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메마른 차갑고 건조한 시대, 추운 계절을 뚫고 태어난 책을 골랐다.
1.<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 녹색광선
강렬한 인상의 새빨간 양장을 넘기면 그보다 더 관능적인 마흔아홉 여자 ‘레아’ 와 스물다섯 청년 ‘셰리’의 위험한 사랑 이야기가 휘몰아친다. 프랑스 태생의 작가 콜레트는 대담한 주제 안에서 섬세한 문체로 주체적인 여성을 그려 현대 여성 문학의 근간이라 불린 인물이다. 그중 <셰리>는 콜레트식 문학의 정수라 평가된다. 열렬한 사랑을 그렸지만 사실 이 책의 절정은 두 사람이 관계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장에 있다. 연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소중한 무언가를 떠나보낸 적이 있다면 마음 깊이 와닿을 것이다.
2.<사랑의 각오>
황도경 지음 | 소명출판
사랑에도, 독서 방식에도 정답은 없지만 문득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은 ‘사랑’을 키워드로 한 여러 소설을 읽고 쓴 평론집이다. 평소 문체까지 꼼꼼히 살피는 작가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사랑의 복잡한 단면을 드러내는 등장인물이다. 분노와 아픔 끝에 기어이 고결한 사랑에 다다른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속 ‘나’, 투쟁을 사랑의 동력으로 삼는 정보라의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속 ‘나’ 와 같은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폭력과 욕망이 뻔뻔하게 고개를 드는 시대에서 어떻게 사랑을 지켜가야 하는지 해답이 필요한 이들에게 권하는 책.
3.<그 끝은 몰라도 돼>
문정희 지음 | 아침달
이 시집이 지금 더 와닿는 이유는 현시대를 날카롭게 관통하면서도 꾸준히 사랑을 말한다는 점에 있다. 마음속 깊이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시인은 자기만의 언어로 이 세계에 맞서기도, 세계를 끌어안기도 한다. 이를테면 수록 시 ‘벌새 가지 마’에서 ‘숲에 사는 얼룩말과 공작새가/ 서로 악기를 뺏으려고 밀고 당기는 동안/ 우린 그냥 사랑을 숨 쉬는 잎사귀’라 노래한 것처럼 말이다. 책 말미 발문에서 동료 시인 유희경이 적었듯, 이 시집에는 오직 사랑만이 존재한다.
4. <러니드 바이 하트: 미친 사랑의 편지>
엠마 도노휴 지음 | 아르테
영화 <아가씨>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취향이라면, 분명 이 소설도 입맛에 맞을 테다. 이야기는 최초의 현대적 레즈비언이라 알려진 앤 리스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앤 리스터는 생전에 지나간 연인들부터 당시 사회, 심지어 날씨까지 기록한 비밀 일기를 남겼는데 그 분량이 500만 단어에 달했다. 일기를 마주한 엠마 도노휴는 여자에게 삶이란 오로지 결혼이 전부였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기숙학교에서 피어난 두 소녀의 순수하고도 격정적인 사랑을 그렸다. 누구도 정의 내리지 못했던 사랑의 형태를 만들고, 사회가 요구한 여성의 모습을 깨부순 앤 리스터의 이야기가 담겼다.
- 프리랜스 에디터
- 홍수정
- 포토그래퍼
- 이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