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냐 2025 S/S, 남자의 여름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김신

‘오아시 리노’ 안에서 펼쳐진 제냐의 2025 S/S 맨즈 컬렉션.

햇살이 유독 뜨거웠던 지난 6월, 밀라노 2025 S/S 맨즈 컬렉션의 마지막을 장식한 제냐. 밀라노 외곽에 위치한 거대한 공간에 들어서자, 영화 <붉은 수수밭>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황금빛 식물이 가득 찬 광경이 펼쳐졌다. 더없이 인더스트리얼한 공간에서 자란 무성한 식물, 그 이질적 모습을 마주한 순간, 이번 쇼를 통해 제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렴풋이 짐작되면서도, 쇼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지 은근 기대가 되었다. 텅 빈 공간에 자리한 식물 리넨(Linen)은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는 금속으로, 센티에로(Sentiero)라는 옐로 색조로 도장되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창조물이 만나 변화하며 서로 교차하는 현실을 투영하는 것으로, 아무리 정밀하게 구현되어도 금속 칼날같은 리넨과 런웨이를 걷는 인간, 각기 다른 두 존재는 그 어느 것도 완벽하게 똑같을 수 없다는 다소 철학적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같은 옷을 입어도 다르게 느껴지는 개성의 차이를 ‘오아시 리넨에서의 우리(Us, in the Oasi of Linen)’라는 슬로건을 통해 상기시킨 것.

쇼의 배경 설치물로 꾸밀 만큼 ‘리넨’은 여름 시즌 제냐의 키워드이자 핵심 소재다. “패션이란 형태와 태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단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색하게 이끄는 일종의 실험실이다.” 제냐의 아티스틱 디렉터 알레산드로 사르토리(Alessandro Sartori)의 말처럼 이번 시즌 제냐의 리넨은 견고하면서도 부드럽게 다양한 직조와 뜨개질 기법에 활용되었고, 패션의 멋과 재미를 구현하는 소재로 쓰였다. “우리가 새롭게 정립한 용어들이 있으니, 이제는 이를 다양한 패션 아이템에 어떻게 적용하고 어떻게 개개인의 개성과 잘 어우러지게 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입니다. 리넨은 이런 의미에서 훌륭한 매개체입니다. 우리가 개발한 새로운 직물 ‘오아시 리노’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약속을 지키며 여름옷의 핵심 소재로 유연함과 감각적인 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오아시 리노로 완성한 이번 컬렉션은 신사의 세계에서 남성들이 하나의 놀이처럼 패션에 접근하는 이탈리아만의 감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컬렉션의 실루엣은 부드럽고 편안하게, 때로는 몸의 형태를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하며 우아하고 다채로운 변주를 이뤘다. 쇼를 보는 내내 리넨으로 구현한 형태감은 마치 클래식 선율처럼 경쾌하고, 묵직하면서도 우아했는데, 그와 동시에 이를 극대화한 것이 바로 색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앙코 제냐, 센티에로 옐로, 소르젠테 블루, 사비아, 파지오, 카스토로와 같은 다양한 중성 색조에 테라코타와 오르텐시아 색을 더한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가 감정을 극대화했고, 이 색감들은 리넨, 코튼 리넨, 실크, 테크니컬 실크, 실크 듀피옹, 코튼 실크, 모헤어 실크, 오아시 캐시미어 등 다양한 소재에 담겨 완벽한 리듬을 완성했다.

색감과 소재 뿐 아니라 이번 시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제냐의 실루엣으로 몇 가지가 더 있다. 오버코트와 재킷의 몸을 감싸는 듯한 볼륨감, 평소보다 길게 늘어진 블레이저, 니트 셔츠와 테일러드 오버셔츠에 적용된 노치리스(Notchless) 칼라가 바로 그것. 런웨이에 오른 꽃중년 배우 매즈 미켈슨이 입은 룩은 언급된 키워드를 한눈에 보여준다. 큼직한 포켓이 장착된 오버사이즈 버건디색 가죽 재킷, 양손에 들린 부드럽고 큼직한 가죽 가방, 그리고 새롭게 선보인 이번 쇼의 유일한 슈즈 모카신이 그것. 여기에 양념처럼 등장했던 보태니컬 오아시 느낌의 추상적인 프린트, 부드럽고 다양한 형태의 넉넉한 스웨이드 백, 경쾌한 쇼츠까지. 색감, 소재, 스타일 삼박자가 들어맞으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들은 것 같다. 여기에 자연을 즐기고 패션을 사랑하는 이탈리아 남자의 쿨한 애티튜드까지 더해지니, 남자의 여름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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