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예린, 조니, 김치헌 3인의 하모니, 더 발룬티어스

전여울

유영하며 느낀 것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조금씩 다른 얼굴로 살아간다. 보컬 백예린, 기타 조니, 드럼 김치헌 세 사람이 밴드 ‘더 발룬티어스’를 결성하고 어느덧 4년의 시간이 흘렀다. 2월 새로운 싱글앨범 <Rules>의 발매를 앞둔 이들의 입에선 ‘시간’이란 단어가 자주 나왔다. 자유롭게 삶을 유영하며 종종 미끄러지고, 때로 계단을 훌쩍 넘기도 했던 이들의 시간이 새로 나올 음악에 담겨 있다.

왼쪽부터 | 김치헌이 착용한 재킷은 나누슈카, 스니커즈는 컨버스 제품, 셔츠와 팬츠, 타이는 에디터 소장품. 백예린이 착용한 카디건은 앙팡 리쉬 데프리메 by 분더샵, 레오퍼드 톱은 블루마린 제품, 워커와 양말은 에디터 소장품. 조니가 착용한 데님 재킷은 리바이스 언더커버 by 분더샵, 티셔츠는 드리스 반 노튼, 안경은 젠틀 몬스터 제품, 팬츠와 슈즈는 에디터 소장품.

<W Korea> 2021년 데뷔 직전 <더블유>와 화보로 만난 적 있죠. 4년 만의 재회인 셈이에요.
백예린 그렇죠. 한 줄 요약으로 ‘변화와 도약’의 시간이었죠.

요즘도 종종 셋이서 여행 떠나나요? 지난 인터뷰 때 여행 얘기를 실컷 했잖아요.
조니 작년 북미, 아시아 투어가 자연스럽게 여행이 된 것 같아요. 오프 데이에 그 도시를 같이 돌아다니거나 쇼핑도 하고, 호텔 헬스장에서 만나 운동을 실컷 한 기억이 많아요.
김치헌 7월 시작한 투어가 10월이 돼서야 끝났죠. 투어 종료 겸 종무식 느낌으로 11월 소속사 식구들과 다 같이 강원도 펜션에 다녀온 적도 있어요. 좋은 음식 많이 먹고, 좋은 술 왕창 마시고, 늘어지게 쉬고.

종종 예린의 집에 모여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는 소소한 루틴도 여전한가요?
김치헌 북미 투어가 45일로 정말 길어서, 집 대신 호텔 방에 모이는 날이 많았죠. 거의 매일 아이패드로 팀플레이 게임을 미친 듯이 했어요(웃음).
백예린 작년 한 해를 밴드 활동으로 다 보낸 느낌이에요. 너무 자주 봐서··· 요즘엔 각자 보내는 시간을 존중하고 있어요(웃음). 가끔 사무실에 모여서 소소하게 맥주 한잔하는 건 여전하고요.

랩 셔츠와 이너로 입은 칼라 프릴 셔츠, 브리프, 슈즈는 미우미우 제품, 양말은 에디터 소장품.

2월 25일 신곡 2곡을 담은 싱글앨범 <Rules>가 발매되죠. 요즘 출근길에 데모 음원을 듣곤 하는데 묘하게 ‘새 학기’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맘때면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잖아요. 뭔가 설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서도, 낯선 사람들 앞에서 묘하게 방어적으로 변하기도 하고요.
백예린 새 학기란 표현 좋은데요?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가 고착된다 싶을 때 적당한 긴장감, 또 나를 흔들어 깨워줄 사람 혹은 계기가 필요하다는 마음을 담은 앨범이거든요.
김치헌 저도 이상하게 타이틀곡 ‘Rules’의 연주를 구상할 때 학교 밴드부 시절이 떠오르긴 했어요. 미숙하지만 꾸밈없이 연주하던 그때가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정규 1집 <The Volunteers>는 1980~90년대 얼터너티브, 그런지 록에서 영향
을 많이 받아 굉장히 하드한 사운드로 완성됐잖아요. 그런데 이번 앨범은 듣기 편안한 사운드로 접근하고 싶었어요.

‘하이틴’이 이번 앨범의 콘셉트죠?
김치헌 네··· 다들 하이틴의 나이는 한참 지났지만···(웃음).
백예린 하하. 처음부터 하이틴을 의도했다기보다 몇몇 사람들에게 곡을 들려주면 하이틴 영화가 떠오른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그 연장선으로 비주얼 콘셉트도 하이틴에 맞추기로 했고요. 하이틴, 자유분방, 유니폼, 구속감, 당당함 같은 단어들을 툭툭 던져가면서 다 같이 무드보드를 만들기도 했죠.

보통은 조니가 기타 리프를 짜면 예린이 멜로디를 얹는 식으로 작업하잖아요. 이번 앨범도 비슷한 과정을 따랐을까요?
백예린 이번엔 멜로디가 먼저 나온 상태였고 이후 같이 베리에이션을 하는 느낌으로 갔어요. 사실 ‘Rules’는 밴드 곡으로 쓸지 제 솔로곡으로 쓸지 의도 없이 만들어본 곡이었거든요. 혼자 쳐본 허술한 기타 연주에 1절을 쓰고 조니 오빠에게 보냈더니 좋다는 피드백을 줘서 밴드 곡으로 풀게 됐어요. 또 다른 수록곡 ‘She’s In Someone’s Locket’은 음성 녹음을 해서 조니 오빠에게 보냈더니 멋지게 편곡을 해놨더라고요.
조니 사실 두 곡 모두 작년 EP 앨범 <L>을 발매하기 전부터 구상해놓은 거였어요. 콘서트 때 들려드렸는데 많이 좋아해주셔서 정식으로 발매하자 싶었죠.

“난 규칙 없는 삶을 살고 있어.” 타이틀곡 ‘Rules’는 이런 가사로 시작하죠. 곡을 구상한 계기는 무엇이었어요?
백예린 저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가사를 먼저 쓰는 편이에요. ‘Rules’ 역시 가사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게 있어 탄생한 노래고요. 규율을 벗어나 헝클어진 나 자신이 가끔은 좋기도 하지만, 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 통제 없이 넘나들 때가 있
잖아요. 나이가 들고 혼자서 내려야 하는 결정이 많아질수록 실수도 하고, 또 엇나가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때 누군가가 나를 조금은 붙잡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곡이에요. 그래서 이런 내용의 가사가 등장하기도 하죠. “부디 나를 붙
잡아줘.”

예린은 규칙, 편견, 고정된 것으로부터 늘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있을까요? 이번 ‘Rules’도 그렇지만 정규 1집의 ‘Radio’도 타인이 나를 쉽게 판단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노래였고, ‘Pinktop’에서도 사람들의 편견을 다뤘어요.
백예린 이제 그 시기는 조금 지나간 것 같아요. 이제 별로 상관없다고 해야 할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느끼는 건, 사람들은 타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카디건은 앙팡 리쉬 데프리메 by 분더샵, 레오퍼드 톱은 블루마린 제품, 워커와 양말은 에디터 소장품.

‘Rules’는 규칙을 말하는 노래이죠. 돌이켜 나에게 정해진 룰을 깨고 살아가도 좋다고 알려준 인물이 있었을까요?
김치헌 저희 어머니요. 제가 자란 1990~2000년대 초반은 사회 분위기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잖아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응원해주셨어요. 어릴 때 받은 이 영향 덕분에 룰을 깬다는 일에 두려움 없이 살아온 것 같아요.
조니 저는 좀 고지식한 편인 데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성격이라, 저와 달리 자유롭게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나도 좀 그렇게 살아도 좋지 않나, 싶은 거죠.
백예린 규칙은 너무 다양하고, 자유의 형태도 너무나 다양하잖아요. 그래서 제 삶을 지나온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 같아요. 지금도 무엇이 자유인지 찾고 있는 중이고요.

수록곡 ‘She’s In Someone’s Locket’의 가사도 흥미로워요. ‘그녀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고 있을 수 있어.’ 이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스토리죠.
백예린 혼자 식탁에 앉아서 가사와 기타 연주를 끄적이고 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조니 오빠가 바로 좋다고 해준 곡이에요. 저는 ‘로켓’이라고 부르는 펜던트 목걸이를 자주 하는데요. 뚜껑을 열어 사진을 보관하는 로켓 안에 대개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넣는 경우가 많대요. 거기서 시작해서 ‘누군가는 지금 너의 그녀를 아직도 마음속에 품고 있을 수 있어. 그러니 그녀를 아껴줘’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클래식한 흑백영화 같은 곡을 쓰고 싶기도 했고요.

이번 앨범을 작업하며 나의 하이틴 시절을 자주 떠올렸을 것 같아요. 청소년기, 그러니까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흡수한 문화들은 나란 사람의 뿌리가 되곤 하잖아요. 세 분의 경우 어떤 것에 흠뻑 빠져 사는 사람이었어요?
조니 그 시절엔 록 음악에 빠져 살았죠. 에릭 클랩튼은 그 시절 제 우상이었고요.
백예린 전 오히려 지금이 더 청소년 같기도 한데요, 마음만은···(웃음). 어릴 때는 아빠 영향을 많이 받았고 고등학생 시절엔 운 좋게도 좋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윤석철트리오의 피아니스트 석철 오빠, 김반장 선생님, 박진영 PD님. 그분들 덕에 다양한 음악을 듣고 배울 기회가 생겼거든요. 그때 시간들이 지금 제 음악의 베이스가 된 것 같고요.

하이틴의 나와 지금의 나.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같을까요?
조니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건강. 모두들 20대에 건강 잘 챙겨놓으시길 바랍니다(웃음). 그리고 죽어도 안 변하는 건 낯가림 같아요. 쉽게 안 변하더라고요.
백예린 어릴 땐 나 자신을 많이 믿었던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있는 것, 내가 하는 말에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선택도 시도도 과감했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그 시간들에서 배운 게 많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지금은 나를 믿기가 가장 어려운 시기인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맞다고 믿어온 것조차 변하더라고요. 나도 나이를 먹고, 다른 것들도 나이를 먹어가니까 확실한 게 없어진 기분이에요. 그래서 일단은 오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저에게 음악만큼은 변하지 않는 존재 같거든요. 이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때가 많아요.
김치헌 20대엔 마냥 순수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살아가다 보니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어가면 안 되는 순간이 분명 오더라고요. 지금은 그 순간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작은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올해 1월 예린은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의 내한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했어요. 세인트 빈센트를 커버한 곡을 여럿 공개할 정도로 오랜 팬이잖아요. 그녀와의 만남을 어떻게 기억해요?
백예린 스무 살에 처음 세인트 빈센트의 음악을 듣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애니의 몸짓, 눈빛 모두를 동경해왔죠. 실제로 만난 애니는 무대에서처럼 열정적이고 생동감 넘치는데, 다정하기까지 한 사람이었어요. 만나서 더 사랑에 빠지게 된 것 같아요. 그날 무대에 선 연주자들도 최고였고요. ‘Happy Birthday, Johnny’란 곡을 커버한 적이 있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좋아해주셨어요. 공연 당일 이 곡을 부르면 실례가 아닐까 싶어 애니에게 물었더니 마침 그날 공연에선 부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공연장에서 들려드릴 수 있었어요. 어릴 적 ‘나도 언젠가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생각했는데 이번 무대의 한 장면을 같이 만들 수 있었잖아요.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 같아요.

왼쪽부터 | 조니가 착용한 니트는 파세타즘, 데님 팬츠는 뮈글러, 안경은 젠틀 몬스터 제품. 김치헌이 착용한 워크 재킷은 앙팡 리쉬 데프리메 by 분더샵, 티셔츠는 디온 리 제품, 팬츠는 에디터 소장품.

작년 밴드로서 처음 북미 투어에 나서며 다양한 도시의 팬들과 만났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조니 모든 도시가 기억에 남는데, 작은 도시의 관객 에너지가 특히 좋더라고요.
김치헌 맞아요. 캘리포니아 로즈빌 공연이 특히 그랬죠. 44℃까지 갔던 엄청난 더위도 잊을 수
없고요. 근처에서 술 마시다 구경 오신 분들이 많았어요. 한없이 자유로운 분위기였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백예린 그날 어떤 할아버지가 ‘너희 음악 좋다!’해주신 기억이 나네요. 피츠버그에서는 반다나에 모자를 쓰고 공연을 했는데, 갑자기 뭔가 끓어오르더라고요(웃음). 확실히 옷은 애티튜드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투어 말고도 페스티벌 무대에 여러 차례 서면서 팬들과 스킨십할 기회가 많았잖아요. 그러면서 우리 밴드를 좋아하고 우리의 음악을 소비하는 이들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생겼을 것 같기도 해요.
백예린 일단 다들 ‘좋잘알’. 좋은 걸 잘 알고 있는 분들이라고 감히 말씀드려봅니다(웃음). 저희 재밌잖아요. 또 가사에서 오는 반항, 항변, 용기를 다들 마음속에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김치헌 저는 대부분이 MZ 세대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북미 투어를 돌며 그 생각이 많이 깨졌어요. 시애틀 첫 공연에서 만난 한 남성분은 저희 어머니와 동갑이었고, 공연 끝나고 EP <L>에 대한 본인의 감상을 들려주신 교포 형님도 계셨어요.

밴드가 결성되고 어느덧 4년이 흘렀잖아요. 이 밴드 활동이 나에게 준 것은 무엇이라 생각해요?
백예린
적절한 책임감과 따뜻한 소속감, 시도 때도 없이 변덕 부리는 저와 변함없는 오빠들 사이의 케미, 가끔 오빠들이 보여주는 ‘의외의’ 열정적임과 다정함?(웃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내가 음악을 하면서 굳게 지키려 하는 건 뭘까요?
김치헌 몸과 마음을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할 것.
백예린 ‘지금 내가 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이 생각을 늘 해요. 지금 하고 있는 게 대단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죠. 그 기준은 언제나 ‘나’가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여러 곳에 안테나를 두고 신경 쓰다 보면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더 발룬티어스 하면 술과 여행을 사랑하기로 소문난 밴드죠. 어떤 제약도 없다고 가정했을 때 세 분이 떠날 수 있는 가장 미친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요?
백예린 미친 여행은 오빠들이 힘들어할 것 같아요(웃음). 태국의 섬들을 돌거나, 일본으로 빈티지 쇼핑 여행을 떠나고 싶기도 하고··· 그냥 오빠들이 하자는 대로 하겠습니다(웃음).
조니 투어 때 다녀온 도시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요. 시카고에서 못 사고 돌아온 기타가 아직도 눈에 아른거려요. 미련 뚝뚝.
김치헌 이번에 북미 투어를 돌며 위스키에 빠졌어요. 예산이 넉넉하다면 투어를 돌면서 전 세계 최고의 위스키를 맛보는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웃음).

포토그래퍼
박기곤
프리랜스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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