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가 흔들림 없이 총을 쏠 수 있는 이유

김자혜, 윤다희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국가대표 김예지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정말 몰입하면요. 조용해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 공간에 저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표적지와 조준선밖에 안 보여요.”

순수한 열정과 지칠 줄 모르는 끈기, 그녀가 흔들림 없이 총을 쏠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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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유> 드디어 만났네요. 원래 몇 주 전 촬영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만날 수 없었어요. 몸은 괜찮아요?
김예지 많이 나아졌어요.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쉬지 않고 훈련한 데다 경기하면서 쌓인 피로가 컸는지 결국 쓰러졌는데, 저도 처음 겪은 일이라 당황했어요. 여러 가지가 겹친 것 같아요. 시차 때문에 잠을 못 잤고, 게다가 파리에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잘 못 먹었거든요. 저는 한식파인데 음식이 빵, 시리얼, 파스타, 고기밖에 없어서(웃음).

쉬지 않고 달리는 것 같아요. 어제도 제54회 봉황기 전국사격대회에서 금메달 두 개를 거머쥐었더라고요.
그게 제 일이니까요. 모든 일정은 대회와 훈련이 최우선이에요. 그래서 오늘 촬영도 대회가 끝난 뒤로 잡은 거고요.

서울에 있었어요? 아니면 전남에서 올라왔나요?
대회가 끝나고 전남 나주에서 하루 쉬고 올라왔어요. 오늘 운전해서 오다가 차 사고가 났어요. 바퀴가 헛돌면서 벽에 부딪혀서 조수석 쪽이 모두…그래서 사고 접수하고 올라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해요(웃음).

다친 데는 없어요?
보다시피 멀쩡해요. 사고 이후 그 차를 그대로 끌고 전주의 서비스센터에 맡기고 보험 접수까지 했고. 기차 타면 늦을 것 같아서 택시 타고 왔어요.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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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촬영을 해보자는 <더블유>의 연락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대체 왜?’ 수많은 올림픽 출전 선수가 있잖아요. ‘금메달리스트도 있는데, 왜 나한테 연락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일론 머스크도 그래요. ‘왜 나를 언급했을까?’ 지금도 궁금해요(웃음). 저는 중학생 때부터 총을 쏴왔고, 늘 똑같은데 말이죠.

파리 올림픽 당시 <뉴욕타임스>는 김예지 선수를 ‘한국 슈퍼스타이자 가장 쿨한 선수’라고 보도했어요. 무엇에도 쉽게 동
요하지 않을 것 같은 초연한 이미지가 워낙 강렬했어요. 스스로 생각할 때 김예지는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그냥 저예요. 총을 쏠 때의 모습도, 인터뷰할 때의 모습도 저예요. 사람들이 반전 매력이라고 많이 하는데, 총을 쏠 때 카리스마 있어 보인다고 해서 인터뷰할 때까지 그런 모습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속이는 거고요. 지금 보이는 모습 그대로가 김예지예요. 차 사고도 내고. 그러다 지각도 하는(웃음).

<LA 타임스> 와의 인터뷰에서 <존윅> 같은 영화에 카메오 출연 제안을 받는다면 어떨지 질문을 받았을 때 ‘사격에 집중하
고 싶다’는 소신을 밝혔어요. 그러곤 돌연 사격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각종 광고, 드라마, 영화 등에 나서기로 했죠.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요?

‘왜 사격이 뜨지 못했을까? 이 기회에 많이 알려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올림픽 스타들을 보면 대중이 기억해주는 시간이 아주 짧아요. 사격이 대중에게 각인되려면 다양한 매체에 많이 드러나야겠다고 생각했죠. 어쨌든 사람들은 사격하는 김예지, 총 잘 쏘는 김예지를 더 원할 거예요. 그래서 대회에는 계속 나갈 겁니다. 곧 경찰청장배 대회와 전국체전이 열릴 거고요.

사격 선수로서 이렇게 공개적인 발언대에서 가장 힘주어 말하고 싶은 건 뭘까요?
아무래도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연봉도 적고 연습할 사격장도 많지 않아요. 좋은 환경을 갖춘 사격장이 드물어서 제대로 훈련하기도 쉽지 않고요. 저는 국민들이 사격에 관심을 가지면 많은 부분이 해결될 거라고 봐요. 사격은 정말 매력적인 스포츠거든요. 데이트할 때나 심심할 때, 스트레스 받을 때 주변 사격장에 가서 한번 체험해보세요. 부상 위험도 없고, 자녀들의 집중력 향상에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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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가 생기네요. 사격 경기를 즐기는 관전 요소가 있을까요?
일단 사격 규정을 아는 게 중요해요. 사격은 남녀 모두 총 60발을 쏴요.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총 600점 만점이고요. 상위 8등 안에 들어야 결선에 갈 수 있어요. 그때부터는 소수점 싸움이거든요. 10점을 쏜다고 1등이 되는 게 아니에요. 10.1부터 10.9까지 소수점이 있는데, 가장 높은 소수점을 쏘는 사람이 메달을 따요. 결선에서는 긴장감, 압박감이 10배, 20배는 커져요. 그러다 보니 안 하던 실수도 하게 되고 1등 하던 사람이 갑자기 8등으로 뚝 떨어지기도, 꼴찌가 1등이 되기도 해요. 등수를 예측할 수 없어서 극적인 재미가 있죠.

파리 올림픽 때 주 종목인 25m 권총에서 한 발을 제한 시간을 넘겨 쏜 것이 0점으로 처리된 것도 그런 압박감 때문이었군요.
실제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에요. 긴장감 때문에 바닥에 쏘는 경우도 있고, 저처럼 시간 초과가 되기도 하고요. 아니면 너무 빨리 쏜 나머지 표적지를 넘어 아예 다른 곳에 쏘기도 해요.

그렇게 집중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나요?
영화 <원티드>를 보면 시간이 멈춘 듯한 장면이 나오는데, 비슷한가요? 정말 몰입하면요. 조용해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정말 그 공간에 저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표적지와 조준선밖에 안 보여요.

예지 선수도 긴장을 하나요?

긴장하죠. 근데 겉으로는 티가 안나요. 눈을 감고 ‘괜찮아. 실수해도 돼. 이번 발 실수해도 어차피 네가 제일 잘 쏠 거야’라면서 저를 다독여요. 올림픽 때 시간 초과가 됐을 때 타격이 컸어요. 진짜 울고 싶었어요. 다섯 발을 연달아 쏘는 사격인데 첫 발에 그 실수가 나온 거예요. 근데 저한테는 아직 네 발이 남았잖아요. 무너질 수는 없었어요. ‘바로 다음을 준비하자’라며 다시 집중했죠.

이런 침착함이 일상에서도 발현되나 봐요. 아까 사고 났을 때도 그렇고.
차 사고 났을 때도 똑같아요. ‘어쩔 수 없다. 일단 서비스센터 가고 촬영팀에 전화해서 사과한 뒤 방법을 찾자!’ 그렇게 대처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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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을 오래 할 수 있는 이유는 뭐예요?
큰 부상이 없고 격한 운동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극심한 체력 소비가 없어요. 시력은 안경을 쓰면 되니까 문제 되지 않고요.

펜싱 국가대표 구본길 선수는 “사람들이 펜싱 하면 칼싸움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거리 싸움이다”라는 말을 했어요. 사격
은 어떤 걸 겨루는 종목일까요?

사격은 집중력과 감각의 싸움이에요. 몰입이 필요한 종목이고 손과 손가락의 미세한 감각이 중요해요. 보통 한 번 훈련할 때 2시간 반 정도, 200~300발 정도를 쏴요. 그렇게 집중해서 쏘면 기진맥진해요. 허기지고 배고프고 졸리고 쓰러질 것 같고. 근데 어떡해요. 해야죠. 그렇게 새벽, 오전, 오후, 야간 훈련을 해요.

대체 왜 한국은 사격, 양궁 등 과녁을 맞히는 종목에 강할까요?
한국인이 목표를 정하고 집중하는 데 강한 것 같아요. 직장인이나 수험생을 봐도 시끄러운 카페에서 집중해서 일하고 공부도 하잖아요. 비슷한 이치 아닐까요?

예지 선수도 어렸을 때부터 집중력이 남달랐나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때 끈기만 있는 아이였어요. 끈기 하나로 올림픽까지 간 거예요. 중학생 때 체육 선생님이 사격 감독님이었어요. 우연히 사격장에서 총을 쏠 기회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사격을 하려면 부모님 허락을 받아오라는 거예요. 당연히 안 된다고 하죠. 아버지가 “공부는 1등부터 10등까지도 인정해주지만 운동은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반대했어요. 그래서 3일을 굶었어요. 사격을 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고집이었죠. 처음에는 멋있어 보이는 정도였는데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은 거예요. 3일째에 결국 허락해주시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그땐 힘이 없어서 총도 제대로 못 들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30kg도 안 되는 정말 작은 아이였거든요. 처음에는 0.5kg 되는 아령을 들고 훈련을 시작했어요.

그럼 언제부터 두각을 드러냈어요?
학교에서 제일 잘 쏘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되면서부터. 1년 만이죠. 체육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충북에서 제가 제일 잘 쐈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상비군으로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어요.

국가대표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글쎄요. 기분은 생각해본 적 없어요. 이번 올림픽에서도 무조건 메달을 따야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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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장을 벗어난 일상에서의 모습은 어때요? 선수촌, 혹은 집에서의 김예지는 어떤 사람인가요?
제가 첫째 딸이에요. 무뚝뚝한 딸이고 동생들한테는 엄한 언니죠. 보통 훈련이 끝나고는 후배들과 함께 저녁 먹고 씻고 바로 자요. 다음 날도 훈련해야 하니까.

그렇게 훈련만 하면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잘 모르겠네요.
네. 잘 몰라요. 저는 일론 머스크가 샤라웃을 했다고 했는데, 그 샤라웃이 뭔지도 몰랐어요. 트위터가 X로 바뀌었다면서요? 그것도 몰랐어요.

머릿속에 오로지 사격밖에 없군요.
잘 몰라요. 파리 올림픽이 끝나고 대통령과의 만찬 자리가 있었거든요. 그때 여자 아이돌 누가 온대요. 이름을 들었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어요. “그게 누군데?” 이러니까 옆에서 듣던 감독님이 “뉴진스! 뉴진스는 나도 안다!”라고 하셔서 다들 웃은 기억이 나요.

예전에 수능 최초 만점자가 인터뷰에서 “H.O.T.가 뭐죠?”라고 한 게 생각나네요. 이렇게 사격에 진심인데, 2028 LA
올림픽에서도 볼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기대해주세요. 제 목표는 항상 저예요. 끊임없이 저 자신을 넘어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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