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ENTINO 2025 FW 컬렉션
“나는 공공 화장실을 상상했다. 그것은 내부와 외부, 친밀함과 드러냄, 개인과 집단, 개인적인 것과 공유되어야 할 것, 깊이와 표면 사이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중단시키며 대응하는 공간이다.”
– 알레산드로 미켈레, 발렌티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파리 패션위크 7일차, 일요일 오후에 열린 발렌티노는 런웨이를 나이트클럽의 공중화장실처럼 꾸미는 파격으로 눈길을 끌었다. 화장실에 나란히 놓인 문 밑으로 모델들의 다리가 보였다. ‘똑똑’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모델이 등장했고, 이들은 간간이 세면대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점검하는 것처럼 연기를 펼쳤다. 테마는 ‘친밀함에 대한 메타연극(Le Méta-Théâtre des Intimités)’.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발렌티노에서의 두 번째 레디 투 웨어 컬렉션을 통해, 아주 사적인 공간에서조차 우리는 연극을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진정한 자아는 무엇인지에 대해 심오한 질문을 던졌다. 화장실의 붉은 조명은 지난 1월에 타계한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을 떠오르게 했는데, 이는 알레산드로 미켈레 나름의 추모 방식처럼 보였다. 라나 델 레이의 음악 – <Gods & Monsters>와 <Breaking Up Slowly> – 이 BGM으로 흘러나오고 느릿느릿 걷는 모델들의 워킹까지, 영화로 치면 완벽한 미장센이 조합된 패션쇼였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맥시멀리스트의 쇼답게 많은 요소들이 뒤섞였다. 란제리, 클래식, 애슬레저 테마가 시스루 레이스, 새틴, 울, 데님, 페이크 퍼 소재와 믹스 매치됐다. 시대적 배경 역시 고전적 빅토리아 시대부터 시작해 40년대, 60년대, 70년대, 80년대를 오갔다. 베이지, 피치, 레드, 블루 컬러의 보디슈트, 란제리, 펜슬스커트, 블라우스와 캐주얼한 데님 팬츠가 자유분방하게 믹스 매치되는 가운데, 옐로 브라운 컬러의 클래식한 페이크 퍼 코트와 트위드재킷, 더블 버튼 재킷, 체크 프린트 코트 등 실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옷들이 눈에 띄었다. 바닥에 거의 끌리다시피 하는 팬츠는 비록 공중 화장실에서는 절대 입고 싶지 않은 것이었지만 무척 매력적이었다. 모델들의 머리를 감싼 레이스와 니트 헤어밴드와 바라클라바, 오버사이즈 선글라스가 독특한 분위기를 더했다. 반스와 컬래버레이션 한 스니커즈도 화제였다. 핑크, 블랙, 레드 컬러의 체커보드 안에 발렌티노 로고를 넣고 ‘I LOVE MY VANS’ 레터링을 더한 화이트, 블루, 레드 스니커즈도 눈길을 끌었다.
발렌티노 하우스의 방대한 유산은 곳곳에서 등장했다. 우선 리본 디테일이 곳곳에서 빠지지 않았다. 섬세한 레이스, 페플럼 장식이 풍성함을 더했고,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지난 발렌티노 오트 쿠튀르 데뷔 쇼를 통해 보여줬던 강렬한 할리퀸 다이아몬드 패턴의 실크 드레스와 가슴에 고양이 얼굴을 넣은 트롱프뢰유 시퀸 드레스도 리바이벌됐다. 레드 카펫을 위한 드레스는 어땠을까? 블랙 드레스에 모피 트리밍을 넣거나 레드 새틴 컬러 블록을 더하거나 V자 네크라인을 깊게 넣은 드레스는 모던해서 오히려 새로웠다. 골드 러플을 장식한 드레스, 시스루 레이스에 비즈 장식을 더한 드레스는 발렌티노 하우스의 정교한 테크닉을 새삼 느끼게 했다.
방돔 광장의 부티크나 18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호텔에서 패션쇼를 하던 발렌티노가 화장실을 배경으로 런웨이를 한다? 이에 대한 의견은 분명 호불호가 나뉠 수밖에 없지만, 일각에서는 ‘발렌시아가의 뎀나처럼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발렌티노를 완전히 새롭게 하고 있다’고 열광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패션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점점 심오하고 철학적으로 변모하고 있다(엄청난 분량의 쇼노트가 이를 증명한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피날레 인사를 나왔다가 화장실로 들어가며 자취를 감춰버리며 완벽한 한 편의 플롯을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다.
- 사진, 영상
- Courtesy of Valent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