 답하는 짧은 영상이었다.

마치 원석을 잘 커팅해서 본연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처럼, 안토니 바카렐로는 1990년대 이브 생 로랑의 오트 쿠튀르의 영감에 집중했다. 당시 이브 생 로랑은 유행했던 미니멀리즘과 그런지 트렌드에 편승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미학을 집중했다. 그처럼 2025년 FW 시즌 생 로랑 컬렉션은 군더더기가 될 수 있는 요소를 싹 덜어내고 오직 소재, 컬러, 실루엣에 집중했다. 심지어는 가방을 선보이는 통상적인 과정도 생략해버렸다. 컬렉션은 강렬한 레드와 바이올렛 컬러 매치로 시작했다. 와이드 숄더 원피스는 전형적으로 어깨는 넓고 스커트 부분은 날씬한 80년대 ‘상후하박’ 실루엣을 따랐다. 상후하박의 실루엣이 채도 높은 블러드 오렌지, 루비 레드, 에메랄드 그린 등 화려한 주얼 컬러 팔레트로 펼쳐졌다. 안토니 바카렐로 스스로도 ‘전에 해본 적 없는 가장 과감한 컬러를 시도했다’고 했을 정도. 워싱 새틴과 테크니컬 저지는 컬렉션에 풍성한 볼륨감을 더했다. 섬세한 기퓌르 레이스, 레더 소재와 함께 생 로랑의 또 하나의 아이코닉한 특징인 동물과 꽃 모티프는 실리콘 소재에 프린트해서 모던함을 더했다. 이브 생 로랑이 행운의 돌로 여겼던 크리스털로 만든 커스텀 주얼리와 오버 사이즈의 선글라스가 간결한 스타일에 힘을 실었다. 또한 이번 시즌 다른 쇼에는 서지 않았던 모델 벨라 하디드(Bella Hadid)는 네이비 컬러의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등장해 시선을 끌었다.

컬렉션 후반에는 로우 웨이스트 드레스가 등장하며 ‘상후하박’이었던 실루엣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었다. 디즈니 공주가 입어도 손색이 없을 듯한 거대한 볼 가운 드레스였는데, 여기에 생 로랑 특유의 오버사이즈 레더 바이커 재킷을 믹스 매치한 것은 딱 요즘 여자들이 열광할 만한 스타일이었다. 눈에 띄기 위해 제각각의 아우성과 소음이 가득한 요즘, 많은 것을 비워낸 안토니 바카렐로의 대담한 자신감이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사진, 영상
Courtesy of Saint Lau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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