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후 첫선을 보인 정규앨범 <Armageddon>이 세상과 선명하게 호흡하며, 에스파 카리나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전 세계를 누비는 월드투어 ‘싱크: 패러렐 라인’의 닻도 막 오른 참이다. 이 결정적인 순간, 카리나와 프라다의 만남은 어딘가 예견된 듯해 보였다.
<W Korea> 어젯밤 거의 기절하듯 잠들었을 듯해요. 두 번째 월드투어 ‘싱크: 패러렐 라인’의 서울 공연을 치렀
죠?
카리나 맞아요. 내년 초까지 이어지는 월드투어가 이제 막 스타트를 끊었어요. 어제 공연이 끝나고선 다 같이 회식도 했어요.
회식 메뉴는 뭐였어요?
무조건 삼겹살이죠. 정말, 무지막지하게 먹었습니다(웃음).
작년 ‘싱크: 하이퍼 라인’ 이후 꼬박 1년 만의 월드투어예요. 게임으로 치면 이번이 ‘라운드 투’인 셈인데 확실히 성장한 것을 체감한 시간이었나요?
너무나요. 첫 콘서트 때는 마냥 디렉션을 따라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구석구석 참여하지 않은 부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예요. 세트 리스트도 같이 정했고, 무대 연출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거든요. 제 솔로 무대만 해도 원래는 안무로만 꾸려질 예정이었는데 막바지에 실루엣 컷을 추가하자는 의견을 제안했어요. 리허설 당일 갑자기 추가한 장치예요. 어려운 부탁이었을 텐데 감사하게도 잘 수용해주셨죠.
이번 콘서트에서 선보인 솔로곡 ‘Up’의 무대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였어요. 영상에 딸린 이 댓글이 유독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더라고요. ‘SM은 조속히 음원을 내도록.’
하하, 회사에서도 긍정적으로 본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솔로 무대도 워낙 좋아서 추후 어떤 식으로 풀면 좋을지 얘기가 오갈 것 같긴 해요. ‘Up’으로 올드스쿨 힙합에 처음 도전해봤는데 사실 예전부터 너무 해보고 싶은 장르였어요. 여태 EDM 장르를 주로 해온 탓도 있고 무엇보다 힙합 장르의 춤을 좋아하거든요. 이번엔 안무가 쌤도 작정하고 안무를 구성하신 듯했어요. ‘그래, 판 만들어졌다, 춤으로 다 부숴라!’ 느낌의 안무였달까요.
올해만 14개 도시를 순회하고 내년 초엔 미주와 유럽으로 투어를 확장해요. 어찌 보면 지금 초장기 레이스의 출발선에 서 있는 셈이네요.
그렇죠. 벌써부터 한식이 그립고 얼마나 바쁠까 겁도 나는데, 저는 막상 해외에 가면 제일 잘 노는 스타일이에요. 짬이 나면 무조건 나가서 관광하고요. 저 때문에 매니저님이 고생하시죠.
주로 뭘 하며 노는 편이에요?
그 나라의 유명 관광지는 싹 도는 스타일이에요. 가끔 매니저님이 관광객이 밀집한 곳은 좀 피하라고 하면 해맑게 대답해요. ‘그럼 셀프로 헤어랑 메이크업을 하고 예쁘게 나갈게요!’(웃음)
첫 월드투어 ‘싱크: 하이퍼 라인’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대목이 있어요. 무대에 오르기 직전 다짐하듯 이런 말을 내뱉죠. “제발 떳떳한 무대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때 말한 떳떳한 무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무대를 할 때마다 엄청나게 떠는 편이에요. 긴장한 탓에 손이 땀으로 흥건히 젖을 때가 많고 백스테이지에서 멤버들에게 입버릇처럼 ‘도망갈래?’라고 말하거든요. 긴장하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남들보다 연습을 배로 해야 하는 스타일이에요. 작년 월드투어 첫째 날 유독 무대에서 실수가 많았어요. 그게 너무 스트레스여서 그날 꼭두새벽까지 모니터링하고 마치 각성한 사
람처럼 이틀 차 무대에 섰어요. 저는 스스로에게 떳떳해야, 확신이 들어야 무대에 설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게 무대를 할 수 있고요.
과거 인터뷰를 보면 ‘Black Mamba’로 꾸린 데뷔 무대를 가장 떳떳한 무대로 꼽더라고요.
지금 보면 여전히 불만족스럽긴 하죠. 그런데 그때는 그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 같아요. 팬데믹 시기였으니까 관객도 없이 오로지 카메라 불빛만 바라본 채로 준비해온 걸 펼쳐야 했어요. 그때 느낀 부담감을 아직도 기억해요. SM에서 6년 만에 선보이는 걸그룹이라며 큰 주목을 받았잖아요. 어쩌면 저희는 그 무대로 어떤 증명을 해야 했던 것 같아요. 지금 데뷔 무대를 보면 춤이나 제스처나 부끄러운 수준이긴 한데, 전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멤버들에게서 독기도 느껴지고요. 영상을 보면 몇몇은 피를 흘려요. 무대 의상에 피부가 쓸려서. 그런데 그 모습조차 너무 예뻐 보여요. 절로 ‘오구오구, 고생했어’란 마음이 들어요.
떳떳한 무대는 곧 스스로에게 부끄럼 없는 무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네. 사실 부끄러운 무대도 많았죠. 음 이탈 난 무대, 안무를 틀린 무대. 시간이 지나면 다른 분들에겐 잊힐 수 있는 실수여도 저는 알잖아요. 만약 가족들이 그런 무대 영상을 보고 있을 때면 말해요. ‘제발 나 없을 때 봐줘!’ 한 번의 실수가 제겐 너무 크게 다가와서 점점 더 완벽해지려고 하는 것 같아요.
‘나’를 향한 기준을 높이 세우는 편인가요?
그런 듯해요. 예전엔 이 문제로 속앓이도 제법 했거든요. 나에겐 한없이 박하고 남에겐 또 유해서. 타인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상황에도 그저 혼자 묵묵히 참기 일쑤였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건강한 방향으로 변화한 듯해요. 이제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요. 감정도 있는 그대로 최대한 숨기지 않고 표출하고요.
변화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멤버들 덕이 커요. 네 명 모두 굉장히 솔직하거든요. 저희는 속 얘기를 서슴없이 나눠요. 가령 이런 것들까지도요. 어떤 점이 싫다, 이건 고쳤으면 좋겠다, 무대 할 때 이런 표정은 안 예쁘다. 서로 질투가 나면 그것조차 얘기해요. 서로의 어떤 점이 부럽다고. 멤버뿐 아니라 함께하는 스태프들에게도 솔직하게 다가가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저희를 굉장히 아껴주세요. 이런 스태프 만나기 어렵다고, 선배님들이 입을 모아 말할 정도예요. 변화의 계기가 있다면 바로 이런 주변 환경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 정규 1집 활동이 무사히 막을 내렸어요. 데뷔 후 첫 정규앨범이다 보니, 여느 때와는 차원이 다른 밀도로 준비했을 듯해요.
그렇죠. 일단‘Armageddon’의 뮤직비디오만 봐도···(웃음).
거의 매초 CG가 동원돼서 ‘공짜로 보기 미안해서 앨범 샀다’는 말까지 나왔죠.
하하, 맞아요. 최장기로 찍은 뮤직비디오였어요. 4~5일 찍은 것 같아요. 감사하죠. 어쨌든 회사에서 저희를 믿으니까 비용으로나 퀄리티적으로나 과감히 투자한 셈이잖아요. 이번 앨범은 확실히 준비 과정이 다르긴 했어요. 일단 미팅이 많았어요. 이렇게 체계적이고 집중도 있게 준비하긴 처음이었어요. 더블 타이틀곡으로 활동했는데 ‘ Supernova’는 새로워서 좋았고, ‘Armageddon’은 기대한 만큼 잘 나와서 좋았죠.
최근 한 유튜브 웹 예능에 출연해서 “이렇게까지 ’Supernova’가 인기를 얻을 줄 몰랐다”는 말을 남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앨범이 나오기 전 멤버끼리 했던 얘기가 있어요. ‘Supernova’는 대중분들이 좋아할 것 같고 ‘Armageddon’은 필드에 있는 동료들이 좋아해줄 것 같다고. 두 곡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사뭇 다를 것 같았어요. 듣기에도 보기에도 신선한 요소가 많은 ‘Supernova’에는 ‘ 재미있다’란 반응이 따를 테고, ‘Armageddon’은 ‘와, 안무’, ‘와, 사운드’, ‘와, CG’ 같은, 관계자가 보면 흥미롭게 다가갈 요소가 많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둘 모두 좋지만 아무래도 저희는 아티스트 입장이니까 ‘Armageddon’에 더 손이 갔던 것 같아요.
이번 활동으로 새로이 알게 된 게 있나요?
데뷔 때부터 세계관이 명확했잖아요. 세계관이 하나의 색깔이 된 건 좋지만 그것에만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누군가는 ‘세계관 플레이밖에 못하는 애들’이라 바라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작년 ‘Spicy’ 활동을 하면서 한 번 환기가 된 것 같아요. 이전까지 아바타 세계관에만 머물다 잠시 리얼 월드에 불시착한 느낌이었달까요. ‘Spicy’ 활동으로 시야가 확 트였어요. 그때부터 저희도 제작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 같고요. ‘이렇게 세계관을 녹여보면 어떨까요?’, ‘이런 사운드를 쓰면 좀 더 저희 같지 않을까요?’라고 의견을 제시하면서. 그리고 올해 <Armageddon> 활동으로 팀 색깔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된 기분이에요. 이젠 의심하지 않아요. ‘우리가 하니까 우리 음악인 거구나’ 하는 믿음이 있어요.
<Armageddon>이 좋았던 이유는 어떤 뚝심이 엿보인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요즘 K팝 신에선 듣기 편안한 이지 리스닝 계열의 음악이 주류잖아요. 그런데 에스파는 데뷔부터 고수해온 ‘쇠맛’을 박력 있게 밀고 나간다는 인상이 들었거든요.
그렇죠, 저희는 외길을 걷죠(웃음). 굳이 우리가 우리 것을 버릴 필요가 있나 싶어요. 이런 믿음이 있으면,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길을 걸으면 따라와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저희가 제일 잘하는 것도 바로 그 ‘쇠맛’ 콘셉트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청순한 콘셉트로 컴백하면 모두가 어색해하지 않을까요. 사실 저희 은근히 카메라 보고 방긋 웃는 거 잘 못해요. 항상 째려보기만 해서···(웃음).
하하, 최근 유독 예능 프로그램 활동이 잦았아요. 웹 예능은 물론, 6월 공개한 넷플릭스 예능 <미스터리 수사 단>에도 출연했죠?
제가 예능을 정말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TV를 끼고 살았고 ‘무도 키즈’였거든요. 사람 만나는 것도, 몸 쓰는 것도, 토크하는 것도 다 좋아해요.
어쨌든 예능은 무대와 달리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인지 서글서글한 성격을 칭찬하는 댓글이 유독 많았어요. ‘카리나는 미모로 떴지만 성격으로 인기를 얻었다’에 가장 많은 ‘좋아요’가 눌렸던데요?
귀 빨개질 것 같네요, 몸 둘 바를···(웃음).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원래는 낯을 엄청 가려서 물어보는 말에만 대답하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외향적 으로 변했어요. 멤버들 모두 MBTI가 외향적 성향의 ‘E’로 시작했거든요. 어느 순간 하나둘 내향형의 ‘I’로 변하더니 지금은 저만 유일하게 ‘E’ 성향이에요. 그렇게 된 후로 ‘내가 이 아이들을 웃겨야 해!’란 생각이 강해진 듯해요. 어느 순간 세 명의 내향인 앞에서 홀로 춤추고 웃기고 노래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웃음).
하하, 팬들 사이에선 ‘카수종’으로 통하죠. 팬들을 극진히 생각하고 챙기는 카리나를 보면서 팬들은 애처가로 유명한 배우 최수종을 떠올렸어요.
제가 뼛속까지 ‘핑크 블러드’거든요. 어릴 때부터 SM을 굉장히 좋아해서 이 회사에 들어온 거예요. 소녀시대, 에프엑스, 레드벨벳 언니들의 엄청난 팬, 그러니까 ‘여덕’이었어요. 그래서 팬들의 마음을 잘 알아요. 언니들이 팬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왔을 때 ‘악! 언니!’ 했는지 아니까 팬들에게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소통 플랫폼 ‘버블’에서 팬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뮤지션 ‘카리나’보다 인간 ‘유지민’으로서 다가가려 한다는 인상이 있어요.
맞아요. 카리나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유지민으로서의 삶이 더 길잖아요. 그래서 팬들에게 알게 모르게 계속해서 그 사실을 인식시켜주고 싶은 것 같아요. 또 유지민 그 자체로, 한 사람으로 바라봐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카리나가, 또 유지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나 자신.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를 늘 생각해요.
그 가치가 흔들릴 때마다 카리나를 꽉 붙잡아준 건 뭐였어요?
엄마요. 엄마가 간호사인데 원래 꿈은 시인이셨어요. 평소 책을 많이 읽고 매달 저에게도 보내주세요. 엄마와 같이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저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 중 하나예요. 편지도 자주 써주시는데 늘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항상 가족은 네 편이야, 물리적으로 지민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었지만 우리 대화 속엔 항상 지민이가 있어, 항상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걸 잊지 마.’
최근 엄마와 읽은 책 중 가장 기억 남는 게 있다면요?
<열여섯 밤의 주방>. 중국 소설이에요. 소설의 설정이 무척 독특해요. 죽으면 누구나 ‘지옥 주방’이란 곳을 거치는데, 그곳에선 생전 먹은 음식 중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엄마의 골뱅이 소면이 딱 떠올랐어요. 제가 좋아하는 미나리를 잔뜩 넣어서 엄마가 만들어준 애정 어린 한 그릇이요. 가족만큼 저를 지탱해주는 게 없어요. 힘들다가도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니까’, ‘난 소중한 사람이니까’를 되새겨요.
지금은 완연한 여름이죠. 꿈의 바캉스 플랜이 있을까요?
제주도에 갈 거예요. 여태 한 번밖에 못 가봤거든요. 데뷔 전 아빠와 단둘이 떠나본 게 전부예요. 동백꽃도 보고 흑돼지도 먹고 말도 타는 평범한 루트였는데, 그때 기억이 굉장히 좋았어요. 이번에 가면 모르는 사람들과 다 같이 어울리는 게스트하우스에서도 묵어보고 싶어요. 시간이 맞으면 멤버들이랑 떠나도 좋고 아니면 언니와 단둘이 가도 좋을 것 같아요.
오늘 2024 프라다 F/W 컬렉션 의상을 입고 촬영에 나섰어요. 오늘 입은 옷 중 휴가지에 챙겨 가고 싶은 한 벌이 있다면요? 핑크빛이 도는 넉넉한 크기의 셔츠요. 휴양지와 잘 어울릴 듯해요. 그대로 툭 걸쳐도 좋고 안에 수영복을 입고 오픈해서 입어도 예쁠 것 같아요.
요즘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보다 행복할까?’ 계속 그 답을 찾는 중이에요. 저는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을 갖고 있잖아요. 서둘러 그 대답을 찾아서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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