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안녕이라 말하기 전, 분야를 가로질러 2024년의 표정을 만들었던 이야기들을 펼쳤다. 올해를 들썩이고 뜨겁게 만든 장면들이 여기 있다.
■ 올해 저평가된 무엇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
“일제강점기의 ‘마루타’를 모티프로 크리처물이 태어났다. 한국이 블록버스터 제작 능력을 갖추게 된 21세기 들어 진작 나왔어야 하는 성격의 작품. 또 시대, 사랑, 청춘, 장르, 탁월한 연기,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상미까지 다 있는 작품이다. 9월 시즌2 공개 직후 시즌1과 2가 모두 글로벌 시청 수에서 톱10에 오르는 이례적인 선전을 했음에도, 한국에서는 그만큼 호응을 얻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권은경(<더블유> 피처 디렉터)
최원빈 정규 1집
“2016년 밴드 ‘웨터’의 프런트맨으로 데뷔한 최원빈의 8년 만의 첫 솔로 정규앨범. 올 한 해 록의 리바이벌 속에서 최원빈의 이름이 생각보다 저조하게 불린 것은 어쩐지 속상한 일이었다. 이 앨범은 ‘무해함’과 ‘럭키비키’를 외치는 요즘의 시대정신과는 한참이나 어긋나 있다. 메탈, 펑크, 그런지 등 직선적인 해방감을 느끼게 만드는 사운드는 ‘모두 망설이는 금기를 깨’, ‘알겠어 내가 악당 할게’와 같은 더 직선적인 가사를 만나며 펄떡이는 록의 한가운데로 데려갔다.”
– 전여울(<더블유> 피처 에디터)
세종문화회관의 ‘Sync Next’
“2022년부터 시작된 세종문화회관의 시즌제 프로그램. ‘싱크 넥스트’를 수식하는 단어 ‘컨템퍼러리’ 이 한마디를 꺼내는 게 한국 (공연)예술계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보면, 이 프로그램의 존재는 귀하다. 공연장에 갔다가 무대에 오른 미술가를 만날 기회는 그리 자주 오지 않는다. 이제는 전설로 남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현대음악 공연 프로그램인 ‘아르스 노바’(2006~2018)가 떠오른다면 과장일까?”
– 박재용(프리랜스 큐레이터, 통번역가)
국내 여성 재즈 보컬들
“김민희, 김유진, 마리아킴, 문미향, 조해인…. 차세대 디바들이 양질의 음반을 앞다퉈 쏟아냈고, 지난해 결성한 디바계의 어벤저스 ‘카리나 네뷸라’도 꾸준히 활동한 한 해였다. 뉴진스가 대표하는 ‘바이브’ 중심의 세련된 팝은 어마어마한 주목을 받았지만, 재지한 바이브가 충만한 다른 것들은 어마어마하게 ‘못’ 주목받았다. 그래도 한국 재즈는 계속 나아간다. 나아갈 것이다.”
– 임희윤(대중음악 평론가)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 상대의 말과 마주 보는 말이 사라진 시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 언제보다 거대한 말 더미에 파묻혀 사는 건 맞지만, 대부분의 말은 원하는 수신자에게만 닿아 증폭하거나 반대로 서로에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한 채 생채기만 남기고 부서진다. 이 웨이브 오리지널 작품은 그렇게 영원히 평행선일 같던 말들을 애써 모은 작은 마을이다. 모든 게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한 번쯤 볼만한, 요즘 드문 ‘말의 흐름’이 흐르는 프로그램이었다.”
–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ARTMS 정규 1집
“이달의 소녀가 계약 해지 소송을 마치고 두 개의 그룹과 솔로 활동으로 나뉜 후 나온 가장 주목할 만한 아웃풋. 이달의 소녀의 황금 시절을 함께 이끈 프로듀서 제이든 정의 손으로 빚어진 이 (재)데뷔작은 음악, 스토리, 퍼포먼스까지 모든 부분에서 올 한 해 가장 빼어난 웰메이드 K팝 앨범 중 한 장이다.’’
– 김영대(대중음악 평론가)
메기 넬슨의 <아르고호의 선원들>(플레이타임)
“망각과 기억, 쾌락과 노화, 가족과 퀴어를 횡단하면서도 여전히 ‘나’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 미국의 시인이자, 비평가, 학자인 메기 넬슨의 자전적 에세이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자기 이야기되 이론, 시, 인터뷰 등의 문헌을 뒤섞으며 모두의 서사를 구성하는 ‘자기 이론(Auto Theory)’ 글쓰기의 뛰어난 예시로, 저자가 파트너 해리 도지와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자신의 출산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 마침내 모든 부품이 교체되더라도 변함없이 아르고호로 불리는 선박처럼, 사랑 역시 갱신의 예술임을 믿게 만드는 글이다.”
– 도우리(대중문화 비평가)
넥슨 ‘아이콘 매치’
“드로그바, 베르바토프, 카카, 피구, 아자르, 델피에로, 퍼디난드, 피를로, 푸욜, 반데사르, 박지성 등등 이름만 들어도 놀라운 세계 톱 클래스 축구 선수들이 10월 20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모였다. 심지어 레전드 공격수 11명과 레전드 수비수 11명이 붙는다는 참신한 설정까지. 관중석은 꽉 찼지만, 생각보다 화제가 덜 돼서 아쉬운 느낌이다. 야구에 밀리고 러닝에 밀린 축구의 인기라니. 아무리 봐도 네이마르가 에버랜드 간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인데···.”
– 박한빛누리(프리랜스 에디터)
김안의 (문학과지성사)
“김안의 시를 읽는 일은 지옥의 창문을 열며 음독 중인 광인의 깨진 거울을 바라보는 일과 같다. 첫 시집 <미제레레>에서 시작된 시인의 지옥은 <오빠 생각>, <아무는 밤>을 거쳐 네 번째 시집 에서도 이어진다. 지옥의 소리를 듣고, 지옥의 냄새를 맡는 기형의 시간으로 독자는 초대받는다. 말쑥한 정장 차림 대신 등 굽은 노파가 페이지마다 지나가는 이 시집은, 오늘날 시의 흐름에서 비껴나 있지만 그 집요한 비껴남 때문에 다시 펼치게 되는 마력을 지닌다. 그의 시는 견딜 수 없는 기형과 기형을 꿰맨 하나의 몸이다. 그의 시는 망해가는 것들 속에서 하나의 원숙한 균형을 이룬다. 몸을 웅크린 한 명의 거대한 실루엣이 독자 몸에 덧씌워진다.”
– 김유태(<매일경제신문> 기자, 시인)
클라우드 크러시
“맥주 브랜드, 클라우드에서 출시한 크러시. 이제껏 한국 맥주는 구수한 라거 일색이었는데 이건 아주 다른 계열이다. 문자 그대로 ‘말끔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청아한 캐릭터. 거품은 샤프하고 뒤끝에 싹 도는 과실과 꽃 향도 싱그럽다. 25년 전쯤 유행한 아이스 맥주가 돌아온 느낌이다. 낙지볶음소면 같은 한식과 함께 다시 마시고 싶은 맥주였는데, 출시 후 내가 우연히 발견하고 맛보기까지 1년 가까이나 걸렸다.”
–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tvN 드라마 <정년이>
“원작 웹툰의 ‘부용’ 캐릭터 삭제로 페미니즘과 퀴어 서사를 지우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지만, 직접 보고 판단하시라. 김태리 주연의 12부작 TV 드라마는 1950년대 무대 연기를 통해 성 역할을 전복하고 동성애 감정을 나누기도 했다고 알려진 여성국극단 존재 자체에 집중한다. 광고 단가가 가장 비싼 자리 중 하나라는 tvN 주말 드라마 슬롯에서 극단 무대 재현에 상당한 제작비를 태우며(!) 드라마 나름의 방식으로 페미니즘과 퀴어를 다루고 있다.”
-임수연(<씨네 21> 취재팀장)
■ 지금은, 티니핑!
티니핑은 유아 인구를 넘어 성인들의 레이더망에도 걸려든 ‘올해의 존재감’이다. 사랑, 우정, 용기 등 여러 감정과 성격의 특성을 의인화한 마법 생명체.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캐치! 티니핑>이 그들의 세상이다. 캐릭터 종류는 현재 130개가 넘는다. 프랜차이즈 아이돌 그룹의 시스템처럼 1기 티니핑, 2기 티니핑 식으로 불어난다. 단어 끝에 ‘핑’만 붙이면 캐릭터 이름이 되고, 그 이름만 들어도 얼추 특성이 짐작되는 단순한 작법 공식은 ‘스머프’나 <인사이드 아웃>과 비슷하다. 8월 개봉한 영화 <사랑의 하츄핑>은 티니핑이 전 세대에 걸쳐 확산되도록 불씨를 지폈다. 시리즈의 극장판이 122만 관객을 모을 정도로 그 기세에 ‘티’가 났다. 주인공 로미가 티니핑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티니핑 월드의 장원영이자 인간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하츄핑(사랑과 배려를 상징)을 만난다는 게 스토리 라인이다.
‘생각보다 영상 퀄리티가 훌륭하고 감동적’이라는 후기, 티니핑 캐릭터를 말하는 조카 앞에서 ‘시진핑’으로 응수했다는 식의 언어 유희적 에피소드가 잇따라 온라인에 퍼졌다. 정말 예쁘고 귀여운 캐릭터 세상에 공감하는 시선과 일종의 밈처럼 불어난 농담성 고백 행렬, 여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트렌드 대열에 올라타 직접 경험해보려는 이들의 움직임이 더해졌다고 봐야겠다.
제작사인 SAMG 엔터테인먼트는 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시작해 IP를 활용한 글로벌 콘텐츠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곳이다. <캐치! 티니핑> 이전에는 <미니특공대>, <슈퍼다이노>라는 애니메이션 히트작을 출시한 바 있다. 부모들에게서 ‘파산핑’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관련 머천다이즈 시장이 무궁무진한데, 이에 그치지 않고 테마파크, 게임, 의류 등으로 그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일본 출신의 요술공주 밍키나 세일러문 같은 유명한 ‘마법 소녀’가 한국산으로도 태어난 셈.
2003년 태어난 <뽀롱뽀롱 뽀로로>를 보고 자란 세대가 이제 성인이 되어 ‘나 어릴 적’을 추억하고, 지금의 유아들과도 공유되는 키워드를 가졌다. 캐릭터 산업은 긴 시간을 내다보고 꾸준히 키워가는 분야라고 하는데, 뽀로로와 핑크퐁에 이은 이 현재진행형 캐릭터의 뜨거운 생명력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 권은경 (<더블유> 피처디렉터)
■ 연애 리얼리티의 ‘파묘’는 끝을 모르고
헤어진 연인을 굳이 다시 모아 자신의 ‘엑스’가 다른 이성과 눈맞는 걸 지켜보게 하는 것(<환승연애>)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끌어낼 수 있는 최대치의 도파민이라 생각했다. 물론 올해 새롭게 방영된 연애 리얼리티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곧 펼쳐질 백 세 시대를 걱정해 서로의 ‘끝사랑’이 되어줄 50세 이상의 시니어들이 짝을 맺고(<끝사랑>), 남매가 참가자로 나서며 차마 알고 싶지 않았던 내 혈육의 로맨스를 지켜보고(<연애남매>), 한일 남녀의 말 그대로 국경을 뛰어넘는 로맨스(<혼전연애>)를 지나 퇴마사, 무당, 타로 마스터 등 점술가들의 기기묘묘한 썸(<신들린 연애>)이 펼쳐진 한 해다.
태초 <짝>이 있었고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솔로지옥> 등을 경유하며 연애 리얼리티는 방송가의 검증된 히트 상품으로 거듭났다. 이 덕분일지 시청자 역시 누군가의 연애를 TV로 훔쳐본 지도 오래되었다. 연애 리얼리티의 범람 속에서 올해
각 방송사가 ‘기획 전쟁’을 치러야 했던 건 어쩌면 숙명에 가까운 일이었던 셈이다. 초합리, 분초 사회를 논하는 요즘 시대에 연애만큼 최악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행위도 없지만, 불필요한 감정 낭비 없이 남의 연애를 방구석에서 관전하고 참견하는 건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한다. 때문에 연애 리얼리티는 앞으로도 행진할 것이고, 그만큼 기가 차게 만드는 새로운 기획이 계속해서 ‘파묘’될 것이다.
– 전여울 (<더블유> 피처 에디터)
■ 이런 드라마, 저런 드라마
아는 게 많은 챗GPT에게 ‘2024년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한국 드라마 5개’를 물었다. tvN <눈물의 여왕>, tvN <선재 업고 튀어>, MBC <원더풀 월드>,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JTBC <닥터 슬럼프>. 공감할 수 있는가? 챗GPT는 하루에도 몇 번씩 조금 다른 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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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이나 ‘화제성’이라는 용어를 섞어 물을 때, 답을 한국말로 내놓을 때와 영어로 내놓을 때도 결과가 달랐다. 시청률을 기준 삼으면서 KBS <고려 거란 전쟁>과 일일 드라마를 빼먹지 않은 걸 보면 챗GPT를 영 믿지 못할 일은 아니다. 데이터의 세계가 궁금해 어떻게든 질문을 미묘하게 바꿔가며 확인했을 때, 위 작품들 외에도 목록에 자주 오른 드라마는 다음과 같다. JTBC <웰컴 투 삼달리>,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 SBS <굿파트너>와 <커넥션>, MBC <밤에 피는 꽃>,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 등. 시청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이 분명한 히트작임을 알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인기 드라마’에 대한 체감은 저마다 다르다. 10대와 성인 사이에서 넷플릭스 <하이라키>의 온도가 같을 수는 없었다. 차은우가 검은 연기를 피워내는 듯한 인물로 미스터리물에 등장할 때 얼마나 진하게 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원더풀 월드>, 초능력이라는 소재와 정재형의 탁월한 음악 속에서 사랑과 후회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 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같은 경우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많이 오르내린 인상이다.
챗GPT가 언급하지 않은, 그러나 올해 명예의 전당에 올라 마땅한 드라마 하나로 정려원, 위하준 주연의 tvN <졸업>을 꼽고 싶다. 안판석 감독과 <밀회>, <아내의 자격> 등으로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정성주 작가가 넷플릭스 <종말의 바보>를 내놓았을 때, 안판석은 그가 발굴한 신예 작가 박경화와 이 작품으로 돌아왔다. 수능시험에 ‘대박’이 나서 명문대에 진학한 남학생이 시간이 흘러 자신을 대치동 전설로 만들어준 학원 강사이자 첫사랑과 동료가 된다. 선생님의 곁을 공전하던 남자와 에이스 강사로서의 삶만 익숙하던 여자가 서서히 함께 궤도에 오르는 과정. 드라마는 작가의 작품이라지만, 이 작품으로 다시금 확인한 건 세공에 능한 안판석 감독의 연출 솜씨와 지휘력이다. <아내의 자격>에서 큰 줄기가 된 대치동의 속살이 <졸업>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특정 사회를 치밀하게 꿰뚫어 보면서도 그 속에서 멜로를 빌드업해가는 놀라운 능력을, 과연 어느 드라마에서 또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 권은경(<더블유> 피처 디렉터)
■ 땔감을 찾아 헤멘 미술계
미술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시장의 관점에선 ‘이미 열기가 식어간다’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2024년 한국 미술계는 여전히 활기에 들뜬 모습이었다. 이 활기의 정체는 미술계 안에서의 위치나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수해복구 현장 같은 활기를 느꼈다. 그러니까, 태풍이 몰아치거나 홍수가 밀어닥치면 묘하게도 경제가 활기를 띠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거리엔 사람이 북적이고, 다행히 피해를 입지 않은 상점이나 식당엔 손님이 줄을 선다. 이게 과연 긍정적 활기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각종 기관에서 벌인 여러 행사에 투입된 인력이나 자원이 정말로 뭔가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지를 생각해보라. 그 인상은 현상 유지 중이던 시스템에 압도적 과부하 현상이 생기자 그에 대응하기 위한 일시적 움직임에 불과했다. 재해 복구 현장의 활기란 대개 머지않아 사라질 수밖에 없는 떠들썩함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미술계가 어찌나 활기찼던지,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음에도 ‘미술계 명절’로 자리를 잡은 듯한 9월 초의 ‘아트 위크’에는 크고 작은 전시와 행사 일정이 퇴근길 강변북로에 차가 밀리듯 체증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개중에는 차선을 위반해 끼어드는 건가 싶은 경우도 있었다. 9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3회 프리즈 서울 기간 중 오픈한 광주비엔날레가 그랬다. 국외에서 한국을 찾아온 미술계 인사 중에는 시차 적응을 마치기도 전에 아트페어를 둘러보고서 비엔날레 오프닝에 참석하려 광주행 새벽 열차에 몸을 실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런 일정이 괴로웠던 건 한국에 있는 미술 관계자나 언론 종사자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미술 애호가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광주비엔날레 오프닝 날짜를 아트페어 전 주말로 바꿨다면 어땠을까? 수백, 수천, 수만 명에 이르는 국내외 아트 위크 방문자들의 수면 부족이 조금은 나아졌을 것이다. 소속 미술관을 대표해서 한 도시를 방문하는 큐레이터나 VIP들은 대개 아트페어가 시작하기 전 해당 도시에 도착한 후 프리뷰를 보고 떠나니, 한국에서도 일정을 조금 당겨 지방에서 비엔날레부터 먼저 관람한 후 서울의 아트 위크를 즐겼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센스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일정, 그리고 동시에 벌어지는 대규모 행사에 필수 인력들이 한 번에 두 장소에 존재할 수 없어서 드러난 갖가지 문제 역시 애초에 벌어질 일 없는 난센스로 남았을 테다.
미술은 작가와 작품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가벽을 세울 사람, 프로젝터를 달고 스피커를 설치할 사람, 작품을 운송해줄 사람, 글을 쓸 사람, 통역이나 번역을 하는 사람, 심지어 공간을 지키고 있을 사람까지, 결국 미술은 수많은 ‘사람’을 통해 벌어지는 일이다. 지금 한국 미술계의 활기가 수해복구 현장처럼 한시적인 것으로 남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일’이나 ‘다음’을 생각하는 태도와 감각이다. 스스로를 혹은 타인을 땔감 삼아 속도와 규모를 위해 불사르는 건 우리 부모 세대까지나 유효한 성공의 공식이다. 수해복구 현장을 떠오르게 하는 2024년의 활기에서는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와 감각보다는 불이 꺼지지 않게 하려고 다음 땔감을 찾아 헤매는 듯한 모습을 더 많이 엿본 것 같다.
– 박재용(프리랜스 큐레이터, 통번역가)
■ 김민기가 있었다
배우 강신일, 설경구, 오지혜, 이정은, 장현성, 황정민, 뮤지션 나윤선, 박학기, 송창식, 윤도현, 장필순….· 이들이 하나의 목적 아래 카메라 앞에 앉았다. 공연 연출가 김민기(1951~2024)와 올해 3월 15일 폐관한 학전에 얽힌 추억을 말하기 위해서다.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4월 21일부터 3주에 걸쳐 3부작으로 방영했다. 이 다큐의 특별함은 100여 명이 동참한 인터뷰 규모와 수십만에 이르는 유튜브 클립 조회수로도 증명된다. ‘아침 이슬’과 ‘상록수’ 등을 부른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음반 제작자.
노래극, 연극, 마당극과 아동극 등을 보급한 총감독. 1991년부터는 학전이라는 소극장을 설립하고 이끈 뮤지컬 작곡가이자 연출가.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한 시대의 이름을, 또 그 이름을 둘러싼 수많은 증언과 이야기를 채집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김민기가 연극만 하던 배우들을 데리고 개관 작품인 <지하철 1호선>을 준비하면서 박자 세기부터 시작해 기초 훈련을 반복한 점, 무대에 오르는 배우가 6개월 동안 10만원 받으며 일하던 시절에 배당이 포함된 계약서를 쓰고 공연 수익을 공개한 점 등은 학전의 정신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문화평론가 강헌의 주선으로 ‘지상의 가왕’ 조용필과 ‘지하의 가왕’ 김민기가 딱 한 번 술자리를 했을 때의 영화 같은 일화, ‘학생 운동에 대해 별 관심도 없던 나는 하루아침에 주목받는 운동권 학생이 되어 있었다’라고 쓰인 김민기의 친필 노트 내용을 어디서 보고 들을 것인가? 배우와 가수 같은 공연자는 ‘앞것’, 스스로는 ‘뒷것’이라고 말하며 넓고 큰 세계를 아우른 김민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은둔자는 처음으로 학전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허락한 후, 올해 7월 세상을 떠났다. 놀랍게도 ‘상록수’는 김민기가 공장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만든 노래였다. 그가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웠던 1970년대,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노동자들을 가르치며 들려줬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꿈은 얻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계산적으로 살지 말고 느끼는 세상을 살아라’.
– 권은경 (<더블유> 피처 디렉터)
■ 한강이 남긴 것과 남길 것
이 글의 모든 독자는 아마도 서기 2114년이면 전부 사망한 뒤일 것이다. 자신과, 자신을 알던 대다수의 이들은 사라진 후일 것이다. 자신이 알던 모든 이들에게 모두가 이름만으로 기억되고, 때로는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쓸쓸하고 막막한 일이다. 인류가 영속적으로 반복했던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생애주기를 겪으며 남긴 언어는 우리가 생존했던 시절과 다르지 않은 외형을 갖추고 후세에 전해질 가능성이 높다. 굳이 2114년을 언급하며 글을 여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읽지 못할 한 편의 원고를 기억해두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다이크만 도서관에는 소설가 한강의 원고 한 편이 ‘유리 서랍’ 안에 보관돼 있다. 1만 6,000개의 나뭇조각과 그 사이를 채우는 100개의 작은 유리 서랍으로 만들어진 작은 방이다. 유리 서랍 안의 원고들은 이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된 100년 후인 2114년 공개된다. 올해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인 한강은 2019년 봄 자신의 원고를 유리 서랍 안에 넣어뒀다. 유리 서랍 안에 담긴 저 글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하얗게 부서지는 무언가를 감각하게 된다.
2015년부터 문학 기자로 일해오면서 매해 10월 첫째 주 목요일 오후 8시면 이국의 땅에서 발표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기사를 썼다.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작가의 이름이 등장하면 제한된 시간 안에 한 편의 글을 써내기가 고통스러웠다. 올해는 조금 달랐는데, 한강의 이름이 호명되기 직전, 나는 약 열흘에 걸쳐 한강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다. 마지막 답신이 도착한 직후에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되면서 그때의 기억은 내가 생을 다하는 날까지 잊기 어려운 사건이 됐다. ‘2024년 10월 10일 오후 8시 00분 15초.’ 그 시각 이후로 나는 글의 영원성과 찰나성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어쩌면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근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욘 포세, 압둘라자크 구르나, 아니 에르노, 루이즈 글릭, 페터 한트케, 올가 토카르추크 등이었다. 이들을 모두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다름 아닌 ‘고통’일 것이다. 작가들이 말하는 고통은 작가의 내부에서 발아되지만 그 시작점은 그 작가가 살아온 사적인 관계망(동시대의 공간성)이거나 역사적 비극(연속된 시간성)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런가. 아니 에르노를 이해하려면 아니 에르노가 유년 시절 겪은 가족관계에서 출발해야 하며, 압둘라자크 구르나를 설명하려면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식민지 시기를 겪은 탄자니아에서 모든 대화가 촉발된다. 개인의 고통이든 역사적 비극이 남긴 고통이든, 인간의 숙제인 고통을 해석하는 방식을 통해서만이 소설은 자기 존재의 의의를 지닌다. 고통의 연원을 해석해내는 인류사 최선의 발명품이 소설이 아니던가. 한강은 그 고통을 ‘개인’과 ‘사회’의 양 측면에서 다뤄왔으므로 인류가 영원히 기억할 가치가 높은 것이다.
1994년 단편소설 <붉은 닻>으로 훗날 자신이 쓰게 될 모든 세계를 응축했던 한강의 문학은 이른바 ‘개인의 고통’에서 시작됐다. 이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보듯이 개인의 고통은 한 사람의 내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비극이란 역행 불가한 톱니바퀴 위에서 잔인하게 건축됐다. 스웨덴 한림원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마주 보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한강의 소설을 평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노벨상은 무엇인가. 노벨상은 작가의 성취와 작품 세계에 관한 인류 합의의 결과로 수용되지 않던가. 위대한 글은 사라지지 않고 곁에서 인간을 호흡하게 만드는 정신적인 공기다. 언어로 만든 날숨과 들숨의 앞뜰을 거닐다가 한 생을 다하는 일은 책을 가까이하는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문학 내 세계란, 즉 가공된 소설의 안쪽이란 본질적으로는 독자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허구의 처소다. 그러나 우리는 검은 눈으로 그 소설의 심부를 들여다보는 각자의 창을 하나씩 마음에 품고 산다. 작가에, 작품에 매료될수록 우리는 그 비정한 세계의 살기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문자라는 창문을 통해 우리가 그곳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그곳에서 무언극에 가까운 여러 인간의 형상을 본다. 그 인간은 그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다. 한강의 소설은 그 형상을 묘사한 글로 채워진다. 절대로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눈부신 경계 뒤의 언어-세계를 매만지기. 그것은 한강 소설이 독자에게 건넨 공감의 속삭임이 된다.
올해 12월, 나는 오슬로 다이크만 도서관에 방문할 계획을 품고 있다. 한강이 이번 인터뷰에서 최근까지 읽었던 책으로 소개한 <읽어버린 것들의 목록>의 작가 유디트 샬란스키의 또 다른 미공개 원고도 그곳에 숨겨져 있다. 엘리프 샤파크, 발레리아 아 루이셀리, 오션 브엉 등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러나 100년쯤 뒤에는 사라질 작가들의 글이 유리 서랍에 보관돼 있다. 저들이 쓴 문서들은 서로의 몸을 감추고 있고, 그것은 2114년에나 세상에 알려질 테지만 그 문서들이 어떤 언어를 알처럼 품었는지를, 이미 나는 감히 알 것만도 같다. 아직은 읽을 수 없는 글, 그러나 이미 읽어버린 것만 같은 글을 상상하면서, 진실한 독자는 오래전 그 글을 훔쳐본 것만 같은 환영에 매료된다. 한강 작가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줬다. 생을 다하고 나서도 우리는 저 검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리라, 역시 감히 생각해본다.
– 김유태(<매일경제신문> 기자, 시인)
■ 어그로의 세상에서
마침내 렉카들이 견인되고 탈덕수용소가 구치소에 수감됐다. 주로 타인의 불행이나 결점 혹은 가짜 뉴스를 통해 수익을 얻는 사이버 렉카의 대표 격인 구제역, 전국진, 카라큘라 등과 아이돌을 헐뜯으며 어그로를 끈 탈덕수용소가 법적 심판대에 연달아 올랐다. 그간 이들의 끔찍한 해악에도 만성화된 문제가 드디어 도려내진 것이다. 일단 인과응보다.
사람들은 점점 유튜브가 누구나 카메라만 있으면 돈을 버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왔다. ‘직장인 2대 허언증’으로 “퇴사할래”와 “유튜버 할래”라는 우스갯소리가 한동안 떠돌았지만, 다들 한밑천 벌 생각에 호기롭게 산 촬영 장비를 헐값에 팔아넘기는 경험이 쌓인 것이다. 온라인 세상에선 관심도 돈이 된다는 ‘관심 경제’라는 개념은 관심이 값비싼 디지털 광물이라는 점을 알려주지 않았다. 유튜브 월드에서는 관심을 일단 끌기만 하면 그 수단과 방법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아무리 누군가가 목숨을 끊을 만큼 혐오를 조장하더라도 고소 및 수사를 위한 신원을 특정하기가 몹시 까다로웠다. 사실상 사이버 렉카들이 마음껏 활개 칠 수 있던 치외법권 지대였다.
하지만 먹방 유튜버 쯔양이 그간 사이버 렉카들의 협박으로 수천만원을 갈취당했다는 폭로로 드러난 사실은, 플랫폼상에서 노력해 관심을 얻더라도 정작 그 이익은 다른 힘 있는 자가 뜯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이버 렉카들의 인과응보는 한편으로 ‘쩐(錢)과응보’였다. 탈덕수용소 사례처럼 대형 엔터테인먼트사 차원에서 높은 수임료를 들여 미국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쯔양처럼 1,000만여 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대형 유튜버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할 때에야 유튜브 측에서 겨우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구속으로 ‘어그로가 돈이 된다’는 세계관이 막을 내린 게 아니라 이제야 제동이 걸렸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사회 차원에서 새해 다짐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사이버 렉카들에 대한 더 강력한 처벌 마련? 어그로에 관심을 주지 말자는 캠페인? 모두 중요한 방안들이다. 하지만 이쯤이면 우리가 어그로에 이끌리는 음침함부터 제대로 대면해야 하지 않을까. 뒷담화가 본능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어그로는 단지 비방이 아니라 ‘정의 구현’이나 ‘인성 논란’으로 둔갑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파탄 난 가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클립들은 ‘상담’이라는 명목으로 높은 조회수를 올리고 있다. 이런 ‘정의, 교육, 치료’와 같은 명분은 어그로에 빠진 죄책감을 줄여주거나 심지어 빠진 줄도 모르게 만든다. 이렇게 어그로에 부착해서, 더욱 이끌리게 하는 구실들부터 찾아보자.
– 도우리(대중문화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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