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 무어가 던져버린 ‘왕년의 스타’라는 수식어

김나래

‘골든 글로브’에서 생애 첫 연기상을 받은 데미 무어

지난 5일, LA 더 비버리 힐튼 호텔에서 제8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이 열렸죠. 이날의 시상식을 한 줄 평으로 압축한다면 ‘데미 무어의 화려한 귀환’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데미 무어는 영화 <서브스턴스>로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골든 글로브의 ‘대반전’이기도 했죠. 그도 그럴 것이, 매일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는 영화 <위키드>로 초미의 관심을 받는 신시아 에리보, 칸영화제 황금 종려상 수상작으로 연기상의 강력한 후보로 점쳐졌던 <아노라>의 마이키 매디슨을 물리쳤기 때문이죠. 데미 무어 자신에게는 생애 첫 연기상이기도 합니다.

1962년생. 올해로 62세인 데미 무어는 ‘진정한 베테랑은 배역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을 영화 <서브스턴스>를 통해 몸소 보여줬습니다. 영화에서 데미 무어는 ‘한물간 50대’ 스타로 모두의 기억에 잊히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내리는 엘리자베스 스파클을 실감 나게 연기하죠. 상대 배우인 마가렛 퀄리와 ‘전신 누드’ 연기를 감행할 정도로 제대로 된 한 방을 날렸습니다. 데미 무어하면 영화 <사랑과 영혼>, <지. 아이. 제인>을 제외하고서 딱히 떠올릴만한 대표작이 부재했던 터라 배우 자신에게도 <서브스턴스>는 ‘왕년의 스타’라는 낙인을 지울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랬던 만큼, 수상 소감 또한, 뭉클했죠. 데뷔 초, 자신을 ‘팝콘 배우’로 부른 어느 프로듀서와의 일화로 운을 뗀 데미 무어는 자신을 재발견해 준 <서브스턴스>의 코랄리 파르쟈 감독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충분히 똑똑하지 못하거나, 충분히 예쁘지 못하거나, 충분히 날씬하지 못하거나,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그냥 자신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 순간에 어떤 여자가 타인의 판단 기준만 내려놓으면 자신의 가치를 알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오늘의 영광을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거기에 속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선물로 받겠다”는 영화의 메시지와도 연결되는 멋진 말로 마무리했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스피치였기에 시상식이 끝난 뒤 엘르 패닝 등을 비롯한 현장에 있던 여배우들이 그의 손을 잡으면서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데미 무어의 수상 이외에도 <아임 스틸 히어>의 히로인이죠. 브라질 군사 독재 정권이 가한 폭력으로 삶이 파괴된 여인의 삶을 인상적으로 그린 페르난다 토레스의 드라마 부분 여우주연상 수상도 예상외였습니다. <마리아>에서 오페라의 디바로 열연한 안젤리나 졸리, <베이비 걸>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여우 주연상을 꿰찬 니콜 키드먼 등의 막강한 경쟁자를 누른 결과였어요.

디즈니+의 <쇼군>과 <에밀리아 페레스>의 4관왕 소식도 놓치지 말아야겠습니다. 반면, 2024년 영화계에 신드롬이라고 해도 좋을 <위키드>는 웰메이드 블록버스터상을 받는데 그쳤고,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아노라>도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정식 공개 전, TV 부문 작품상에 오른 <오징어 게임> 팀의 모습도 레드 카펫에서 볼 수 있었는데요. 비록 수상은 불발되었지만 할리우드 대배우들과 어엿하게 노미네이트되는 상황이 여전히 얼떨떨한 따름입니다. 흔히 골든 글로브를 두고 오스카로 가는 전 관문이라고 이야기하는 만큼 이번 결과를 놓고 오는 3월,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부문의 수상을 미리 점쳐보는 재미가 있어 보이네요.

사진
Instagram @oficialfernandatorres, @goldenglobes, @demimoore @trythesubstance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