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NCHY 2025 FW 컬렉션
2025년 FW 시즌, 지방시 아티스틱 디렉터가 된 사라 버튼의 데뷔 컬렉션은 큰 관심 속에서 열렸다. 알렉산더 맥퀸의 오른팔로서 2010년 맥퀸의 사망 이후 무려 26년 동안 브랜드에 헌신했던 사라 버튼이 알렉산더 맥퀸이 아닌 다른 브랜드를 위해 만든 최초의 컬렉션인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알렉산더 맥퀸이 지방시의 수석 디렉터로 일하기 시작한 1996년에 사라 버튼이 맥퀸의 어시스턴트로서 패션계에 입문한 것을 감안하면, 둘 사이 흥미로운 교집합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패션계에서 계속 뜨거운 감자인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수적 열세 속에서 사라 버튼에게 더 큰 기대를 걸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방시 컬렉션은 3월 7일 금요일 아침, 파리 애비뉴 조지 5세(Avenue Georges V)에 있는 지방시 아틀리에에서 소규모로 열렸다. 300여 명의 게스트가 옹기종기 앉아 볼륨감이 큰 옷은 관객의 무릎을 스칠 정도였다. 사라 버튼에게 영감을 준 것은 하우스 설립자 위베르 드 지방시의 1952년 첫 오트 쿠튀르의 패턴 조각이다. 이는 1년 전, 지방시 아틀리에 레노베이션을 할 때 갈색 봉투에 든 채로 벽 뒤에서 비밀스럽게 발견되었다고. 사라 버튼은 이런 하우스의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아 지방시의 고전적 스타일을 단순하고 그래픽적으로 재해석하고, 오늘날의 여자들을 위한 옷을 선보였다. 사라 버튼은 쇼 노트를 통해 ‘여성은 다중적이다. 나는 여성의 삶의 다채로운 면면을 다루고자 했다(Women are multifaceted – I design for all aspects of a woman’s life)’고 밝혔다.
오프닝은 대담한 블랙 피시넷 보디슈트가 열었다. 모델의 가슴에 ‘GiVENCHY PARIS 1952’라는 커다란 타이포가 새로운 출발을 선포했다. 이런 타이포는 앵클부츠와 펌프스, 뱅글 등에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뒤이어 등장한 살구색 보디슈트는 매력적인 실루엣 게임의 전조였다. 높이 치솟은 네크라인에 굵은 주름을 잡아 인체의 실루엣을 새롭게 만들어냈는데 사라 버튼은 아틀리에에 쌓여 있는 원단 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후문이다. 이후 재킷과 코트는 어깨, 소매, 허리 라인에 직선과 곡선이 교차하며 때로는 오버사이즈로, 때로는 슬림한 라인으로 흥미롭게 변주됐다. 사라 버튼은 한 개의 컬렉션 룩을 완성하기 전에 총 세 번의 피팅 과정을 꼭 거치는데, 한 벌 한 벌의 옷에서 그런 노력과 섬세함이 오롯이 느껴졌다.
지방시의 가장 강력한 상징인 오드리 헵번의 리틀 블랙 드레스는 다채롭게 재해석됐다. 테일러드 재킷을 드레스로 변형한 것부터 트라페즈 라인의 초미니 사이즈 드레스, 시스루 상의와 튀튀 스커트의 조합 등으로 발칙한 느낌을 더했다. 그리고 곳곳에 위트를 불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위베르 드 지방시가 사랑한 리본을 초대형 사이즈의 스카프로 선보였고, 우아한 꽃 디테일은 펑키한 블랙 지퍼 푸퍼의 네크라인에 살짝 넣었으며, 더블 버튼 슈트는 앞뒤를 아예 거꾸로 뒤집는 시도를 했다. 빈티지 메이크업 콤팩트를 빼곡하게 달았던 살구색 시폰 드레스는 여성의 다채로운 면을 조명하고자 한 사라 버튼의 귀여운 시도였다. 매장에서 판매되는 옷은 아니라고 한다.
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과감한 시도를 통해 지방시는 오랫동안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쳐왔다. 창작의 영역을 넘어 하우스 본연의 DNA까지 어느 순간 퇴색해버린 느낌이다. 큰 과제를 안고 브랜드에 온 사라 버튼의 부담감이 적지 않았을 터. 내실 있는 규모를 통해 브랜드 본연의 아카이브를 차분하게 보여준 사라 버튼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았다. 지방시 by 사라 버튼의 다음 시즌을 더욱 기대해 보는 이유다.
- 사진, 영상
- Courtesy of Givenc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