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DIOR 25 SS 컬렉션
2025년 SS 디올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열린 곳은 파리 로댕 미술관(Musée Rodin). 2016년, 디올의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s)’는 스테이트먼트 티셔츠를 통해 목소리를 높였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메시지는 더욱 선명해졌다.
로댕 미술관 내부에는 9개의 대형 태피스트리가 장식됐다. 이는 뭄바이에서 활동하는 인도의 여성 아티스트 리티카 머천트(Rithika Merchant)의 작품 ‘우리가 키우는 꽃(The Flowers We Grew)’을 자수로 옮겨 놓은 것이다. 뭄바이에서 인도 공예를 보존하는 단체인 차나키아 아틀리에(Chanakya Ateliers)와 차나키아 공예 학교(Chanakya School of Craft)에 소속된 306명의 장인들이 태피스트리를 완성했는데, 작업 소요 시간만 144,000 시간에 달한다. 대형 태피스트리는 쇼가 끝난 뒤 2월 2일까지 로댕 박물관에서 전시됐다.
앤지 맥마흔(Angie McMahon)의 곡 ‘라이트 다크 라이트(Light Dark Light)’의 경쾌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며 컬렉션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모호크(Mohawk) 헤어스타일. 런던의 모자 디자이너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가 만든 깃털 머리 장식을 헤어 스타일리스트 귀도 팔라우(Guido Palau)가 머리에 꽂아서 완성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이번 시즌에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펑크 앨리스. 아름다움 속에 강인함을 간직한 21세기 앨리스는 줄무늬 스타킹 대신 레이스업 글래디에이터 부츠와 반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디올 하우스의 아카이브는 두 가지를 참조했다. 우선 크리스챤 디올이 1952년 FW 시즌에 선보인 라 시갈(La Cigale) 무아레(moire) 디너 드레스로, 2024년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시도됐던 캔틸레버 힙라인이 다시 한번 재현됐다. 또 다른 주요 아카이브는 디올의 디렉터를 맡았던 젊은 이브 생 로랑이 1958년 SS 시즌에 선보인 트라페즈(Trapeze) 드레스이다. 날씬한 허리를 강조하지 않고도 여성을 섹시하게 보이게 하려고 했던 이브 생 로랑의 의도를 가져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경쾌한 미니 길이로 재해석했다. 하우스의 고전적 아카이브는 도로시아 태닝(Dorothea Tanning)의 초현실주의 그림에 묘사된 디테일과 뒤섞여 더욱 과감하게 표현됐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도로시아 태닝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Eine Kleine Nachtmusik, 1943)’와 ‘버스데이(Birthday, 1942)’ 두 작품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이 작품들이 자신에게 준 영감에 대해 언급했다.
오트 쿠튀르의 놀라운 점은 경이로운 테크닉이 컬렉션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몇몇 작품을 소개하면, 우선 깃털 드레스는 19세기부터 이어진 시폰 깃털 제작 기술로 완성한 것이다. 시폰을 깃털 모양으로 자르고 붓으로 터치하여 질감을 내고 하나하나 다림질로 열을 가하여 입체감을 주는 과정은 신비롭다. 또한 대나무를 잘라 열을 가해 둥글게 라인을 잡고 여기에 약간 뻣뻣한 강도를 지닌 그로스그레인(Gross Grain) 리본 소재를 덧붙여서 만든 버드 케이지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오간자, 시폰, 비즈로 제작한 작은 꽃송이를 최대 1400개까지 이어 붙여 가랜드(Garland)처럼 늘여 붙여 완성한 드레스는 과연 누가 입게 될 것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버드 케이지 드레스를 비롯해 순백의 플리츠 드레스, 레인보우 컬러의 블루머 등 패션 판타지 속에 숨겨진 강인한 여성의 정취가 사뭇 아름다웠던 것은 이번이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마지막 디올 컬렉션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거의 사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에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이후 디올 매출을 3배 이상 끌어올리며 기여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였다. 최근 샤넬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표된 마티유 블라지, 최고의 컬렉션을 보여주고 사임한 디올 맨의 수장 킴 존스, 그리고 이적설이 도는 조나단 앤더슨까지, 패션계의 긴장감은 폭풍 전야를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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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of Christian D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