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믿고 큰 꿈을 향해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채우며 나아간다.
미국 NCAA 명문 곤자가 대학교 소속의 농구선수 여준석은 오늘도 코트를 누빈다. 끝장을 볼 때까지.
<W Korea> 지금 시즌 오프 기간이죠. 미국에서 잠시 한국으로 들어온 사이 이렇게 <더블유>와 만났네요. 10월부터 다시 시즌이 시작되는데, 선수에겐 지금이 방학인 셈이죠?
여준석 맞아요. 이번 방학엔 모처럼 가족도 만나고 일도 볼 겸 한국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체격이 부쩍 더 우람해졌네요? 작년 인터뷰에서 체중을 10kg 정도 늘리고 싶다고 했어요.
지금은 100kg 정도 나가요. 미국에 가기 전에는 96kg을 유지하다가, 미국에 간 후 93kg까지 빠졌어요. 그런데 저와 키가 비슷한 미국 현지 농구 선수들은 보통 100~105kg 정도 나가더라고요. 체중은 힘과 비례하니까, 코트에서 몸싸움할 때 유리할 것 같아서 살을 더 찌웠어요.
작년 초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농구 명문 곤자가 대학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알렸어요. 어느덧 미국에서 생활한 지 2년을 맞아가는데, 지내보니 어떤가요?
초반에는 외롭기도 했는데, 영어도 많이 늘었고, 이제는 편해요. 마음가짐도 달라졌고요.
미국 대학 농구는 운동은 물론 학업 성적도 중요시하잖아요.
맞아요. 학업을 무척 중요하게 여겨요. 하루에 3~4시간 꽉 채워 운동하고, 그 외에는 자유 시간인데 학생마다 추가 운동을 하는 친구도 있고, 과제가 많으면 공부하는 친구도 있어요.
학업 성적은 어때요?
나름 점수를 잘 받는 것 같아요. 업다운이 있기는 한데, 학점은 3.8 정도예요.
쉴 때는 뭐 해요?
팀 동료나 친구들과 모여서 농구 게임 ‘NBA 2K’ 도 하고, 혼자 있을 때는 유튜브를 자주 봐요. 재밌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으면 외로울 새 없이 시간이 훌쩍 가요.
유튜브에 본인 이름을 검색도 해보나요?
거의 안 하는 편이에요. 동영상에 나온 저를 보면 뭔가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운동을 하는 제 모습이 아닌 영상은 잘 못 보겠어요. 경기 모니터링은 꼼꼼히 해요. 부족한 점이 있으면 기억해두고 더 나은 플레이를 위해 노력하죠.
최근 곤자가 대학에서 첫 시즌을 마쳤어요. 어떤 경험이었나요?
팀에서의 제 위치나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고,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 알게 된 계기가 됐어요. 보완해야 할 점도 많고, 성장하고 싶은 목표도 생겼죠.
장점과 보완하고 싶은 점은 뭐예요?
팀에 스몰 포워드 포지션이 거의 없어요. 저는 체격이나 플레이 스타일이 ‘정석 3번(스몰 포워드에 해당하는 등번호)’에 가까운데, 이 포지션에서 제가 더 성장하면 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요. 보완하고 싶은 점은 수비예요. 한국에서 어렸을 때부터 농구를 했는데, 그동안 수비에 신경을 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리그에서는 제가 키와 체격이 큰 편이라 좀 편하게 수비에 임한 걸 수도 있고요. 미국 대학 리그에 오니 저보다 체격이 좋은 친구들이 많아 수비를 다시 배우고 있어요.
곤자가 대학 농구팀은 NBA 명예의 전당 헌액자도 배출했고, 최근에는 NCAA 토너먼트 결승에 두 차례나 진출하는 등 기세가 좋죠. 함께해보니 어떤 팀 같나요?
굉장히 체계적인 팀이에요. 팀 전술은 물론 개인 플레이도 어느 정도 협의 후 진행하더라고요. 선수 개인의 역량에 의지하기보다는 ‘팀 농구’를 더 우선시하는 것 같아요. 공격할 때는 가드와 센터를 통한 ‘픽앤롤(공격 시 스크린을 통해 매치 상대를 바꿔 미스 매치를 유발하고 이를 통해 득점을 뽑아내는 공격 전술)’을 자주 활용하고요. 이 전술에만 그치지 않고 외곽에서 슛도 쏠 수 있게 포지셔닝하는 등 짜임새가 탄탄하달까요. 여러 의미로 농구를 새로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매일 설레요. 새로워서.
작년 한 인터뷰에서 “2학년이기는 해도 첫 시즌이고, 미국 무대에 데뷔하는 거니까, 큰 욕심보다는 팀이 승리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라고 했어요. 돌아보면 어떤 시즌이었나요?
선수로서 제가 해야 할 것을 파악하는 시기였어요. 적응기였달까요. 처음에는 영어 실력도 어설퍼서 감독님, 코치님, 동료 선수들의 응원과는 별개로 소통이 어렵기도 했고요. 개인적 성과라면 아쉬운 면도 있지만, 괜찮아요. 더 열심히 할 거니까요.
코치 호르헤 샌즈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죠. “여준석은 극도로 이타적이고, 자신보다 팀을 우선시하는 좋은 선수다. 하지만 이 부분은 장단점이 있다. 코트에서 동료들의 체력과 조화를 방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좀 더 공격적이길 원한다.” 어떻게 다가가나요?
샌즈 코치님은 제게 “더 공격적으로 해도 된다”라는 말을 자주 하세요. “슛을 쏠 생각을 먼저 해야지, 패스를 먼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라고도 하시고요. 선수로서 저보다 슈팅이 더 좋은 동료에게 찬스를 주려는 건데, 코치님은 반대로 제 기량을 믿어준다는 점에서 감사하죠. 참 좋은 분이에요. 호평이든 혹평이든 도움이 될 얘기도 자주 해주시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이에요.
팀에서 꼭 맡고 싶은 포지션은 무엇인가요?
3번이죠. 스몰 포워드. 더 욕심을 낸다면 슈팅 가드도 겸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물론 슛 연습을 더 해야겠지만요. 슛 성공률도 높은 스몰 포워드는 팀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되는 포지션이니까요. 그런데 사실 어떤 포지션이든 괜찮아요. 어떤 포지션으로 임해도 그 임무를 온전히 수행하는 선수가 되고 싶거든요.
팀에서 유독 손발이 잘 맞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포인트 가드인 라이언 넴하드(Ryan Nembhard)라는 선수요. 성격도 잘 맞고, 패스를 비롯한 플레이 스타일도 저와 합이 좋은 친구예요.
국제 대회를 제외하고는 지금껏 가장 난도 높은 리그에서 경쟁하고 있는 셈이에요. 경험해보니 어떤가요?
경기에 직접 뛰는 것도 좋고,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만큼 좋아요. 배울 게 많다고 느끼는 것 자체로 행복을 느낀달까요? 이렇게 체계적인 환경에서 대단한 선수들과 부딪치고 있다는 것도 기쁘고요.
지금까지 농구 코트에서 부딪쳐본 선수 중 가장 놀라운 선수는 누구인가요?
안톤 왓슨(Anton Watson)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작년 저희 팀에서 NBA 드래프트를 통해 보스턴 셀틱스에 입단한 선수죠. 1년 정도 같이 운동했는데, 안톤의 플레이를 보며 배운 게 많아요. 제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게 외곽 수비인데, 안톤은 수비를 참 잘해요. 감독님, 코치님도 믿고 맡길 만큼 기량이 탄탄한 선수죠. ‘안톤만큼 좋은 플레이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하는 선수였어요.
NBA를 비롯한 미국 농구계를 떠올리면 화려하고 자유로운 플레이가 연상돼요. 슬램덩크와 같은 유려한 플레이뿐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듯한 신체 기량을 갖춘 괴물 같은 선수들이 포진한 리그죠. 직접 보니 어때요?
‘어떻게 저런 몸놀림을 할 수 있지?’ 싶을 만큼 대단한 기량의 선수가 즐비한 곳이죠. 미국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제가 자란 한국보다 농구를 더 자유롭게 즐기며 기술을 익혀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미국 농구계가 더 좋다는 건 아니에요. 장단점이 다른 거죠.
2년 전까지 고려대학교 농구부 소속이자, 국가대표로 활약했어요. 국내 최고의 유망주로 여준석 외의 얼굴을 떠올리긴 힘들었죠. 그러다 불쑥 더 큰 꿈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요. 눈앞에 놓인 비단길을 마다하고 다시 모험을 떠나기로 한 결정은 무엇에서 비롯했을까요?
도전하는 게 좋아요.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는 데 행복을 느끼거든요. 한국 리그도 좋고 멋지지만, 미국은 최고 선수들이 모이는 최대 규모의 리그잖아요. 거기서 부딪쳐보고 싶었어요.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지 몸으로 깨닫고 싶어요.
이제 대학 생활이 2년 정도 남았어요. 그동안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팀에 잘 적응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그다음은 더 나은 선수가 되는 것. 그 외 다른 목표는 없어요.
NBA 드래프트는 언제쯤 도전하고 싶어요?
스스로 준비됐다고 판단할 때요.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는 ‘얼리(드래프트)’로 KBL에 도전하면 어떠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저는 고려대학교에 진학했거든요. 스스로 프로 무대에서 뛰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어요. NBA 드래프트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여전히 제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하거든요. 아직은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더 열심히 해야죠.
농구 선수로서 본인의 장단점을 꼽는다면요?
미국 농구계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피지컬의 선수라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단점은 아직 농구에 대해 배울 게 많다는 거예요. 팀플레이, 수비, 더 좋은 패스 등등. 이 점은 농구가 재밌는 이유이기도 해요. 신체 조건이 좋아도, 머리를 잘 써야 더 나은 플레이를 할 수 있으니까요.
초등학생 때 키가 190cm, 중학생 때 2m가 넘었고 농구에 유리한 신체 조건을 갖춘 학생이었어요. 또래 중에는 보기 드문 ‘빅맨’이자 유망주였고, 농구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소년체전 결승에서 50득점, 34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등 리그를 휩쓸었죠. 고등학교 농구부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어렸을 때부터 탁월한 신체 조건을 갖춘 선수였다는 점이 현재 스몰 포워드를 지향하는 여준석 선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생각해봤어요.
앞서 말한 수비를 더 배우고 싶다는 점 등이 제가 국내 리그에서 깨닫지 못한 농구의 면면이 아닐까 해요. 시간을 돌려 더 배우고 싶은 건 영어도 있어요.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해서 더 빨리 미국 무대에 도전하면 어땠을까, 이런 문화에서 농구를 하며 자랐다면 나는 어떤 선수가 됐을까, 생각도 하거든요.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한국에서 농구를 시작했기에 지금의 여준석이 됐고, 지금 미국에서 농구를 하며 부족함도 느끼지만,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는 건 한국에서 나름 좋은 성적을 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서예요.
지금의 여준석을 만드는 데 일조한 ‘이름’은 무엇이 있나요? 첫 번째는 여경익 선수, 저희 아버지요. 현역으로 뛰는 모습은 못 봤지만, 농구에 대한 애정을 보며 배운 게 많아요. 그리고 앤드루 위긴스. 제가 농구에 빠진 초창기에 높이 뛰는 점프에 매혹돼 있었는데, 당시 위긴스 선수가 120cm를 뛰었다는 뉴스를 보고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높이 뛸 수 있지?’라며 좋아했어요. 그리고 르브론 제임스도 오랫동안 멋지다고 생각했죠. 또 고등학생 때부터는 카와이 레너드가 롤모델이었어요.
키나 체격 면에서 유독 카와이 레너드와 당신이 겹쳐 보이기도 하네요. 이 선수의 어떤 점을 닮고 싶나요?
레너드의 장점 중 하나가 좋은 수비거든요. 선수 입장에서 수비는 득점에 비해 돋보이는 플레이가 아니니 덜 집중하고 싶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득점만큼 수비도 팀플레이에서 중요하죠. 카와이 레너드는 제 기준에서 플레이 스타일이 화려하기보다 묵묵하고, 득점과 수비 모두 잘하는 선수예요.
작년 한 인터뷰에서 올해 이맘때 여준석은 어떤 모습일지 묻는 질문에 “그 어느 때보다 미친 사람처럼 코트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을 것”이라 말했어요. 그렇다면 내년 이맘때는 어떨까요?
지난 시즌은 경기에 매번 출전한 건 아니라, 화면에 많이 잡히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훈련했죠. 내년도 마찬가지예요. 더욱 미친 듯이 훈련하고 발전해서 더 나은 선수가 되어 있을 거예요.
목표는 뭐예요?
농구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요. 미국에서 활동한 선배로서 후배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도 싶고요.
MVP나, 금메달리스트나, 명예의 전당 헌액자 같은 거창한 말이 나올 법도 한데.
MVP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오르면 너무 좋겠죠. 하지만 마냥 기대하고 싶지는 않아요. 될 때까지 열심히 하겠지만 ‘좋은 선수’가 되는 게 먼저예요. 그에 따르는 명예나 보상보다.
개인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쓰인 ‘Believe in Yourself and Dream Big’이라는 문장이 떠오르네요.
항상 마음에 품고 다니는 문장이에요. 큰 꿈을 갖고 나아가고 싶거든요. 어릴 때는 자신을 의심했던 것 같아요.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자주 자문했죠. 그런 생각은 기량에도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그런 생각을 뚝 끊고, 나를 믿고 꿈을 크게 그리며 과정을 즐기면서 나아가고자 마음을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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