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칼바람이 부는 12월, 서울 곳곳에서 한국의 유의미한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이들을 만났다.
한 매체의 영향력 있는 100에 선정된 인물부터 뜨겁고 독창적인 미감을 지닌 신예까지. 더블유가 응원하는 한국의 패션 신이 이토록 풍성하고 다채롭다.
Gyouree Kim 규리킴
1993년생 디자이너 김규리는 동명의 브랜드 ‘규리킴’을 2023년부터 시작한 신예다. 런던에서 유학 생활을 마친 그녀는 마포구 서교동에 둥지를 틀었다. 사무실은 작고 아담하지만, 벽에 걸린 그녀의 컬렉션은 환상 동화 한 편을 뚝딱 만들어낼 것 같은 아름답고 파워풀한 힘이 있다. 도자 캣, 샘 스미스 같은 월드 스타가 알아본 그녀의 섬세한 컬렉션을 직접 만져보며,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W Korea>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진짜 반가운 디자이너다. 규리킴만의 미감이 있고, 독창적이다.
김규리 쑥스럽다(웃음). 런던 패션 스쿨 센트럴 세인트 마틴(CSM)과 왕립예술학교(RCA)를 거쳤다. 컬렉션 론칭까지 쭉 한번 얘기해달라.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공부 대신 패션에서 재능을 찾았다. 한국에서 학사 공부 중에 유학을 권유받았고, 졸업 후 2019년에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준석사, 2021년에 RCA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맥퀸에서 잠깐 일했고, 여러 가지 일을 병행했는데, 2023 F/W 런던 패션위크 참여를 계기로 런던에서 회사를 등록하며 ‘규리킴’을 시작하게 됐다.
런던 패션위크에서 첫선을 보인 25 S/S 시즌 주제는 ‘Cherubim’이었다.
‘Cherubim’은 대천사를 뜻한다. 천사의 도상학적 이미지와 현대적 감각을 결합하고 싶었다. 거기에 중세 시대적 장치, 코르셋 같은 평소 내가 좋아한 것들을 더했고, 순수하고 초월적인 매력의 컬렉션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석사 시절 만든 ‘Food Allergies’와 ‘Bio-Corsetry’ 컬렉션은 본인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그 뒤로 ‘Cascade’, ‘Forest Guardians’는 자연적인 이야기로 흘러간다.
CSM에서는 개인적인 서사를 도출하도록 유도하는 편이다. 푸드 알러지에 대한 나의 경험을 살려, 배 부위를 불룩하게 만들어보며 실루엣 연구를 시작했다. 몸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며 코르셋에 관심이 생겼고, 중세의 귀족적인 분위기에 빠져든 것은 아무래도 ‘런던’이라는 도시적 특성이 컸던 것 같다. RCA에서 코르셋 형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바이오 플라스틱은 크게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의복 전체보다 브라톱과 코르셋 같은 작은 피스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오히려 내 작업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왜 코르셋일까?
모던과 미니멀에는 관심이 없다. 코르셋은 라인과 주름 등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가 많기 때문에 손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규리킴을 도자 캣과 샘 스미스가 알아봤다.
모두 디엠을 통해서 연락이 왔다. 도자 캣의 경우 코가 높이 올라간 뮬을 착용했는데, 그녀가 직접 내 인스타그램에 ‘Best Shoe Award’라는 댓글을 달아줬다. 샘 스미스의 경우는 세계적으로 히트한 ‘Holy’의 후속곡인 ‘I’m Not Here To Make Friends’의 메인 댄서 3명의 옷을 만들어줬다. 뮤직비디오의 화려하고 카바레적인 분위기와 규리킴이 잘 어울린 것 같다. 다만 촬영 당일 일이 있어 현장을 직접 못 간 것이 아직도 아쉽다.
학교 얘기를 좀 더 해도 될까? RCA 석사 과정이 ‘디지털, 시스템, 바이오’ 세 분야 중 하나를 선택하여 공부한다고. 무척 흥미롭다.
RCA가 디지털과 미래적인 교육에 힘을 많이 쏟는다. 디지털 파트 공부는 실제로 2년간 옷을 만들지 않는다.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3D 옷을 만들거나 하는 식이다. 시스템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패션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 신 기획 등을 공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친환경에 대한 포트폴리오가 있어서 바이오 분야를 공부하게 됐다.
바이오 분야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첫 수업이 공원에 가서 버섯을 채취하는 거였다.
오…
실험실로 가져가서 버섯에서 채취한 박테리아균을 일정 온도와 빛 안에서 키운다. 그렇게 균으로 만들어진 시트를 가지고 패션에 접목하는 식이다. 미역, 해초 가루로 바이오 플라스틱을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결정적인 것은 마당에 한 달 두면, 바이오 플라스틱이 분해되어 사라진다. 경험은 좋았으나, 과학자나 다름없었다.
취지는 좋으나, 상용화까지는 한참 먼 학문인 듯하다.
동의한다. 포장 용기랄지 패키징 부문에 접목하기 좋은 것 같지만, 내가 하고 싶은 패션에 접목할 수는 없었다. 같이 수학하던 동기 중에는 바이오 패브릭을 만드는 쪽으로 특허 회사를 차린 친구도 있다. 물론 이런 경험이 내가 앞으로 친환경 패션을 추구할 때 도움은 될 것이다.
한국에서 데드 스톡을 구하는 과정은 어떤가?
생각보다 원단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중고 원단 파는 곳이나, 가게 한켠에서 사장된 원단을 팔기도 한다.
한국 뮤지션의 옷을 많이 제작한다.
맞다. 그런데 주문 제작이 시즌별로 몰리는 경향이 있어 힘들다. 나눠 들어오면 다 만들어줄 수 있을 텐데.
혹자는 규리킴 컬렉션을 두고, 유럽의 잔혹 동화를 말하기도 한다. 규리킴의 판타지는 무엇인가?
선명하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보다 어딘가 풀어 헤쳐지고 몽롱한, 그 사이의 어떤 미묘한 여성을 그리는 것 같다.
도쿄 패션위크에도 참여했다. 소규모 브랜드라 패션위크 참여가 쉽지 않았을 텐데.
여러 공모전 출품을 많이 했다. 2022년에 참여한 도쿄 패션위크 또한 공모 형식인데, RCA 졸업 작품 ‘Bio-Corsetry’로 상금까지 받았다. 2023 런던 패션위크 또한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아서 진행하게 됐다.
패션쇼 이후 바이어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묻고 싶었다.
규리킴은 판매가 목적이 아니다. 상품 라인도 따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커머셜하게 브랜드화 시도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도매 시스템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떤 이유인가?
환경 면에서 이유가 큰데, 세상에 더 이상 많은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장된 원단이나 중고 원단을 가지고 옷을 만드는 작업을 주로 했는데, 세계 곳곳에 잘하고 있는 브랜드가 너무 많다. 그저 규리킴만의 작품을 창작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시대에 반하는 장인이다. 시스템화의 문제는?
결국에 직접 만들고, 모두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더라. 방해받지 않고 혼자 창작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소량 제작, 주문 제작 형태가 되고 있다.
다시 한번 또 묻지만, 브랜드를 더 키울 생각이 없나?
자연스럽게 천천히 커가고 싶다. 욕심을 내고 싶지 않고, 적정하게 유지하고 싶다. 크게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찾아와주면 만족한다.
JIYONG KIM 지용킴
지용킴의 김지용은 정통적인 방식으로 디자이너가 된 인물이다. 일본과 런던 패션 유학, 그리고 버질 아블로의 오피스를 거쳐 서울 장충동의 사무실에 자리 잡았다. 태양에 원단을 오랫동안 노출시켜 자연스럽게 원단을 바래게 하는 선블리치 기법이 지용킴을 대표하는데, 이는 우직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뛰어나고 섬세한 패턴을 입혀 현대적으로 탄생한 지용킴의 컬렉션은 많은 이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고 있다.
<W Korea> SFDF 2년 연속 수상을 축하한다. 2024년은 어떤 해였나?
김지용 브랜드 지용킴에도,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큰 한 해였다. 작년 SFDF에서 수상하고, 모 매체의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선정되고(이 인터뷰 이후 올해도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LVMH 프라이즈 세미 파이널리스트로 파리도 다녀오고, 협업도 발표하고 정말 바쁘게 지냈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태어나기도 해서 정말 기쁜 한편, 정신없는 한 해였다.
올 9월에 진행한 2024 F/W 전시에 갔다. 인터뷰 준비할 때는 성격이 내성적인 듯싶다가도 또 현장에서 작품 설명할 때는 열심이더라.
처음에 브랜드를 론칭하면 내가 앞에 서기보다는 브랜드가 앞에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시작 단계는 작은 기회도 아쉽지 않나. 지용킴을 알리기 위해 이것저것 촬영도 하면서 익숙해진 편이다. 변함없이 우직하게 ‘지용킴’을 대변하고 싶다. 선블리치 원단을 이용한 아트 작업이 꽤 인상적이었다.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번호를 남겨두기도 하고. 다만 아트 작업을 팔려면 내가 진짜 아티스트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패션 디자이너로 남고 싶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올해 화려한 순간이 많았다. 제이홉이나 라우브의 전시 방문, 겐조 디너, LVMH 프라이즈 참석 등. 인상적인 모멘트나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줄 수 있나?
9월 전시에 BTS 제이홉이 방문했다. 이미 우리 옷을 소장하고 있기도 하고, 지용킴에 공감을 많이 해주어서 무척 고마웠다. 선블리치 피스에 아들 이름으로 사인을 받으려고 했는데, 아들 이름을 미처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후보를 몇 개 이야기하면서 마음이 기운 이름은 00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그걸로 하면 되나요?” 하셨다. 우연히 아들 이름을 제이홉이 지어주게 된 거나 마찬가지다.
오, 소중한 에피소드다. 공유해주어 고맙다. LVMH 프라이즈는 어땠나?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가 와서 모 매체 편집장이자 스타일리스트인 이브라힘 카마라(Ibrahim Kamara)를 불러 내 컬렉션을 설명해주고, 조나단 앤더슨도 굉장히 흥미롭게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내 부스가 가장 시끌벅적했다.
많은 편집숍에 입점했는데, 특별히 반응이 좋은 나라나 도시가 있나?
나라를 구분하기보다는, 아무래도 우리 컬렉션을 처음 바잉해준 일본 유명 편집숍 ‘그레이트(GR8)’ 얘기를 하고 싶다. 우리와 인연이 깊은 편집숍인데, 여전히 우리 컬렉션이 정가에 판매되는 비율이 80~90%이다.
생각지 못했는데 그런 면이 상징적이겠다.
맞다. 지용킴의 특징은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선블리치에 대한 얘기를 해주면, 바이어들이 듣는 것도 좋아하고, 구매로도 많이 이어진다.
수긍의 힘인 듯하다. 2025 S/S 컬렉션 얘기도 해달라.
컬러를 더 많이 쓰려고 노력했고, 소재 측면도 많이 신경 썼다.
컬러(웃음)?
우리 브랜드는 컬러를 많이 썼다는 것도 다르게 말해야 할 것 같다. 모든 원단에 선블리치가 적용되는 게 아니다 보니 작은 변화도 우리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 보통은 어두운 원단을 밝게 선블리치하는 방식이 많았는데, 이번 시즌은 연한 컬러를 많이 내려고 했다. 연한 색을 더 연하게, 연한 회색, 연한 아이보리색 등.
일리가 있다. 작은 변화가 더 새롭겠다.
2025 S/S는 아예 색이 변할 수 없는 생지 원단을 선블리치해 세월의 흔적을 남긴 피스가 있다. 원단이 오래되면서 황변하고, 습도 때문에 곰팡이가 생겼다 없어지고, 그런 자국이 남은 셔츠가 있는데 우리에게 아주 새로운 시도였다. 이 시도는 메인 라벨 덕분인데, 생지 캔버스 소재인 메인 라벨을 붙이고 선블리치하는 와중에 메인 라벨이 변화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결과물이 멋지게 나와서 만족한다.
시즌마다 주제를 잡고 전개하는 대신 ‘지용킴’이라는 디자인을 계속해서 디테일하고 세밀하게 발전시킨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는 변화보다 작은 변화가 훨씬 어렵다. 큼직큼직한 파트를 붙이는 건 쉽지만, 섬세하게 패턴 메이킹을 하면서 발전하는 게 훨씬 어려운 방식이다. 디테일하게 변화를 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자연광으로 바랜 원단과 약품 사용 원단의 퀄리티가 천지 차이라고 했는데, 어떤 식으로 다른가?
약품을 이용한 염색은 강한 성질의 화학 작용으로 단시간에 효과를 내는 거다 보니,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생명이 없달까. 우리 원단은 약 한 달 반 동안 햇볕도 쬐고, 비도 맞고, 바람이 불어 원단이 움직이는 모양이나 시간의 흔적이 남는다. 멋의 깊이가 다르다.
선블리치를 하는 장소의 보안이 중요하다고 거듭 이야기하더라.
아무래도 노출되면 불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길을 따라 올라가면 넓게 펼쳐지는 장소인데, 해도 잘 들어오고, 특이하게 생긴 곳이다. 입구만 잘 가리면 잘 숨겨져서 좋다.
그런 장소를 찾아 다행이다. 컬렉션을 전개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인가?
바이어가 지용킴에 큰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시즌별로 지용킴의 감도나 상업적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보여줘야 하지 않나. 아트피스에서 어느 정도 해결을 찾은 것 같은데, 예시로 오늘 촬영에 사용한 드레이프 코트는 실루엣이나 패턴을 실험적으로 만들어본 쇼피스다. 처음 파리에서 쇼케이싱을 위해 걸어뒀는데, 한 바이어가 구매를 원했다. 그리고 추가로 만든 피스가 완판될 정도로 반응이 좋기도 했고, 지금은 도버스트리트마켓 파리에 전시되어 있다.
요즘 아시아에서 눈에 띄는 움직임이라면 중국 신예들이다. 런웨이 쇼도 크게 하고. 한국 시장과 어떻게 다를까?
상하이 패션위크가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 같긴 하다. 눈에 잘 띄는 디자인이나 전위적인 디자인도 많다. LVMH 프라이즈에서도 느꼈는데, 아시아 게스트 중에 한국인이 없었다. 그리고 런던, 파리만 해도 유러피언들의 리그라는 분위기도 체감했다. 다만 내가 서울에서 열심히 하고 있고, 마켓에서도 크게 인정 받고 있기 때문에, 실력으로 더 입증해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로 살아남은 동문에는 누가 있나?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
같이 졸업한 친구들로는 런던의 찰리 콘스탄티누(Charlie Constantinou), 애런 에시(Aaron Esh)가 있다. 최근 찰리가 서울에 와서 마켓 반응, 편집숍 지불 같은 사업 얘기를 당연히 하기도 했지만 뭐, “길에서 알아보냐?” 같은 우스갯소리를 나누기도 했다.
재밌다. 요즘 디자인만 잘해서 살아남는 시대는 아니지 않나. 현대적 디자이너의 자질은 뭘까?
팔방미인. 디자인을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금을 굴릴 줄도 알아야 하고, 너무 방구석 디자이너가 되어서도 안 되고, 사회성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팀원들 사이에서 리더십도 있어야 하고. 육각형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SFDF 상금은 얼마인가?
10만 달러다.
환율이 올랐으니 더 좋겠다. 상금으로 뭘 할 건가?
내년 3, 4월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준비하고 있다. 동네는 한남동. 세계적으로 경기가 안 좋기 때문에 브랜드를 거듭할수록 우리 근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용킴이 더 주장할 수 있고, 힘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응원한다. 그렇다면 긴 목표, 짧은 목표는?
긴 목표는 지용킴을 길게 유지하는 것, 짧은 목표는 이벤트를 얼른 마무리하고 다음 시즌에 집중하는 것.
RECTO 렉토
디자이너 정지연이 창립한 렉토는 2021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백석의 합류를 계기로 남성복까지 론칭해 렉토의 세계관을 넓혔다. 정교한 테일러링, 고급스럽고 단단한 소재, 모던하고 웨어러블한 스타일로 대표되는 렉토는 올해 9월 새롭게 단장한 플래그십 스토어로 이전하며 한남동의 상징적인 스폿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정지연의 경영 마인드와 정백석의 확고한 패션 철학이 결합한 렉토는 고유의 미학을 가진 자신들의 세계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다.
<W Korea> 최근에 렉토 송년회를 했더라. 어떤 얘기가 오갔나?
정지연 & 정백석 2024년은 정말 숨 가쁘게 지나간 한 해였다. 두 번의 컬렉션 준비, 중국 시장 확장 프로젝트, 그리고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까지. 모든 과정이 렉토의 히스토리를 더 풍부하게 했고, 나와 브랜드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새 플래그십에 처음 방문했다. 서울에 이 정도 규모의 플래그십이라니 놀랍다.
고객에 렉토의 브랜드 철학을 오롯이 전달하고 싶었다. 시각적 경험뿐만 아니라, 촉각, 후각 모든 감각으로 말이다. 중정의 계절 변화를 그대로 살리고 싶어 다른 부분은 간결하고 여백 있게 디자인했다. 옻칠로 마감한 나무 소재 가구와 오브제는 강우림 작가의 작품이고, 통일감 있게 같은 컬러로 정했다. 강우림 작가의 옻칠 가구는 현대적이면서도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플래그십에 포토북, 벽에 걸어둔 포트레이트 등 사진이 이렇게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리처드 아베돈의 포트레이트도 걸려 있더라.
리처드 아베돈의 오랜 팬이었고, 가고시안을 통해 공간에 제격인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남성복 섹션에는 인물 초상 사진으로 유명한 스웨덴 출신의 작가 한스 게다의 작품을 선택했는데, 흑백의 강렬한 대비, 인물의 내면이 잘 묘사된 사진이라 공간에 깊이를 더해준다고 생각했다. 플래그십 스토어 곳곳에 사진과 포토북을 배치해 렉토의 비주얼 철학을 고객이 자연스럽게 체험했으면 했다.
백화점에서 렉토 매출 견인 효과가 톡톡하다. 지금도 렉토의 확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백화점 입점 매장의 위치와 제품군을 세심하게 조율해, 각 매장이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관리한다. 이 같은 성과로 인해 유통사나 백화점 측에서도 렉토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상호 협력의 기회가 더욱 많아졌다. 확장은 단순히 매장 수를 늘리기보다 브랜드 가치를 확실히 전달하며, 국제적인 패션 하우스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점을 둔다. 파리 쇼룸을 진행하는 이유다.
정백석은 사진을 전공 했다고 들었다. 한섬으로, 또 렉토까지 이어진 여정이 궁금하다.
빈티지 패션 매거진을 보며 패션 디자이너를 꿈꾼 그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사진에도 관심이 많아서 사진을 전공하다가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버리지 못해 패션 스쿨로 다시 진학했고, 그 후 한섬에 입사하여 20년간 일하며 나름의 디자인 철학을 구축할 수 있었다. 렉토에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자유롭고 구체적인 비전들을 구현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업무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비주얼 디렉팅이 주는 즐거움이 크다. 시즌 캠페인과 룩북 촬영은 브랜드의 얼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에 항상 최선을 다한다. 글로벌하게 재능 있는 포토그래퍼와 모델 크루를 꾸려 함께 일하는 시간이 나에게 힐링이자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다.
남성복 론칭이 더 폭넓은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데 한몫했다. 개인적으로도 렉토 남성복을 좋아하고 자주 구매한다.
맞다. 남성복을 통해 렉토의 미니멀하고 세련된 감성을 남성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고, 고객들이 직접 매장에 와 남성복을 구매하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남성복이 렉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 같아 매우 기쁘다.
렉토 컬렉션의 소재가 무척 좋다. 물론 자본력이 답이기도 하겠지만 또 어떤 노력이 있는지?
소재에 민감한 편이라 내 취향을 많이 반영한다. 좋은 소재를 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직접 소싱하며, 소재를 엄선하고, 고객이 옷을 입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촉감, 내구성을 고려해 최적의 소재를 선택한다. 좋은 소재는 디자인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에 늘 중요도를 크게 둔다.
잭 니컬슨과 안젤리나 휴스턴 커플에 영감을 얻은 ‘기발함이 있는 클래식’을 계속 언급했다. 1970년대에 대한 어떤 향수가 있나?
1970년대는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라,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서도 더욱 솔직하고 순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흑백사진과 빈티지 패션에서 발견되는 그 시대만의 고유한 감각과 자유로움은 내게 깊은 영감을 준다. 이번 컬렉션에도 그런 시대적 향수를 담아, 클래식하면서도 감각적인 스타일을 재해석했다.
기 부르댕, 헬무트 뉴튼 같은 인물을 자주 언급한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헬무트 뉴튼과 대담을 나누고 싶다고 했던데, 어떤 얘기를 나누고 싶나?
헬무트 뉴튼과 대담을 나눌 수 있다면, 그의 작업에 담긴 도발적이면서도 섹슈얼하고 우아한 시각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고 싶다. 그의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의 서사이기 때문에, 그 서사를 어떻게 구상하고 풀어내는지 듣고 싶다.
요즘은 디자이너가 자주 바뀌는 시대이긴 하지만, 어떤 시절을 회고하나?
가장 인상 깊은 패션 시대는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와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다. 에디 슬리먼은 남성의 체형과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었고, 피비 파일로는 미니멀 시크로 셀린느의 혁신을 이끌었다. 이들의 디자인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시대를 정의하는 작품들이었다.
정백석의 취향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더욱 단단해진 것 같다.
취향이 확고하다는 것은 스스로를 잘 안다는 뜻이고, 이는 디자이너로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나만의 시그너처 아이템은 앵클부츠, 가죽 재킷, 데님, 정교한 테일러링 재킷이다.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향기를 더하면 나의 정체성이 완성된다.
최근의 쇼핑리스트를 몇 가지 소개해준다면?
이번 시즌 렉토의 나일론 다운 보머, 더 로우의 부츠, 샤넬의 코로만델(Coromandel) 향수.
캠페인을 SNS로 공개하는 방식 이외의 확장 계획은 아직도 없나?
내년에 팝업, 전시, 협업이 계획되어 있는데 아직 준비 과정에 있기에 더 설명은 어렵지만, 브랜드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정백석과 렉토의 목표는 무엇일까?
패션은 내 인생 그 자체다. 오랜 시간 이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비결은 패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즐거움을 찾아서다. 최근에 몸이 아팠던 경험 때문인지 이제는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건강해야 앞으로 더 많은 비전을 실현하고, 렉토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으니 말이다.
THUG CLUB 떠그 클럽
떠그 클럽의 떠그 민, 조영민을 만났다. 천방지축 같은 모습에 자신감으로 완전 무장한 그는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자신만의 팬덤을 확보했고,그를 기반으로 힙합 문화에 뿌리를 둔 떠그 클럽을 멋지게 탄생시켰다. 정통적인 디자이너의 루트를 밟는 대신 이 시대의 방식으로 패션 월드에 안착한 그는 이태원에 자리한 플래그십 스토어 ‘TC 캐슬’로부터 세계로 무대를 넓혀가는 중이다.
<W Korea> 자산이 어떻게 되나?
조영민 자산? 그렇게 많지 않다.
장난이다. 누군가 물어봐달라고 했다. 그만큼 조영민이 성공했다는 뜻일 거다.
고맙다. 요즘 힘을 좀 빼려고 한다.
어떤 릴스에서 조영민을 처음 본 것 같다. 어수선한 릴스였는데, 터무니없고 개인적인 모습을 공개하는 데 스스럼이 없고, 근데 너무 자연스럽고 자신감 넘치니까! 단순하게 작은 인스타그램 스타의 재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떠그 클럽이 ‘Suck My Dic*’ 언더웨어부터 지금의 풀 컬렉션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그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중학생 때부터 패션을 좋아했고, 대구 빈티지 시장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오게 됐는데 그게 영향이 컸다. 새로운 물을 직접 본 건데, 시야가 확 트이는 경험이었다. 커서는 동대문시장을 다니면서 옷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됐고,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실패도 경험했다. 그러다 마음 맞는 형이자 사업 파트너 권지율을 만나서 함께 작업을 시작했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
TC캐슬은 처음 와본다. 1년쯤 됐나? 반응이 어땠는지?
오픈 초기 사람들이 진짜 많이 왔다. 한국인은 물론이고. 지금은 외국인, 아시아권에서도 많이 방문해주신다.
경리단길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에서 이 자리를 먼저 추천했다고 알고 있다. 이 앞 공원 조성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이 자리에 들어오고 나서야 공원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 공원을 어떻게 만들지 주민설명회도 하고 정성을 들이긴 했다. 지금은 완성된 상태고, 날이 좋을 땐 어르신, 학생들, 강아지가 삼삼오오 모여 있다. 공원을 아직 본격적으로 활용하지는 못했는데 좋은 타이밍과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25 S/S 컬렉션은 24 F/W에 이어 바이오 솔저 2다. 바이오 솔저가 뭔가?
우리가 군복 요소를 너무 좋아하고, 관련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정보화 시대, 어마무시한 속도를 헤쳐 나가는 인간, 이런 것들을 상상하다가 바이오 솔저를 만들게 됐다.
24 S/S는 하이브리드 카우보이가 콘셉트고, 중세 시대 기사, 바이오 솔저 등등 콘셉트가 변화무쌍하고 유연하다. 휙휙 바뀌는 속도가 이 시대에 걸맞은 능력 아닌가.
카우보이는 바이크 타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떠올린 콘셉트였고, 어떤 개성을 더하려다 보니 우주적 카우보이를 만들게 된 거다. 콘셉트를 뒤바꾸려고 한 것은 아니고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고 있다.
컬렉션을 전개할수록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옷을 입었을 때 다른 브랜드보다 무엇이 더 특별할 수 있는지. 나는 멋있는 옷을 만들고 그 옷을 입은 사람이 더 특별한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직원들 복지와 더 좋은 근무 환경에 대해 생각한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피스는?
바이오 솔저 컬렉션의 경우 가죽 셋업이다. 소방관용 후크를 단 가죽 재킷, 그리고 지금 입고 있는 가죽 팬츠다. 이번 컬렉션에 소재나 스타일적으로 신경을 많이 썼다.
해외 개척 의지가 보였다. 파리 쇼룸을 열었는데, 어땠나?
두 번 해봤는데 파리 중심가의 좋은 장소였다. 영국의 축구선수, 뮤지션, 현지에서 활동하는 스타일리스트 등 많은 사람이 찾아와줬다. 중요한 건 방문객들에게 너무 고마웠다는 거다. 이 작은 나라에서 시작해서 유서 깊은 패션 수도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된 데 감사했다. 그리고 퀄리티나 스타일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런 자신감이 통한 것 같다. 바이어들의 반응은 어땠나? 아무래도 티셔츠나 후디 같은 기본 아이템이 반응이 좋긴 하지만, 아트피스를 좋아해줄 때 우리를 알아봐주는 것 같아서 기뻤다.
‘콤플렉스콘(글로벌 스트리트 패션 페스티벌)’ 얘기도 궁금하다.
처음 LA는 초청으로 다녀왔다. 아무래도 꿈꿔온 미국 시장이라 좋았던 것도 있지만 우리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도 되겠다는 점을 느꼈다. 두 번째 라스베이거스 콤플렉스콘에서는 찾아주는 사람이 3~4배 늘었고, 알아보는 사람도 훨씬 늘어났다. 그리고 홍콩 콤플렉스콘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우리가 매출 1등을 차지했다고 들었다. 감사한 일이다.
한 인터뷰에서 ‘뉴욕을 먹을 수도 있겠다’라고 한 걸 봤다. 성공 여부를 떠나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속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뉴욕은 한 번 가봤는데 친구가 50명 생겼다. 그들이 내 옷을 너무 좋아하는 거다. 그때 생각한 거다. 항상 사람이 눈치를 보지 말고, ‘야마(대담한 태도, 은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태도는 동묘 할아버지들에게서 많이 느꼈다. 동묘 어르신들이 옷을 정말 재밌게 입는다.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독창적으로 스타일링하고. 자신감과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면서 그 에너지를 많이 주셨으면 좋겠다.
‘Thug Life’의 정의가 있더라. 투팍이 말했고, 사회 불평등, 빈곤이 젊은이들에게 끼치는 부정적 영향,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투쟁의 의미라고. 떠그 클럽의 영역을 확장하는 의미로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한창 ‘떠그 라이프’에 꽂혀 있던 시기가 있었다. 거창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사랑을 나누면 배가된다’는 말을 믿고 있다. 떠그 클럽으로는 멋진 옷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또 우리 신념을 나누는 것 정도겠다.
이만큼 브랜드를 성장시키면서 느낀 것은?
경산 깡 시골에서 용산의 중심까지 오면서 사람들의 찬사와 헤이터들의 비난, 고난, 역경이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워낙 천방지축으로 알려져서 그런지, 아까부터 느꼈지만 조영민이 인생에서 가장 차분한 시점에 만난 것 같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인생의 균형을 찾고 있다. 한동안 떠그 클럽에 미쳐서 너무 많은 걸 해보고 나니 행복과 가정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짧은 목표, 긴 목표?
결혼, 그리고 떠그 클럽의 롱런.
KOWGI 카우기
카우기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조민조와 서울에서 회화와 건축을 전공한 임규빈이 의기투합하여 탄생한 브랜드다. 서울 한 예고의 단짝이었던 이들은 서로 다른 분야를 전공했지만, 패션이라는 큰 틀 안에서 전위적이고 예술적인 카우기의 아트피스를 만들어낸다. 지드래곤, XG, 에스파 등 아이코닉한 뮤지션들과 다수의 협업을 한 카우기는 올해부터 대중과 더 가깝게 호흡하기 위해 세컨드 브랜드 ‘윙카(Wingka)’의 론칭을 마쳤다.
<W Korea> 2022년에 졸업한 걸로 알고 있다. 이브 컬렉션 이후 지금까지 2년 동안 어떻게 지냈나?
조민조 & 임규빈 2023년 카우기의 첫 쇼인 ‘런웨이 투 서울’에 참여해 쿠튀르 무드의 아트피스를 대중에게 선보였고, 이후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액세서리 및 오브제 작업을 해왔다. 그러던 중 대중과 더 가깝게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2024년 세컨드 브랜드 윙카를 론칭했다. 기존 카우기가 화려한 아트피스였다면, 윙카는 웨어러블함에 기반한 로맨틱 펑크 무드의 컬렉션으로 구성된다.
서로 전공이 다른데 둘의 역할은 어떻게 나뉘나?
처음 카우기를 시작했을 때, 역할을 정해두지 않았다. 아트와 패션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했기에 다양한 시행착오를 함께 겪어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배경지식과 경험이 도전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현재는 각자 의상과 오브제로 나누어 기초 단계를 주관한 후, 이후 세부 작업을 함께 구상한다.
지금 카우기 팀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신뢰할 수 있는 소수 직원과 함께하고 있다. 카우기는 여전히 수작업 위주의 정교한 제작 방식을 고수한다. 그렇기에 대량 생산보다는 작품 하나하나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한다. 모든 단계에 직접 참여하기에 더욱 다양한 디테일이 나오는 것 같다.
MAMA 시상식의 지드래곤 모자도 흥미로웠다. 내가 카우기를 처음 인지한 때보다 아이돌 의상 제작이훨씬 늘었다.
아무래도 드라마틱한 비주얼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를 찾아주는 게 아닌가 싶다. 가장 많이 제작하는 것은 ‘날개’인데, 이는 카우기의 상징적인 아이템이기도 하다. 색다른 소재와 형태로 제작하기에 눈길을 끌기도 하고, 서칭하면서 발견한 이미지를 실제로 구현하고, 비현실적이면서도 섬세한 요소를 보여주기에 많이 찾는 것 같다. 가장 합이 잘 맞았던 아티스트는 우리 작업물을 아름답게 소화해주는 모든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세컨드 브랜드 윙카는 어떻게 론칭하게 됐나?
지난 몇 년간 카우기는 많은 아티스트와 함께하며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여러 작업을 하면서 좀 더 웨어러블한 의상도 선보이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많은 이들이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방향성을 궁금해했고. 이를 대중적으로 확장하고자 ‘윙카(Wingka)’를 론칭하게 되었다. 윙카는 기존의 카우기를 좋아해준 많은 이들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는 창구가 되었으면 한다. 카우기의 색이 담긴 쇼피스를 비롯해, 웨어러블한 의류 라인과 액세서리 제품군으로 구성된다.
윙카의 패션쇼도 했더라. 반응이 어땠나? 윙카의 데뷔를 위해 많은 서포트를 받았다. 키스 오브 라이프를 비롯한 셀럽, 아티스트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직접 참석해 더욱 빛나는 쇼가 되었다. 모든 시작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가 쌓아 올린 시간과 많은 사랑이 합쳐져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어떤 인터뷰 중에 “어떤 방향이더라도 우리만의 색으로 녹아드는 기획을 하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패션 디자이너가 ‘기획’을 언급한 부분이 특이했다.
우리는 디자인과 제작을 넘어, 아트 디렉터 역할도 한다. 컬렉션 촬영을 한다면, 사진가와 큰 그림을 의논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소품도 제작하니까. 그래서 카우기의 영역이 더욱 넓어진 것 같다. 쇼에서도 의상뿐만 아니라 마케팅, 연출 기획을 다 한다.
윙카가 아직 본격적인 판매 모드는 아니다.
오는 12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브랜드의 슬로건 ‘Pretty but Strong’에 맞게, 우리 모두의 이중성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찾았으면 한다.
카우기의 긴 목표, 짧은 목표?
카우기의 가장 큰 목표는 대중성과 아티스틱한 무드를 모두 잡는 것이다. 상반되는 것이지만 그 간극에서 조화를 이룰 부분을 찾고, 탐구할 것이다. 늘 이야기해온 낯섦에서 오는 새로움과 익숙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거다. 오는 2025년은 주기적으로 다시 컬렉션 작업을 선보일 것이다. 또 윙카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 많은 분들이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카우기와 윙카 모두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는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싶다.
KIM’S FRUITS 김씨네 과일
과일 장수라고 부르고 싶은 김도영은 과일 티셔츠로 ‘김씨네 과일’을 시작했다. 토마토, 멜론, 수박, 체리 등을 과일 바구니에 담거나 다마스로 전국을 돌며 판매한 티셔츠는 점점 인스타그램을 통해 유명해졌고, 많은 브랜드와 협업하며 ‘새끼 티’ ‘요일 티’ 등 더 많은 티셔츠를 만들게 됐다. 기분이 우울한 날에 @kimsfruits 계정을 방문해볼 것. 그들의 재기 넘치는 유머에 반해버린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W Korea> 플리마켓, 다마스 장사부터 이태원 매장까지. 그사이에 팝업, 협업, 라인 확대 등 엄청난 레이어가 쌓였다. 2024년은 어떤 해였나?
김도영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내가 뭘 잘하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이 ‘김씨네 과일’에 어떤 걸 원하는지 배웠달까. 사람들은 우리 브랜드에서 일상생활의 재미, 어떤 경험적인 걸 찾는 듯하다.
요즘은 옷만 잘 만들어서 되는 시대가 아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한 유쾌하고 재밌는 소통 방식이 김씨네 과일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고객과 소통 중에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해준다면?
오늘은 ‘오사카 새끼’ 티를 사러 오사카에서 손님이 오셨다. 쫀드기가 일본 거라고 해서, 사무실에 있던 쫀드기를 구워드렸다.
매일 에피소드가 많겠다. ‘김씨네 과일’이 뉴욕에 진출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브루클린의 한 편집숍에서 팝업스토어를 해봤다. 안 가본 땅이니까 도전해보고 싶었다. 과일티, 한글이 들어간 랩티(힙합 문화에 기반한 티셔츠, 특정 인물에 대한 존경을 보여준다) 등 가져간 것은 다 팔았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관심 없어 한 부분을 거기선 좋아하고. 그런 것들이 좀 달랐다.
어떤 점이?
한국에서는 대중 속에 섞일 수 있는 옷을 찾는다면, 이건 콤플렉스콘에서도 느꼈지만 미국에서는 내가 어떻게 더 튈 수 있나 개성을 추구하는 점이 달랐다. 과일 장수 아저씨들이 입는 조끼를 커스텀한 것이 있다. 태극기 패치를 붙이고, +82, 상호명을 자수로 넣고. 콤플렉스콘에서는 조끼가 힙합 스타일이랑 어울려서 반응이 좋았다.
콤플렉스콘에서는 어땠나?
집기 구성이나 부스 크기 등을 사전에 협의하는 데 생각보다 투자 비용이 많이 든다. 대단한 수익을 기대한다기보다 경험하고 배운 것이 많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도 완전 서바이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더 화려한 것을 시도해봐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알게 된 브랜드가 있나?
스페인 브랜드 스터프(@ssstufff.official). 과일이 그려진 옷인데 실제로 과일 냄새가 나거나, 각 티슈가 인쇄되어 있는데 실제로 티슈를 뽑을 수 있거나 하는 식의 위트가 있다.
김씨네 과일은 2022년에 시작했지만, 그간 필드에서 쌓은 경력이 13년이나 된다고. 그 시간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갈팡질팡하지 말고, 뚝심 있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것. 한 번에 기대한 만큼 반응이 오지 않는다고 포기하기보다, 두 번, 세 번 더 도전할 것.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는 것을 만들 것.
‘김씨네 과일’은 그래픽 디자인에 더 가까우니까 최근에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매스미디어. 어떤 유행이 되는 문구를 우리가 사용하기도 하고, 대중의 공감을 살 수 있는 것이 주제다 보니, 늘 매스미디어를 신경 쓴다.
최근 커스텀 한 것 중 가장 뿌듯했던 작업은 무엇인가?
지금 입고 있는 김흥국 해병대 전역복이다. 해병대 전역복이 맥시멀리즘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동기, 후임 이름 싹 집어넣고, 그 화려함이 어마무시하다. 어쩌다가 슈프림 집업에 김흥국 아저씨를 프린트해서 군장집 가서 이것저것 붙이고 박는데 무척 재밌었다.
갖고 싶은데, 판매할 생각은 없나?
원가가 생각보다 쎄서, 고려하지 않았다.
커스텀 중에 에이셉 라키가 입었던 데님 팬츠도 인상적이었다.
구찌 크루즈 쇼를 경복궁에서 할 당시에 방문한 에이셉 라키가 한국에 와서 뮤직비디오를 찍지 않았나. 그때 우연찮게 모델로 참여했는데 가이드가 무지 흰티와 데님 팬츠였다. 티셔츠를 커스텀할 수는 없어서 대신 바지에 인쇄해서 갔는데, 에이셉 라키의 스타일리스트가 무척 좋아했다. 촬영 마칠 때쯤 에이셉 라키가 직접 와서 자기가 곧 도쿄에 갈 건데 하나 만들어줄 수 있냐고 했다.
랩티로 시작했고, 힙합 문화를 늘 얘기한다.
새끼 티는 힙합 문화에서 늘 출신지, 고향을 얘기하는 문화에서 따온 것이다. 힙합을 좋아해서 출신에 대한 자부심을 얘기하고 싶다 보니 그걸 토대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늘 생각한다.
2024년에 입춘 컬렉션을 만들었고, 2025년 버전의 입춘 컬렉션은 어떤 것인가?
미역 패턴을 밀리터리스럽게 만든 것이다. 일명 ‘미역국 바지’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업 방식에 대한 팁을 전수해준다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할 것. 그냥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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