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NI 2025 SS 컬렉션
디자인 분야에서 강세를 보였던 북유럽 감성이 패션계에서도 통할까? 최근 북유럽 태생의 토템(Tôteme)이 뉴욕, 세실리아 반센(Cecilie Bahnsen)이 파리, 홀츠베일러(Holzweiler)가 런던 패션위크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패션위크의 헤드 라이너였던 가니 역시 결단을 내렸다. 가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테 레프스트루프(Ditte Reffstrup)는 ‘코펜하겐은 항상 우리 DNA의 일부가 되겠지만, 지금 파리에서 우리의 진화를 보여줄 적절한 시기라고 느꼈다’며 25 SS 시즌, 파리 패션위크로 자리를 옮겨 브랜드의 새로운 챕터를 써 내려갔다.
팔레 드 도쿄의 갤러리 오트(Galerie Haute) 중앙에 거대한 은색 가마솥이 설치되고 무언가를 끓이는 듯 연기가 피어올랐다. 친환경 철학을 가진 가니답게 은색 가마솥은 재활용 알루미늄 소재를 활용해 수작업으로 만들었는데, 작은 철판을 거칠게 이어붙인 모양이 친근한 동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컬렉션의 테마는 ‘더 크래프트(The Craft)’. 미니스커트를 레이어링 한 크림 컬러의 팬츠 슈트를 시작으로 더블 벨트를 단 벌룬 소매의 트렌치코트, 라인스톤을 장식한 그린 데님 재킷 등이 더 견고해진 테일러링을 느끼게 했다. 밑단을 풍성처럼 부풀린 버블 드레스, 레오파드 코르셋이 비쳐 보이는 시스루 원피스, 오버사이즈의 스포츠 저지 등은 화려하고도 유쾌했다. 2017년부터 선보인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주름 장식 스카프와 피터팬 칼라가 사랑스러움을 더했다.
유쾌함 속에는 미래 세대를 위한 브랜드의 고심이 숨어있다. 가니는 지속 가능한 패션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무대 중앙에서 끓고 있는 은색 가마솥은 ‘친환경 소재를 만들어내는 연금술’을 상징했던 것! 가니는 ‘미래의 소재(Fabrics of the Future)’ 이니셔티브를 통해 혁신적인 바이오 직물과 지속 가능한 소재를 실험해왔다. 그 결과가 이번 컬렉션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면, 레더 코트는 100% 비건 레더인 올레텍스(oleatex)를 사용해서 만들었다. 형광 연두색 니트 베스트, 그레이 데님 재킷과 스커트는 의류 폐기물을 업사이클 해서 만든 서큘로스(circulose), 멜란지 컬러의 슈트 역시 의류 폐기물을 업사이클 해서 만든 어스 프로텍스(Earth Protex) 소재를 사용했다. 미니 백, 발레리나 플랫 슈즈, 부츠 등의 액세서리는 텐셀에서 만든 친환경 신소재 펠리노바(Pélinova)로 제작한 것이다. 가니는 지속 가능한 소재의 사용을 다른 디자이너에게도 독려하고 있다. 모카색 파티 드레스는 터키의 올리브오일 생산 폐기물에서 추출한 바이오텍스(Biotex), 스포츠 저지는 섬유 폐기물을 업사이클링 한 폴리에스터 소재인 사이코라(Cycora)를 사용한 것인데 이는 가니가 컨설팅하며 협업한 디자이너 니클라스 스코우고르(Nicklas Skovgaard)와 클레어 설리번(Claire Sullivan)의 작품이었다. 가니는 이들에게 컨설팅하는 동시에 ‘미래의 소재(Fabrics of the Future)’ 이니셔티브에 참여하도록 했다. 가니는 이번 시즌에만 30가지가 넘는 친환경 신소재를 실험했다. 환경 오염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패션 산업의 한 가운데에서, ‘책임감 있는 제작을 할 때 가장 심장이 뛴다’며 신념을 지켜나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테 레프스트루프의 행보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디테 레프스트루프는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머금고 모델들과 양손을 꼭 잡고 피날레를 선보였다. 자신감 있고 장난기 넘치는 가니의 에너지와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철학이 ‘엄근진’한 파리 패션계에서도 유쾌하게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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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of Gan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