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의 매운맛 휴가, 25 FW 버버리 컬렉션

명수진

BURBERRY 2025 FW 컬렉션

버버리 2025년 FW 컬렉션이 런던 패션위크를 지극히 영국적 분위기로 마무리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는 블랙 코미디 영화 <솔트번(Saltburn)>에서 영감을 받아 시골 저택으로 내려간 영국 귀족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에 대해 다니엘 리는 ‘정말 기발한 옷을 입고 미친 디너파티를 여는 보헤미안 귀족. 모든 것이 엄청나게 뒤틀린 방식’이라고 언급했다. 컬렉션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주말 탈출(Weekend Escape). 버버리는 웅장하고도 방탕한 시골 저택 분위기를 내기 위해 지난 1년간 파트너십을 통해 지원해온 런던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을 베뉴로 선택했다. 프레스코화와 아치형 건축물이 이미 고전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는 갤러리에 프러시안블루 컬러 카펫을 깔고 거대한 커튼을 드리웠다.

컬렉션 시작은 무난했다. 두터운 모직 재킷을 입고 머플러를 두르고 니트 레깅스에 허벅지까지 오는 라이딩 부츠를 신은 룩은 교외에서 사냥을 즐기는 영국 귀족의 전형적인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변화는 버버리를 상징하는 체크의 희미함으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다니엘리는 지난가을, 비가 내리는 요크셔에서 산책을 하며 받았던 느낌을 그레이, 브라운, 그린, 블루 등 채도가 높으면서도 어두운 컬러 팔레트로 옮겼다. 체크는 흐린 안개 사이로 보이는 것처럼 흐릿하게 코트와 머플러 위에 놓였다. 체크 풀오버에 체크 팬츠와 스커트, 심지어 펌프스까지 체크로 지독하게 레이어링한 14번째 룩은 실크 스카프와 브로치를 활용해 매력적으로 트위스트 했고, 니트 셋업의 허리와 소매 사이로 체크가 슬쩍슬쩍 보이는 정도로 은근하게 스타일링한 방식도 좋아보였다. 이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의 자기주장이 어느 시즌보다 강하게 드러난 인상을 줬다. 다니엘 리가 영화 <솔트번>에서 받은 영국인의 독설 같은 영감은 프린트로 개성 강하게 드러났다. 영국의 고전적 벽지 문양은 파자마 셋업과 벨벳 트렌치코트 위에 놓였고, 영국 시골에서 사냥하는 귀족들의 모습은 태피스트리로 놓인 채로 그대로 개성 강한 풀오버가 됐다. 시골의 다양한 하운드도그를 연상케하는 찰랑찰랑한 태슬과 니트 디테일 역시 버버리를 새롭게 하는 요소였다.

한편, 버버리의 영국적 정체성은 다른 방면으로 강하게 드러났다. 바로 런웨이의 모델 라인업이었는데,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 더 크라운(The Crown)처럼 영국의 드라마 시리즈의 배우들 – 리처드 E.그랜트(Richard E. Grant), 레슬리 맨빌(Lesley Manville), 엘리자베스 맥거번(Elizabeth McGovern), 제이슨 아이삭스(Jason Isaacs), 가이 레머스(Guy Remmers) 등 – 이 런웨이에 총출동했다. 모델 또한 나오미 캠벨(Naomi Campbell), 릴라 모스(Lila Moss), 에린 오코너(Erin O’Connor) 등 영국을 대표하는 얼굴들로 줄세웠다. 이중에서도 올리브 컬러의 트위드 코트를 입고 노란 체크 우산을 든 배우 리처드 E.그랜트는 영락없이 무대를 완벽하게 장악해버린 신 스틸러였다. 그는 최근 밸런타인데이를 주제로 한 버버리 단편 영화 시리즈 중 하나에 출연하기도 했다.

2024년 7월, 버버리의 CEO로 취임한 조슈아 슐먼(Joshua Shulman)은 버버리가 트렌치코트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아우터 왕국이 되길 바라고 있다. 다니엘 리의 자유로운 상상력 아래 재해석된 트렌치코트를 비롯해 오버사이즈 레더 파카, 퀼팅 재킷, 피코트 등은 버버리의 새로운 도약의 가능성을 점치게 했다. 지극히 영국적이고 매끄럽고 고급스러운 한편 세련된 퇴폐와 기이함이 공존하는 컬렉션이었다.

영상
Courtesy of Bur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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