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스키에르의 아메리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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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팜스프링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제스키에르의 메시지가 적힌 초대장이 루이 비통 2016 크루즈 쇼 참석자들의 방에 배달되었다. 그리고 쇼 당일, 캘리포니아의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한 팜스프링스의 기념비적 건축물을 배경으로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새로운 황홀경이 펼쳐졌다.

밥 앤 돌로세스 호프 에스테이트에서 열린 루이 비통 2016 크루즈 컬렉션 피날레.

밥 앤 돌로세스 호프 에스테이트에서 열린 루이 비통 2016 크루즈 컬렉션 피날레.

“프리 시즌이 판매와 직결되다 보니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죠.” 지난봄 패션 하우스들의 크루즈 컬렉션 발표를 앞두고 한 브랜드 홍보 담당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녀는 날이 다르게 비중이 커지고 있는 크루즈와 프리폴 시즌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쇼 버전과 커머셜 버전의 간극이 큰 정식 S/S, F/W 런웨이에 비해 훨씬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구성되는 프리 시즌은 그 자체로 실구매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결국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컬렉션에 하우스들은 힘을 싣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프리 컬렉션을 두 번의 정식 컬렉션 이상의 초대형 규모의 쇼로 선보이는 패션 하우스가 늘고 있다. 게다가 이런 경우 ‘4대 도시, 패션위크 기간 내’라는 제약이 없으니 다들 극적인 쇼 장소 선점에 공을 기울인다. 특히 2016 크루즈 시즌은 지난 5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택한 샤넬의 칼 라거펠트부터 프랑스 리비에라의 피에르 가르댕 별장을 고른 디올의 라프 시몬스,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 한복판을 쇼장으로 변신시킨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까지 거대 패션 하우스들이 서로 ‘내가 제일 잘나가!’를 만천하에 공표하듯 세계 곳곳에서 쇼를 선보였다.

지난 5월 6일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에 위치한 ‘밥 앤 돌로레스 호프 에스테이트’에서 열린 루이 비통 2016 크루즈 컬렉션은 팜스프링스의 환상적인 풍광, 모더니즘의 걸작 건축물, 동시대적인 아름다운 룩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장관으로 극찬을 받았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 특유의 구조적 미학의 정수가 느껴지는 파리의 새로운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만 봐도 알 수 있듯 루이 비통 하우스와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공간과 장소의 힘을 신뢰하고, 어떤 하우스보다 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건축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5 크루즈 컬렉션에선 공간을 전부 전설적인 가구 디자이너 피에르 폴랑의 의자로 채우지 않았나. 당시 유려한 곡선의 컬러풀한 의자들은 쇼장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고 말이다. 그런 제스키에르가 선택한 이번 건축물은 1973년 존 로트너가 유명 코미디언 밥 호프와 그의 아내 돌로레스를 위해 디자인한 팜스프링스의 대저택이다. 존 로트너는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사사한 미국 건축가. 이번 쇼가 열린 저택과 대표작으로 꼽히는 로스앤젤레스 산 중턱의 ‘키모스피어 주택’에서 보이듯 미래적인 성향(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정체성이기도 한!)과 과감한 선 사용이 특징이다. 이번 쇼가 열린 저택은 종종 건축 관련 글에서 ‘데저트 모더니즘 (Desert Modernism)’이라 언급된다. 사막이 지형적 특징인 팜스프링스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3개의 구조적인 콘크리트 소재 지붕 구조물과 하늘을 향해 개방되어 있는 중앙의 구멍이 팜스프링스 사막 한가운데에 솟아오른 화산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 현대 건축의 요람이었던 팜스프링스의 랜드마크인 밥 앤 돌로세스 호프 에스테이트.

1970년대 미국 현대 건축의 요람이었던 팜스프링스의 랜드마크인 밥 앤 돌로세스 호프 에스테이트.

1970년대 미국 현대 건축의 요람이었던 팜스프링스의 랜드마크인 밥 앤 돌로세스 호프 에스테이트.

사실 코첼라 밸리 전 지역이 내려다보이는 장관으로도 유명한 이 으리으리한 저택은 쇼 장소로 공표되었을 때 이미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었다고 알려졌다. 한동안 타미 힐피거가 이를 구입했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그는 둘러보기만 하고 구입하진 않은 것으로 밝혀졌고, 루머의 진위를 확인한 LVMH 그룹의 아르노 회장은 쇼 당일 “이미 (타미 힐피거가 아닌) 다른 이에게 낙찰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저택에서 쇼를 하는 건 이번 한 번뿐일 겁니다”라고 말하며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쇼장을 찾은 미셸 윌리엄스가 “마치 달이나 다른 행성에 착륙한 것 같다”며 설렘을 드러내고, 칸예 웨스트 역시 “말을 길게 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 정말 황홀해요. 정말!”이라고 흥분한 어조로 말한 걸 보면, 존 로트너가 만든 이 공간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스키에르는 이 건축물에 관해 “처음 보았을 때부터 영감을 받았어요. 브루탈리즘 사조 (1950년대 형성된 건축 사조로 우아한 미를 추구하던 당시 건축에 반기를 들고 거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노출 콘크리트 등 가공하지 않은 재료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에 입각한 이 건축물은 굉장히 미니멀한 동시에 아기자기하죠. 거친 면과 부드러운 면이 공존하는 팜스프링스와도 일맥상통하고”라고 WWD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이렇듯 대척적인 요소를 세련되게 버무리는 건 사실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디자인 특징 중 하나다. 그가 자신의 성향과 상당 부분 닮은 멋진 건축물과 만나 발휘한 시너지 효과는 실로 굉장했다. 이번 시즌 나른한 우아함과 날것 같은 강렬함이 어우러진 멋진 컬렉션을 탄생하게 만든 원동력이 바로 이 건축물에서 비롯된 것. 특히 제스키에르는 이번 시즌을 준비하며 로버트 앨트먼 감독의 1977년 작 영화 <세 여인>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다고 밝혔는데, 영화 속 세 여자 주인공인 밀리, 핑키, 윌리의 낭만적인 옷차림은 이번 컬렉션에서 유연한 실루엣과 부드러운 컬러로 드러나는 서정성의 근간이 되었다. 그는 여기에 특유의 미래적 성향을 메탈 소재와 디테일로 더하고, 건축적인 구조가 살아 있는 단단한 피스들로 이질감을 첨가해 굉장히 여성적이면서도 강인한 룩을 완성한 것. 또한 팜스프링스의 사막과 주변 자연 모습에서 차용한 부드러운 색 팔레트와 야자수, 수영장의 물 표면 등을 형상화한 프린트들 역시 백미인데, 그는 이번 작업에 관해 백스테이지에서 ‘흥미로운 혼란’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쇼장으로 꾸민 모습.

쇼장으로 꾸민 모습.

사실, ‘흥미로운 혼란’은 쇼를 마주한 이들에겐 조금 다른 의미로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가 14개월 전 루이 비통 하우스에 부임한 이후 구축해온 대표 아이템들이 이번 쇼에선 종적을 감췄기 때문. 가장 먼저, 그의 첫 루이 비통 데뷔 컬렉션에 등장한 이후 매 시즌 다른 모습으로 런웨이는 물론 스트리트 신까지 평정한 시그너처 아이템인 A라인 미니스커트는 이번 쇼에 단 한 피스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아찔한 핫팬츠와 하늘거리는 롱스커트. 액세서리 부분도 만만치 않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앵클부츠와 첼시부츠, 메리제인 펌프스가 이번엔 투박한 사막 부츠와 일본 게다에서 힌트를 얻은 통 슬리퍼에 자리를 내줬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곱씹어볼수록 여유롭고 부드러운 휴양지의 느낌을 쇼 전반에 가미하는 데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진다. 또 가방 역시 이제껏 등장한 적 없는 캐주얼한 백팩이 대거 등장했는데, 이러한 변화를 통해 전해진 낯선 생동감은 제스키에르의 마력에 사로잡힐 고객층이 더 확대될 것임을 조용히 암시했다. 한 예로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쇼가 끝난 뒤 데이웨어로 충분히 활용 가능한 롱 드레스들에 반했으며, 이를 투박한 스니커즈나 부츠와 믹스한 방식도 너무 좋아 자기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십대 청춘들이 앞으로 제스키에르의 드레스와 슈즈를 사러 루이 비통 매장으로 달려갈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으니까.

셀레나 고메즈와 미셸 윌리엄스의 키스를 동시에 받는 행운남, 제스키에르.

미소가 귀여운 모델 말라이카 퍼스.

언제나 멋진 장만옥.

쇼가 끝난 뒤 파티장에 놀러 온 모델들.

쇼가 끝난 뒤엔 파티장에 놀러 와 스트레스를 날려버린 사랑스러운 모델들.

댄스 플로어에서 스파이스 걸스와 머라이어 캐리 등 90년대 디바들의 음악을 디제잉해 엄청난 흥을 선사한 그라임스.

제스키에르의 오래된 단짝, 샤를로트 갱스부르.

제스키에르의 새로운 뮤즈로 활약 중인 배두나.

모델이 아닌 셀레브리티로 쇼장에 참석한 미란다 커.

사랑스러운 셀레나 고메즈.

이번 쇼에는 위에 언급된 미셸 윌리엄스와 칸예 웨스트, 알리시아 비칸데르 외에도 많은 제스키에르의 크루가 함께해 의리를 과시했다. 카트린 드뇌브와 샤를로트 갱스부르, 장만옥, 나카타와 같은 오래된 친구들은 물론이거니와 배두나와 그라임스 같은 최근의 ‘절친’ 도 모두 제스키에르의 아메리칸 드림에 동참했다. 쇼 이후엔 파커 팜스프링스 리조트 야외에서 애프터 파티가 열렸다. 여기서 반전 하나. 쇼가 최고의 아트 뮤지엄에서 펼쳐진 퍼포먼스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우아하고 세련되게 열렸다고 해서, 애프터 파티도 같은 분위기였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람들이 신나게 놀고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제스키에르는 애프터 파티 장소를 마치 축소판 놀이동산처럼 꾸몄다. 추억의 범퍼카부터 DDR을 비롯한 각종 게임기가 설치된 오락실 존 (심지어 인형 뽑기 박스 안엔 루이 비통 지갑과 클러치가 가득!), 그리고 패션 피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빼놓기 아쉬운 즉석 사진 부스, 그라임스가 디제잉하는 댄스 플로어까지! 루이 비통 놀이동산은 쇼장에서 넘어온 멋진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면, 밤 10시 30분 즈음 소음 문제로 경찰까지 출동했음에도 새벽 1시까지 놀이동산을 폐장할 수 없었다고. 기획의 출발부터 짜릿한 마무리까지, 꿈의 휴양지 팜스프링스와 더없이 어울리는 이벤트가 아닐 수 없었다

에디터
이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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