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클리프 아펠이 초대하는 댄스의 세계

김자혜

무대를 세운다.

무대 위에서 한바탕 공연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모여 공연에 관해 논하고 춤을 배운다. 그리고 함께 같은 춤을 춘다. 안무가와 댄서와 관객이 한데 모여 즐기는 흥겨운 축제. 그것이 메종 반클리프 아펠이 우리를 컨템퍼러리 댄스의 세계로 초대하는 방식이다.

라시드 우람단, 샤요 무용수, <익스트림 바디>.
마틸드 모니에, <소페라, 설치 작품>의 워크숍 장면.
올라 마치에예프스카, <봄빅스 모리>
크리스티앙 리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마르코 다 실바 페레이아, <카르카사>.
올라 마치에예프스카, <로이 풀러: 리서치>

10월의 교토에서

하늘색 셔츠에 블루 팬츠를 입은 남자, 그리고 페이즐리 무늬 셔츠에 복숭아색 팬츠를 입은 또 다른 남자. 둘은 손을 잡고 무대로 걸어 나왔다. ‘무대’라기보다는 ‘댄스 플로어’라 부르는 게 알맞을, 관객과 눈높이가 비슷한 공간. 한 손을 맞잡고 다른 한 손은 어깨에 두른, 기본 자세를 잡은 뒤 두 사람은 사각형을 그리며 무대를 누비기 시작했다. 서로를 홀드한 채 돌다가, 스텝을 밟다가, 음악이 빨라지고 분위기가 고조되자 무대 중앙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팔을 단단히 붙들고 다리를 교차해 고정한 채 빠른 속도로 빙빙 도는 두 사람. 팔을 편 채로 서로 붙들고 팽이처럼 회전하다가 이번에는 웅크린 채 한 덩어리가 되어 회전한다. 원심력에 저항하며 서로를 끌어당기다가 다시 템포를 맞춰 넓은 무대에 사각형을 그리며 천천히 춤추며 돌기 시작했을 때, 둘은 환한 얼굴로 웃기 시작했고, 몇몇 관객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알레산드로 시아로니의 작품 . 이탈리아의 전통춤 폴카 키나타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알레산드로 시아로니의 작품 . 이탈리아의 전통춤 폴카 키나타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알레산드로 시아로니의 작품 . 이탈리아의 전통춤 폴카 키나타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10월 5일 오후, 교토에서 만난 이 공연은 알레산드로 시아로니(Alessandro Sciarroni)의 <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 포 미(Save the Last Dance for Me)>라는 작품이다. 시아로니는 이 작품을 통해 이탈리아 민속춤, 폴카 키나타(Polka Chinata)를 탐구한다.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가진 폴카 키나타는 일반적으로 남성이 무릎을 구부린 채 빙글빙글 도는 구애의 춤이다. 2017년, 시아로니가 영상을 통해 이 춤을 처음 접했을 때, 그는 즉시 그 움직임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이 전통춤을 되살리기 위해 듀엣 공연과 워크숍을 만들었다. 원래는 흥겨운 아코디언 곡에 맞춰 추는 춤이지만, 그는 이 춤을 일렉트로 스윙 장르의 오리지널 스코어와 결합했다. 그리고 한 차례의 춤이 끝나면, 두 사람은 전통 음악에 맞춰 다시 한번 춤춘다. 오리지널 버전을 관객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보여주는 절박한 몸짓과 숨소리, 땀과 환한 웃음. 사랑에 빠지고 싶게 만드는 춤이었다.

교토 아트 센터의 강당에서 열린 공연. 관람객과 비슷한 눈높이의 댄스 플로어를 두 댄서가 누비는 인상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10월 4일부터 11월 16일까지, 교토에서 열린 ‘반클리프 아펠의 댄스 리플렉션’. 2022년에 시작된 이 특별한 축제는 세계를 돌며 매년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열린다. 2022년 3월, 런던에서 첫 에디션을 선보인 이후 2023년 5월에 홍콩에서, 같은 해 10월에는 뉴욕에서 열렸다. 그리고 올해 교토에서 그 여정을 이어갔다. 전 세계의 파트너들과 협업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반클리프 아펠은 안무 유산과 현대적 댄스 레퍼토리를 지원하고, 많은 관객에게 소개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예술적 세계의 대중성을 장려하는 것이다. 댄스 리플렉션은 크게 세 가지 활동으로 운영된다. 그 첫 번째는 아티스트와 기관이 계속해서 레퍼토리 예술에 관심을 기울이고 현대 작품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 두 번째는 매년 기존의 작품과 함께 신작을 소개하는 안무 이벤트를 펼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활동은 그것을 퍼뜨리는 일.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의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다. 공연을 ‘보는 일’에 그치지 않고 그 춤을 직접 배워보는 기회를 주는 ‘워크숍’을 여는 이유다.

반클리프 아펠과 함께 춤을

“댄스는 반클리프 아펠이 긴 시간 소중히 여겨온 영역이기에, 최선을 다해 댄스 레퍼토리와 안무 창작을 지원하고자 한다”는 니콜라 보스 회장의 말처럼, ‘춤’은 메종이 오랫동안 소중히 생각하고 꾸준히 공헌해온 영역이다. 1920년대 초, 창립자 중 한 명이자 발레 애호가인 루이 아펠이 조카 클로드 아펠을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 데려가는 일을 즐겼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1940년대 초에는 반클리프 아펠의 발레리나 클립이 처음 공개되었다. 메종과 무용계의 관계는 클로드 아펠이 뉴욕 시립 발레단의 공동 창립자인 안무가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을 만나면서 더욱 끈끈해졌다. 그 긴밀한 파트너십은 1967년 4월 뉴욕에서 초연된 발란신의 발레 공연 <주얼스(Jewels)>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세 가지 주제를 담은 비서사극에서는 각 젬스톤이 각 막의 주인공이 되었다. 각 파트는 여러 작곡가의 작품들로 빛났는데, 에메랄드에는 가브리엘 포레, 루비에는 스트라빈스키, 다이아몬드에는 차이콥스키 곡이 매칭되었다. 그리고 2012년, 아펠과 발란신의 협업을 연상시키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만남이 성사된다. <블랙 스완>의 안무를 담당한 안무가 벤자민 밀레피드와 메종의 만남. L.A. 댄스 프로젝트(L.A. Dance Project)의 협업 작품인 발레 시리즈 <보석(Gems)>이 그것이다. 2013년 5월 23일 프랑스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선보인 , 2014년 12월 1일 마이애미 구스만 센터의 올림피아 시어터에서 공연된 , 그리고 2년 뒤 런던의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 선보인 까지, 3부작으로 구성되었다. 반클리프 아펠은 벤자민 밀레피드의 LA 댄스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것 뿐 아니라 페도라 자선 협회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안무 분야의 인재를 육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2015년 이후에는 매년 ‘페도라 – 반클리프 아펠 발레상’을 통해 탁월한 발레 신작에 상을 수여하고 있다.

올리비아 비가 반클리프 아펠 댄스 페스티벌에서 포착한 장면들. 댄서들의 움직임 중 아름다운 찰나를 담았다.
올리비아 비가 반클리프 아펠 댄스 페스티벌에서 포착한 장면들. 댄서들의 움직임 중 아름다운 찰나를 담았다.

다시, 10월의 교토에서

교토로 돌아가보자. 같은 날 저녁 교토 롬 시어터에서 열린 공연 <룸 위드 어 뷰(Room with a View)>. 관객들이 모두 착
석하기 전, 그러니까 공연 시작 전부터 몇몇 댄서가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대리석 채석장을 재현한 거대한 무대 중앙에는 디제이 부스가, 그 앞에는 프로듀서이자 음악감독인 로네(Rone)가 관객을 등지고 서서 디제잉을 하고 있다. 이후 댄서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해 취한 행동은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두셋씩 모여 서로를 끌어당기고 키스하고 허그했다가 이내 밀치고 넘어뜨리고 때리고 발로 짓밟기도 한다. 어떤 이는 무대 한구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어떤 이는 갑자기 옷을 벗어버리고 전라로 무대 위를 헤맨다. 혼란스럽고, 거칠고,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는 수많은 장면. 넓은 무대에 여러 가지 장면이 동시에 전개되며 관객은 혼란에 빠졌다. 16개 국적의 28명의 댄서. 그들은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두셋씩 연결되고, 점차 여러 개의 그룹으로 연결되고, 그리고 마침내 하나가 되어 노래한다.

(라)호드 ((LA)HORDE)를 이끌어가는 세 아티스트.
지난 10월 5일 저녁 교토 롬 시어터에서 열린 공연 <룸 위드 어 뷰>의 한 장면.

2020년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마르세유 국립 발레단과 함께하는 ‘(라)호드((LA)HORDE)’ 의 작품이다. 마린느 브루티(Marine Brutti)와 조나단 드브로워(Jonathan Debrouwer) 그리고 아서 하렐(Arthur Harel). 세 명의 아티스트로 구성된 (라)호드는 주로 사람의 신체에 초점을 맞춘 비디오 설치나 공연, 영화를 제작하는 팀이다. 그리고 이 작품, 에서는 그 중심에 로네를 세웠다. “(라)호드의 작품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이들이 작품에 여러 가지 차원을 결합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몸의 움직임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풍성한 음악이나 분위기, 시각적 요소는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 각 요소가 곧 전체를 이루는데, 저는 그것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중층적인 서사가 흐르죠. 작품을 시각적으로만 보더라도 에너지를 느낄 수 있지만 이것들이 우리 주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세계는 때로 순수한 혼돈일 수 있지만, 인간이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죠.” 반클리프 아펠의 댄스 및 문화 프로그램 디렉터 세르주 로랑의 말처럼, 이 작품의 마지막, 댄서들이 하나로 모이는 신을 보며 우리는 매료될 수밖에 없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모던 앤 컨템퍼러리 안무 레퍼토리 분야를 어렵게 느끼는 이들을 초대하며, 세르주 로랑은 말한다. “저는 페스티벌을 기획할 때 사람들을 여정(Journey)에 초대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흥미를 느끼는 건 사람들이 와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이에요. 마치 여행할 때처럼요. 컨템퍼러리 아트 분야에서는 무엇을 만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워요.” 우리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다주는 경험. 그 시작은 10월 말 반클리프 아펠이 SPAF(서울 퍼포밍 아트 페스티벌)과의 협업으로 서울에서 선보일 댄스 리플렉션일 것이다. 반클리프 아펠이 후원하는 아티스트 지젤 비엔이 선보이는 폐막작. 그리고 2025년에 예정된 더 큰 규모의 댄스 리플렉션 역시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세르주의 말처럼, 움직이지 않고 좌석에 앉은 채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도 있을 테니.

<룸 위드 어 뷰>의 춤을 직접 배워보는 워크숍 장면.
로네의 디제잉과 컨템퍼러리 댄스, 서커스 예술을 한데 담아 선보이는 작품, <룸 위드 어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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