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열린 샤넬 2024-25 크루즈 컬렉션.
지난 5월 마르세유에서 한 차례 열린 쇼의 레플리카 쇼였지만, 이 일정은 런웨이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홍콩이라는 도시와 그곳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여정이었다.
홍콩의 밤거리
어스름이 깔린 어느 저녁, 고층 호텔의 방 안. 여자가 움직인다. 테이블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거기서 펜과 선글라스를 꺼낸다. 그리고 테이블에서 집어 든 스케치북을 열어 자신의 드로잉을 들여다본다. 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해가 저물고,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그녀를 바라보는 한 남자가 눈에 띈다. 창 너머 건너편 건물 안에 선 남자. 마침내 눈이 마주친 두 사람. 남자는 조명을 깜빡여 여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애쓰고, 여자는 남자와 함께 춤추는 장면을 상상하며 그의 모습을 스케치북에 담는다. 그리고 그 밤, 두 사람은 길에서 우연히 스친다. 오드리 디완(Audrey Diwan) 감독이 연출한 2분 25초의 짧은 필름, <모던 플러트(Modern Flirt)>의 몇몇 장면이다. 프랑스 영화감독 오드리 디완은 감독 데뷔 이전에 저널리스트와 영화 각본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2021년, 자신의 첫 장편 영화 <레벤느망>을 통해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그녀는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이야기 <사건>을 스크린에 옮겨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 문제를 환기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그리고 이번 샤넬 쇼를 위한 영상에서 우리는 카롤린 드 메그레와 함께 <How to be Parisian> 을 썼던 그녀다운, 스타일리시한 문법의 장면을 보게 된다.
홍콩 배우 원예림과 프랑스 배우 뱅자맹 부아쟁이 출연한 짧은 필름에서 우리는 홍콩에 당도한 샤넬의 2024-25 크루즈 컬렉션을 목격할 수 있다. 커다란 리본 장식 화이트 드레스, 연두색 트위드 재킷과 스커트, 그리고 버지니 비아르가 ‘스쿠버 턱시도 슈즈’라고 명명한 반짝이는 검은색 플랫슈즈까지. 그러나 이 영상의 주인공은 그녀의 아름다운 스타일만은 아니다. 중요한 건 고층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홍콩의 풍경, 홍콩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색채, 그중 백미는 두말할 필요 없이 홍콩의 밤거리다.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가득 담은 크루즈 컬렉션에 오드리 디완의 터치를 더하자 신비롭고 누아르적인 홍콩 스타일로 재해석되었다는 점이 가장 놀라운 점. 쇼가 열리기 전날인 10월 4일, 쇼 스튜디오(Shaw Studio)에서는 샤넬 하우스와 영화의 특별한 인연을 기리는 토크 세션 ‘홍콩 프레임’이 열렸다. 1930년대에 설립된 이 스튜디오는 홍콩이 ‘동양의 할리우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설적인 장소. 평론가 겸 저널리스트인 클라렌스 추이가 진행하고, 오드리 디완 감독(그녀는 최근 홍콩에서 자신의 최신작 <에마뉘엘(Emmanuelle)>을 촬영하기도 했다)과 미술 감독 및 영화 편집자 장숙편, 감독 겸 각본가 노리스 웡이 참석했다. 수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영화 제작자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홍콩의 영화 유산에 대한, 그리고 현대 홍콩 영화계를 이끌어갈 새로운 인재에 대한 토론이 뜨겁게 이어졌다.
그리고 여행은 계속된다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은 ‘도시’에 주목한다. 도시의 풍경과 그곳의 사람들, 그들이 지나온 흔적과 다음 세대의 가깝고 먼 미래까지. 지난 5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처음 선보인 2024-25 크루즈 컬렉션이 홍콩으로 이동해 레플리카 쇼를 선보인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기대한 것도 그랬다.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쇼가 열릴까, 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재밌는 일을 벌일까 하는 궁금증. 11월 5일 저녁, 지드래곤, 페넬로페 크루즈 등 샤넬의 앰배서더와 2,000여 명의 게스트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쇼 장소는 홍콩 디자인 인스티튜트(이하 HKDI)의 7층과 8층의 복도였다. 홍콩의 시그너처라고 할 수 있는 장소들, 이를테면 빅토리아 하버나 마천루 같은 곳이 아닌, 학교 복도에 런웨이를 설치하며 하우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패션 교육 분야를 향한 하우스의 애정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샤넬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HKDI와 3년간의 파트너십을 맺고, 학생들이 디자인과 장인 정신 분야에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지지 기둥이 없는 3차원 철골 구조물에 매달려 있어 ‘천국의 계단’이라 불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약 10m 높이까지 올라 7층과 8층에 나뉘어 착석한 게스트들은 콘크리트와 유리, 강철로 지어진 혁신적인 형태의 건물 위에 앉아,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이쪽과 저 너머를 걷는 모델들을 바라본다. 이번 컬렉션의 핵심 코드는 바다, 그리고 스포츠였다. 바다 생물을 모티프로 장식한 드레스와 샤넬 리본으로 장식된 수영복, 다이빙 후드를 더한 클래식한 트위드 재킷 등 해안가의 편안함으로 가득한 컬렉션이었다. 버뮤다 팬츠와 바이커 쇼츠, 그리고 오버사이즈 베이스볼 재킷 등의 아이템이 스포티한 무드를 더하고, 후드와 캥거루 주머니 디테일, 웨트 슈트를 연상시키는 절개도 등장했다. 거기에 심해 모티프. 작은 물고기나 어망, 조개껍데기와 진주조개 같은 바다 생물 모티프까지 등장해 쇼는 홍콩의 밤에 떠난 흥미로운 심해 탐험 같았다! 그 외에도 쇼가 열리기 직전에 학교 1층의 광장에서 열린 라디오 샤넬, HKDI 학생들의 작품들을 전시한 <상상의 어딘가(Imagine an Elsewhere)> 전시, 그리고 쇼 스튜디오에서 열린 공연과 애프터 파티까지. 샤넬이 컬렉션을 디자인하는 것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인재를 지원하고 창작 과정에 참여하고, 다양한 분야의 유산의 전승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 여정은 멈추지 않는다. 항저우에서 선보일 공방 컬렉션, 1월의 오트 쿠튀르, 코모 호수에서 열릴 다음 크루즈 쇼 그리고 그 이후까지, 샤넬의 특별한 여행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