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나의 지독한 현실고증, 25 FW 발렌시아가 컬렉션

명수진

BALENCIAGA 2025 FW 컬렉션

2025년 FW 시즌 발렌시아가는 난해함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테마는 ‘표준(Standard)’. 발렌시아는 컬렉션이 열리는 베뉴 내부에 검은색 벽으로 촘촘한 미로를 지었다. 게스트는 여러 입구를 통해 입장했고, 검은색 벽 옆으로 나란히 놓인 좌석에 앉아 쇼를 감상했다. 덕분에 모든 관객이 프론트로에서 쇼를 감상할 수 있었다. 모피 코트와 푸퍼 드레스처럼 볼륨감이 큰 옷이 지나갈 때에는 관객의 발끝을 스쳐 지나갈 정도였다.

오프닝은 말끔한 블랙 정장으로 열었다. 이후 화이트 셔츠, 미니멀 코트, 코튼 피케 폴로, 펜슬스커트, 레더 재킷, 카코트, 경량 패딩 재킷, 푸퍼 패딩까지 지독한 현실 고증의 오피스웨어가 등장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반쯤 열린 서류 가방으로 핑크색 포스트잇을 붙인 A4 용지가 들어 있는 것까지 누가 내 일상을 훔쳐본 느낌! 이와 함께 데님 재킷과 스커트, 회색 트레이닝 셋업, 디스트레스드 탱크톱 등을 믹스 매치했다. 모든 것은 성별, 나이, 인종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펼쳐졌다. 모델을 일관된 스테레오 타입으로 통제하지 않고, 헤어와 메이크업은 물론 워킹하는 모습까지 제각각인 모습으로 설정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것도 각자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를 연상케하는 마르쉐 ‘플라스틱 백’ 쇼퍼는 ‘분쇄 다이니마’라는 특별한 강도를 지난 섬유로 만들었다. 페이크 퍼 파카는 하우스의 1951년 세미핏 라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몰레톤 맥시 후드 티’는 발렌시아가의 1967년 웨딩드레스의 웅장한 볼륨을 따랐고, 슈퍼 파인 캐시미어 안감을 넣고 핸드 스티치로 정성껏 마무리했다. 이 밖에도 화이트 레더와 레드 페이크 퍼로 만든 오페라 드레스, 형광색 수영복과 결합한 스윔 드레스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발렌시아가 팬이라면 열광할만한 콜라보 아이템도 많았다. 우선 이번 시즌 새롭게 시도한 푸마와 콜라보를 통해 힙한 시어링 재킷, 트랙 슈트, 목욕 가운 등을 선보였다. 푸마의 스피드캣 OG를 재해석한 ‘울트라소프트 스피드 캣’은 레드, 블랙, 화이트, 네이비 등의 컬러로 선보였고, 낡고 헤진 것 같은 구제품의 디테일을 더했다. 얼굴의 반 이상을 뒤덮는 베니스 비치 마스크(Venice Beach Mask) 아이웨어와, 피어싱을 넣은 장갑과 헬멧은 알파인스타스(Alpinestars)와 콜라보 했다.

발렌시아가는 개성 있는 모델들이 무대 위를 걷는 모습을 쉴 틈 없이 보여주고 쇼를 깔끔하게 끝내버렸다. 덕분에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됐고 옷 한 벌 한 벌이 뇌리에 남았다. 구겨지고 심지어 온통 구멍이 나있는 슈트는 무엇을 입느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입느냐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뎀나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아이템이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이것은 9년 동안 발렌시아가에서 굳건한 뎀나의 마법적 매력이다.

사진, 영상
Courtesy of Balenciaga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