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CCI 2025 FW 컬렉션
조명이 꺼지고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가 들리자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마치 콘서트홀처럼 관객들은 집중하며 구찌의 새로운 챕터를 기대했다.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감독인 저스틴 허위츠(Justin Hurwitz)가 등장해 존재감 있게 인사를 건넸고, 그가 직접 작곡한 음악을 오케스트라가 라이브로 연주하며 2025년 FW 시즌 구찌 컬렉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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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는 짙은 버건디의 ‘로소 앙코라’ 컬러를 싹 지워낸 대신 짙은 녹색의 캐슬턴 그린(Castleton Green) 컬러로 무장했다. 런웨이부터 좌석까지 컬렉션 베뉴는 온통 그린이었다. 이는 녹색도 충분히 고혹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음을 증명하는 한편 하우스를 갱신하고 재설정하겠다는 단단한 선언처럼 느껴졌다. 베뉴 중심에는 구찌의 아이코닉한 인터로킹 G 엠블럼을 대형 사이즈로 설치했고 이는 모델들의 런웨이가 됐다. 구찌의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Guccio Gucci)의 이니셜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인터로킹 G 엠블럼은 올해 탄생 50주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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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에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가 2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다소 급작스럽게 물러났고, 케링 그룹의 디자인 스튜디오가 바통을 이어 받아 여성복 32벌과 남성복 28벌에 달하는 대규모 남녀 통합 컬렉션을 마무리했다. 구찌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부재를 하우스의 전통으로 꽉 채웠다. 구찌 2025년 FW 컬렉션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구찌 레디 투 웨어 아카이브를 충실히 재현했다. 1990년대 톰 포드 시절의 글래머러스한 미니멀리즘부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울트라 맥시멀리즘까지 무대 위로 올리며 시대를 초월하여 강성했던 구찌 제국의 위용을 강조했다.
오버사이즈 단추를 장식한 베이비돌 드레스, 반짝이는 디스코 스타일 점프슈트, 백리스 라메 가운, 레이스 슬립 드레스, 벨벳 드레스, 트위드 스커트 슈트, 모헤어 피 코트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스타일이 퍼레이드를 펼쳤다. 60-70년대 레트로 스타일은 구찌의 뮤즈였던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부터 그 시절 좀 노는 사람들의 성지였던 스튜디오 54(Studio 54) 클럽 스타일까지 연상케했고, 80년대 스타일은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영화 <로열 테넌바움(The Royal Tenenbaums)>의 매력적인 괴짜를 떠오르게 했다. 저스틴 허위츠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하나하나의 룩에 서사를 부여했다.
남성복 테일러링이 여성복으로 적극적으로 변주된 것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특히 소재 사용이 돋보였는데, 슬럽 트위드(Slubbed Tweeds), 브러시드 모헤어 등 하드한 소재가 크레이프 드 신(Crepe de Chine), 부클레(Bouclé), 마더-오브-펄(Mother-of-pearl) 레더 등 소프트한 소재와 믹스되어 완성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밝은 그린부터 바이올렛, 핑크, 레드, 블루, 브라운, 그레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컬러 팔레트도 강인함과 섬세함의 조화로운 모습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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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구찌의 상징적인 홀스빗 모티브가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새로운 울트라 소프트 디자인으로 재해석된 홀스빗 1955 백을 필두로 새로운 슬라우치 숄더백에는 자이언트 사이즈 홀스빗 핸들을 적용했다. 하프 홀스빗 잠금장치를 장착한 구찌 시에나(Gucci Siena)도 눈길을 끌었다. 슬리퍼에도 홀스빗 모티브가 적용됐고, 주얼리 카테고리에서도 팝 아트적 요소로 활용됐다.
구찌 2025년 FW 컬렉션의 피날레는 그린 컬러 맨투맨을 입은 디자인팀 멤버들이 함께 장식했다. 어쩌면 이와 같은 ‘디자인 스튜디오 컬렉션’은 2025년 FW 시즌에 가장 핫한 아이디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 사진 및 영상
- Courtesy of Guc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