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영화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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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는 인생과 드라마 그리고 패션이 담겨 있다. 2011 F/W 컬렉션에서 다시 만난 아름다운 영화, 그리고 패션.

더 뉴 어벤저스
에르메스의 장 폴 고티에는 군더더기 없는 탐정 룩을 선보였는데 이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영국의 TV 시리즈 <더 뉴 어벤저스 (The New Avengers)>에서 영감을 받은 것. 1976~1977년까지 인기리에 방영된 사립 탐정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장 폴 고티에는 어둡지만 섹시한 영국 신사 룩을 영화적이면서도 웨어러블하게 재해석했다. 완성도 높은 클래식 룩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표현한 장 폴 고티에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컬렉션이었다.

딕 트레이시
워런 비티, 알 파치노, 마돈나, 더스틴 호프만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등장한 <딕 트레이시>는 빅토리아 베컴의 2011 F/W 컬렉션에 영감을 주었다. 만화를 각색한 영화로 완벽한 분장과 특수 효과가 볼 만한 <딕 트레이시>지만 디자이너 출신이 아닌 빅토리아 베컴은 단순히 색상이나 장식에 조금 영향을 받았을 뿐 늘 자신이 하던 허리 라인을 잡아주는 무릎 라인의 드레스 정도만을 선보였다.

그대 품에 다시 한번
질 스튜어트는 귀엽고 여성스러운 룩을 버리고 마리안 페이스풀이나 샤를로트 갱스부르처럼 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여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런 그녀의 뇌리에 남은 것은 마리안 페이스풀과 알랭 들롱이 열연한 1968년 작 <그대 품에 다시 한번(The Girl On A Motorcycle)>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오토바이를 타던 근사하고 매력적인 마리안 페이스풀의 모습을 담고 싶었겠지만 자신의 것을 버리면 늘 엉뚱한 컬렉션이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데렉 램이 선보인 것은 바로‘ 우아한 카우걸’. 이는 로버트 앨트먼 감독의 1971년 영화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McCabe & Mrs. Miller)>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1900년대 서부 북서부 지역을 배경으로 했지만 서부 영화라기보다는 두명의 캐릭터를 통해 시대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래서일까. 데렉 램은 클래식한 코트에 어울리지 않는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를 매치하는 등 웨스턴도 클래식도 아닌 애매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루이 비통의 마크 제이콥스는 1966년 작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의 OST와 함께 래티시아 카스타가 21세기 브리짓 바르도로 변신했다. 영화 속 브릿지 바르도가 그랬듯 루이 비통의 모델들은 풍만한 몸매를 강조하며 치명적인 여성성을 드러냈다. 가슴은 터질 듯 모아주고 허리는 잘록하게 보이도록 벨트를 졸라맸으며, 스커트는 오랜만에 꽃이 만개하듯 부풀려졌다. 여기에 매치한 롱 장갑과 토트백, 그리고 리본 장식의 펌프스는 관능적인 브리짓 바르도에 조신하고 참한 부르주아 느낌을 가미해주었다.

셜록 홈즈
“영국풍의 승마복에서 영감을 받았다. 승마복은 마굿간에서도 입지만 방탕한 삶을 살기로 유명했던 유혹적인 18세기 낭만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디올 컬렉션에 대한 존 갈리아노의 설명. 그러나 그가 선보인 룩들은 최근 개봉한 <셜록 홈즈>를 떠올렸다. 셜록 홈즈 룩과 그를 유혹한 아이린 애들러가 입은 팜므 파탈 룩이 번갈아가며 런웨이에 오른 듯했다. 유혹적인 탕자의 로맨스를 통해 새로운 럭셔리를 창조하고 싶었다는 존 갈리아노의 발언도 이 영화와 어울리는 설명.

말레나
돌체 & 가바나는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했다. 바로 시칠리안의 관능미를 표현한 것.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뮤즈이기도 한 모니카 벨루치가 주연한, 거장 주세페 페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말레나>와 매우 흡사했다. 몸의 아름다운 곡선을 부각시키는 화이트 드레스, 뜨거운 플라워 프린트와 도트 프린트 드레스, 검정 수트 등은 영화 속에서 빛바랜 듯한 톤과 함께 아름답게 그려진다. 어린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테마로 한 돌체&가바나 광고- 마돈나가 등장했다!- 역시 13살 소년의 사랑을 다룬 말레나를 연상시킨다.

맨발의 콘테샤
레트로풍을 좋아하는 로에베의 스튜어트 베버스는 이번엔 섹시함을 가미했다. 이 새로운 관능미의 도입은 로에베의 이미지를 아직 확고히 하지 못한 스튜어트 베버스가 아카이브를 정리하다 에바 가드너가 사인한 방명록을 우연히 발견한 데서 비롯됐다. 바로 가죽 아이템을 즐겨 샀던 에바 가드너를 이번 쇼의 뮤즈로 선택했으며 이는 신데렐라를 꿈꾸지만 그것이 결국 그녀를 파멸의 길로 몰아가는 그녀의 영화 <맨발의 콘테샤>와 흡사하다. 글래머러스하면서도 우아하고 지적인 에바 가드너의 매력은 로에베마저 업그레이드시켰다.

테이킹 우드스탁
이안 감독의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기적 같은 탄생사를 다룬 <테이킹 우드스탁(TakingWoodstock)>은 피터 솜의 컬렉션에 영감을 주었다. 사실 영화 속 패션 자체가 그리 훌륭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란한 영화의 포스터가 더 눈길을 끈다. 피터 솜도 그렇게 느꼈을까. 피터 솜이 선보인 70년대의 보헤미안 스타일은 특별할 건 없었지만 온통 컬러풀한 색감은 햇빛 비추는 날처럼 반짝거려서 기분 좋다.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스포트막스는 루이스 부뉴엘 감독이 1972년에 만든 초현실주의 영화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The Discreet Charm of The Bourgeoisie)>에서 영감을 얻어“ 기이함과 클래식을 오가는 컬렉션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패션이 그저 그랬다고 하더라도-미장센과 스토리는 흥미로웠지만- 스포트막스마저 이에 따를 필요는 없었다. 스포트막스의 컬렉션은 클래식하지도 기이하지도 않았으니까.

툼레이더 & 셉템버 이슈
질 샌더의 라프 시몬스는 <툼레이더>의 앤젤리나 졸리와 <셉템버 이슈>의 안나 윈투어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조합은 매우 흥미로웠다. 시몬스는 이 두 강인한 여성을 통해 자신감과 약함, 엄격함과 섬세함이라는 상반적인 단어의 화합을 표현하고자 했다. 예를 들면 툼레이더의 의상은 활동적인 점프수트와 쇼츠, 두꺼운 벨트와 앵클부츠로 나타났으며, 안나 윈투어의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룩은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운 소재와 패턴으로 표현되었다. 어려운 조합이었다.

에디터
김석원
포토그래퍼
KIM WESTERN ARN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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